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섬
[주간 프레시안 뷰] 필리버스터 의원들에게 박수를!
엉망진창 섬
옛날에 아주 볼썽사나운 섬이 하나 있었어.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에 뒤죽박죽 엉망이었지. 모난 돌들이 나뒹굴고, 화산에서는 불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는가 하면, 독화살에 머리 둘 달린 두꺼비들까지 튀어 나왔어.

섬에는 가시투성이에 배배 꼬인 식물들이 자랐어. 그 식물들에서는 꽃이라곤 한 번도 핀 적이 없었지. 한 시간마다 지진이 일어났고, 시커먼 회오리바람과 천둥 번개가 몰아쳤고, 소나기와 폭풍과 먼지바람이 한데 뒤엉켜 휘몰아쳤어.

밤이 되면 섬은 얼어붙었어. 살아 있는 것들이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꽁꽁 얼어붙었지. 하지만 화산은 계속해서 불을 뿜었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어. 그러다가 해가 뜨면 모든 게 녹아서 다시 움직였지.

지글지글 타고, 꽁꽁 얼어붙고,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에, 뒤죽박죽 엉망인 이 섬에는 바로 괴물들이 살았어. 기괴하게 크거나 기괴하게 작은 녀석, 뚱보나 말라깽이, 끈적끈적하거나 바싹 마른 녀석, 비늘이나 사마귀나 뾰루지로 뒤덮인 녀석, 더듬이와 갈고리 발톱과 송곳니가 삐죽 난 녀석, 딱딱한 껍데기에 압정과 녹슨 못이 잔뜩 나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은 다리 대신 바퀴가 달려 있었어. 정말 하나같이 괴상하게 생겼지. 서로 닮은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지.

이 끔찍한 괴물들은 서로서로 잡아먹고 살았어. 후식으로는 자갈을 먹었지. 그러니 누구도 배고픈 법이 없었어. 이 무시무시한 괴물들은 지나가다 서로 마주칠 때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서로 침을 뱉고 불을 뿜는 게 인사였어.

괴물들은 서로 잘난 척하고 질투했어, 몇 시간이고 흉측한 자기 모습에 홀딱 반하기도 하고, 자기보다 더 흉측한 녀석이 있으면 골이 올라 씩씩거렸지. 그러면서 다른 괴물을 괴롭힐 새로운 방법을 꿈꾸기도 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하기도 했지. 뭐니 뭐니 해도 괴물들이 가장 신나게 웃을 때는 다른 녀석이 괴로워하는 걸 볼 때였지.

괴물들은 이렇게 엉망으로 사는 게 좋았어. 서로 미워하고, 화내고, 복수하고, 찢고, 부수고, 소리 지르고, 으르렁거리고, 치근대면서 고약한 감정들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게 괴물들을 좋았어. 잔인하게 구는 게 즐거웠고, 남에게 나쁜 꿈을 꾸게 하는 게 재미있었어. 엉망진창 섬은 괴물들의 천국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아주 이상한 게 나타났어. 자갈밭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거야.

발그레한 꽃잎이 하늘거리는 걸 보고, 처음에 괴물들은 무서워했어. 그러다가 화를 냈지. 꽃을 향해 불을 뿜으면서 무섭게 으르렁거렸어. 이렇게 아름다운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괴물들을 꽃을 보자 무섭고 기분이 나빴어.

모두들 이 소식을 듣고 꽃을 보러 왔어. 그리고 모두들 화가 났지.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큰 소리로 으르렁대고, 발톱으로 땅바닥을 긁어 댔어. 이 꽃을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감히 만질 수가 없었어.

다른 곳에서도 꽃이 피어났어. 그러더니 화산 기슭에서도 또 한 송이가 피어났지. 이 꽃을 발견한 노란 괴물은 그 분홍빛 아름다운 꽃을 보고는 그만 미쳐 버렸어.

노란 괴물은 헛소리를 지껄이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바위를 향해 돌진하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어. 그렇게 이틀 동안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지. 그러다가 깨어나서 다시 헛소리를 하면서 뛰어 나갔어.

괴물들은 점점 더 서로를 의심하게 됐어. 기운 없이 느릿느릿 기어 다니거나, 아니면 미쳐 날뛰었지. 자기들의 천국을 망치기 위해 일부러 앙심을 품고 꽃을 심은 거라고 서로에게 뒤집어 씌웠지.

섬은 점점 더 심하게 술렁였어. 꽃은 점점 더 많이 피어났지. 괴물들은 서로에게 더 난폭하게 굴고 더 많은 불을 내뿜었어. 괴물들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지. 괴물들은 너무나 초조해져서 발작을 일으키거나 악몽에 시달렸어. 괴물들은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혔어.

이제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은 상대방을 꽃 쪽으로 밀어버리는 것이었어. 그런 일을 당한 괴물은 미칠 듯이 화를 냈지. 욕하고, 헐뜯고, 할퀴고, 떠밀던 것이 급기야는 큰 싸움으로 번졌어. 전에도 서로 꽤나 싫어하고 미워하긴 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지. 게다가 이제 더 이상 그러는 게 즐겁지도 않았어.

▲<엉망진창 섬>(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조은수 옮김) ⓒ비룡소

싸움이 크게 번져서 전쟁이 되었어!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서로 죽으라고 엉겨 붙어 싸웠지. 징그러운 녀석들 모두가 똑같이 성이 나서 때리고 할퀴었어. 불과 지독한 연기를 내뿜고, 바위와 타는 용암 덩어리를 내던졌지. 비명을 지르고, 고함치고, 으르렁거리고···. 저마다 뒤엉켜 서로에게 끔찍한 상처를 입혔어.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어. 그러다가 매서운 바람이 부는 차가운 밤이 되면, 싸움은 그대로 다음날 아침까지 얼어붙었지. 그리고 아침이 되어 녹으면 그 모든 게 다시 시작되었어.

그런 일이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던 어느 날, 모든 게 끝나 버렸지. 연기와 검게 탄 재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말이야.

비가 왔어. 처음에는 억수같이 퍼붓다가, 그 다음에는 살살 내렸지. 작은 물방울들이 보슬보슬. 밤새도록 그렇게 비가 왔어. 이번에는 얼어붙지 않았어.

새벽에 비가 그쳤어. 이제 엉망진창 섬은 더 이상 엉망진창이 아니었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죽은 자리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났지. 하나같이 예뻤어.

징그러운 바다 괴물들도 사라졌어. 이제는 맑고 푸른 바다만 남았지. 꽃들이 만발한 낙원 위에 빛나는 무지개가 걸렸어. 오래지 않아 이 아름다운 새 땅에 새들이 찾아 들었어.

미국 동화작가 윌리엄 스타이그의 <엉망진창 섬>입니다.

필리버스터에 나선 국회의원들에게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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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국회에서 6년간 보좌진으로 일했습니다. '좋은 대의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고민을 안고 영국에서 공부했습니다. 현재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이며, 경희대, 서강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