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돗물 사태'가 우리에게 묻는 것
[함께 사는 길] 믿고 마시는 수돗물을 위해·③
'붉은 수돗물 사태'가 우리에게 묻는 것
수돗물이란 무엇인가? '붉은 수돗물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껏 관심을 주지 않았던 수돗물을 그대로 둬도 되는지, 생수를 마시고 정수기를 쓰면 해결되는 것인지, 믿고 마실 수 없는 상태를 수돗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붉은 수돗물'이 드러낸 것

촉발은 '인천서구 검안검단 맘카페 회원들의 조직적 항의'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에 대한 인식들이 퍼지며 이슈가 커졌다. 수돗물 없는 생활이 가능한지, 상식적인 수돗물 관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시민들이 거듭 되물었다. 또 수돗물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에 따른 불편과 피해가 얼마나 심각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각성이 사안을 키웠다. 그리고 언론과 여론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결국 '붉은 수돗물 사태'를 만들었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의 경질 등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1991년 페놀 사고 이후 실로 처음 있는 일이다. 수돗물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경우도 처음이다. '붉은 수돗물 사태'가 드러낸 것은 이렇게 형편없는 수돗물의 관리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더 좋은 물 공급이라 떠들었던 정수기와 생수의 한계까지 폭로했다. 정수기는 붉은 수돗물 사태의 대안이 되지 못했고, 재료비와 관리비를 더 들게 하면서 시민들을 골탕 먹였다. 늘어난 생수 소비는 운반의 불편과 쓰레기 대란을 경고했다. 정수기는 수돗물 시스템의 말단에 불과했고, 생수 사용은 극단적인 환경부정의를 가진 제품으로 지속 불가능한 소비의 대명사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인천시민들이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었다고 인천시에 배상을 요구한 금액은 현재 8000억 원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시하고 있었던, 불량 수돗물로 인해 우리가 겪어왔던 피로와 피해를 전국에 걸쳐 합한다면 얼마나 될 것인가? 정수기 시장에 연간 2조 원, 생수 시장에 연간 1조 원을 쓴 것을 넘어, 여러 이유로 포기해 왔던 가치들까지 더한다면 그 값은 또 얼마로 뛰게 될까?

▲ 수돗물시민네트워크 등이 진행한 수돗물 마시기 공동 캠페인에 참가한 시민들이 수돗물 시음을 하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시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수돗물 정책

'붉은 수돗물 사태'는 결국 수돗물이 현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고, 이를 포기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했다. 고 불신, 저 신뢰의 한국 사회인 탓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 사회를 각박하게 만든 이유 중에 수돗물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인식시켰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믿고 마시는 수돗물'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다행히 앞길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해법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거나 준비되고 있다. 시민들의 방임 속에서 관성적인 수돗물 정책을 뚫고 나오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지지해 주고, 함께 참여하고, 실천한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수돗물의 현실은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과 '수돗물' 연관 키워드들만으로도 충분히 진단된다. 수돗물을 생산, 관리하는 이들(지자체, 수도사업자)을 신뢰하지 못하고, 이들이 펼치는 정책을 불신하는 것이 지금의 문제들이다. 그래서 마시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여론과 진단은 한국 사회의 특징과 수돗물 논란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우리의 수돗물 사정이 개도국의 것들과 평면적으로 비교되며 폄하될 일이 아니다. 선진국들의 것들과 비춰서도 모자라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다만 한국의 수돗물 정책이 발전하지 못하고 빠져 있는 어떤 함정을 파악하고 극복하는 생산적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수돗물 보급률은 99.1퍼센트, 1인당 일일 공급 가능량은 500리터이다. 수돗물 수질 검사 및 감시항목 200개 이상 등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즉 평시의 공급 안정성이나 수질 관리에 있어서 한국의 수준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특별한 시기와 장소 그리고 사고 시의 수돗물 관리 체계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수돗물 정책은 수십 년간 수량을 늘리고, 관로를 늘리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구체적 불만, 즉 상수원 관리에 대한 불신, 관로에 대한 불안, 그리고 수돗물 냄새에 대한 불편 등과는 방향이 엇갈리는 것이다. 반복한다면, 우리의 수돗물 문제는 공급을 늘리는 단계, 품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단계를 지나왔다. 이제는 믿고 마실 수 있는 단계, 더 나아가 수돗물을 마시는 게 편리하고 매력적이며 윤리적이라는 이미지까지 얻는 단계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한참 과거에 붙들려 있으니 시민들에게 수돗물은 촌스럽고 외면하고픈 공공재가 되고 만 것이다.

▲ 서울시 강북 정수장. ⓒ함께사는길(이성수)


'믿고 마시는 수돗물'을 위한 몇 가지

지금 한국의 수돗물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목표를 소비자의 선택과 사회적 합의가 향하는 곳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돗물 정책의 주체를 시민으로 바꾸고 수돗물 주체들 간의 소통 방법을 혁신하며 수돗물 관련 정책과 지표들을 고쳐야 한다.

첫째, 수돗물 정책의 주체를 바꾸자. 수도정책의 목표는 시민들이 원하는 수돗물을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정책의 곳곳에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최대 불만인 상수원 오염, 녹물 관거, 수돗물 냄새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로와 정수장 증설 관행부터 접어야 한다.

상수원 오염 저감을 위해서는 한국 수돗물 원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대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다. 물론 이들 방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4대강 보 수문을 열고, 비점오염을 저감하고, 토지 이용을 계획적으로 하는 것 등이다.

녹물 저감을 위해서는 관리 체계와 매뉴얼을 만들면 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한국은 수도 관거를 교체할 뿐 세척이나 관리는 하지 않는다'는 게 폭로된 점이다. 일본은 45년, 미국은 80년, 캐나다는 100년 쓰는 수도관거를, 한국은 20년만 넘으면 노후 관로라고 교체를 주장해 왔다. 결과적으로 늘 있었던 예산 부족 타령은 관거 세척 대신 관거 교체를 추진해 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황당한 정책 수단을 폐지하고 관거 관리를 강화한다면 녹물의 상당 부분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녹물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옥 내 관로에 대한 가구주들의 관리 책임에 대해서도 논의를 일으켜야 한다.

수돗물 약품 냄새 저감을 위해서는 염소 투입 방법을 개선해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정수장에서 투입한 염소가 관로를 흐르며 줄어드는 현상을 막기 위해, 관로 중간중간에서 투입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서울시도 채택한 재투입 시설은 정수장이 가까운 수돗물에서 염소가 과잉 검출되는 문제의 대부분을 줄일 수 있다.

이들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 곳곳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지금도 지자체들마다 구성해 놓은 수돗물평가위원회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고 평가를 듣는다면, 민원을 적극 대응하고 질문에 답하는 절차를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시민 주체의 수돗물 정책이며, 시민들이 좋아하는 수돗물 관리가 될 것이다.

둘째, 수돗물 정보의 생산과 유통 방식을 개선하자. 전문 용어와 복잡한 해설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과 필요한 조치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고 발생이나 위험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 초기나, 지난해 대구 과불화화합물 검출 사고 때, 정부는 꼭 필요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은 채 어려운 이론으로 상황을 호도하거나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정상화 조치 따위를 남발했다. 이를 개선해야 한다. 대중적인 언어와 설명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투명한 절차와 조치 과정에 시민들(시민단체들)을 참여시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수돗물 수질 검사를 250가지 했다는 등의 광고보다 시민들이 감각할 수 있는 수돗물 수질 관리 지표를 도입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시민들에게 수돗물의 색깔, 냄새, 맛, 온도, 느낌 등을 얘기하게 하고 해당하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 것이다. 파리시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다. 250개 항목은 기술자들끼리 점검하면 될 일이지, 시민들에게 어려운 기준으로 강의할 일이 아닌 것이다.

셋째, 수도사업자(지자체)에 대한 신뢰를 높이자. '풍부한 수돗물 단계', '안전한 수돗물 단계'까지는 몰라도 '안심하고 마시는 수돗물'이 되기 위해서는 수돗물 관리 기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수돗물 정책의 일관성, 관리의 전문성, 소통의 진정성 등은 극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수돗물 정책의 위상과 함께 수도사업기관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시민 참여를 실질화하는 과정을 통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지자체들 건물에서부터 수돗물 음수대를 설치하고, 공공기관의 행사와 회의에서부터 수돗물 음용을 의미화하는 등의 모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 수도사업 기관을 전문화하고 경영을 제도화하며, 종사자들의 교육과 자부심 제고 등을 위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매력적인 수돗물을 만들자.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보면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수기와 생수의 이용 증가는 이들이 제공하는 편리성, 기능성, 접근성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이 주는 이미지 등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건설 시 수돗물 음수대를 싱크대와 독립시키고 냉온기능도 갖추게 하는 것을 장려할 수 있겠다. 공중 화장실의 수도꼭지가 아닌 공개 공간에 음수대를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수기보다 더 위생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수돗물 보급도 가능하다. 안전성과 공익성을 갖춘 디자인을 반영해 수돗물에 대한 관심과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시가 학교 음수대에 '라바'와 '타요' 캐릭터를 입혀 인기를 끈 것 등이 사례가 될 수 있다.

'붉은 수돗물 사태'라는 물음 앞에 우리는 이제 답해야 한다. 침묵한다고 단계를 건너뛸 수도 없다. 어차피 해야 할 숙제라면 외면하지 말고 뚜벅뚜벅 대응해 가자. 시민이 중심이 되고, 행정이 열려야 하며,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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