노동부 무차별 '노사 평화 깨기' 대작전
노동부, 공공기관 단체 협약 분석…"입맛대로 '다 바꿔!'"
2009.04.20 14:57:00
노동부 무차별 '노사 평화 깨기' 대작전
노동부가 개별 노사 관계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 현행법상 위법이 아닌데도 '합리적'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들이대며 공공기관의 단체협약 내용을 입맛대로 바꾸고 있는 것.

<매일노동뉴스>는 20일 자체 입수한 '노동부 산하(유관) 공공기관 단체협약 분석 및 개선 방안'을 근거로 "노동부가 산하 공공기관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평가한 뒤 기관별로 서열화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국은 근로복지공단 등 6개 산하기관과 한국노동연구원 등 2개 유관기관의 단체협약을 자체 기준으로 분석해 점수를 매겼다. 더 나아가 '모범 사례'와 '불합리한 사례'를 기관별로 적시해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평가 내용을 보면, 법보다 노조의 권리를 더 인정한 단체협약은 고쳐야 할 대상으로, 법보다 사용자의 권리를 더 인정한 단협은 모범사례이다. 하지만 노사 간 합의로 만들어진 단체협약은 노동법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어서 노동부의 이런 평가는 법적 근거가 없다.

취임 초기 알리안츠생명 등의 파업을 놓고 "어떤 형태의 노사 갈등에도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소신'도 무색케 하는 일이 벌어진 것.

노동부는 이런 행정 지도의 필요성을 놓고 "공공기관이 노사관계 선진화의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노동계는 "노동부가 공공기관부터 시작해 노사관계 파탄의 선도적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노동부는 단협 평가를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어서 논란은 더 확산될 전망이다.

근복공단 1등, 노동연구원 꼴찌…시정 명령에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 계획

▲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취임 초기 알리안츠생명 등의 파업을 놓고 "어떤 형태의 노사 갈등에도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위법이 아닌데도 '합리적'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들이대 노동부가 공공기관의 단체협약 내용을 입맛대로 바꾸려는 것이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뉴시스
이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노동부는 산하 공공기관의 단체협약을 △노조 가입과 노조 활동 보장 △노조의 경영 참여와 인사권 제한 △임금 등 근로 조건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 등 4개 분야로 구분하고 각 분야별로 평가항목을 마련해 점수를 매겼다.

각 항목별로 '매우 합리적', '합리적', '보통', '비합리적', '매우 비합리적'의 5단계로 구분해 평가했다. 평가 결과 100점 만점에 근로복지공단이 71점으로 '가장 합리적'인 단체협약으로 꼽혔고, 한국노동연구원이 54점으로 꼴찌였다.

특히 노동부는 지난 8일 각 기관장들을 불러 불합리한 사례로 지적된 부분을 시정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분석에 그치지 않고 각 공공기관의 올해 임단협 지침을 내린 셈이다.

더 나아가 노동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조 아래 단협의 분석 기준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및 기관장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의 권리는 최소화하고 사용자 권리는 최대로 한 단협이 '모범'?

문제는 평가 기준이다. 현행법 아래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규정도 노동부가 자체 기준으로 "적정한 범위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합원 교육 시간의 경우 노동부는 "노조원 교육 시간을 과도하게 인정해 집회, 농성, 파업 결의 대회 등 교육 목적 외로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했다"고 기준을 밝혔다. 그러나 조합원 교육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여부는 노조의 자율권에 해당한다.

역시 노사 자율로 정하게 돼 있는 노조 전임자 수도 정부가 정한 적정 기준을 근거로 각 기관의 단협을 평가했다. 기준보다 더 많이 노조 전임자 수를 인정할 경우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노조의 권리를 최대한 인정한 조항은 모두 최하점을 받게 된다. 노조 업무 보조원에 대해 급여를 지원하거나, 업무용 인트라넷을 통해 노조의 홍보 활동을 허용하는 것도 안 된다.

반면 사용자의 권리는 최대한 많이 끌어낸 것이 모범 사례로 꼽혔다. 노조가 경영 관련 회의해 참석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라 안 되고, 경영자가 노조 대의원대회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모범 사례'였다. 노조 활동을 위해 기업 시설을 사용할 때 사전에 기관의 허락을 받도록 한 규정도 역시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다.

인사 이동, 징계 등 어떤 경우에도 노사 '대화'는 안 된다?!

인사 이동 등을 할 때 노사가 협의 하에 해야 한다는 규정도 모두 도마 위에 올랐다. 노사 상호 신뢰를 가능하게 하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쌍방의 약속을 노동부가 나서서 먼저 파기하라고 조장하는 꼴이다.

노사 갈등의 핵심 요소가 되곤 하는 징계 절차를 놓고도 노동부는 "징계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회사 마음대로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의 해지를 놓고도 "노사 합의를 통해서만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해지권 제한"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한 쪽의 일방적 단협 해지 통보로 노사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한 자율 규정이다.

그 외에도 노동부는 파업을 할 경우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지 않거나, 해고자 복직 및 민·형사상 책임 면제와 같은 합의를 했을 경우 각 항목별로 10점씩 감점했다. 대개 노사 갈등의 경우 민·형사상 고소 고발 등이 마지막까지 타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노동부의 이런 기준은 '쟁의 행위가 계속 이어져도 절대 소 취하 등의 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과 마찬가지인 셈.

"노사관계의 기본원칙인 '노사 자율', 노동부 스스로 부정"

전문가들은 노동부의 단협 평가 기준을 놓고 "노사 자율 교섭이라는 노사관계의 근본 원칙을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나서 해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하늘의 맹주천 변호사는 "문제의 단협이 현행법상 문제가 있다면 '위법'이라 규정하면 되지 '합리적', '비합리적'이라는 기준을 쓸 이유가 없다"며 기준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맹 변호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 검토해 보라는 권고도 아닌 시정 명령을 내리는 것은 노동부의 월권이자 노사자율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덧붙였다.

맹 변호사는 "노사가 자율로 체결한 단협을 정부가 나서 간섭하는 것이 하나의 모델링이 될 경우 다른 기관 및 기업에도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며 "합법의 틀 내에서 자율적 노사관계를 보장하고 장려해야 하는 기본 임무를 노동부가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의 존재 목적과 배치되는 '자기 배반'이라는 얘기다.

노동부는 그간 최저임금제 및 비정규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노동부 정책에 노동자는 없고 오직 기업만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여기에 덧붙여 단협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공공기관 부터 민간까지 '노동부가 노사 평화를 깨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ddongg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