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학생인권조례는 자동폐기되었다
[청소년의 목소리에 권리를] 교육감도 못 뽑고 주민발의 권한도 없는 청소년
경남 학생인권조례는 자동폐기되었다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라'는 외침에도 늘 무시당했던 경험

나는 경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 교장이 기존에 교실에서 신발을 갈아 신는 체제를 없애고 1층에 신발장을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학생회가 먼저 교장에게 학생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을 문제제기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학교 전체가 들썩이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던 행정실장과 교장의 변명은 말 그대로 '변명'이었다.

"실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흙 묻은 신발은 1층에서 갈아 신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신발장과 사물함이 오래되어 교체해야 한다."
"교육청 지원 사업인데 신청 기간이 다가와 학생의견을 물을 시간이 없었다."

항상 이렇게 학교의 모든 일들은 학생이 없는 곳에서 결정된다. 결정된 사항에 따르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받는 것은 학생들인데 말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을 물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지만 애초에 학생들의 의견을 물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원래 학교는 학생의 불만에, 분노에, 목소리에 관심이 없으니까.

학생회에서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행정실에 전달했다가 철저히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 행정실 교직원은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으로 "이렇게 학생들이 멋대로 일을 실행하고 처리하면 안 된다. 위에서부터 절차대로 이행해야 한다"라며 노골적으로 학생을 '아래' 취급하며 무시했다.

학교의 독단적인 사업에, 위에서부터의 절차에 가로 막혀 학생들의 목소리는 학교로 전달되지 않는다. 청소년 참여권의 보장은 이런 학교의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확성기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학교를 바꿔보고자 했던 학생인권조례, 정치인의 계산으로 끝났던 경험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학교의 현실에 좌절하여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경기, 광주, 서울, 전북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이지만, 경남을 비롯해서 타 지역들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이나 구제절차도 없는 상황이다. 경남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면 학생자치와 참여의 보장, 학칙 등 학교규정의 제정 또는 개정에 참여할 권리 등 학생이 학교의 주인으로서 학교운영에 참여하는데 조금이나마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한창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던 지난 2018년 12월 6일, 박종훈 교육감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또 다시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든 사람들한테 나는 선출직이기 때문에 원안을 고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뜻대로 갈 수는 없다는 시그널을 주고 있다."

박종훈 교육감을 선출할 수도 없었고, 그의 재선에 도움이 될 수도 없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교육감의 이 말은 우리들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말이었다. 표가 없는 학생들은 자신을 뽑지 않았고, 뽑을 수도 없는 힘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육 정책의 1순위 고려 대상은 될 수 없다고 은연중에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청소년에게 지역 주민으로서 지방자치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있었더라면, 박종훈을 교육감으로 만들어 놓은 이가 학생인권조례제정을 원하는 청소년들이었다면 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서는 조례안 가/부결을 결정하는 정치인인 도의원들에게, 재선을 하고 싶어 하는 교육감과, 세력을 모으고 싶어하는 정당에게 우리가 시민으로서 가지는 힘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청소년은 선거권이 없고, 우리는 도의원들과의 싸움에서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거나 두려워해야 할 운동 세력으로 힘을 증명하지 못했다.

7월 19일,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일부 어른들의 반대에 귀를 기울였던 도의원들에 의해 경남학생인권조례는 결국 자동 폐기되었다. 만약 경남학생인권조례가 주민발의를 통한, 수십만 시민의 요구로 상정된 조례였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까?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원하고 필요로 하는 학생 당사자들은 주민발의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었다. 만약 이번 조례제정 운동이 주민발의로 이루어졌었다면 청소년인 나도 주민발의 서명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가 경남 학생인권조례 지지서명을 받으며 만났던 그 수많은 청소년들 또한 "주민발의는 청소년이 참여하지 못한다."라는 말로 돌려보내야 했을 것이다.


청소년에게 정치에 직접 참여할 권리가 없는 현실에서 청소년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청소년은 자신을 둘러싼 불의를 바꿀 수도 없다.

나에게는 나의 의견으로 세상을, 나의 삶을 바꿔본 경험이 없다


세상과,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굳이 나누자면 2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운동, 하나는 정치. 두 개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겠지만 대의 민주주의에서 실제 제도를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쉽고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시민의 힘, 운동이다.

청소년은 선거권이 없어 자신의 삶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을 수도 없다. 그런 힘이 없으니 정치인을 움직이는 힘을 가질 수도 없다. 청소년은 정치로도, 운동으로도 세상과 자신의 삶을 바꾸기 어렵다.

선거권이 없는 존재는 세상과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과 네트워크, 사람 관계 속에서도 시민으로 대우받기 힘들다. 처음 본 사람에게 쉽게 반말을 듣는 다든지, 결정과정에서 배제된다든지 말이다. 이처럼 선거권은 곧 시민권이며, 시민권이 없는 청소년들은 늘 주요 고려 대상이 되기 어렵다.

나의 목소리로 우리 지역을 바꾼 경험을 얻고 싶다. 내가 직접 나의 삶을 바꾼 경험을 얻고 싶다. 청소년도 지역사회의 주민인데, 언제까지 청소년의 목소리는 무시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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