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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둑'이 누구인지나 알고 우리더러 '폭도'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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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큰 도둑'이 누구인지나 알고 우리더러 '폭도'라고 하나?"

[현장] 대구경북 건설노조 22일째 파업 중

태반이 마흔 살을 넘긴 건설노동자들이 뙤약볕 아래서 핏줄 선 팔뚝을 쉬지 않고 흔든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1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거리행진을 하던 중에 만난 대구경북지역 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은 그간 쌓였던 울분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일당을 포기하고 20일간 파업하는 이유

형틀 목공일을 15년 남짓 했다는 손병익(54) 씨는 메마른 목소리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 번도 일당이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에 10만 원 하던 일당이 5년이 지난 지금도 10만원"이라며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물가를 생각하면 일당은 되레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하루 일당이 10만 원이라고 해서 한 달 수입이 300만 원(10만 원×30일)이 되는 건 아니고, 연 수입이 3600만 원(300만 원×12달)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반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와 달리 건설노동자는 일감이 있을 때만 일 할 수 있는 '일용직'이기 때문이다. 손병익 씨도 일용직이다.
▲ 대구경북지역건설노조 조합원 1000여 명이 21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집회를 마친 뒤 거리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적정임금 보장, 유보임금 폐지, 시공참여자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 프레시안

손 씨는 "한 달에 20일 정도 일하면 '운이 좋은 달'"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일감이 많은 봄·여름·가을철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콘크리트가 잘 굳지 않는 겨울철에는 한 달에 근 20일은 한푼도 손에 쥐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손 씨는 주장했다.

손 씨와 같은 일은 하는 김범우(47) 씨는 기자에게 "3부, 5부, 7부"란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말인즉, 건설현장에서 하루 일당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10시간을 기준으로 하는데 3시간, 5시간, 7시간만 일할 경우 일한 시간만큼만 임금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일당이라기보다는 시간당 임금제가 적용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 씨는 "일당을 온전히 못받는 경우는 일감이 적거나 개인사정 때문일 때도 있지만, 보통 윗 사람에게 잘못 보였을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온전한 일당을 받기 위해 윗사람 눈치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1만5000원을 놓고 벌이는 싸움

일당이 원천적으로 낮게 책정된다는 점 말고도 건설노동자들이 저임금에 허덕여야 하는 이유는 많다. 실제 대구경북지역건설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금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1년 평균 근로일수는 200일에 미치지 못하고, 경력 15년 넘은 기능공을 기준으로 월평균 수입이 150만 원 안팎이다.

대구경북지역건설노조의 조기현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들의 평균 부양가족 수는 3.6명 정도"라며 "월평균 150만 원 받고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이번 싸움에 지면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지난 1일부터 20일 남짓 파업을 벌이고 있는 대구경북지역건설노조가 내건 핵심 요구 중 하나는 적정 임금인상이다. 노조는 35개 지역 전문건설업체와 지난 5월 12일부터 현재까지 10여 차례 교섭을 벌이고 있는데 임금인상 폭을 두고 노사 간 의견차가 커서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즉 노조는 현행 임금 대비 20%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5% 인상안을 내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20% 대 5%라고 하지만, 형틀 목공의 하루 10시간 평균 일당이 10만 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노사 간의 의견차에 해당하는 임금 인상액 차이는 하루 1만5000원에 불과하다.

노조 측의 한 관계자는 사측은 10% 인상안까지 내부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재 지나친 저임금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10% 인상안도 노조는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해주고도 2~3달 뒤 일당 지급…불안정한 생활 반복될 수밖에

낮은 임금보다 건설노동자를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건설현장 은어로 '쓰메끼리'라고 불리는 유보임금이다. 유보임금이란 임금을 제때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난 후(건설노동자는 이를 '눕힌다' 혹은 '깐다'고 표현한다) 지급하는 것을 말하는데, 건설현장에서는 아주 오래된 관행이다.

건설노동자 입장에서는 유보임금 자체가 근절되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수십 년 된 관행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는 '유보'되는 기간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것이 건설노동자의 솔직한 속내다.
▲ 대구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대우 트럼프월드 주상복합아파트. 대구경북지역건설노조 조합원 70여 명이 이 건물 33층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우건설 측은 "제3자의 억울한 피해"라고 주장하며 현장 취재를 불허했다. ⓒ 프레시안

20대 후반부터 '노가다를 뛰었다'는 최성수(43) 씨는 "IMF 외환위기가 오기 전에는 5일 정도 '까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 후에는 2달, 3달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4달까지 '까는' 경우도 심심찮게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IMF가 닥쳤을 때 수많은 건설업체가 부도 맞는 것을 보면서 '까는 기간'이 길어져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그 뒤로 건설경기가 회복됐는데도 건설업체에서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유보임금이 하루 일당으로 먹고 사는 건설노동자의 삶 자체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당을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서 빌린 돈 때문에 항상 빚더미 위에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구미에서 왔다는 한 건설노동자는 "몇 달 걸려 일당을 받으면 그 사이에 빌린 돈과 카드빚을 갚는 데에 다 들어가기 마련"이라며 "잠시라도 빚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못 배운 탓에 노가다 밥 먹는 내 처지를 어디에 하소연하겠냐만, 그래도 나랏님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 처지를 알고 잘못된 것은 고쳐줘야 하지 않느냐"며 자신들의 처지에 무관심한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다.

아파트값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데

한편 하루 일당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건설노동자들이 20일 넘게 일당을 포기하고 파업에 나선 이유는 지나치게 낮은 임금과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아파트 값을 보면서 생긴 상대적 박탈감도 한몫 하는 듯했다.

손병익 씨는 "경기가 나빠서 일당이 오르지 않는 거라면 이렇게 거리에 나오지도 않았다"며 "아파트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데 왜 일당은 오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사람들 말로는 건설업체에서 이익을 다 가져가서 그렇다는데 정말 맞나"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최성수 씨 역시 "평당 1000만 원이 넘는 고층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일당을 주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냐"며 "아무리 가진 놈이 더 가지는 세상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데모라고는 모르던 사람들이 1000명씩이나 모여서 거리에 나선 일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놀라운 일"이라며 "정부와 언론은 우리들 보고 불법파업이다, 폭도다 하고 매도만 하지 말고 큰 도둑이 누군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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