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이 '면죄부'로 둔갑해도 되나?
[기자의 눈]한나라당 '검증 쇼'는 '양날의 칼'
2007.02.23 20:08:00
'X파일'이 '면죄부'로 둔갑해도 되나?
한나라당의 검증 논란이 일단 소강국면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불씨를 댕겼던 정인봉 전 의원이 23일 '반성문'을 내고 엎드렸다. 그는 "이명박 전 시장과 그 밖의 여러 분들에게 상처를 입힌 점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코미디다. 대국민 우롱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전 시장을 겨냥해 "파렴치범"이니 "대통령감이 아니다"느니 떠들었던 그다. 일주일 만에 반성할 일을 왜 했으며, 무엇이 이렇게 갑작스런 심경변화를 일으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원맨쇼' 자체는 그리 길게 논할 거리도 못되지만, 그는 당이 아니라 대국민 반성문을 제출하고 이런 물음에 분명한 해명을 해야 한다. 그 대국민 반성문의 핵심은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와중에 '이명박 X파일'이 '이명박 면죄부'로 뒤바뀌게 된 점에 대한 해명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그가 제출한 자료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게 볼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이 전 시장은 과거에 선거법을 위반했고 범인도피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는 법원이 내린 판결이다. 도덕적 흠결로 간주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바로 그 사안의 막전 막후에 게재되어 있던 '미확인 사실'들이 이번에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정 전 의원의 경거망동 탓에 더 이상 확인할 필요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사안이 돼 버린 것이다. 국민들에겐 검증에 관한 '내성'이 길러진 셈이다. 앞으로는 이 전 시장을 포함한 그 누구의 도덕성 문제가 제기돼도 웬만하면 눈 감아줘야 할 판이다.
  
  정인봉만 문제인가?
  
  정 전 의원 한 사람에 대한 손가락질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당초 정 전 의원이 제출한 자료를 불과 세 시간만에 "검증할 가치가 없다"고 내팽개친 한나라당 경선준비위는 또 어떤가. 이런 식이라면 현재진행형인 이명박 전 시장과 김유찬 씨 사이의 위증교사 의혹을 둘러싼 '진실게임'도 마찬가지로 귀결되지 않을까?
  
  그런 조짐이 다분하다. 양측은 공히 김 씨가 이 전 시장 쪽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 그 돈의 성격을 밝히는 게 핵심일 텐데 아무도 이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이 문제도 어느새 김유찬 씨와 과거 이 전 시장을 도왔던 실무자 몇몇만의 이전투구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
  
  물론 김 씨의 주장에는 허점이 적지 않다. 그가 이 전 시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시점에 돈을 전달한 당사자는 구속된 상태였다. 따라서 객관적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일차적인 책임은 김 씨에게 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의 태도는 더욱 부적절하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당사자는 이 전 시장뿐이다. 직접 나서서 김 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면 잘못됐다고 해명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웬만한 일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겠다"고 얼버무린 뒤 통 얘기가 없었다.
  
  무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23일 마지못해 "일일이 변명은 못하더라도 당원들에게 걱정을 끼쳐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위증교사 등 제기된 의혹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답변은 역시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선 "근래 한나라당에 조금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며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대수롭지 않게 규정하는 자신감이 더욱 돋보였다.
  
  봉합이 능사인가?
  
  검증 논란의 첫 번째 국면은 이렇게 유야무야, 얼렁뚱땅 넘어갈 듯 보인다. 정인봉 전 의원 등 문제제기자의 자승자박과 이 전 시장의 회피, 박 전 대표 측의 쓸데없는 정치공세, 그리고 당 지도부의 검증의지 박약 등 네 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검증논란을 봉합하도록 만든 가장 큰 힘은 이러다간 박근혜-이명박이 갈라설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한나라당을 둘러싼 보수진영의 강한 집권의지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마땅히 거쳐야 할 검증 과정이 '분열'에 대한 정치적 노파심 때문에 얼버무려질 수는 없는 일이다. 정당의 대선후보 경쟁이란 당이 고른 '검증된 지도자'를 최종적으로 국민 앞에 내 놓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의 양보 불가능한 권력 의지를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본다면, 한나라당이 이번 일의 봉합에 성공했다고 해도 제2, 제3의 X파일은 반드시 나온다. 검증 문제가 아닌 다른 사안으로도 얼마든지 갈라설 수 있다. 이미 경선 시기와 룰을 둘러싼 논쟁으로 양측은 대립각을 그어가고 있다. '봉합'이 분열을 막는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하기에 한나라당과 대선주자들은 정정당당하게 검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순리다. 검증 대상에는 대선주자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과정은 물론이고 도덕성과 이념, 국정운영의 철학 모두가 해당한다.
  
  이명박 전 시장은 세간에 파다한 자신을 둘러싼 의혹의 진위가 무엇인지, 박근혜 전 대표는 왜 과거사 문제에 침묵하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맞다. 이는 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훌훌 털지 못하면 당장의 지지율 1, 2위는 별 의미가 없다.
  
  한나라당도 정인봉 전 의원의 코미디를 적당히 마무리 하기에 앞서 향후 반드시 되풀이될 '검증'이란 말의 권위를 이토록 형편없이 실추시킨 당 전반의 행태를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검증 논란은, 그 문제가 제기되고 처리되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유야무야된 뒤에도, 두 유력후보 진영을 동시에 겨냥하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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