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은 왜 "美 부채문제 과장됐다"고 했나
[분석] 재정지출 증오하는 월가 탓, 정치권은 끄나풀?
2012.01.03 15:02:00
크루그먼은 왜 "美 부채문제 과장됐다"고 했나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당대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미국의 부채 문제가 과장됐다"는 '상식과 다른' 주장을 역설했다.

칼럼의 제목도 '아무도 부채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Nobody Understands Debt)'이다. 아무리 크루그먼 교수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지해서 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라면 좀 이상하다.

▲ 크루그먼 교수가 미국의 정치권을 싸잡아 "정작 중요한 것은 실업문제인데, 재정적자와 부채 문제만 과장해서 떠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로이터=뉴시스
갤브레이스 "금융산업은 재정지출 증오, 오바마는 월가에 굴복"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분명 이 칼럼에서 정색을 하고, 미국의 정치인들이 정말 중요한 경제 문제는 실업사태인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문제만 가지고 비생산적인 논란만 벌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정부 부채는 가계 부채와 다르다"는 요지의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다.

따라서 정말 궁금해지는 것은 크루그먼 교수의 말이 맞다면 도대체 왜 미국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최우선의 과제로 부각시키고, 유로존은 왜 부채 해결을 위해 긴축을 외치는 것일까? 정말 크루그먼 교수의 말대로 부채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이에 대해 전설적인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아들로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인 제임스 갤브레이스는 이미 금융산업을 그 배후로 지목한 바 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버락 오바마가 재정지출 확대에서 재정긴축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월가 세력에 대해 굴복'한 것"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스티글리츠 "출구전략은 시기상조, 생산적 재정지출 지속해야")

갤브레이스 교수에 따르면, 재정지출은 금융산업의 적이다. 왜냐하면 은행은 대출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재정지출은 은행의 대출시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재정지출로 막대한 부채가 쌓여도 좋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크루그먼 교수는 지금처럼 실업사태가 만연한 상황에서 재정긴축을 하면 더욱 상황이 악화되고, 그래도 재정긴축을 강행할 정도로 재정적자나 국가부채 문제가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면 크루그먼 교수가 논쟁적인 칼럼을 쓴 취지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은 실업문제를 외면하고 감세만 외치는 공화당을 공격하기 위해 지나치게 이론적이며 위험한 논리를 펴고 있다는 반박도 적지 않다. 무책임한 정부가 전쟁 등 무책임한 용도와 비효율적으로 재정지출을 일삼는 것을 합리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원문보기)이다.<편집자>

재정적자로 금리 치솟을 거라던 자들

2011년에도 2010년처럼 미국은 기술적인 경제회복기에 있었지만, 심각한 실업사태는 계속됐다. 또한 2010년과 마찬가지로 2011년 내내 미국 정치권은 정작 실업사태가 아닌 다른 것에 몰두했다. 그들이 시급한 현안이라고 부각시킨 재정적자 문제다.

이처럼 초점을 잘못 맞춘 논의는 미 의회가 일반 국민의 고통과 얼마나 유리돼 있는지 미국의 정치 문화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런 행태는 재정적자와 부채에 대해 떠드는 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과, 가장 많이 떠드는 자들이 가장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주 분명한 것은 이들 의원들이 의존하는 소위 '경제 전문가'들이 재정적자의 단기 효과에 대해 전적으로 틀렸다는 점이다. 헤리티지 재단 같은 곳에서 경제분석의 견해를 얻어온 자들은 오바마가 취임한 이후 재정적자가 금리를 치솟게 할 날을 고대해 왔다. 언제라도 그럴 것처럼.

그들이 금리가 치솟길 기다리는 동안 미국의 금리는 사상 최저치로 내려갔다. 사정이 이러면 그들도 전문가를 잘못 선택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는 사실에는 신경 쓰지 않는 포스트 모던한 미국 정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일까 자문할 법도 하다.

"정부부채를 가계부채에 비유한 잘못"

하지만 미국 정치권은 재정적자와 부채의 단기적 효과에 모를 뿐 아니라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도 모른다. 부채가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미국의 정치인들과 논객들이 부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완전히 틀렸고,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

부채 문제를 우려하는 자들은 이자 갚느라고 허덕이는 미래를 묘사한다. 마치 모기지 대출을 많이 해 매달 원리금 갚느라 허덕이는 가계처럼 미국을 묘사한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이런 비유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첫째, 가계는 부채를 갚아야 하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 부채가 세수로 감당을 못할 만큼 빠르게 늘지 않게 하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 빚은 갚은 적도 없고, 미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 부채는 별 문제가 되지 않게 됐다.

두번째, 가계 부채는 다른 누군가에게 진 빚이지만, 미국의 부채는 대부분이 스스로에게 진 빚이다. 특히 이 점을 거의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생긴 미국의 부채를 보면 분명히 이 차이를 알 수 있다. 미국의 GDP 대비로 당시의 부채는 훨씬 비중이 컸다. 하지만 이 부채는 대부분 저축과 채권을 매입한 납세자들에게 진 빚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부채로 전후 미국인들이 더 가난해지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전후 소득과 생활수준이 사상 최대, 최고 수준으로 향상됐는데, 전쟁 부채가 장애요인이 되지 않았다.

"미국은 부채의 89% 상당 규모의 채권국"

그러면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른걸까? 생각하는 것만큼 다르지 않다. 현재 미국의 채권을 외국에서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 89%에 해당하는 규모의 채권을 또한 미국이 외국에 대해 갖고 있다.

또한 외국은 수익률은 낮아도 안전한 미국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 투자자에게 지불하는 이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외국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덫에 빠졌다고 상상하는 분도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그런 방향으로 빠르게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막대한 연방 부채로 인해 미래를 담보로 잡힌 것에 비유할 수 없다고 해서 이런 부채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를 지닌 가계에 비유할 정도로 큰 비용이 요구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상황이 허락할 때 적절한 세금을 부과하는 책임있는 정부가 운영하는 나라들이, 어떻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채를 유지한 채 존속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케인스가 재정지출 확대 주장할 때 영국은 빚더미였다

특히 영국은 지난 170년 중 81년 동안 GDP 대비 100%가 넘는 부채를 안고 있었다. 케인스가 불황기에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 때, 영국은 오늘날 서구 어느 선진국들보다 GDP 대비로 많은 부채를 갖고 있었다.

물론 오늘날 미국은 세금에 대해 맹렬히 거부하는 보수세력이 득세하고 있어 책임있는 정부를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잘못은 부채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부채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하다. 미국은 실업의 덫을 빠져나오기 위해 재정지출을 줄일 때가 아니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삐뚤어지고 잘못된 정보로 부채 문제에 사로잡혀 이런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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