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다가오는 세계: 군사화, 인플레이션, 불황**
***5. "준비된 대통령" 조지 부시와 9.11**
부시 대통령과 그 정권에 참여한 이런 저런 인물들 특히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인물들에 대한 각종의 비판과 폭로는 작년 이래 많이 이루어진 바 있다. 특히 한국의 웹 공간에서는 그들에 대한 각종의 비방과 저주-항상 옳고 근거있는 것은 아니다-가 거의 과잉으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을 불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지금 논의하고 있는 최근의 세계 경제의 변화 경향의 메커니즘과 관련되는 측면에 한하여 닛잔과 비클러가 9.11까지의 부시 정권의 출현 및 경과에 대하여 추적한 바를 기록하고자 한다.
***1996년, "후세인을 축출해야 '새로운 중동'이 가능하다"**
게으른 오후와 같은 1990년대의 평화 분위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군사 국가로서의 미국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것과 석유 문제를 매개로 하여 중동과 연결되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당시의 평화 분위기는 어떻게 해서든 '전환'되어야 할 것이었으리라. 닛잔과 비클러는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정권 시절에 나왔던 한 보고서에 주의를 기울인다. 예루살렘에 있는 고급 정치 전략 연구소(The Institute for Advanced Strategic and Political Studies)는 1996년 "깨끗한 단절: 국토 안보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1990년대 클린턴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스라엘과 중동에서도 평화의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이스라엘 국내의 자본 집단도 전쟁과 군수 산업보다는 하이테크와 정보 산업 등을 통하여 지구적 규모에서의 자본 유입과 인수 합병을 선호하고 있었고, 이러한 '평화 배당금'을 통한 축적에서는 중동 지역 정치 구조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보고서는 바로 이러한 기존의 이스라엘 및 중동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소위 '새로운 중동'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이스라엘에게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1970년대 키신저가 선호하던 방식의 군비 경쟁과 무장에 근거한 소위 '세력 균형' 정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은 터키, 요르단과 같은 전통적인 친서방 국가들과 손을 잡고 강력한 적 시리아에 대하여 영토 내 공격을 포함한 공격적인 압박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리아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 있다. 이는 시리아의 힘의 주요한 근원은 그 배후에 버티고 있는 강력한 동맹국 이라크의 존재이다. 따라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시리아를 약화시키기 위한 이스라엘 안보 정책의 주요한 목표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 국가로서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이스라엘의 국내에서 나올 수도 있는 이 보고서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전부 미국인들인데다가 그 중 다수가 차후 부시 정권에 주역으로 참여할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팀의 우두머리는 부시 정권하에서 국방 위원장을 맡게 될 리차드 펄(Richard Perle)이며, 그 팀에는 부시의 군사 안보 팀의 안팎을 이루게 될 더글라스 페이스(Douglas Feith), 메이라브와 남편 데이비드 우름저(Meyrav and David Wurmser), 제임스 콜버트(James Colbert) 등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후세인을 축출하고 중동 지역에 '세력 균형 체제'를 다시 회복하자는 이러한 메아리는 곧 미국 국내에서도 들리게 된다. '평화 중독자(peacenik)'로 유명한 클린턴이 아직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1998년, 현재 미국의 국방부 장관인 럼스펠드를 주축으로 한 42명의 인사들이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어 '사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종합적인 정치적 군사적 전략'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안팎의 숱한 비난과 공격 속에서도 부시 정권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방부 장관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도널드 럼스펠드를 필두로 하여 그 42인 중 다수가 부시 정권에 참여하였고, 마침내 그 편지의 큰 뜻을 이루고야 말았다는 것은 이제 다 아는 바이다.
***"'동남풍'만 빠졌다", 적절한 시점에 일어난 9.11**
아직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있던 2000년, 그러한 이라크 공략의 구체적인 계획이 세밀하게 마련된 "미국 안보의 재구축"이라는 연구 보고서가 나오게 된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미국의 21세기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를 설립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폴 월포위츠, 부시 정권에서 아프가니스탄 대사로 나가는 잘메이 칼릴자드(Zalmay Khalilzad) 등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10년간의 미국 정책-'평화 배당금'을 내세우면서 군사 예산을 삭감하고 조세 수입을 확대하여 정부의 흑자 재정을 일구어 나가는-이 미국의 '지구적 지도력(global leadership)'에 치명적인 공백을 안기고 말았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군사비 지출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그러한 대규모의 '군사적 전환(military transformation)'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가 쉽다. 모종의 지각 변동과 같은 파국적인 사태 이를테면 새로운 진주만 공격과 같은 것이 없을 경우에는".
경사롭게도 이들은 2001년 백악관에 입성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 몇 개월 후인 9월11일, 그날 밤 부시 대통령이 일기장에 사용한 용어 그대로, 미국은 "진주만 공격"을 받았다. 테러의 범인이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혐의가 짙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다음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럼스펠드는 엉뚱하게도 당장 이라크로 쳐들어가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콜린 파월의 반대로 먼저 여론에 맞게 아프가니스탄부터 침공하는 쪽으로 겨우 결론이 난다. 하지만 결국 이라크는 미국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도 우리가 아는 바이다.
"동남풍만 빠졌다"는 말이 있다. 삼국지연의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장강(長江)을 넘어 처들어 오는 조조의 군사를 막아내기 위해 오나라는 실로 기상천외의 전략까지 총동원하여 치밀한 화공(火功) 작전을 세운다. 천신만고 끝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드디어 결정적인 그 순간 빠진 것은 "동남풍" 뿐이었다. 이때 제갈량이 호풍환우의 도술을 부려 동남풍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9.11의 "진주만 공격"이라는 "동남풍"이 정말로 우연히 불어온 자연의 섭리였는지 아니면 도술로 만들어 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이렇게 세계와 미국에 있어서의 '군사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 1996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들은 9.11의 "동남풍"에 맞추어 전 세계를 상대로 "테러와의 무한전"의 이름 아래 곳곳에 무자비한 화공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으로 떨어졌던 불벼락은 그 "동남풍"에 실려 이라크를 태운 바 있다. 여기에서 불이 멈출지 아니면 쿠르디스탄, 시리아, 이란 등으로 계속 퍼져나갈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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