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우던 클린턴도 이 전화는 못 끊었다
[설탕 담합 이야기 ②] 끊이지 않는 국제 가격 담합의 뿌리
바람피우던 클린턴도 이 전화는 못 끊었다
국제금융과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15년간 재직했습니다. 이 15년 중 8년은 런던과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9년 증권정보 제공 인터넷 기업인 (주)팍스넷을 창업해 4년간 경영했고, 그 후 다양한 분야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 창립 주주이며, 희망제작소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극복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만간 발간될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사실 라이신과 핵산조미료에서 국제적으로 담합한 범죄의 뿌리는 인공조미료 글루탐산나트륨(MSG, 가정과 식당에서 흔히 쓰는 인공조미료인 '미원'과 '미풍'이 MSG이다) 국제 담합에 있다. 1980년 이전부터 제일제당과 미원(대상) 그리고 일본의 아지노모또 등이 매년 정기적으로 대만 등 제3국에서 'G-meeting'이라는 모임을 하며, 주요한 국제적인 실수요자에게 공급할 업체와 판매 물량과 가격도 정하는 행위를 은밀하게 해왔다.

여기에서 재미를 본 한국과 일본의 MSG업계는 핵산조미료에서도 담합을 했다. 이들은 1990년대 초 제일제당이 라이신을 생산하면서부터, 그동안의 경험과 범죄기법을 활용해 ADM을 끌어들여서 라이신 국제 담합을 저질렀다.

밀회 중이던 클린턴도 끊지 못한 '설탕 부자'의 전화

ADM의 주력제품인 전분당은 옥수수 전분을 발효하여 만드는 포도당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단맛을 내기 위해 설탕 대용품으로 쓴다. 설탕업계와 전분당업계는 경쟁하는 관계지만, 은밀하게 담합을 통해 서로 가격을 올리는 협조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경쟁품목 사이의 대규모 담합 사례이므로 적발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사례이다.

"1996년 2월 29일 월요일 오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와 밀회하던 도중 전화를 받았다. 미국의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 낮, 클린턴은 바람을 피우던 도중 걸려온 이 귀찮은 전화를 받고 낮 12시 42분부터 1시 4분까지 22분 동안이나 통화했다."

1998년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조사한 결과인 '스타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휴일에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한 인물은 알폰소 판훌(Alfonso Fanjul)로 플로리다 사탕수수의 3분의 1을 생산하던 설탕 거부였다. 쿠바 출신으로 스페인 국적을 갖고 플로리다에 거주하던 그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 거액을 기부해온 인물이었다. 그는 사탕수수 생산자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에 대한 세금을 인상할 계획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클린턴에게 직접 전달했고, 결국 세금 인상안은 없었던 일로 됐다(매리언 테슬, <식품정치>, 고려대 출판부).

미국은 설탕 수입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설탕 가격을 높게 유지하고 있다. 그 명분으로 경쟁력 없는 사탕수수 농업 보호를 주장한다. 그런데 미국의 설탕산업은 소수의 사탕수수 농장주들이 정부의 보호 아래 막대한 이익을 향유하는 산업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내막은 ADM 등 전분당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교묘하게 경쟁제품인 설탕의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데 힘쓰는 구조다. 만약 싼 설탕이 수입되면 전분당의 가격을 내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분당 가격이 높게 유지되어야 옥수수를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옥수수 농사를 하는 업체들의 이익과도 직결된다. 이들은 워싱턴D.C.에서 막강한 로비그룹이다. 공휴일에 대통령의 밀애를 중단시킬 정도로.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중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곤욕을 치렀다.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와 밀회하던 도중에도 전화를 끊지 못했을 정도로 '설탕 부자'의 힘은 막강했다. ⓒ로이터-뉴시스

관세율 35% 고수? 담합으로 폭리 취한 설탕 회사들

2011년 9월 27일자 <중앙일보>의 '설탕 관세율 35%는 마지노선'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핵심 내용은 설탕 관세율을 35% 이하로 낮추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유럽,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거의 모든 물품의 무역에 관세를 없애는 마당에 아직도 관세율이 35%인 공산품이 있었나? 그런데 그 관세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간지에 실리다니! 놀라웠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최원목 교수가 쓴 이 칼럼의 중요한 부분을 보자.

정부는 지난 9월 7일 2011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설탕 등 독과점 고착화 품목에 대한 기본관세율을 대폭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관세율 인하를 통해 물가안정과 국내산업의 경쟁 촉진을 얻고자 하는 목표라고 한다. (…) 주요 교역상대국들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는 마당에 우리가 기본관세율을 5%로 대폭 인하하면 단기간에는 설탕 가격이 인하될 것이다. 값싼 외국산 설탕의 수입이 급증하면 국내 제당업계는 차츰 붕괴될 것이고, 이는 곧 외국 제당업계의 내수시장 장악으로 이어져 이들의 가격정책에 따라 우리 설탕 값이 춤추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 우리 정부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설탕관세를 유지하는 데 많은 협상력을 투입했고, 그 결과 FTA 발효 후 15년간 설탕관세율을 30% 선에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터에 물가안정과 국내산업 경쟁 촉진을 이유로 기본관세율을 5%까지 인하하겠다는 것은 정책목표 달성은커녕 FTA 협상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스스로 가드를 내려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문제를 잘 아는 내가 보기에는 터무니없다. 3개 설탕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논리이고, 국민 전체에게는 피해를 주어온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주장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설탕의 수입관세율을 높게 유지하는 이유는 사탕무나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자국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쌀과 쇠고기의 수입을 억제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우리나라에는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이 없으므로 관세가 높을 이유가 없다. 오직 국내에서 설탕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CJ제일제당, 삼양사 그리고 대한제당이 폭리를 취할 수 있게 만든 특혜다.

관세율을 낮추어 외국의 싼 설탕이 수입되면 국내 설탕공장이 문을 닫게 되고, 그러면 외국제품이 국내시장을 장악해서 나쁘다는 논리는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우리나라 설탕회사가 하는 일은 순도 98% 정도의 원당을 수입해서 공장에서 정제과정을 거쳐 99.9%의 설탕으로 만들어 파는 일이다. 기술경쟁력이랄 것도 없고 부가가치도 낮은 산업이다. 국제경쟁력도 없는 산업인데 수입관세를 35%나 붙인 것은 담합을 하는 회사들이 부당하게 비싸게 물건을 팔아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관세가 철폐될 경우 국제시장의 설탕이 수입되어 국민들과 식품제조회사들은 싼 가격에 설탕을 살 수 있게 된다. 정상적인 시장질서가 회복되는 것이다. 앞의 칼럼과 설탕생산 3개사가 주장하듯이, 수입자유화가 되면 우리나라에 있는 설탕공장 3개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시장경제에서 경쟁력이 없는 공장이라면 폐쇄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설탕 수입이 자유화되더라도 제당 3사는 오랜 거래선과 품질경쟁력이 있으므로 시장을 쉽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지난 수십 년 동안처럼 앞으로도 전 국민이 독과점 가격의 비싼 설탕을 사먹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국제경쟁을 하게 하여 설탕가격이 싸지는 것이 좋을까? 결론은 명백하다. 국제시장에서 싼 설탕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설탕산업과 별로 관계가 없을 듯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관세를 높게 유지하여 국내의 설탕가격을 높게 유지하라는 억지논리를 일간신문에 기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설탕시장의 담합 구조를 알아야 한다.

<파이낸셜뉴스>(2007년 11월 30일)와 <아시아투데이>(2008년 9월 17일)에 따르면, 3개 설탕 회사들은 원료인 원당을 3%의 관세로 수입하고 완제품은 35%의 관세로 막아놓은 후, 국내에서 국제가격보다 30% 정도 비싸게 팔아서 폭리를 취해왔고 이러한 부당이익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철저하게 담합해왔다. 신문기사에서는 15년간 약 3조 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추산했는데 이는 매년 약 200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이들은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고 2008년에 유죄 판결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불법적 담합 행위가 끝난 것으로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면 설탕산업의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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