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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지' 한국, 영어 유치원이 별 소용 없는 이유
[프레시안 books] 이병민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최종수정 2015.01.09 18:17:05 | 홍완기 전국영어교사모임 고문 | pedagogy@pressian.com
 
"10년의 영어 교육을 받고도 말 한마디 못한다." 영어 공교육에 대한 이런 비판은 오랜 연륜을 자랑(?)하고 지금도 그 위력을 발휘한다. 주기적으로 방송 화면과 신문 지면을 장식했던 이 비판은 곧 듣고 말하는 영어 회화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결국 1997년 초등학교에 영어가 정식 교과로 도입되었고, 영어 공용어화 논쟁과 '오렌지'가 아니라 '어린지'라는 촌극을 빚기도 하더니 급기야 영어 사교육 시기는 유아까지 내려갔다. 교사의 회화 능력이 문제라며 영어 회화 실력을 보고 교사를 뽑기 시작했고 '실용 영어' 교과서도 개발하는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어 교육 정책을 새롭게 제시하였지만, 조기 '영포자'(영어 포기자)는 늘어만 가고 '10년 비판'은 여전하다.

대체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혹시 이 비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병민 교수의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우리학교, 2014년 12월 펴냄)는 이런 의문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영어 광풍의 실체를 적확하게 밝혀내면서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 그리고 학교 영어 교육의 방향을 제시한 역작이다.

영어는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도구?

ⓒ우리학교

1990년대부터 정부는 국제화·정보화 시대에 따른 '사회적 수요' 운운하며 마치 전 국민이 일정 정도의 영어 회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처럼 전제하고 일본보다 훨씬 앞서서 초등학교에 영어를 정식 교과로 도입하였고, 학교에서는 이른바 '떼떼'(TETE, teaching english through english)라 하여 영어로 영어 수업을 할 것이라며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영어 교육 광풍을 자초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실제로 어떤 영역에서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기초적인 수요 조사도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그 '사회적 수요'가 허구임을 밝히고, 그것을 영어 교육의 무한 확대를 조장한 한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이런 광풍과 학교 영어 교육 10년에 대한 비판의 밑바닥에는 우리 사회가 이중 언어 사회로 가야 한다는 기대치가 존재하지만, 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되는 허위의식임을 밝혀냈다.

저자는 영어 교육학자 카츠루(Kachru)가 분류한 세 개의 영어 사용 그룹 즉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내부 그룹',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외부 그룹' 그리고 그 밖의 '확장 그룹'에 속하는 나라들에서 영어가 어떤 위상을 갖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하나하나 살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오직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만이 한 언어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도 아무런 부담이 없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가 결코 내부 의사소통 도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민족·다언어 국가로 출발한 싱가포르는 식민 지배 언어인 영어로 민족 간 언어 갈등을 해소하려 했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다민족·다언어 국가여서 영어를 내부 의사소통 도구로 활용하며, 중국조차도 이중 언어와 다언어 환경 국가여서 영어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박노자도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에서 노르웨이 사회가 외국인을 잘 받아들이는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에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영어가 의사소통 도구로 작동한다고 했다. 저자는 이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내부 의사소통 도구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저자가 이렇게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 내부의 특별한 영어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어의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져 이중 언어 사회라는 허위의식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고비용 저효율의 조기 영어 교육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상품으로서 영어 교육의 힘과 위험성

영어 교육의 무한 확대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영어와 영어 교육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모든 국민의 관심사라는 이유만으로 영어 교육 정책을 수시로 남발한 결과이다. 저자는 국가의 거시적 언어 정책과 제대로 된 국어 교육 정책도 없는 상황에서 영어 교육 정책이 이 둘을 흔들 정도라고 말한다. 영어 교육이 무한 확대된 것은 일찍이 할러데이(Holliday)가 적시한 대로 영어 교육이 강력하고 위험한 상품(a powerful and dangerous commodity)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상품에 대해, 회화 능력을 강조한 정부 정책들은 의사소통 도구로서 영어라는 허위의식과 불안감을 심어주어 조기 영어 교육 시장을 키워주었다. 거기에다 치열한 입시 구조에서 잦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변화로 입시 사교육 시장이 커왔다.

외국어도 언어이니 기존 시험에서처럼 듣기·읽기 능력뿐만 아니라 말하기·쓰기 능력도 측정해야 한다며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체하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때문에 몇 년간 NEAT 시장이 활황을 보였지만, 발표 초기에 예견했던 대로 전 학년(국민)을 대상으로 한 말하기·쓰기 시험은 가능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결국 폐기되었다.

영어 교육의 상업적 속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관은 바로 언론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도 전문 모 채널에서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 영역에 대해 '물수능' 운운하는 보도를 하면서도, 현재 실시하고 있는 중·고등학생 영어 토론 대회를 넘어 '제1회 초등학생 영어 토론 대회'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저자가 조사한 대로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 한 해 평균 약 5000건 내외의 영어 교육 뉴스를 왜곡되게 쏟아낸 것도 언론이고,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이슈화하는 기사를 내는 곳도 언론이며, 영어 사교육을 조장하고 실제로 사교육 기관이기도 한 곳이 언론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언론사들의 홍보성 기사를 감시하기 시작할 정도이다.

할러데이는 특히 교수법에서 상품으로서 영어 교육의 힘과 위험성이 도드라진다고 했다. 거의 모든 영어 교수법이 미국, 영국 등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지역에서 제2언어로 영어를 배우는 환경, 즉 저자의 표현대로 내부 사회의 의사소통 도구로서 영어를 배우는 환경에서 개발되어 영어를 초중등 및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배우는 국가로 일방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첫째 수입 국가의 교육 환경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둘째 '본고장'에서 개발된 교수법은 항상 우수하다는 이념적 식민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몰입 교육이다. 이중 언어 사회를 지향하는 몰입교육에 대하여 저자는 2부 '조기 영어 교육 열풍과 허구'에서 캐나다의 프랑스어 몰입 교육과 미국의 일본어 몰입 교육을 예로 들면서 그 조건과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였다. 몰입 교육이 단일 언어 사용 국가인 우리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방향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결코 의사소통 도구가 아님을 밝힌 저자는 우리 사회의 영어 교육과 관련한 허구를 벗겨내면서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 그리고 학교 영어 교육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언어 교육의 본질에 관해 첫째, 영어 교육의 핵심은 노출의 양과 피드백이 있는 상호작용임을 말한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나이가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조기 영어 교육에 회의적이다. 저자가 언급한 언어학자 필립슨(Phillipson)도 외국어 교육의 오류 중의 하나로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The earlier, the better)"를 지적한 것처럼 나이가 결정적 요인이 아니고, 영어에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노출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어 유치원 무용론이다.

둘째로는 영어를 읽고 쓰는 문식력(literacy)과 영어를 듣고 말하는 언어 능력은 별개의 능력인데, 학교 영어 교육이 읽기·쓰기·듣기·말하기를 같은 언어 능력으로 보고 가르치려 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였다. 우리나라 교육 과정과 교과서 개발 지침서에는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고른 개발이 목표로 되어 있다. 문제는 4가지 기능의 고른 개발이 한 과(lesson)에서도 이루어지게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초·중·고등학교 영어 교육 과정을 통해서 네 가지 언어 영역을 골고루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학교 영어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네 가지 영역에 대한 고른 개발이 환상임을 지적한 저자는 교사 개인이 구성하는 교육 과정인 실러버스(syllabus) 부재의 문제를 지적한다. 교과서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천편일률적인 교육 행위 때문에 교사의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줄 세우기 식의 학교 평가 문제가 비단 영어 교육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영어 평가에서 객관적으로 맞고 틀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적용되면 진정한 영어 소통 능력을 가르치거나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저자가 EBS 연계율에 묶여 문제 풀이 수업에 매몰되어 있는 고등학교 영어 교육을 언어 교육 현장으로 보지 않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능력 절대평가 도입을 주장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자는 2014년 4월 15일에 열린 제63차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정책 포럼 '수능 영어 과목 절대평가 도입 공개 토론회'의 주제 발제자였다.)

▲ 영어 교육은 대다수 학부모의 관심사다. 그러나 왜곡된 영어 이데올로기와 잘못된 국가 정책이 겹치면서 한국 사회에는 고비용 저효율의 조기 영어 교육이 만연해 있다. 사진은 2013년 11월 28일 코엑스(서울 삼성동)에서 개막한 '2013 영어교육박람회(English Expo)'를 찾은 참관객들이 다양한 영어 강의 교재를 살피는 모습. ⓒ연합뉴스



개별 맞춤식 영어 읽기 프로그램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는 학교 영어 교육 문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4가지 기능의 고른 개발을 목표로 한 교과서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가뜩이나 입시에 종속되어 있는 교육에 얼토당토않은 EBS 교재 연계로 인하여 학교 영어 교육은 언어 교육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교사들의 교과 전문성은 문제풀이 수업 속에서 퇴화되어 가고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교사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움직일 방법을 진지하게 강구해야 할 때이다.

저자는 언어 기능적 측면에서는 읽기 교육을 강조한다. 인터넷 정보의 50퍼센트 이상은 영어로 된 '글'이지 영어로 된 '말'이 아닌데도 국가에서는 영어 회화 우수자를 선발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영어 읽기 교육이나 교수법 개발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10년간 700 내지 1000시간의 학교 영어 교육을 통해 그나마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개별 맞춤식 영어 읽기 프로그램을 꼽는다. '개별 맞춤'이란 핀란드 교육 과정에 명시된 개별화 수업(differentiation of instruction)에 다름이 아니다. 법으로 되어 있는 핀란드 국가 교육 과정 문서의 '교수법 및 학습법' 장에는 이렇게 명문화되어 있다.

학생 개인의 필요와 학습 집단의 수요를 고려하면서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수단은 개별화 수업으로 학기 내내 시행되어야 한다. 학생 개인의 자존감 및 학습 동기와 더불어 개인별로 다른 정서적 욕구 그리고 학생별로 각기 다른 학습 스타일과 능력과 관심 분야를 고려해야 한다. (…) 개별화 수업을 통해 학생 개개인에게 적절한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완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강점을 살려 발전하고 학습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한 반의 학생들이라도 개인별로 각기 다른 능력과 관심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완기 전국영어교사모임 고문 (pedagogy@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