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월드컵 준우승, 기존 관습을 깨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한국 축구 2019 U-20 월드컵 성과와 이후의 과제
U-20 월드컵 준우승, 기존 관습을 깨다

지난 6월 대한민국은 재기발랄한 20살 청년들의 축구에 환호했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태극전사들은 유쾌하게 도전했고 당당히 결과물을 가져왔다. U-20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새 역사를 썼다. 그들을 이끈 정정용 감독은 단숨에 최고의 명장으로 떠올랐다. 유소년 축구 전문가인 정정용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끌어안고 그들 눈높이에 맞는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은 긴밀히 소통한 감독의 믿음 속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축구를 즐겼다. 정정용 감독과 선수들은 2년간의 교감과 소통의 시간을 거친 뒤 잠재력을 폭발했다. 대표팀은 전술적으로도 상대팀에 꼭 들어맞는 유연한 변화 속에 위기를 해결하며 경기마다 진화했다. 한국 축구 미래를 이끌어갈 최고의 유망주 이강인은 세계 무대에서도 기량을 인정받았다. 젊은 태극전사들의 성공은 기존 한국 축구의 관습과 틀을 깨고 이룬 성과였다. 앞으로 한국 축구 대표팀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그들의 준비와 성취 과정을 더듬고 그 속에서 한국 축구의 발전 방향을 찾아본다. (필자)

예상을 뛰어넘은 젊은 태극전사

U-20 대표팀이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는 주위의 관심과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성인 월드컵만큼의 큰 대회가 아닌 데다 대표팀을 이끄는 사령탑이 이름 있는 스타급도 아니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강인(발렌시아)이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었으나 나머지 선수들에 대해선 크게 알려진 게 없었다. 대표팀은 또 다른 유럽파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이 소속팀 문제로 합류하지 못하면서 최상의 멤버도 꾸리지 못했다. 더욱이 조편성도 이른바 ‘죽음의 조’로 불렸다. 유럽 강호 포르투갈, 이 대회 최다 우승팀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복병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 조에 묶여 잘해야 조별리그 통과 정도가 당초 예상이었다. 첫판에서 포르투갈에 0-1로 패할 때만해도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2차전에서 남아공을 1-0으로 꺾으면서 희망이 살아났고, 3차전에서는 강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빼어난 경기력을 보이며 2-1로 승리했다. 당당히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한 것이다. 축구팬들이 대표팀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숙명의 한일전 16강에서 후반 42분 오세훈(아산)의 헤딩 결승골로 승리를 거뒀다.

대표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는 치열한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강행 티켓을 따냈다. 1983년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U-20 월드컵 전신) 4강 신화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어 4강전에서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에콰도르를 물리쳤다. 이강인의 재치있는 프리킥 어시스트를 최준(연세대)이 골로 연결해 사상 첫 결승행을 이뤄냈다. 결승에서 비록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했지만 U-20 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준우승이라는 한국 남자축구 사상 최고의 성적을 달성했다.

지시 아닌 이해로 정정용 리더십

대표팀의 성공은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관심을 받지 않았던 ‘무명의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해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상대 팀과 상황에 따른 정확한 전술 변화는 승부처마다 빛을 냈다.

그는 현역시절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고 국가대표 경력도 없는 이른바 ‘흙수저’이자 ‘비주류’였다. 정 감독은 청구중·고-경일대를 거쳐 1992년 실업 축구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로 참여해 6년간 뛰다가 불의의 부상으로 29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유소년 축구에 일찍 뛰어들었다. 용인 태성중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고, 해외 연수 등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활동했다. 묵묵히 음지에서 한국 풀뿌리 축구의 씨앗을 다졌다. 정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사실상 지도자로서 처음 메이저 무대에 도전했다. 정 감독에 대한 의문부호는 금세 지워졌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막 스무 살이 된 이 선수들에게 꼭 맞는 눈높이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정 감독은 그들과 늘 긴밀히 소통했고 수평 리더십을 펼치며 항상 주위에 귀를 열었다.

준우승을 달성한 뒤 미드필더 고재현(대구)은 “저희들은 운동장에서 ‘감독님을 위해 뛰어보자’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지도자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느껴진 대목이다.

정 감독은 14세 이하(U-14) 팀을 시작으로 유·청소년 연령대 대표팀을 지도하며 한국축구의 미래들을 키워왔다.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근간이 된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도 그의 손에서 다듬어졌다. 2014년 잠시 프로팀으로 갔을 때에도 대구 FC의 U-18 팀인 현풍고 감독을 맡는 등 꿈나무 육성과 인연을 놓지 않았다. 그는 한 우물을 파면서 어린 선수들의 신체적 정서적 특징을 너무나 잘 알았다.

현장 경험에 공부하면서 쌓은 이론의 내공이 더해졌다. 교수가 되고 싶어 했던 정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랜드에 있을 때도 팀의 허락을 받아 명지대 대학원에 다녀 석사학위를 땄고, 훗날 지도자를 하면서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도 이수했다.

정 감독은 유·청소년 선수들에게는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지도 철학으로 선수들을 차근차근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이해시켰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에서 선수들에게 나눠줬던 ‘전술 노트’는 이런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이 노트에는 상대 전술과 경기 운영 방식에 따른 우리 팀의 포메이션, 세트피스, 측면에서의 콤비네이션 플레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선수들이 ‘마법의 노트’라고 할 정도로 특정 상황에서 필요한 움직임을 알기 쉽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놓았다. 선수들이 쉽게 전술을 이해할 수 있게 정 감독이 직접 만든 눈높이 전술 노트는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이 새 역사를 쓰는 씨앗이 됐다. 선수들은 당시 대회 기간 자료를 더 달라 먼저 요구하기도 하고, 시험공부 하듯이 전술 노트에 담긴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정 감독은 이번 대회 매 경기 다른 전략, 전술을 준비하고 선수들에게 포지션별 역할을 다르게 부여했다. 상대에 따른 전술 변화를 과감하게 펼쳤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잘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일찌감치 ‘마법 노트’ 등을 통해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 감독은 '자율 속의 규율'을 강조한다. 정 감독은 대표팀 소집 기간 휴대전화 사용은 물론 선수들의 자유 시간을 존중해줬다. 가벼운 숙소 밖 외출은 오히려 권할 정도였다. 그동안 다른 연령대 대표팀과 심지어 성인 대표팀도 월드컵 소집 훈련 때는 대부분 ‘관리’를 이유로 사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정 감독은 이런 관례를 깼다. 훈련장에는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았다. 선수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끌어올려 훈련하도록 했다. 선수와 지도자 간에 늘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선수들이 자신에게 먼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선수들은 정 감독이 “착한 동네 아저씨 같다”고 했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 1-0으로 이겨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이룬 뒤 관중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선수들은 생수병을 들고 아버지뻘인 정 감독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흠뻑 젖은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정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흥이 많다. 경기를 마친 뒤 자유롭게 표출한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 감독은 "이해가 바탕이 되고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으면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다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1-3으로 아쉬운 역전패 한 한국의 이강인이 동료 이재익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기와 동기부여의 승리

정정용 감독이 이 선수들과 허물없이 눈빛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간의 힘이 컸다. 정 감독은 지난 2년간 이 선수들과 함께 월드컵 무대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 속에서 팀워크는 단단히 다져졌고, 정 감독은 선수들 개개인의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정 감독이 이번 대회 다양한 전술 변화를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완벽히 파악한 ‘지기’(知己)가 밑바탕이 됐다.

또 정 감독은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어린 선수들에게 늘 동기부여를 하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정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출사표를 밝히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4강'이라는 큰 목표를 드러냈다. 주위에선 예선 통과도 쉽지 않은데, 허황된 꿈이라고 했다. 정 감독은 "아시아 대회에서 월드컵 티켓 획득이 목표라고 했는데 선수들이 거기에만 만족하는 듯했다"면서 "월드컵 본선에서는 좀 더 큰 목표를 잡고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보다 큰 꿈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집중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우리 선수를 잘 알고 상대를 철저히 분석했기에 자신감이 있어 설정 가능한 목표였다. 감독의 분명한 메시지 속에 선수들도 하나의 목표로 결집하게 됐다. 정 감독이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심리상담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진행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큰 대회를 치르는 어린 선수들에게 멘털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일찌감치 교육을 통해 마음을 다지고 팀 전체의 목표를 되새겼다.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대표팀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이미 야무지게 준비돼 있었다.

세계가 인정한 이강인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 속에 하나 된 대표팀은 확실한 에이스의 활약과 함께 폭발했다. 이번 대회 MVP격인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은 역대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축구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어린 시절 방송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리며 ‘슛돌이’라는 수식어로 익숙했던 이강인은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 쌓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살 어린 대표팀의 '막내'로 참가한 그는 대회 전 FIFA가 선정한 ‘주목할 선수’ 10명에도 들 만큼 국제무대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등 특정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그는 또래와는 한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보였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왼발 킥은 대회 내내 빛났다. 볼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고 상대를 따돌리는 테크닉과 개인기는 월등했다.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기술을 습득하고 유럽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의성이 몸에 밴 플레이는 기존 한국 축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2골 4도움으로 빼어난 성적을 기록한 이강인은 실력은 물론 형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친근감을 표현하는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하며 팀 분위기를 이끌었다. 형들도 실력있는 동생을 인정하고 그의 기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탰다. 과거 같으면 어린 후배의 재능과 튀는 성향은 팀과 융화되기 어려웠지만 이번 대표팀의 형들은 달랐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어린 에이스의 존재감을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팀의 구심점으로 삼는 열린 태도를 보였다.

틀을 깬 대표팀의 준비와 도전 속에 길이

감독의 눈높이 리더십과 분명한 목표를 설정한 원팀의 단단함, 그리고 확실한 에이스의 존재는 한국이 이번 대회 성과를 거둔 밑거름이다. 이 속에서 한국 축구의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겠다.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 축구 지도자들은 그동안 고압적이고 권위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선수의 생각을 받아주기 보다는 그들을 통제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따라오도록 했다. 지도방식도 개인의 스타일과 개성을 존중하는 대신 철저히 팀 성적에 초점을 맞췄다. 지도자와 선수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서로 생각이 다른 채 한 배를 탔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감독 개개인의 자질과 역량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대표팀을 장기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환경적인 영향도 적지 않았다. 정 감독이 이번 대표팀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개인적인 인품과 노력 외에도 2년 동안 선수들과 교감을 쌓으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큰 그림을 그리는 대표팀은 특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해야 한다. 축구협회는 미리 다양한 상황과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마스터 플랜을 세우고 지도자와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출 시간을 줘야 한다. 물론 그럴 역량이 있는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 우선 돼야 한다. 


그동안 다양한 검증 대신 이름값과 스펙 위주로 쉽게 지도자를 뽑았던 과거와도 이별해야 한다. 앞으로도 정정용 감독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재야의 숨은 고수를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하고 철저한 발굴 시스템 속에 감독을 뽑고, 한번 뽑은 지도자는 신뢰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감독을 바꾸는 것은 근시안의 미봉책일 뿐이다. 또 다시 시행착오의 반복이 되풀이될 가능성만 높을 뿐이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부진할 경우 악화된 여론에 밀려 감독을 중도 경질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이후 부임한 감독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악순환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검증해서 뽑은 뒤 그를 믿고 맡기는 문화가 필요하다.

감독 뿐 아니라 선수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이강인을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오랜 유소년 시스템 속에 성장해온 숨은 진주들이다. 한국 축구가 시스템으로 잘 길러낸 샛별들이다. 한국 축구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이후 유소년 축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늘렸다.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가 2003년 K리그 최초로 클럽 유스시스템을 도입한 뒤로 2008년부터는 K리그 전구단의 유소년 축구시스템 의무화가 추진됐다. 이제 K리그 모든 구단들은 12, 15, 18세의 연령별 유스팀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부터 주말리그제를 만들어 학원 축구 선수들은 공부하면서 상시적인 리그 경기를 치러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될성 부른 유망주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을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정정용호 선수들 대부분은 이런 프로 산하 유소년 출신이거나 협회의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했다. 이번 대표팀 엔트리(21명)는 K리그 선수가 15명이고 해외파 4명에 대학팀 소속 2명으로 구성됐다. 어린 시절부터 해외 생활을 했던 이강인과 최민수(함부르크)를 제외하면 한국 축구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밟은 선수가 19명이다.

유소년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이번 대회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결실을 맺었다. 향후 다른 연령대 대표팀 역시 지도자와 선수를 긴 안목으로 보고 길러내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이강인 같은 차원이 다른 에이스를 조기에 발굴하고 키우려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환경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좀더 기술을 쌓고 어린 선수들이 즐기면서 무한한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월드클래스로 성장한 한국 축구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의 성장에는 유소년 지도자인 아버지 손웅정씨가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기술 축구를 교육한 게 큰 발판이 됐다. 이런 기술 위주의 교육 속에 손흥민 역시 유럽 무대로 일찍 진출해 현지의 선진 시스템 속에 기량을 더욱 끌어올렸다. 손흥민, 이강인으로 이어지는 두 에이스의 계보는 어린 시절부터 기술 중심에 축구를 즐기는 환경에서의 선수 육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대로 대변한다.

한국 유소년 축구도 올해부터 초등학교 리그에 기술 업그레이드를 추구하기 위해 7인제를 전면 도입했다. 어린 선수들이 넓은 공간에서 보다 많이 볼을 만지며 기술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승리만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체력과 힘으로 몰아붙이는 축구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술 없는 축구는 사상누각이다. 축구협회의 기술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유소년 육성 정책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국민 스포츠’인 축구와 그 국가대표팀의 무게감을 큰 대회를 치를 때마다 새삼 실감한다. 축구협회는 물론, 이를 관리 감독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방향타 역할이 막중하다. 그동안 한국 축구의 컨트롤 타워인 두 기관은 큰 대회를 준비하는데 뚜렷한 협업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함께 소통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는 협력이 필요하다. 청사진에 따라 투자는 과감하고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

협회는 감독 자원과 연령별 대표 선수 후보의 풀을 충분히 확보해 상시적인 준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들을 공정하게 평가해 대표팀에 등용하는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그렇게 선발된 감독과 선수들이 원팀으로 준비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매뉴얼로 확실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 ‘폴란드의 기적’이 준 감동 이후 한국 축구에 놓인 과제를 찬찬히 되짚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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