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자르고, 산 자들의, 한국 사회 버티기
[인터뷰] <산 자들> 펴낸 장강명 작가
2019.07.05 14:26:32
알바생 자르고, 산 자들의, 한국 사회 버티기
내는 소설마다 한국 당대의 문제를 전면에 다룬 장강명 작가가 신작 <산 자들>(민음사 펴냄)을 들고 돌아왔다. 열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연작 소설집이다. 

책은 크게 3부 구성으로 나뉜다. 1부 '자르기'는 소설 <알바생 자르기>(젊은작가상 수상작)와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로 구성된다. 2부 '싸우기'에는 <현수동 빵집 삼국지>(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사람 사는 집>, <카메라 테스트>, <대외 활동의 신>이 실렸다. 3부 '버티기'는 <모두, 친절하다>와 <음악의 가격>,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로 채워졌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생산직 노동자, 알바생, 철거민, 자영업자, 영세 음악인, 취업 준비생들이다. 당대 한국의 빈곤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통해 장강명 작가는 먹고 사는 문제만이 급선무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벼랑 끝에 몰린 우리의 빈곤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누구의 편도 쉽게 들지 않는 작가의 태도가 현실의 민낯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서 장 작가는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진다"고 했다. 

지난 4일 서울 신도림의 한 카페에서 장 작가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장 작가는 "저널리즘적 태도로 한국 현실을 다뤘다"고 말했다. 2010년대의 복잡한 경제 현실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본작은 "배경 소설"이라고 했다. 

장 작가는 <산 자들>을 내는 동시에 SF 단편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 펴냄)도 냈다. 장 작가는 자신을 장르 문학 작가나 순문학 작가의 틀로 규정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이 내는 소설은 모두 배경 소설이라고도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장강명 작가. ⓒAugustine Park


'산 자들'은 긍정적 의미 아니다

프레시안 : <산 자들>의 주인공은 노동자, 철거민, 알바생, 자영업자, 영세 음악인, 취업 준비생, 구조조정 대상자다. 우리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읽고 난 첫 느낌은 무섭고 우울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소설로 풀었는데, 계기가 있나?

장강명 : 특별한 사건을 겪은 건 아니다. 나는 당대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다. 2010년대 당대의 이야기라면 결국 경제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 생존이 가장 큰 고민이 된 시대다.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모두, 친절하다>와 <공장 밖에서>를 다른 작품보다 먼저 썼다. 이 두 소설을 쓰고 나니 두 편이 한 책으로 묶여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산 자들>이라는 연작 소설집을 구상했다. 

프레시안 : 본래는 특별히 연작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는 얘기인가?

장강명 : 그렇다. <모두, 친절하다>와 <공장 밖에서>를 쓰고 보니 한 편은 샐러리맨 이야기, 다른 한 편은 생산직 노동자 이야기였다. 두 편과 결이 같은,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룬 소설 8편을 더 묶으면 좋겠다 싶었다. 

프레시안 : 특별히 열편의 소설을 묶고자 한 이유가 있나?

장강명 : 여태껏 낸 단편소설집 세 권이 모두 소설 열편을 담았다. 큰 의미 없는 나만의 규칙이랄까. 그렇다면 이 열편에 무슨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해고 이야기 세 편(<알바생 자르기>,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에 더해 자영업, 부동산, 취업문제 들을 다뤘다. 

역시 또 나만의 재미랄 게 있다면, 소설집 세편 모두에 한편씩은 나를 연상케 하는 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번 작품에선 <음악의 가격>이다. 

프레시안 : 소설집 제목을 <산 자들>로 정한 이유가 있나?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죽은 자들'이라는 설명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장강명 : 일단 그들은 살아 있으니 산 자들이다. 

한국 사회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아실현을 염두에 두는 이는 극히 드물다. 당장 살자는 게 화두다. 생존의 문제만이 중요하다. 모두가 등 뒤에 벼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벼랑에 떨어지는 이의 뉴스가 나온다. 극한의 상황을 못 이기고 죽음을 택한 이, 비참한 사고를 당한 이. 그런 뉴스를 보는 우리는 남몰래 안도한다. '난 아니구나' '나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 그 뒤에는 격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한국에서 멀쩡한 사람은 누구나 이런 산 자들의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 상황은 매우 그로테스크하다. '산 자들'은 긍정적 의미가 아니다. 

프레시안 : 앞선 다른 매체와 인터뷰에서 질문 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과 <원미동 사람들>이 나왔다. 실제 작가가 <산 자들>을 구상할 때부터 이 작품들을 전범으로 염두에 뒀다고 봐도 될까?

장강명 : 나부터 '난쏘공'과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자란 세대다. 언젠가 이 이야기들을 나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산 자들>을 구상하자마자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약 1년 반 전 한 포럼(세계작가대회 국제인문포럼)에서 <산 자들>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친한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박혜진 평론가와 <산 자들>을 계약한 상태였는데, 박 편집자가 '난쏘공'과 '원미동'을 잇는 작품으로 만들자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이 작품들을 이야기하니 나로선 더 기합이 들었다. 

(장강명 작가는 국제인문포럼 당시 "이 작품집(산 자들)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비인간적인 경제시스템"이라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는 '거대하고 흐릿한 적'을 자주 생각했다"고 말했다. 편집자.)

▲ <산 자들>은 오늘날의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룬다. ⓒ민음사


2010년대의 경제 현실은 복잡...선명히 그릴 수 없어

프레시안 : 기자 출신 작가라 그런지,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궁금증의 하나가 '취재를 어떻게 했을까'이다. 장강명 작가는 언제나 성실히 취재한 작품을 내놓는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산 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의 가격>의 경우 앞서도 언급했듯 작가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취재한 상황을 고스란히 소설로 담은 건가?

장강명 : 문 닫는 홍대 카페, 주인의 자살 등은 지어낸 상황이다. 다만 나머지 상황은 실제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진 음악계의 음원 스트리밍 문제를 몰랐다. 인터뷰에 응해준 뮤지션이 음원시장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셨는데, 정말 복잡하더라. 너무 복잡해서 작품에 완전히 싣지는 못했고, 다른 기사에 나온 정도로 '소비자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한 곡을 들을 때 뮤지션이 가져가는 돈이 1원도 안 된다'는 내용으로 정리했다. 

프레시안 : 소설의 두 주요 화자가 예술인과 소설가다. 비뚤게 보자면, 다른 작품에 나온 주인공들에게서 삶의 찌든 때가 묻어난다면 예술인은 그 결에서 조금 멀어 보인다. 음악을 주제로 한 이유가 있나?

장강명 : <산 자들>의 이야기 열편을 전부 노동자와 사용자가 싸우는 이야기로만 채우고 싶지 않았다. 

2010년대의 경제 현실은 복잡하다. 현재 정규직 노동조합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이 매우 많다. 그나마 노동법 차원에서 뭔가 해볼 수 있는 이야기 세 가지를 앞 '자르기' 세 편의 소설에서 녹여냈다. 

다른 이야기들은 노동법 바깥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잘릴 수도 없는 처지의 노동을 '싸우기'에 넣었다. <카메라 테스트>와 <대외 활동의 신>에 나온 구직활동이 대표적이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아나운서 지망생이고 취업 준비생이다.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다. 하지만, 아나운서 지망생의 카메라테스트 준비, 취업 준비생의 대외활동도 노동이다. 극한 육체노동이고 극한 감정노동이다. 

'버티기' 세 편에는 먹고 사는 문제, 경제활동으로 인해 각자가 추구한 가치가 훼손되는 일을 다뤘다. <음악의 가격>이 이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음악이 있다. 내 인생의 음악도 서너 곡 된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존재의 시장가격이 1원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가 비단 음악인만이 아니다. 기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기자라면 누구나 특히 애착 가는 기사, 특히 자랑스러운 기사가 있을 것이다. 그 기사가 '연예인 뒤태' 뉴스보다 잘 팔릴 가능성은 없다. 현재 시장에서 기자가 요구받는 건 소비자가 요구하는 동물 동영상, 연예인 가십 기사다. 기자가 된 나름의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노동은 시장에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한다' '돈을 벌기 위해 기사 쓴다'라고 대놓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예술 노동, 저술 노동, 취재 노동도 제값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2010년대 현실에서 대부분 사람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 이런 현실을 '버티기'로 묶었다. 

소위 말하는 디지털 경제, 혁신 시대에 이런 현실은 더 심해질 것이다. 공유 경제니 하는 새로운 기술이 과연 사람을 편하게만 할까. 당장은 신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의 문제만을 우리가 바라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 기술에 일자리를 위협받지 않는 사람도 파괴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들 사례 중 그나마 소설로 포착하기 좋은 사례가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음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소중한 음악이 1원도 하지 않는 현실은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나. 

프레시안 : <모두, 친절하다>도 작가가 말한 신기술 시대의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다룬 듯하다. 이 연작집에 묶인 다른 소설과 달리,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유통 기술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택배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다. 

장강명 : 특별한 이유가 있어 <모두, 친절하다>에서만 소비자를 주인공으로 정한 건 아니다. 

<산 자들>에 실린 단편들이 대체로 '이 소재라면 누구나 떠올릴 이야기'를 조금 뒤집고자 한 결과물이다. <알바생 자르기>에서도 잘리는 알바생이 아닌, 자르는 정규직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런 약간의 비틀기를 통해 아이러니를 드러내려 했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하고 방관하면 타락

프레시안 : <산 자들>은 길게 보면 4년간 쓴 작품이다. 숱한 취재 뒷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한두 가지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

장강명 : <카메라 테스트>의 경우 전작인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펴냄)을 쓸 당시 취재 경험이 도움이 됐다. 당시는 아나운서를 가르치는 아카데미 선생님을 인터뷰했는데, 책에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관련 이야기를 더 생생히 알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 카메라 테스트 유경험자를 취재했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의 경우, <산 자들>에 자영업자 이야기를 넣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치킨집 아니면 빵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직자들이 쉽게 접근하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대표성이 있고,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점도 상징적이었다. 

하루는 일산에서 열린 한 낭독회에 참석했는데 '요즘 뭐 쓰시느냐'는 독자 질문을 받았다. <산 자들>이라는 연작소설을 쓰는데 빵집이나 치킨집 사장님 아는 분 연락 달라고 답했다. 마침 참석자 중 한 분이 빵집을 하셨다. 그 분을 취재했다. 기자 시절 동네 빵집을 취재한 경험도 도움이 됐다. 

소설에서 현수동으로 칭한 서울 마포구 현석동에 제가 살았던 적 있다. 당시 저희 집 앞에 빵집이 세 곳 들어서더니, 결국 한 곳이 망하던 기억도 소설에 도움이 됐다. 

프레시안 : <현수동 빵집 삼국지>에 묘사된 자영업자 현실은 현재 비정규직 문제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위기로 꼽힌다. 

장강명 : 이 소설을 쓸 때 생각한 건 연대였다. ‘빵집 연대’라는 조직은 등장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내 골목을 침범한 바로 앞의 빵집을 죽여야 내가 사는데, 어떻게 내가 경쟁자와 손잡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갈 수 있겠나. 이런 처지에 내몰린 사람이 수백만 명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지역에 사는 사람은 그래도 지역구 국회의원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의사나 약사는 비례대표를 통해 의견을 낼 수 있다. 나머지 조직화하기 좋은 직업도 그나마 목소리를 낼 구석은 있다. 대기업 생산직이나 교사 등이 그렇다. 이런 여러 기준에 전혀 걸리지 않는 이들이 자영업자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 세력이 설 자리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다른 계급이 됐다. 

프레시안 :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학교 급식 비리를 다뤘다. 이 소설은 언제 썼나? 

장강명 : 한 고등학교 급식 비리 사태가 논란이 되고 6개월 후에 썼다. 당시 해당 학교 학생을 인터뷰했다. 다만 이 학교 사태를 그대로 소설에 반영하진 않았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산 자들>을 마무리하는 이야기로 실었다. 원래는 다른 선집 청탁을 받아 쓴 작품인데 <산 자들>의 마무리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이 작품에 실린 이야기가 대체로 우울한데, 마지막은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새들은...>에서 제문이(나) 어머니 캐릭터에 공을 들였다. 어머니가 비겁해 보이지만, 누구도 그를 쉽게 욕할 순 없다. 실제 우리 주변의 많은 부모가 소설의 어머니처럼 행동할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이 학교 졸업하고 너는 대학생이 될 테니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현실이 우울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희망을 갖고 현실에 맞서야 한다.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새들은...>에서 또 하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 소설에 학교 선생님 아들 호웅이가 나온다. 사실 내가 생각한 이 소설의 진주인공은 거침없이 정의를 향해 돌진하는 기준이가 아닌, 혼란을 겪는 제문이와 일종의 '적폐' 세력이 되는 호웅이다. 현실을 바꿨으면 싶지만, 호웅이에게는 사정이 있다. 호웅이의 사정을 두고 쉽게 그 아이를 내쳐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를 말하고 싶다. 그 아이에게도 사정이 있다. 이 아이도 보듬고 가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 : <산 자들>에 실린 대부분 이야기에 작가의 이 같은 생각이 묻어난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이야기. 이야기의 선명성을 살리려고 직진하기보다, 결론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강조한 느낌이다. 실제 우리 삶이 그렇기도 하다. 

장강명 : 보신 그대로다. 취재기자들은 알지 않나. 기사에 나온 현실은 현장과 다르다. 우리 삶은 흑백으로 절단하기 어렵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소설로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지' 하고 회색지대에 멈추기를 택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은 타락하게 된다. <알바생 자르기>를 예로 들자면, 알바생 혜미 해고를 선택하는 은영에게도 사정은 있다. 그렇다고 은영의 선택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소설이 시작할 때 은영과 해고를 선택한 후 은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소설 초반 은영은 자신의 계급성(정규직 노동자)에 심각하게 매몰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은영은 중산층 정규직 노동자의 관점으로 혜미를 재단한다. 이를 통해 은영은 얄팍한 사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갑이 된다. 

<대외 활동의 신>의 주인공(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불쌍하다. 그의 취업 분투기는 딱하다. 하지만 소설 마지막 신의 모습은 다르다.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대변자가 된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라고 쉽게 말한다. 그의 고생담은 딱하지만, 그렇게 변하면 안 된다. 

이런 '보통의 우리'가 회색분자가 된다. 그 상태로 가만히 머무른다면, 사람은 더 깊이 가라앉게 된다. 지금 우리는 비록 회색 지대에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밝음은 분명히 존재한다. 각자의 사정은 있지만, 어찌됐든 밝음의 지대로 나가려 해야 한다. 가만히 머무른다면 결국 타락하고 만다. 

▲ 오늘날의 경제 현실은 복잡하다. 과거처럼 피아가 선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 복잡한 상황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우리 대부분은 회색지대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중간 지대에서 지향점을 잃어버린다면 결국 우리는 타락하고 만다. ⓒ연합뉴스


"내 작품은 '배경 소설'"

프레시안 : 전작들인 <표백>, <한국이 싫어서> 등도 마찬가지인데, 장강명 작가는 20대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지닌 것 같다. <산 자들>에서도 적잖은 이야기가 20대의 불안한 삶을 다룬다. 

장강명 : 내가 특별히 청년 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글을 쓰고 나면 20대 이야기가 많더라. 예전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내가 20대에 꽂힌 건지, 80년대 생에 꽂힌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20대에 꽂힌 게 맞는 듯하다. 

어느 시대든 20대가 시대정신과 시대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나이대다. 더구나 지금 한국에서 20대는 대표적 취약계층이다. 그래서 20대가 더 자주 내 눈에 포착되는 듯하다. (☞관련기사 : '일베' 하고, '술집' 나가는 20대, 돈만 주면 OK?) 

프레시안 :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중시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 시절의 영향이 남아 있나?

장강명 : 그렇다. 언론사는 내게 글쓰기를 배운 좋은 학교였다.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도 중요한 시기였다. 

요즘도 기자 후배들을 종종 본다. 예전 동료의식으로 보면 요즘 기자들이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운다. 한편으로는 내가 알던 올드 저널리즘이 끝나가는 것 같다. 뉴스 소비 행태가 변화면서 이제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내 생각엔 모든 기자가 결국 언론사 없이도 글을 쓰는 글쟁이가 돼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현장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논픽션이 부족하다. 교수나 사회비평가가 쓰는 전문 서적은 있지만, 현장의 날것을 괜찮은 글로 옮기는 훈련을 받은 이는 기자다. 

프레시안 : <산 자들>을 내면서 동시에 SF 단편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 펴냄)도 냈다. 한국은 유독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눠 이야기하는 사회인데, 장강명 작가는 두 부문에서 모두 힘을 발휘한다. 다른 인터뷰에서 작가는 SF에 관한 관심이 크다는 점을 여러 차례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러 장르를 다루기 위해서 평소 뉴스와 전문서적을 아주 열심히 탐독할 듯하다. 

장강명 : 별로 그렇지도 않다. 뉴스도 몇 달은 안 보다가 다시 꾸준히 보는 정도다. 요즘은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7시까지만 뉴스를 본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몇 달간 신문을 안 보기도 했는데 해독되는 느낌이 들더라. 

<산 자들>은 물론 <표백>과 같은 장편,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과 같은 작품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어떤 문제의식을 떠올린 후 이를 그에 알맞은 서사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쓸 때 특별히 장르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쓸 때 가진 문제의식도 <음악의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과학자들은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는 약물을 만들고 있다. 항우울제가 그렇고, 알코올도 그렇다. 수천 년 간 사람은 이런 약물을 만들어왔다. 과학자들은 '사랑의 감정은 길어야 6개월'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렇다면 사랑의 감정을 30개월로 늘릴 약물도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돈이 된다면 못 나올 게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약물로 연애 기간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게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인생에 비극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생은 의미가 있는 비극이지만, 그 가운데는 무의미한 행복도 있다. 연애 감정을 늘려주는 약은 어쩌면 후자가 아닐까. 데이터 처리 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측 분석 기술이 날로 발전할 것이다. 언젠가는 인터넷이 부모보다 자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남녀가 연애하면 '이 둘은 몇 년 사귈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AI의 판단이 내려지는 서비스도 얼마든지 등장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실제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 소설로 나올 수 있다. 

▲ <산 자들>과 같이 나온 SF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아작


프레시안 : 영화 시나리오 작업 제의나, 일부 작품의 영화화 제안을 받지 않나? <댓글부대>나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의 작품은 영화화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장강명 : 시나리오 작업 제안이 많이 온다. 저뿐만 아니라 요즘 소설가들에게 시나리오 제안이 많이 온다. 제시하는 액수가 적지 않으니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간단히 이야기해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나에게 관련 작업 제의를 하는 사람들은 분명 그에 상응하는 상업적 목표를 내가 충족시켜 주기를 바랄 텐데, 지금은 굳이 다른 문제까지 고민하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글을 써 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가장 좋더라. 

당대의 베스트셀러보다는 오래 남는 작품을 쓰고 싶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가 죽을 때까지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다. 그 시대에도 이 책과 달리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가 있었을 것이다. <카탈로니아 찬가>와 같은 책과 당대에 베스트셀러로 소비되고 훗날 기억되지 않는 책을 고르라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 작가는 전자를 고르지 않을까. 

프레시안 :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장강명 : 조지 오웰, 제임스 엘로이, 제임스 M. 케인을 좋아한다. 로저 젤라즈니도 좋고, 마쓰모토 세이초도 좋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경우 <파운데이션> 3부작을 좋아한다. 이런 작품은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 

프레시안 : 장르 소설이 작가의 본령에 더 맞다고 생각하나?

장강명 : 조심스러운 이야기긴 하지만, 장르 소설과 문단 문학을 구분하는 세태가 장르 소설 작가에게는 물론, 문단 문학 작가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 구분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독자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흔히 소설의 3요소로 주제, 구성, 문체를 말한다. 소설 구성의 3요소로는 인물, 사건, 배경을 말한다. 작가에 따라 이들 요소 중 일부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물을 강조한 소설이 있다. <롤리타>나 <인간 실격>과 같이 특이한 인물을 다루는 소설이다. 문체 실험을 강렬하게 하는 소설도 있다. 보통 이런 소설을 문단 문학으로 나누는 듯하다. 

반면 사건을 매우 강조하는 소설도 있다. 흔히 장르 소설이라고 말하는, 미스터리나 스릴러로 분류하는 소설들이 대체로 이렇다. 

내가 쓰는 소설은 무엇인가. 내 소설은 '배경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산 자들>의 경우 소설에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보다,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 사회라는 배경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쓰는 SF도 마찬가지로 배경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기술이 도입된 사회, 특정 시스템이 가동하는 사회를 말하고 싶었다. 내가 실제 관심을 주로 갖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는 <파운데이션>도 배경 소설이다. 반면 SF 중에서도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 중요한 소설이 있다. 그렇다면 장르 소설이냐 문단 문학이냐는 애매한 잣대로 글을 나누기보다, 소설의 요소로 나눠서 글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굳이 이상한 권위 의식, 상하위 문화로 소설을 나누는 것보다는 더 좋을 것이다. 

프레시안 : 다음으로 준비하는 작품은?

장강명 : 범죄 소설을 한 편 준비하고 있다. 강력계 여성 형사가 주인공이고, 가제는 '재수사'다. 20년 전 일어난 사건을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재수사하는 이야기다. 원래는 올 여름에 내려 했는데, 소설 뒷부분이 잘 풀리지 않아 늦춰졌다. 

이 소설을 준비할 때 목표가 몇 가지 있었는데, 우선 형사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리고 한국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자 했다. 소설을 위해 광역수사대 형사 몇 분을 인터뷰했다. 

사회 시스템을 보여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수사와 치안은 사회 시스템이다. 나는 여태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 시스템에 억압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시스템을 수호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 무엇보다 범죄물로서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자 했다. 

'눈덕서니가 온다'는 가제의 좀비 소설도 한 편 준비 중이다. 가상의 민간 신앙을 기원으로 한다. 강원도의 한 학교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에세이 한 편도 준비 중이다. 에세이를 쓸 때마다 나 자신을 위해 집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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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