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이충렬 칼럼] 한국의 '민주동맹' VS 일본의 '삿초동맹'
2019.07.22 08:22:34
일본 극우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1. 한국정부가 인용한 삿초동맹

1866년 일본에서 형성된 삿초동맹이 최근 서울에서 언론을 탔다. 7월 17일 한국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외신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원만히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삿초동맹과 메이지유신을 예로 언급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서구사회와의 접촉을 통해 자유시장 경제를 받아들여 오늘날 경제·정치 강국이 되었다. 19세기 조슈 번과 사쓰마 번처럼 한국도 일본과 손을 잡으면 기술과 혁신을 통해 동북아 지역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아베 총리와 그의 존경받는 아버지(아베 신타로)의 이름에 있는 '신(晋)'이라는 한자를 함께 쓰는 다카스키 신사쿠와 요시다 쇼인이 아직 살아있다면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적 협력에 대한 평가에 동의할 것"이라며 "나카소네 전 총리, 후쿠다 전 총리 등 한일관계 진전에 힘썼던 전직 총리들도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핵심은 "우리는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싶다. 이것이 이 지역에서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도전에 비춰볼 때 한미일 간 연대를 유지하는 최선의 행동방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부분에 담겨있다.  

요지는, 21일 일본 참의원선거가 끝나면, 무역분쟁과 강제징용노동자 배상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논의해 보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삿초동맹'과 '요시다 쇼인' 등이 오늘의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를 갖는가였다.  

2. 일본 극우세력의 뿌리: 삿초동맹

일본역사에 있어 '삿초동맹'은 현대사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미국 페리제독의 흑함대가 일본을 개항시킨 것(1854년)이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 본다면, '삿초동맹'은 일본이 서세동점이라는 시대조류에 맞서 스스로의 내부적 주체를 형성해 낸 결정적 계기였다.

1866년 3월 사쓰마 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 번(현 야마구치현)이 맺은 정치·군사 동맹을 말한다. 총 6개항으로 이루어진 밀약은 대외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의 친정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860년대 일본에서 에도 막부의 권위는 점차로 실추되고 있었고, 일본의 진로를 둘러싼 내부의 권력투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막부통치를 폐지하고 천황의 직접 통치권을 확립하자는 '존황양이'사상이 대두되고 있었다. 

조슈 번은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양이론을 받들며 반막부적인 자세가 강했고, 사쓰마 번은 막부의 개국 노선을 지지하고 정치 개혁을 요구 하는 등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다. 양이를 밀어부친 조슈 번은 사쓰마 번을 비롯한 다른 세력의 쿠데타로 인하여 교토에서 쫒겨났다. 이후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은 서로 치열한 전쟁을 겪으면서 적대적인 관계에 돌입했다. 

조슈 번은 내부 쿠데타가 일어나 양이파들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막부는 고메이 덴노(천황)의 역적 토벌 칙령을 받아내 다시 조슈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사쓰마 번은 사이코 다카모리 등의 하급무사 세력이 정치를 장악했다. 막부는 사쓰마 번에 계속 출병요청을 하여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이 때 사쓰마의 지원을 받는 사카모토 료마와 조슈의 지원을 받는 나카오카 신타로가 양 번의 동맹 중개에 나섰다. 

1865년 봄 시작된 동맹 협상은 몇 차례 위기를 거치면서 한 때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으나 사카모토 료마의 뛰어난 기지로 1866년 3월 결국 동맹이 체결되었다. 

1867년 양 번의 연합군은 쿄토를 장악하여 260년간 집권하였던 토쿠가와 막부를 밀어냈다. 1868년 1월 왕정복고를 시작하면서 메이지 덴노 시대가 열렸다. 

요시다 쇼인(1830 ∼ 1859)은 교육자로서 메이지유신과 조선침략의 주역을 키워낸 인물이다. 막부 타도의 선봉 다카스기 신사쿠,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 일본 육군의 아버지 야마가타 아리토모,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일강점 당시 총리 가쓰라 다로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쇼인은 아베 현 총리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로서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른바 '정한론'의 원조로 꼽히는 인물이다. 

삿초동맹이 체결된 이래 메이지 유신을 이끈 지배계층은 대부분 여기 출신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조선과 만주는 물론 남방아시아까지 일본의 지배하에 두어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의 사상 아래 군국주의로 치달았다. 오늘날 일본 극우세력의 뿌리이자 원천이랄 수 있다. 

일본은 민주국가에서는 특이하게도 정치권만큼은 세습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2차대전이후 극히 짧은 몇 년간을 제외하면 자유민주당이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겹쳐 일본에서는 2세, 3세, 심지어 4세 국회의원까지도 적지않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일본군국주의와 2차대전의 핵심전범의 자손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고, 이들이 이른바 일본 정치의 명문가문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베 현 총리만 해도, 외고조부가 요시다 쇼인 밑에서 정한론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오시다 요시마사인데 그는 청일전쟁 이전 경복궁을 기습하여 점거한 전적이 있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이다. 또 외조부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자 전후 총리대신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이다. 왜 그가 2차대전을 합리화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지 그 연원을 알게 해준다. 

3. 한국의 '민주동맹'

일본 정치의 주류가 '삿초동맹'에서 유래되었다면, 현재 한국의 집권세력은 '민주동맹'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구한말과 지금을 비교해 볼 때, 동아시아 정세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집권세력의 성격이 뚜렷하게 분류된다는 점이다. 

일본은 천황제 군국주의에 향수를 가진 극우세력이 장기집권하고 있다. 중국은 항일 전쟁을 통해 성장한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다. 북한도 항일빨치산 운동을 정권의 정통성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죄로 인하여 오랫동안 친일파가 주류세력을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새로운 정치세력이 싹을 트기 시작했다. 1970년대 김대중과 김영삼이 지도하는 본격적인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이래,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면서 이른바 기존의 친일적 군사독재정권에 비해 자유민주주의적 시민사회에 뿌리를 둔 '민주동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영삼세력이 군사독재세력에 투항하는 3당합당(1990년)이 일어나는 등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1997년 김대중 정부의 수립, 2002년 노무현 정부의 출범 등으로 '민주동맹'은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민주동맹은 시민사회를 모체로 하고 있지만, 민주화운동의 역사성에 입각하여 호남과 부·울·경의 연합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합은 분열과 협력의 역사를 거듭해왔다. 마치 삿초동맹을 이룬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 처음에는 적대적인 관계로 전쟁을 한 것처럼, '민주동맹' 역시 대통령 선거에서 분열을 함으로서 연합이 파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민주동맹'에 결정적 계기를 가져온 것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었다. 총선을 통해 민주세력은 과반수 넘는 의석을 확보했고, 이후 촛불혁명이 일어나 시민에 의한 촛불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삿쵸동맹이 위로부터의 동맹이었다면, 이번의 '민주동맹'은 아래로부터의 동맹으로 결실을 본 것이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동맹'을 성공적으로 관리함으로서 정국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 출범시 대통령은 PK, 대통령 비서실장과 총리를 호남에 안배함으로서 '민주동맹'의 핵심골격을 존중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민주동맹'의 지지기반을 범 시민사회로 확산하는 과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출현한 '민주동맹'을 일본의 극우세력은 눈의 가시로 여기기 시작했다. 

4. '민주동맹' VS '삿초동맹'

19세기 후반 이래 동아시는 많이 변했다.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향한 열망이 높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는 원료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상품시장으로서의 식민지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조와 유통 그리고 소비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모두가 모두에게 상호의존하는 새로운 경제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는 모두가 존중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일본이 기습적으로 한국의 핵심주력산업인 반도체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마치 선전포고 없었던 제2의 진주만공습을 보는 듯하다. 온갖 핑계를 대지만, 그 핵심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죄할 생각조차 없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런데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이 착각의 늪에 빠져있다고 본다. 한국은 구한말의 조선이 아니다. 비록 총력적인 국력에서 일본보다 작기는 하지만, 세계 10번째의 경제력과 7위의 군사력을 가진 강력한 나라다. 동아시아의 외교판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를 보더라도 일본이 혼자서 마음껏 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중국이 망해가는 청나라도 아니다. 더욱이 한국은 고도로 성숙한 시민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천황제 전체주의에 압도당하고 있다. 

일본의 착각에는 한국의 친일세력에 대한 과대평가도 한 몫 했다고 보여진다. 일본과의 경제협력 중요하다. 외교적 우호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의 관점에서 일본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친일세력은 용일(用日)의 관점이 아니라 일본의 관점에서 한국을 보는 듯하다. 한국의 친일세력은 대중의 지지를 잃고 몰락하고 있다. 일본의 착각은 이번에 확실히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의 '삿쵸동맹'이 도발한 이번 무역전쟁에서 한국의 '민주동맹'이 백년전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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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