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비관 자살', 과로사는 아니었을까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15. 학생들의 장시간 학습과 휴식의 박탈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성적비관 자살', 과로사는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청소년의 자살률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의 경우 자살 시도자가 자살 사망자의 50~150배에 달해 자살 시도자 수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청소년이 자살하면, 으레 '성적비관'이 원인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따라붙는다. 실제로 수능일 즈음이면, 마치 비극의 연례 행사처럼 수험생의 자살 보도가 이어진다.

'성적비관 자살', 개인이 자신의 성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말이다. 성적비관 자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대학이 전부가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하거나, 자살자의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을 탓하는 반응을 보인다. '성적비관 자살'이라는 용어는 개인이 '비관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자살의 원인을 자살자의 인지적 오류나 편향적 생각으로 돌리는 말이다. 입시경쟁체제 등 구조적 문제는 원인으로 가리키지 않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의 평균 학습시간의 경우 한국이 OECD 국가 중 1위 수준으로 길다. 과열된 입시경쟁은 청소년이 긴 학습시간을 견디도록 만들고, 이는 청소년의 자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현재,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의 산업재해 인정 기준은, '발병 전 3개월 동안 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만성 과로의 업무와의 관련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주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할 경우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 과로임을 인정해주고 있다. 노동자가 자살을 한 경우, 과로를 했다는 정황이 인정되면 과로로 인한 자살로 보고 산업재해 보상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와 다르게 학생의 경우, 장시간 학습과 휴식의 박탈로부터 보호해줄 기준이 없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다가,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전교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문계 고등학생들의 학습시간은 하루 평균 12시간 1분이었으며, 이들 중 67.3%는 학교에서 주말에도 보충학습 등을 실시한다고 답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하루 5시간 50분에 불과했다.

인문계 고등학생 중 다수가 하루 12시간이 넘게 학습하고 있다면, 그리고 만약 산업재해 기준이 학생에게도 적용된다면, 이들의 질병과 죽음은 산재인정 기준상 만성과로·과로자살로 바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살한 청소년 중에, 특히 성적비관으로 자살했다고 여겨지는 학생들 중에 주 60시간 이상 장시간 학습을 한 경우는 과연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 청소년들은 신체적 나이 특성상 과로를 했다고 해도 심장마비나 뇌출혈 등으로 사망할 확률은 적지만, 장시간 학습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게 되는 건 그만큼 정신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의미이며, 입시경쟁이 삶의 다른 요소들을 잠식해버린 상태임을 나타낸다.

장시간 학습으로 인한 과로,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인가

인문계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환자들로 넘쳐난다. 만성적인 위염, 장염, 기관지염을 앓는 학생들부터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학생들의 숫자가 오히려 건강한 학생들보다 많을 지도 모른다. 이제껏 우리 사회는 이들의 문제를 '조금만 참으면 지나가는 시기'이고 '수험생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해결에 손을 놓고 있었다. 가정에서는 '고3은 집안의 왕'이라고 표현하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수험생 자녀를 '건드리지 않고' 배려한다고들 한다. 장시간 학습으로 인해 악화된 정신건강은 대학에 가고 나서 해결할 문제고, 그로 인해 본인과 주변인들에 미치는 악영향은 일단 견딜 수밖에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중요한 건 현재가 아니라 미래라고 여기면서, 행복과 권리 뿐 아니라 건강마저 스무 살 이후로 유예한다.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를 가볍게 취급하는 문화 역시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병리적 징후가 나타나도, 사춘기라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나 일탈이라 여기며, 참고 견디면 해결될 거라고 믿는 보호자들이 많다. 청소년은 경제·사회적 권리가 제한되기 때문에 보호자의 의지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병원을 찾고 도움을 받기에는 제약을 받는 요인들이 많은데, 이 또한 청소년의 건강권이 위협받는 부분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노동력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것처럼, 학생의 삶도 학업만으로 채워져선 안 된다. 학생의 삶에도 타인들과 교류하고 애정을 나누는 '사회적 삶',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유희적 삶',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목소리를 내는 '시민적 삶'이 공존해야 한다.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삶의 다양한 요소를 포기할 것을 요구받아선 안 된다. 과로사를 막기 위해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과로로 인한 질병과 자살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자살자 중 장시간 학습에 시달렸던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현황을 파악하고, 장시간 학습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홍보하는 역할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1991년, 전남 보성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김철수 열사는 "참교육 실현", "너희 언제까지 이런 교육 받을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당시 김철수 열사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성적비관 자살'로 왜곡되는 것을 막고자, 그의 학업 성적이 높았다는 점을 부러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입시경쟁체제가 양산하는 죽음의 원인을 개인의 비관으로만 돌리는 '성적비관 자살' 용어의 남용은 문제적이다. 그 죽음들 속에는 주 60시간 이상 장시간 학습에 시달린 결과인 과로사도 있을 것이고, 입시경쟁체제에 저항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택한 죽음도 있을 것이며, 청소년의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여러 요인들이 중첩된 원인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죽음들이 제대로 된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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