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변수' 된 일본, 어리석은 짓을 해야만 하는 상황
[김기협의 퇴각일기] 스물세 번째 이야기
2019.08.10 00:38:29
'종속변수' 된 일본, 어리석은 짓을 해야만 하는 상황
일본과 긴장된 국면을 몇 주일째 지켜보며 의문이 떠오른다. 두 나라 사이에 오랫동안 지켜져 온 긴밀하고 안정된 관계를 흔드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힘은 기존의 궤도를 어느 정도 수정하는 선에 그칠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궤도로 관계를 옮겨놓을까? '백색국가 제외' 정도가 그 자체로 그리 중대한 사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만한 조치가 나올 충분한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큰 이유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 더욱더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외교의 실종'이 눈길을 끈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적대적인(우호적 입장을 거두는)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에게 "이런 불만이 있으니 고려를 바란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 "한국은 같이 놀 상대가 못 된다"는 인상을 퍼뜨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최대한 강경한 자세를 지키고 있다. 두 나라 외교장관이 국제회의장에서 악수도 나누지 않고 지나치는 분위기다.

외교의 실종은 일시적 상황일 것이다. 대책이 마련되고 때가 되면 외교를 통한 수습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그런 단계가 되더라도 한-일 관계에 어떤 '외교의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외교관으로 가장 역할이 컸던 사람의 하나인 공로명 씨가 며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생하고 대학생이 싸우는데 초등학생이 와서 '언니들 내가 중재할게' 하면 중재가 됩니까? 중재하려면 힘이 세야 해요. 중국이 우리가 중재한다고 말 듣겠어요? 미국이 말 듣겠습니까? 미국의 친구로서 우리가 조언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중재자로서 말하자면 '무슨 소리냐?' 할 겁니다."(<중앙선데이> 8월 3일 자 '"대법 판결 후 예견된 한·일 갈등, 정부 대응 아마추어 같아"' 중)

과연 공 씨는 얼마나 힘이 세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중재자의 역할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중재국의 힘이 압도적이어서 그 권유를 거부할 경우 중재국의 응징을 두려워할 정도가 되어야 하나? 그것은 '중재'가 아니라 '명령'일 것이다.

용어상의 혼동이 있는 것 같다. 법률용어로 '중재(arbitration)'는 일반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중재결정(arbitration award)을 내리는 중재자(arbitrator)는 강제력 있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공 씨는 '중재'란 말에서 구속력 있는 중재를 떠올린 모양인데, 국제기구 아닌 일개 국가의 역할이 애초에 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관련해 맡겠다는 역할은 법률적으로 말하면 조정(mediation)의 뜻일 것이다. 쌍방이 받아들일 만한 방안을 제시해서 자발적 수용을 권하는 것이며 구속력이 없다. 좋은 조정안을 내기 위해서는 쌍방의 이해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힘이 엄청나게 셀 필요는 없다.

공 씨의 말 중 '조언'이라고 한 것이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조정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같은 것은 아니다. 공 씨가 생각하는 '조언'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미국의 친구"라는 자격. 중립적 입장을 전제로 하는 '조정'과는 다른 것이다.

이 용어상의 혼동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유래한다는 점을 생각하며 착잡한 마음이 든다. '중재'의 사전상 의미는 1) 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키다, 2) 제삼자가 분쟁 당사자 사이에 들어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다. 제삼자의 결정은 구속력을 가진다 등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1)은 통상적 의미이고 2)는 법률적 의미인데, 이 법률적 의미가 일제시대에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 정부가 '중재자'로 나서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1)의 의미이고 북한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같은 뜻이다. 그런데 공 씨는 2)의 뜻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메이지시대 이래 일본 사회는 번역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양의 사상과 제도를 들여오는 통로를 닦는 데 큰 공을 들인 것이다. 이것이 일본 '근대화' 성공의 큰 열쇠로 찬양받았다. 문명 발전에 번역이 갖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나로서도 일본사회의 번역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일에든 '지나침이 모자람과 같은(과유불급 過猶不及)' 문제가 있다. 하나의 체계로서 언어는 그 사회의 사상-가치체계와 얽혀 있는 것이다. A 문화권의 법률용어체계를 B 문화권 언어로 번역해 놓는다면 번역된 용어체계는 A 문화권의 사상-가치체계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B 문화권의 사상-가치체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arbitration'을 '중재'로 옮긴 사람은 '재(裁)' 자가 들어감으로써 원어의 뜻에 접근하는 것처럼 느꼈을지 모르나, 한자 문명권의 사상-가치체계 안에서 '중재(仲裁)'란 말이 갖고 있던 의미와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근대일본의 투철한 번역 정신이 '과유불급'의 문제를 일으키는 측면이 '탈아입구(脫亞入歐)' 자세에서 나온 것으로 나는 본다. 외부의 가치를 내 가치체계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외부의 가치체계 안으로 옮겨가려는 자세다. 이 자세가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은 근대화의 빠른 성취와 1960년대 이후의 경제적 번영 같은 겉보기 성공의 도취감 때문이다.

탈아입구 자세의 겉보기 성공은 나도 역사 공부 초년에 체험한 바가 있다. 참조할 만한 중국사 연구 성과로 중국어로 나온 것은 아주 적었다. 윤곽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성과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나온 것이 꽤 있었지만, 치밀한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성과는 일본어로 나온 것이 압도적이었다.

세계 2차대전 이전의 일본에서는 '동양학' 연구가 성행했다. 서양의 관점으로 동양의 연구대상을 객체화한다는 뜻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었다. 그때 표방된 '실증주의(實證主義)'는 'positivism'을 번역한 말인데, 나는 이것을 일본의 '과잉번역' 폐단의 대표적 사례로 생각한다.

'실증'은 모든 지적 활동의 필수적 요소로서 특정한 인식론이나 방법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실증주의'는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변(思辨)을 배격하고 관찰이나 실험 등으로 검증 가능한 지식만을 인정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적 태도"(두산백과)로 설명된다. 사물과 현상의 겉으로 드러나는 확인 가능한 특성만으로 대상을 규정하는 입장인데, 특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을 표준으로 한다. 'positivism' 철학이 태어난 19세기 중엽은 자연과학에 대한 신뢰가 유럽 지성계에 넘쳐날 때였다. 실제로 'positivism'의 창시자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는 자연과학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하는 '인문교회(Religion de l'Humanité)'란 이름의 무신론적 종교를 창시하기까지 했다.

실증주의와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를 동일시하는 착오는 내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던 무렵 우리 역사학계에 보편적인 것이었다. 아마 2차대전 이전 일본의 주류 역사학계에서 양자를 함께 숭상한 데서 비롯된 현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랑케의 입장은 '경험주의(empiricism)' 기준에서 'positivism'과 통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실증주의'라는 말을 나는 도저히 못 쓰겠다. 내게 번역하라면 '사실주의'가 어떨까 싶지만, 일단 그냥 'positivism'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관찰 가능한 특성 외의 모든 다른 특성을 부정하는 'positivism'과 달리 랑케는 어느 역사적 상황에나 지금 사람들의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고 본 데 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 때문에 랑케의 '역사주의(historicism)'를 'positivism'의 대척점에 놓고 보기도 한다.

널리 인용되는 랑케의 말 "wie es eigentlich gewesen"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로 흔히 번역되는데, eigentlich의 뜻을 actually보다 essentially로 해석해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을 나는 지지한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말은 "그 사실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이었는가"로 번역될 것이다.(이 해석에 관한 김기봉 교수의 논문이 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귀국 후 읽어보고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하게 될 수도 있겠다.)

용어상의 혼동에서 풀려나오는 생각을 더듬다 보니, 한국사회의 세계관이 식민지시대에 일본이 씌워준 안경에 지금까지도 얼마나 묶여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법률용어에나 학술용어에나 일본 번역판에 따라 정해진 인식의 틀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일본 지배는 35년, 또는 40년간 지속된 상황이었는데 해방 후 그 갑절의 시간을 보낸 지금까지 그 틀이 버티고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해방'이 진정한 해방이 못 된 측면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지배력에 버금가는 미국의 영향력이 계속되어 온 것도 해방이 완전치 못한 문제의 한 측면이지만, 더 중요한 측면은 일본 지배를 통해 들어온 가치체계의 지배력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이 가치체계가 해방 후에도 버텨 온 데는 한-미-일 동맹의 역할이 크다. 이 동맹의 틀 속에서 번영을 추구해 온 한국 사회에서는 물질적 가치와 개인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가치체계가 굳건한 자리를 지켜 왔다.

한-미-일 동맹. '동맹'이라면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 동맹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하청회사를 '협력회사'라 부르는 포장과 같은 것이다. 이 동맹에서 한국의 위치는 그냥 하청도 아닌 재하청이다. 2차대전 후 미국의 세계 경영에서 동아시아 방면의 '원청'을 맡은 것은 일본이었다. 중국은 공산화로 탈락했고 한국은 인프라가 형편없기 때문에 일본이 유일한 선택이었고, 일본은 다른 어느 방면의 원청회사보다도 (영국, 독일, 이스라엘, 사우디, 필리핀 등) 역할에 충실했고 실적도 좋았다. 한-미-일 동맹 안에서 미국의 우월한 위치는 한국인도 모두 알기에 엉뚱한 자리에 성조기가 나타나도 놀라지 않지만, 일본의 우월한 위치는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인에 대한 분노와 경멸감을 지금 일본 정권은 드러내고 있다.

한국인이 일본의 우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지금 아베 정권이 발끈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사업 전망의 악화 때문일 것 같다. 장삿속이 좋기만 하다면 재하청업자가 건방지게 나와도 모른 척하고 실속만 챙길 수 있는데, 사업 구조에 불리한 변화가 닥칠 전망 때문에 민감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일본에 불리한 변화가 무엇인가? 한반도 평화다. 70년 가까이 일본의 유리한 위치를 보장해준 한-미-일 동맹의 근거가 약해진다. 메이지유신 이래 경쟁상대로 여겨온 중국은 일본과 비교가 안 되는 위상으로 발전해 나간다. 건방진 한국은 북한과 손잡아 일본을 뛰어넘겠다고 기고만장이다. 해 저무는 시점에 정권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 손 놓고 가만있을 수가 없다. 어떤 어리석은 짓이라도 해야 한다.

지금 한-일 관계의 긴장 속에서 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큰 관심을 느끼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 도입에 따르는 정세 변화 속에서 일본은 종속변수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서세'는 해양세력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탈아입구'는 해양세력을 지향한 것이었다. 2차대전 후 서세-해양세력을 이끈 것이 미국이고 그를 중심으로 한-미-일 동맹이 만들어졌다. 근년 중국의 성장으로 서세-해양세력의 절대적 위세가 기울어 오던 터에 북한 개방과 한반도 평화는 대륙세력의 회복을 위한 큰 계기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오면 한국은 해양세력의 말단에서 대륙세력의 일부로 옮겨갈 것이다. 섬나라 아닌 섬나라의 입장을 벗어나면 대륙으로의 접근을 통해 얻을 이득이 일부 산업 영역에서 한-미-일 동맹의 배려로 얻어 온 이득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의 입장이다. 한국이 대륙세력 쪽으로 옮겨가면 큰 하청회사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원청 사업에 큰 타격이 된다. 그렇다고 일본 자신이 대륙세력으로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미-일 동맹에서 일본이 누려온 이득이 한국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옮겨갈 것이 확실하고 미국은 위치를 지킬 것이 분명한 반면, 일본은 어정쩡한 입장이다. 그래서 종속변수의 위치인 것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보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사회의 반응이다. 미국에 의지해 지낸 지 70년이 넘고, 알게 모르게 일본에 종속적인 역할을 맡아 온 것은 100년이 넘는다. 이 사회가 인식하는 가치체계의 상당 부분이 그 종속-의존 관계를 통해 빚어지고 굳어진 것이다. 한민족이 수천 년간 존재해 온 정상적 상태, 대륙의 일부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까닭이다. 일본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아시아에 있는가, 유럽에 있는가, 당황한 일본 정부에 물으면서 또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한국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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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