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꿈꾼 '화성'은 어떤 모습인가?
[문화, 우주를 만나다] 꿈의 영역
2009.07.01 08:50:00
당신이 꿈꾼 '화성'은 어떤 모습인가?
2009년은 유엔(UN)이 결의하고 국제천문연맹(IAU),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

실제로 2009년은 아주 뜻깊은 해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주년,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 80주년, 인류의 달 착륙 40주년, 외계 지성체 탐사 프로젝트 제안 50주년 및 메시지 송신 35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한국조직위원회를 만들어서 국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4월 2일부터 5일까지 전 세계 천문대에서는 100시간 동안 연속으로 별을 관측하고 길거리에서 천문학자·아마추어천문가가 일반인과 함께 별을 관측하는 전 지구적인 행사가 열렸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이동 천문대 '스타-카'가 소외 지역 아이들을 찾아가고, '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같은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이런 내용은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웹진 <이야진(IYAZIN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가기)

<프레시안>은 이런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문화, 우주를 만나다' 연재를 <이야진>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던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별, 우주, 문화, 예술 등을 화두로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선보인다. <편집자>


▲ 백조의 고리(Cygnus Loop)로 알려져 있는 면사포성운의 일부인 NGC 6974. 면사포성운은 1784년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이 처음 발견하였다. 면사포성운은 약 5000~8000년 전 폭발한 초신성 잔해로, 폭발에 의해 팽창하는 가스 껍질층이 섬세한 섬유질 구조를 보이고 있다. 또 껍질층을 구성하는 가스의 온도에 따라 붉거나 푸른 색깔의 성운으로 보인다. ⓒ한국천문연구원(사진=고창균)

바이킹 1호가 화성에 착륙했을 때 일이다. 바이킹이 보낸 사진들을 검토하던 나사의 과학자가 'B'라는 대문자가 보인다고 소동을 일으킨 적 있었다. 물론 정말 거기에 'B'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이 굴러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림자가 만들어낸 무늬를 보는 사람들의 두뇌가 그렇게 읽은 것에 불과했다.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당시 그곳에 있었던 칼 세이건에게 그 소동은 남달랐다. 어렸을 때 에드가 라이스 버로즈의 애독자였던 그는 버로즈의 대표작 <화성의 공주>에서 화성이 바숨(Barsoom)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을 기억했다. 세이건에게 그 회상은 달콤하고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어렸을 때 그가 했던 버로즈의 독서 경험은 그를 과학자로 만들어 바이킹 착륙 때 나사 과학자로 참여할 수 있게 했던 수많은 원동력 중 하나였다.

우리에겐 수많은 화성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사는 우주에 존재하는 실제 화성이고 여기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실제 화성은 우리가 아는 화성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동설이 보편화되고 우리가 아는 지금의 행성이라는 개념이 완성된 이후 지구인들은 끊임없이 화성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조바니 스키아파렐리와 퍼시벌 로웰이 화성의 운하를 홍보하면서 폭발하다시피 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화성의 붉은 사막에 환상적인 운하를 만드는 화성 문명을 꿈꾸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 <우주 전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버로즈의 화성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미 로웰의 화성 운하 가설이 물거품이 된 20세기 중반에 집필된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성 연대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만 년의 역사를 가진 고대 문명이 만든 아름다운 운하와 건축물들, 그리고 그 곳에서 문명의 여명을 맞아가는 가냘픈 존재들. 이 이미지는 정말로 끝내준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최신 과학 이론을 따라야 하는 게 과학 소설가의 임무인데도, 나는 여전히 이런 화성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고… 실제로도 썼다. 물론 그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화성이 존재하는 평행우주를 억지로 만들어야 했지만.

놀랍게도 아직 그 화성은 죽지 않았다. 한동안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화성의 얼굴을 기억하시는지? 최근 근접 사진이 찍힌 뒤로 많이 인기가 시들긴 했지만, 고대의 화성 문명이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엄청나게 커다란 조각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구의 고대 문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가설은 거절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건 모두 꿈의 여파이다. <반지의 제왕> 팬들이 미들어스를 꿈꾸듯 우리는 꿈속의 화성을 꿈꾼다. 실제의 화성이 그 꿈을 배반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 꿈을 포기하랴.

이런 꿈의 공간은 화성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 베리야예프의 <달세계 여행> 이야기를 읽고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작품이 그렇게 좋았던 건, 베리야예프가 상상하고 꿈꾸었던 달이 우리가 아는 달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브래드베리의 <화성 연대기>에 나오는 고대 문명의 유적처럼 고대 생물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주먹 만한 보석들이 굴러다니는 베리야예프의 달은 꿈의 영역이었다.

이런 식의 예는 무궁무진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꿈의 영역은 우리의 눈과 귀가 완전히 닿지 않는 곳에서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아직 항해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고 미지의 영역이 지도 대부분을 차지할 때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했던 것은 상상력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아는 세계 너머를 '괴물이 사는 곳'라고 간결하게 정의한 뒤 멋대로 그곳에 사는 괴물들을 그려 넣었다. 지구 지도의 빈자리가 모두 채워지자 사람들은 상상력을 투영할 새로운 공간을 찾기 위해 다른 행성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단지 이 꿈의 세계에도 종류는 있다. 브래드베리처럼 적당히 과학을 무시하고 멋대로 상상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아서 C 클라크처럼 당시까지 알려진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믿음직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환상의 영역에서 허구의 존재를 창작해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클라크의 단편전집을 한 번 읽어보시라. 당시 과학 지식이 총동원된 하드 SF지만 그들 중 정말로 현실화된 것도 드물고 사실로 밝혀진 것도 생각보다 적다. (클라크의 소설이 예언이라면 태양계 거의 모든 곳에서 생명체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이야기는 레이 브래드베리의 소설과 기본적으로는 다른 게 없다. 하지만 알게 뭐람! 거대한 기구로 목성 대기를 떠돌며 역시 거대한 기구와 같이 생긴 목성 생명체와 조우하는 <메두사와의 만남>은 목성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뒤에도 사랑받을 것이다. 클라크는 끝끝내 지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정교한 환상을 통해 태양계를 정복했다.

슬슬 태양계를 벗어나 볼까? 태양계를 떠나면 꿈꾸기는 더 쉬워진다. 화성이나 금성과 같은 실제 행성은 그래도 우리가 지킬 수밖에 없는 규칙들을 요구한다. 하지만 초광속 여행으로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행성이라고 뻥을 치면 거의 모든 것들이 가능해진다.

사실 그 거의 모든 것들이 가능한 세계는 생각보다 재미없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양한 행성들을 보면 왜 그런지 알 것이다.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으로서 미지의 행성을 꿈꾸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편협하다. 어차피 영화란 지구에서 찍을 수밖에 없고 주인공들 역시 지구인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지구인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행동할 있는 공간만을 탐구하고 만다. 적당한 중력에 (중력이 약한 곳은 환영이지만 강한 곳은 안 된다) 적당한 온도에 (아주 추운 건 상관없지만 아주 더운 건 좀 곤란하다) 괴상한 모양이지만 너무 괴상하지 않은 생명체가 좀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런 행성들은 대부분 지구 정도의 다양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다양하더라도 지구처럼 춥고 지구처럼 열대 우림이고 지구처럼 사막이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행성을 탐사해야 하는 <스타 트렉> 시리즈의 경우는 그 때문에 거의 민망할 지경이다. 왜 델타 분면에 있는 미지의 행성이 캘리포니아 해변처럼 생겼고 거기 사는 외계인들은 코에 실리콘 장식을 단 할리우드 백인 배우들처럼 생겼는가.

그러나 그 영역 안에서도 재미있는 공간들은 존재한다. 사실 아주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지구인의 상상력의 영역을 벗어날 필요는 없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에 나오는 모래 행성 아라키스나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에 나오는 겨울 행성 게센은 지구의 사막과 극지의 풍경을 그대로 따와 다른 행성에 거대한 스케일로 푼 곳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는 어떤 신화적인 힘이 있다. 생각해보면 화성이 우리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곳이었던 것도 그곳이 지구와 은근히 비슷했고 그 유사성이 극도로 확대된 곳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꿈을 꿀 수 없다. 독자들을 자신의 꿈 속으로 끌어들이려면 그들에 넘어올 수 있는 익숙한 환경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 이건 너무 손쉬운 일반화다. SF의 영역을 조금만 더 깊이 파도 단순한 지구의 모사를 넘어서는 세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에 나오는 백조좌 61번 행성 메스클린은 어떤가? 질량이 목성의 16배이고 17분 45초의 주기로 자전하기 때문에 원심력의 차이로 중력 가속도가 665그램에서 3그램 사이를 넘나들며 수소를 호흡하고 메탄과 암모니아를 신진대사의 기본으로 삼는 생명체들이 행성 말이다. 전갈처럼 생긴 외계종족이 지나치게 지구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맥이 좀 풀리긴 하지만 클레멘트가 한줌의 천문학적 정보를 통해 재창조한 이 꿈의 영역은 우리가 지구에서 쌓은 경험의 한계를 가볍게 넘어선다. 일단 물리학의 지식을 이용해 우리를 경험의 영역에서 해방시키면 온갖 가능성들이 쏟아져 나온다. 클레멘트가 만든 중력의 지옥과 같은 세계는 로버트 포워드의 <용의 알>에 나오는 중성자성에 비하면 천국처럼 가볍다. 그 세계에 시간의 척도가 우리의 100만 배나 되는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했던가?

물론 아무리 끔찍하고 괴상한 세계라도 생명체가 살아야 한다. 이건 일종의 함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리 독특하고 매력적인 환경의 세계라고 해도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흥미를 잃는다. 그런 면에서 클레멘트나 포워드의 세계 역시 우주에 자신을 투영하고 자신과 비슷한 것을 찾는 익숙한 게임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단지 그 게임을 아주 고단수로 해치우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제대로 게임을 하는 이들은 단순한 녹색 메이크업을 하고 뾰죽한 귀를 단 할리우드 배우들보다 더 낯설고 괴상한 존재들을 만든다.

자연의 경이에 지치면, 여기에 약간의 인공물을 더하면 된다. SF 팬덤에서는 이런 것들을 농담삼아 'Big Dumb Object(BDO)'라고 부른다. 아서 C 클라크는 <라마와의 랑데부>에서 느릿느릿한 속도로 항성간 공간을 헤엄치는 속이 빈 원통형의 인공 세계 라마를 상상했다. 래리 니븐은 <링 월드>에서 G형 항성의 주변을 가느다란 반지처럼 감고 있는 반지름 1억5000만 킬로미터의 인공 구조물을 상상했다. SF 작가는 아니지만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자신이 살고 있는 항성계의 태양을 완벽히 둘러싸 항성에서 나오는 복사 에너지를 완전히 사용하는 기계 문명을 상상했다. 그가 고안해낸 이 거대한 구조물 다이슨 스피어는 밥 쇼의 <오비츠빌>을 포함한 수많은 SF 소설에 영향을 주었으며 외계문명을 찾는 몇몇 과학자들 중 심각하게 다이슨 스피어가 발산했을 수도 있는 적외선 복사체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런 인공물은 '미지의 공간에서 생명체를 만난다'는 게임을 극도로 과장시킨 결과이다. 하긴 어쩌겠는가. 여행이란 미지의 장소를 찾아나서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미지의 누군가를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진짜 여행이건 상상 속의 여행이건.

이런 여행은 종종 극단적인 스케일로 과장되기도 한다. 올라프 스테이플돈의 <스타 메이커>나 폴 앤더슨의 <타우 제로>와 같은 작품들에서 독자들은 눈 한 번 깜빡일 동안 우주의 전 역사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밤하늘의 별만 봐도 우리의 왜소함을 느끼고 위축되는 사람들에게 이런 SF 작가들의 허풍은 멀미를 유발시킨다. 하지만 일단 게임이 시작되었다면 끝까지 가야한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보자. 지금까지 SF의 영역에서 다른 행성들을 꿈꾸던 사람들의 한계는 명백했다. 그들은 태양계 내의 행성들에 대해서는 조금 알았지만 그 너머의 행성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동안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 태양계 밖의 행성들이 발견되는 것은 뉴스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서 검은 영역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며 다시 말해 우리가 상상력과 약간의 과학 지식만을 가지고 떠났던 꿈의 세계가 조금씩 잠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그 행성들의 대부분은 옛 SF 작가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컬러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하나라도 우리의 꿈의 기준에 맞는 세계가 발견된다면,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의미 있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린 그를 통해 지금까지 꾸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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