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판매법인이 한국GM을 지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8100억 국민 혈세 투입의 결과가 이꼴인가
수입차 판매법인이 한국GM을 지배?

문제의 발단은 항상 호기심이었다. <인사이드 경제>가 한국GM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그랬다. 이 '비상장'회사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일체의 경영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본사에서는 분기별 경영정보가 일반인에게도 공개되다보니, 간혹 본사 홈페이지에서 한국GM 관련 중요한 정보를 얻는 경우도 많다.

17%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이면서 사외이사 3명을 추천하는 산업은행도 입을 열지 않는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국회의 피감기관이기도 한데, GM 문제가 불거지기만 하면 공공기관 역할을 버리고 투자자로서 GM과의 비밀 준수 약속을 훨씬 중시한다. 질문이 나오면 "공개할 수 없다"는 말을 가장 쉽게 듣게 되니 말이다.

한국GM이 캐딜락코리아에 로열티 지급?

그런데 1년에 한 번씩 대목 시즌이 찾아온다. 비상장 회사라 할지라도 매년 4월 중에 전년도 감사보고서는 공시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시된 감사보고서라고 해봐야 대부분 암호문과 같아서 중요한 경영정보를 파악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인사이드 경제> 입장에선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다.

다행히 그간 GM의 기이한 행위가 워낙 많은 사회적 쟁점이 되어 온 덕(?)에, 지난 몇 년 동안 축적된 자료들이 각종 언론에 공개되어 있다. 작년 감사보고서만 쳐다보면 암호문일 뿐이지만, GM의 기행(奇行)을 추적해온 분들이 작성한 자료를 참고하면 하나씩 둘씩 암호를 해독해갈 수 있게 된다.

한국GM의 감사보고서 제출은 매번 지각이다. 상장사들은 빠르면 3월 말부터 공시를 시작하는데 한국GM은 올해 4월 30일에야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공시했다. <인사이드 경제>의 눈은 빠르게 작년 연구개발 법인 분리 관련 내용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매우 이상한 문구를 확인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 붉은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임)


그동안 과도한 연구개발비 부담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CSA(비용분담계약)가 지난해말 종료된다는 사실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바 있다. 산업은행은 GM과 CSA 계약 개편을 논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CSA가 종료되고 대신 올해부터는 로열티 계약으로 대체된다고? 게다가 그동안 한국GM과 별 상관이 없었던 ‘캐딜락코리아’에?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캐딜락코리아(舊 지엠코리아)는 자동차 생산이나 연구·개발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미국에서 캐딜락을 수입해 판매하는 판매법인에 불과하다. 한국GM은 ‘자동차산업협회’ 소속이지만 캐딜락코리아는 ‘수입차협회’ 소속이다. 그런데 완성차업체와는 DNA가 전혀 다른 수입차업체에 로열티를 지급한다니?

GM아태본부의 실체가 캐딜락코리아 ??!!

한국GM 감사보고서 어디를 뒤져봐도 추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언론 검색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캐딜락코리아 관련 공시자료를 뒤져보기로 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서는 ‘캐딜락코리아’가 아니라 옛 이름인 ‘지엠코리아’로 검색을 해야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GM이 가장 늦은 지각생인 줄 알았는데 지엠코리아는 그보다 더했다. 지난주 그러니까 5월 10일에야 작년 감사보고서가 공시되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GM 자본은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인사이드 경제>는 발견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문구와 함께. (아래 사진. 붉은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임)


작년 초까지 ‘지엠코리아’였던 이 회사의 명칭이 ‘캐딜락코리아’로 바뀐 것은 작년 7월 20일, 그런데 그 이름이 불과 1개월 전인 4월 11일에 '지엠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뭔가? 그렇다. GM이 한국사업을 키울 것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 등이 참석해 3월말 출범한 GM아태본부, 그 실체가 ‘캐딜락코리아’였던 것이다.


그러니 한국GM 감사보고서에 등장한 ‘로열티 지급계약’이란, 실제로는 캐딜락코리아가 아니라 GM아태본부와 체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로열티를 왜 GM 본사 쪽이 아니라 아태본부에 지급한다는 건가, GM아태본부가 본사와 한국GM을 연결하는 중간지주회사라도 된다는 걸까?

생산법인·연구법인의 중간지주회사?

이 질문 역시 캐딜락코리아 감사보고서에 실마리가 들어 있었다. CSA 계약은 라이센스와 기술 문제 전반을 다루는 GTO(GM Technology Operations)라는 GM의 자회사가 주도한다. 한국GM과 CSA 계약을 체결한 주체 역시 GTO이다. 작년 연말에 CSA가 종료되고 로열티 계약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로열티 계약을 GM아태본부가 GTO로부터 양도받았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연구개발 파트를 분할해 설립된 지엠테크니컬센타코리아(GMTCK) 역시 GTO와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것도 GM아태본부가 양도받았다는 것이다. 대신 지난해 종료된 한국GM과의 CSA 계약을 아태본부가 GTO와 체결했다는 것. 이게 대체 뭘 뜻하는 걸까?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그려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GM은 생산과 연구·개발기능을 모두 갖춘 종합자동차회사로서 GTO와 CSA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용을 지급하는 대신 연구개발 관련 한국GM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 용역계약을 체결해 일부 용역비용을 환급받는 관계였다. 캐딜락을 수입해 판매하던 GM코리아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왼쪽 그림)

지난해 연말 한국GM에서 연구·개발기능이 GMTCK라는 신설법인으로 분할된다. 아울러 GM코리아의 이름은 캐딜락코리아로 변경되었다. 법인 분할과 명칭 변경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GTO와 체결했던 CSA 계약은 로열티 지급계약으로 바뀌었고, 신설법인(GMTCK)은 GTO와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이라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가운데 그림)

그러다 이 관계가 올해 초에 다시 전반적으로 바뀐다. 한국GM과 GMTCK가 각각 체결한 로열티 지급계약과 서비스 계약에 대해 GTO가 아태본부로 넘겨버린 것이다. 기존 CSA 계약 체결의 주체 역시 한국GM에서 아태본부로 바뀌게 된다. (오른쪽 그림)

맨 왼쪽과 마지막 그림을 비교해 보라. 계약의 흐름만으로 보자면 기존 한국GM과 GTO 사이에 아태본부가 중간지주회사처럼 끼어든 꼴이 되었다. GTO로 지급되던 연구개발비는 이제 아태본부가 로열티 명목으로 수령하게 된다. 연구개발 용역계약에 따라 신설법인(GMTCK)의 용역비 역시 아태본부가 정산해주게 될 것이다.

산업은행은 무슨 역할을 했을까

추혜선 의원 : 2010년 개정된 글로벌GM과 한국GM 간의 비용분담협정(CSA)이 법인 분리 이후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에 모두 승계되는가?
이동걸 회장 : 승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계되지 않으면 주주로서 권한이 침해되는 부분이기 때문 … 이에 대해 GM 측에 확인하지는 않았다.

작년 10월 22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자리에서 법인 분리와 CSA 계약의 승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이동걸 회장은 GM 측에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법인이 분할되더라도 CSA 계약이 승계될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자리에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한국GM 최종 부사장은 같은 질문을 받고 충격적인 답변을 남겼다.

최종 부사장 : CSA가 올해 말에 만료될 예정으로 현재 개정을 위한 협상 중 … (승계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뭐라고 보고받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동걸 회장은 CSA가 올해 만료된다는 단순한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산업은행은 GM의 법인 분리 주주총회 결정의 효력이 없다는 법원 가처분 결정까지 받아내고도 법원 판결 3주 만인 12월 18일, GM의 법인 분리에 찬성해주고 만다. 그날 산업은행이 발표한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CSA 계약의 개편 관련) 검토결과를 요약하여 말씀 드리면 우선, 한국GM과 신설 연구법인의 영업이익이 증가되는 등 수익성 개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기업가치가 증가함은 물론 한국GM의 부채비율이 개선되어 재무안정성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다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CSA 계약이 종료되고 저런 방식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아태본부가 중간지주회사처럼 등장하도록 만드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산업은행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디 그뿐이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저 과정 전체에 동의해 주었을 것이다.

CSA 계약 가로채며 하청회사 만들다

"본래 CSA 계약이란 것 자체가 과도한 연구개발비 부담을 지운 불평등 계약 아니었나. 그게 종료되고 로열티 지급계약으로 바뀐 것을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애초 CSA 계약에는 연구개발비만이 아니라 한국GM의 ‘독자생존권’ 항목이 있었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더라도 기존 생산하던 차량을 그대로 생산·판매·수출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CSA 개편 과정에서 그 항목이 사라졌다. 사실 GM이 지난해 법인 분리를 통해 노렸던 핵심 목표 중 하나가 한국GM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또한 과도한 연구개발비의 경우 기존 CSA 계약을 평등하게 개정해가면 될 문제이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2010년에 GM과 벼랑끝 협상을 통해 CSA 계약을 한 차례 크게 개정한 적도 있다. 그런데 CSA 개편의 결과를 한번 보시라. 이제 한국GM이건 신설법인(GMTCK)이건 CSA 계약의 주체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앞으로 CSA 계약 개정을 요구할 자격조차 상실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한국GM과 신설법인 모두에 17.02%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이사 추천권은 물론이며 주요 안건에 대한 비토권도 갖고 있다. 하지만 캐딜락코리아, 아니 GM아태본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제 CSA 계약의 주체는 GM아태본부가 되며, 따라서 CSA 계약 내용을 더 개악하더라도 이를 저지할 아무런 수단도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GM이 체결한 로열티 지급계약, 신설법인(GMTCK)이 체결한 서비스 계약 모두 아태본부가 GTO와 체결한 CSA 계약에 기반해있을 것이다. GM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CSA 계약내용 일부만 고침으로써 로열티 액수를 터무니없이 높일 수도 있고, 신설법인에 지급할 용역비를 덤핑할 수도 있을 것이다.

GM이 연구개발 부문을 신설법인으로 분리한 목표, 그 결과가 무엇인지 이제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산업은행과 한국 정부의 개입이 가능한 법인들(한국GM과 GMTCK)을 모두 GM아태본부의 하청회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실제 중요한 의사결정은 산업은행이 지분을 가진 하청회사들이 아니라 GM아태본부가 행사하게 된다.

그 결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신설법인(GMTCK)에는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을 승계하지 않음으로써 40년 동안 지켜온 단체협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존속법인 한국GM의 경우 군산공장을 폐쇄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인천물류센터를 폐쇄하겠다며 강제 희망퇴직을 밀어붙이고 있다.

"5000억을 투입해서 10년간 30만 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가성비 괜찮은 것 아닌가"라며 가성비론을 펼치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과연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무려 국민 혈세 8100억을 투입하며 그렸던 그림이 이것이었나? 게다가 이런 그림들 모두 산업은행이 GM과 함께 협상한 결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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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