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병철이 직접 서명한 담합 비밀합의문을 봤다
[설탕 담합 이야기 ③] 담합, 그 끈질긴 역사
난 이병철이 직접 서명한 담합 비밀합의문을 봤다
국제금융과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15년간 재직했습니다. 이 15년 중 8년은 런던과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9년 증권정보 제공 인터넷 기업인 (주)팍스넷을 창업해 4년간 경영했고, 그 후 다양한 분야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 창립 주주이며, 희망제작소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극복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만간 발간될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삼성그룹의 첫 번째 제조업은 1953년 부산에 세운 설탕공장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특혜관세와 담합을 이용한 설탕 판매로 번 돈으로 오늘날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여러 사업들을 전개했다. 삼양사는 1955년에 설탕공장을 설립했으며 대한제당은 1956년에 설립됐다. 제일제당이 설탕공장을 설립한 1950년대부터 1993년까지 정부는 설탕을 수입제한 품목으로 지정하여 사실상 수입을 금지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는 고율의 수입관세를 이용하여 수입을 억제했다. 외국 제품과 품질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과거 50년간 설탕이 거의 수입되지 못하도록 막아온 설탕사업은 전형적인 이권사업이다. 이를 이용하여 3개 회사는 과거 수십 년간 시장점유율을 고정시키며 가격을 담합하는 방법으로 국내 설탕가격을 국제시세에 비해서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해왔다는 것이 공정위와 사법부의 결론이다.

1984년에 제당 3사 사이에서 '설탕 전쟁'이 벌어졌다. 1960년대 이후 이들은 불법적인 담합을 통해서 제일제당 49.2퍼센트, 삼양사가 32.8퍼센트, 대한제당이 18.0퍼센트로 시장점유율을 고정하고 있었다. 가격도 거의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올리고 내렸다. 그러다가 1984년에 대한제당이 "18퍼센트가 너무 작으니 점유율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제일제당과 삼양사가 반대했다. 그러자 대한제당이 담합된 물량 이상을 출고했고 이것이 시장점유율 경쟁을 촉발하여 시장가격이 급락했던 것이 '설탕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로 인하여 제일제당은 설탕사업에서 일시적으로 큰 적자가 발생하고 시장점유율을 빼앗겼다. 대한제당과 벌이는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적자폭은 커져갔다.

제일제당에서는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본부장이 경질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이때 실무를 담당했던 나는 며칠씩 집에도 못 가며 대책을 검토하고 자료를 만드는 작업에 매달렸다. 이때 나는 매우 흥미로운 문서를 목격했다. 1960년대 중반 제일제당 49.2퍼센트, 삼양사 32.8퍼센트, 대한제당 18.0퍼센트로 시장점유율을 고정했던 근거자료인 비밀합의문서를 금고에서 꺼내어 검토했던 것이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펜글씨로 좌측부터 세로쓰기로 작성한 문서에 이병철 회장이 직접 서명 날인한 것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몇 달간의 실랑이와 협상을 통해서 결국 지분율이 조정되었다. 제일제당이 1.1퍼센트포인트를 양보하고 삼양사가 0.4퍼센트포인트를 양보하여 대한제당에 점유율 1.5퍼센트포인트를 늘려주기로 합의했다. 이때부터 제일제당이 48.1퍼센트, 삼양사가 32.4퍼센트, 대한제당이 19.5퍼센트로 다시 담합을 지속했고, 그 후 25년이 지난 최근까지 온갖 불법이 동원되며 0.1%의 오차도 없이 이 비율이 지켜져 왔다.


▲ 대형 마트에서 한 고객이 설탕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설탕 전쟁',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담합의 역사

독과점 품목의 폭리를 규제하기 위해서 판매가격을 정부가 관리하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있다. 설탕업계는 이 제도를 역이용하여 국내 판매가격을 높게 유지했다. 가격 변동을 관료들이 인가하는 제도를 오히려 가격 인상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었다. 고위관료 몇 명에게 로비와 향응을 제공하면 판매가격을 조정할 수 있었다. 제당협회를 이용하여 원료 수입 수량을 통제했다. 판매담당 임원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하며 가격과 판매수량 담합을 확인했다. 심지어 상대방의 창고에 가서 출고물량을 정기적으로 감시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2001년에는 "3개사의 설탕제조량에 대한 자료를 매달 상호 교환한다"는 합의서를 만들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3개 회사의 수많은 임직원들이 이러한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승진과 보너스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4년간의 런던 근무를 마치고, 1991년 뉴욕지점에 발령받아 4년간 근무하면서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있던 선물거래소에 상장된 원당선물(raw sugar futures)을 거래하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고, 신규 사업 발굴 관련 업무도 했다. 그러던 1995년 여름 본사로 발령을 받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본사로 귀임해서 내가 맡을 업무가 바로 정부의 관료들에게 로비하여 설탕가격을 가급적 높게 올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설탕 제조원가에서 원재료인 원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 업무는 수출입업무를 잘 알고 외국지점에서 국제자금관리를 해본 간부가 맡아왔다. 업무의 중요성과 기밀성 때문에 이 자리는 회사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른바 요직이었다.

설탕가격을 올리기 위해서는 당시 상공부 화학제품과와 경제기획원 국민생활과 결재라인을 거쳐 허가를 받아야 했다. 1970년대 이후 이 부서에 근무했던 대부분의 고위 공무원들을 제일제당에서 특별히 '관리'했다고 보면 된다. 무리하게 높은 가격 인상을 관료들로부터 승인받기 위해 온갖 불법이 저질러졌다. 관료들이 설탕 가격 인상을 승인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를 피하고 감사원의 감사에 대비해서 증빙자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실구매가격보다 높게 원당을 구매한 것처럼 계약서를 위조했다. 실제 계약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원당을 수입하여 외국에 자금을 은닉하기도 했다. 외환관리법 위반, 관세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 중범죄 행위들이었다. 이런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서도 뇌물 제공과 접대가 일상적이었다.

실상을 잘 알던 나는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고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고민 끝에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의 선후배와 동료들은 승진이 보장된 그 좋은 보직을 왜 마다하느냐며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상사는 배신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으며 지금도 그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를 떠나면서 내가 진정으로 사직하는 이유를 '범죄 행위를 하기 싫어서'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다른 동료와 선후배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기에. 17년이 지난 이제야 진실을 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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