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권위를 접수하다?…"인권활동가는 출입 안 돼"
[현장] '인권 문외한' 현병철 위원장의 '특별한' 취임식
2009.07.20 18:07:00
경찰, 인권위를 접수하다?…"인권활동가는 출입 안 돼"
20일 청와대는 새 국가인권위원장으로 현병철 한양사이버대 학장을 임명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취임식을 열었다. 애초 취임식은 지난 17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인권활동가들의 항의로 연기됐다.

이날 경찰은 오전부터 인권위가 있는 금세기빌딩 1층을 철저히 통제했다. 인권위원장 취임식을 막으려는 인권활동가들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다. 경찰은 항의하는 활동가들에게 "인권위가 시설 보호 요청을 했다"고 둘러댔지만, 이날 통제는 경찰 자체 판단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결국 인권위 1층 건물 앞에서 인권활동가와 경찰간의 몸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층 회의실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건물 안에 들어와 있던 10여 명의 인권활동가들은 취임사 낭독 중간중간 큰목소리로 항의하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위 철수 요청에도 경찰 "우리가 판단할 일"…봉쇄 계속

이날 현병철 위원장은 청와대 임명식이 끝나고 오후 1시경 인권위에 도착했다. 그는 곧바로 13층 위원장실로 향했지만, 미리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권활동가들은 현 위원장의 입장을 막으며 "인권을 모르는 현병철 교수는 인권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항의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냉정하게 하자. 여러분의 행위가 인권위를 존중하는 행위냐"라며 대꾸했다. 20여 분간의 실랑이 끝에 김칠준 사무총장은 "인권단체들의 의견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라며 "취임식 진행에 차질이 없게 해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 인권위 1층에서는 인권활동가, 특히 장애인 활동가 출입을 막는 경찰의 봉쇄가 계속됐다. 경찰은 뚜렷한 기준없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불응하면 출입을 막았다. ⓒ프레시안
한편, 같은 시간 1층에서는 인권활동가, 특히 장애인 활동가 출입을 막는 경찰의 봉쇄가 계속됐다. 경찰은 뚜렷한 기준없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불응하면 출입을 막았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세 시간째 경찰은 아무 얘기 없이 인권위에 들어가려는 걸 막고만 있다"며 "불법행위이자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인권위 역시 난감하다는 입장이었다. 김칠준 총장은 "아침부터 경찰에 철수를 요청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철수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날 출동한 남대문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인권위는 국가기관이고 지난주처럼 취임식이 방해될 우려가 있어서 막았다"라며 경찰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경찰관직무집행법 2조 5항을 들며 "인권위의 요청은 없었지만 종합적으로 위험이 임박해 있었다"며 "서장의 지시"라고 말했다. 이 조항에는 "경찰관은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에 관한 직무를 행한다"고 표기돼 있다.

그는 인권위 관계자가 "우리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철수해달라"라고 요청해도 "인권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철수 요청을 해야 한다"며 한발 더 나아가 "또 구성원의 의견도 참고할 뿐이지 전적인 판단 요건은 아니다"라며 '시설 보호'를 고수했다.

현병철 "막중한 책임감 안고 섰다"

결국 오후 3시 취임식은 100여 명의 인권위 관계자와 공개질의서를 제출하러 온 10여 명의 인권활동가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현병철 위원장은 "저는 개인적 영예의 감회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여러분 앞에 섰다"며 "우리 위원회가 쌓아올린 그 적지 않은 성취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저는 지난 7년여 간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자 한다"며 " 빈곤층,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호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가. 그는 "또 특별사업인 북한인권 개선도 지난 몇 년간의 연구 성과를 이어받아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또 현 위원장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그 원칙을 앞으로도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임을 밝혀드리는 한편 위원회를 둘러싼 적잖은 논란에 대해 제가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균형감각으로 합리적인 대안들을 찾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 가지 직원 여러분께 당부드릴 것은 우리 자신의 부단한 자기혁신"이라며 "위원회 조직을 축소하는 과정에서의 상처를 씻고 조직이 다시 활력을 찾도록 하는 데도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병철 위원장은 취임사를 낭독하는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맞은 편에서는 10여 명의 인권활동가가 큰목소리로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취임사 낭독이 끝난 뒤, 인권활동가들이 공개질의서를 현 위원장에게 전달하면서 취임식이 마무리됐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 관계자들은 우리가 취임식을 깽판 놓는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권위원장은 취임사를 낭독한 것처럼 대통령이 지시하면 또 앵무새가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자격없는 위원장은 사퇴하라"고 강조했다.
▲ 취임사를 낭독하는 현병철 위원장. 그는 낭독 내내 얼굴을 들지 않았다. ⓒ프레시안
▲ 그의 맞은 편에서는 10여 명의 인권활동가가 큰목소리로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프레시안

취임사

먼저, 전임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로 상심이 컸을 인권위원회 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꿈을 안고 인권의 보호와 신장에 헌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가족 여러분!
지금 이 자리는 제 인생의 어느 때보다 명예로운 순간이지만 저는 그 같은 개인적 영예의 감회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이라는, 국민이 제게 부여한 이 엄중한 소명을 생각할 때 저는 경건함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저는 무엇보다 인권 전담 국가기구로서의 우리 위원회의 출범 정신을 다시 되새기고자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탄생은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바라는 국민들의 오랜 염원, 수년간에 걸친 인권단체의 노력, 그리고 정부의 의지와 국제사회의 지지와 요구가 어우러져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우리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옹호자, 대변자로서 지난 7년 여간 적잖은 것을 이뤄냈다고 자부합니다. 지난 7년간 우리 사회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인권위 설립 이전의 한국 사회와 인권위 설립 이후의 한국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라고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견고한 제도들을 바꾸고,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정부부처가 법과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도록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도 인권의식이 스며들도록 했습니다. 이제는 누구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인권위를 찾아가서 호소해야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습니다. 나아가 "국민으로부터의 진정한 신뢰를 받고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인권위원회다" 라는 것도 저의 생각입니다.

국제 인권사회에서도 우리 위원회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모범적 국가인권기구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 국격이 있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준, 나라의 자랑이 됐습니다.

저는 우리 위원회가 쌓아올린 그 적지 않은 성취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한편 더욱 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권위 가족 여러분과 저 자신, 그리고 국민, 이 땅에 사는 모든 분들 앞에서 확인하고 새로이 각오를 다지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7년여 간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자 합니다. 특히 위원회가 올초 위원회 내외의 지혜를 모아 마련한 인권증진 3개년 행동계획'에서 설정한 5가지의 전략 목표를 충실히 이행토록 하겠습니다. 기본적 자유의 실질적 보장, 아동 노인 인권 향상, 경제적 약자의 인권 향상, 다문화 사회의 인권증진, 사회적 약자의 차별 시정 강화라는 이 전략 목표들에 지금 우리 사회의 인권 현실과 과제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최근의 현실은 우리 위원회의 더욱 많은 분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공선을 추구하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입니다. 인권이 존중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때 그 사회는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빈곤층,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호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특별사업인 북한인권 개선도 지난 몇 년간의 연구 성과를 이어받아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제인권법에서 출발한 국가인권기구로서, 또 모범적인 국가인권기구로서의 국제적 위상과 책임에 걸맞게 국제적으로 승인되고 약속된 국제인권규범의 국내 이행 또한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경제화와 민주발전을 동시에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이 국제 인권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인권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위원회가 입법, 행정, 사법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위는 권력 기관이 아닙니다. 도덕적 권위와 가치로 자신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헌법의 정신과 가치, 자유와 인권 보호의 원칙 외에는 외부의 어떠한 압력과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들의 인권향상이라는 일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국가인권기구의 정신은 바로 독립성이라는 원칙에 구현돼 있습니다.
그 원칙을 저는 오늘 다시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임을 밝혀드리는 한편 위원회를 둘러싼 적잖은 논란에 대해 제가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균형감각으로 합리적인 대안들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직원 여러분께 당부드릴 것은 우리 자신의 부단한 자기혁신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지위의 상하를 떠나 서로 소통하고 권위주의를 배격하려고 하는 새로운 공공기관의 전통을 세우려 노력해 왔습니다. 밖으로는 독립적이면서 안으로는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에 맞는 책임을 다하기 위한 내부 혁신과 자기 점검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맙시다. 그래서 어느 국가기관보다 모범적인 새로운 전범을 제시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저는 위원회 조직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상처와 고통을 당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상처를 씻고 조직이 다시 활력을 찾도록 하는 데도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인권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인권 단체 등 시민사회에도 당부드리겠습니다. 국가인권기구는 그 설립 과정에서부터 인권단체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태어났듯이 우리 인권위 직원들만의 것이 아닌, 인권 공동체의 공공자산입니다. 인권의 경험과 현장성, 문제의식을 가진 인권단체들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긴장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하는 인권 동반자로서, 위원회를 성원하고 때로는 매섭게 비판하면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가족 여러분.
우리 위원회는 우리 직원들과 인권 세상을 열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열정의 결과물이자 자산입니다. 우리에겐 이걸 소중하게 지키고 키워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분에 주어진 사명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가 억울함과 고통과 가난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위원회 앞에 놓인 도전과 과제들, 온전히 제 몫으로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건 저의 소명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의무이자 여러분들의 엄중한 소명이기도 합니다.
그 소명을 다하는 일에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 병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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