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vs 종교'…종교의 유통기한은 끝인가?
[화제의 책] <종교 전쟁>
'과학 vs 종교'…종교의 유통기한은 끝인가?
한때나마 기독교에 몸담아본 일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의 가르침과 과학이 말해주는 내용 사이에 일정한 모순이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믿지 못할 것으로 판정하여 아예 이를 버리고 뛰쳐나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혹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그대로 간직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버렸든 아직 그 안에 머물고 있든 간에 이 문제는 참으로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러한 사람들이 한번 찬찬이 읽어보고 그간 자신을 괴롭혀 온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게 해줄 좋은 책이 나왔다.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엮어 만든 <종교 전쟁>(사이언스북스 펴냄)이 그것이다.

과학 vs 종교…흥미진진한 대리전

사실 '종교 전쟁'이라는 표현은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기에 그리 적절하지 않다. 필자들 자신의 말대로 이것은 '종교 간 전쟁'이 아니라 '종교를 둘러싼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과연 '전쟁'에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데에는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그러나 책의 제호는 어떻던, 현대 과학과 현대 이성의 조명에도 불구하고 현대 종교 특히 기독교가 그 신앙의 아성을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뜨거운 쟁점이 될 수 있으며, 여기에 관련하여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세 젊은 학자가 서로 간에 매우 우호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논지를 펴나가고 있다. 한 사람은 과학의 내용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은 신앙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과학과 종교를 긍정적으로 포용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종교 자체를 과학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이 안에서 각자 자기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대리자를 만나게 되며, 이 입장이 이들의 입을 통해 어떻게 변호되며 어떻게 비판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자신의 입장으로 택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자신의 논지가 이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은 어떠한 것이 있으며 이것은 또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더욱 확고한 바탕 위에 자신의 신조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지녔던 미비점을 확인하고 좀 더 나은 입장을 모색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세 저자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지녔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안에서 자신의 입장이 설 자리는 어디쯤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의 논지에 비추어 과연 자신의 입장이 적절한 것인지를 자문해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다채로운 학문적 파노라마

▲ <종교 전쟁>(장대익·신재식·김윤성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논의를 펴고 있는 세 사람의 저자는 서로 간의 차이만큼이나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성장하던 시기에 기독교(개신교) 신앙을 경험했으며, 적어도 한 때나마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신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다가 한 사람은 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다시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초기의 신앙에서 멀어져갔고, 급기야는 무신론자로 자처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종교라는 것 자체가 조만간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 논지를 거침없이 펴나가게 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기독교의 성직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우선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사고의 폭을 넓힌 후 다시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개신교 목사가 된 진보적인 신학자로서 신학의 핵심적 내용뿐 아니라 대학에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면서 과학을 통해 오히려 신앙의 폭과 깊이를 더해 나갈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한 사람은 일관되게 종교학을 공부해 온 전형적인 종교학자이다. 그 또한 처음에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보수적 신앙의 개신교인으로서 창조 과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으로 "점차 진보적인 자유주의 개신교로 옮겨갔다가, 다시 개신교를 비롯한 개별 종교들을 넘어 종교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종교학자로, 그리고 종국에는 거의 무신론에 가까운 색체를 띤 불가지론적 입장의 세속적 종교학자"라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세 사람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과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함께 나름의 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흔히 과학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 이해가 지극히 일천한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 반해 이들은 모두 현대과학에 대한 소양에 있어서 전문 과학자를 능가하는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세 사람이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를 논하면서 펼쳐내는 학문적 파노라마는 다채로움 그 자체라 할만하다. 이들은 한편으로 도킨스, 데닛, 윌슨 등이 선도하고 있는 진화론적 설명 체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하면서 과학에서 바라보는 종교의 성격을 살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관련성의 개관과 함께 현재 과학을 대하고 있는 신학의 여러 관점들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진화론을 둘러싼 기독교인들의 반응에 관한 것이며, 특히 최근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는 이른바 '창조 과학'에 집중적인 조명을 해주고 있다. 사실 창조 과학이라는 논제는 현대 과학에서는 물론이고 현대 신학에서조차도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 개신교에서 유난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에 대해 이들은 나름대로의 진단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인이 꼭 읽어야 할 책

이들의 논의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점은 종교적 신앙에 대한 각자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입장을 존중해가며 서로 다른 전문 분야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동원하여 상호보완적인 논의를 매우 자연스럽게 엮어나간다는 점이다. 학문 간의 대화에서 누구나 추구하면서도 좀처럼 이루어내기 힘든 시너지 효과를 이들은 매우 잘 이루어내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과학의 본질이나 또 이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거의 아무런 차이도 보여주고 있지 않으면서도 신앙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각자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를 보기에 따라서는 과학에 대한 이해가 신앙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을 한 층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모두가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이나 기복주의적 신앙 형태를 배격한다는 점에서 과학이 일정 정도 신앙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와 특별한 관련을 가졌고 따라서 그 소재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치우쳐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나 종교에 관련된 이들의 논의가 기독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 가운데 적어도 두 사람은 이미 기독교의 입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 또한 편협한 기독교 신학자가 아니라 종교 간 대화의 문을 크게 열어놓고 있어서, 이들의 이야기는 종교인 일반 그리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이미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젊은 신도들과 기독교 목회자 그리고 기독교 교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자신들 내부에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위에서,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 자신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대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닌 다른 한 가지 장점은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편지라고 하는 부드러우면서도 자유로운 형식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부담감을 주지 않고 다층적인 담론을 종횡무진으로 열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안에서 저자들이 그 동안 겪어온 내면적 고뇌와 함께 그들이 현재 토로하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까지 가감 없이 읽어낼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다.

저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비교적 젊은 학자들로, 자신들의 직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학문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세계 학계와의 폭넓은 소통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형식에 있어서나 저자 자신들이 보여주는 자세에 있어서 완결된 하나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모색의 한 단면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남은 문제들

이러한 점까지 고려하여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내 개인적 견해 몇 가지만을 덧붙이기로 한다. 첫째 하나는 논의의 흐름이 지나치게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이것의 확장형인 '밈(meme)'이라는 메타포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사실 유전자든 밈이던 그 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그 주변에 이를 가능케 하는 '보작용자'(장회익, 1990, <과학과 메타과학> 193쪽 참조)가 함께 해야만 가능한 것이데,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하면 지나치게 유전자 또는 밈 환원론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필자 자신이 천착해온 생명의 단위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필자가 그간 밝혀온 견해에 따르면 생명의 진정한 단위는 유전자도 아니고 또 여타의 낱생명도 아닌 온생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인정할 경우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인간과 종교에 대한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과 종교를 논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자연의 물리적 질서와 생명체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주체의 문제가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풀어야 한다. 이것은 이미 '신체/마음의 문제'라고 하여 전통적인 난제로 찍혀있는 것이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학문적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거듭 되묻고 잠정적이나마 그 해답을 찾아내어야 할 문제이다.

종교가 과학으로 환원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이 해답에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나 자신의 견해로는, 이들이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원될 성격의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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