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논문 조작'이라는 사건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황우석 씨 본인의 처신과 '분신'까지 불사했던 황우석 씨 지지자들의 극렬 행동, 또 이에 부화뇌동한 언론의 행태는 막대한 사회적 피해를 야기했다. 이에 지친 상당수 국민들은 이제 '황우석 사태'를 잊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당사자인 우리 사회가 황우석 사태의 긴 터널을 거치면서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또 거기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사이에 세계 과학계는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이번 사태를 '희대의 논문 조작' 사건인 동시에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논의를 진행해 왔다. <프레시안>은 검찰 수사를 앞둔 시점에서 이런 해외의 논의 과정을 소개한다.
이 글은 김명진 성공회대 강사(과학기술학)가 시민과학센터에서 펴내는 <시민과학> 제59호(2006년 4-5월호)에 게재한 것이다. 김명진 씨와 시민과학센터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이런 해외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검찰 수사 발표를 접한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따져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황우석 사태는 전세계의 줄기세포 과학자와 난치병 환자들을 흥분시켰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저질러졌음을 드러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경악에 빠뜨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 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는 이제 더 이상 대단히 희귀하거나 특이한 사건이 아니다. 특히 황우석 사태가 전개된 작년 말에서 올해 초에 걸쳐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도 유사한 부정행위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 과학계를 긴장시켰다.
먼저 작년 10월 27일에는 MIT 생물학과 부교수로 면역학 분야에서 '떠오르는 별'로 주목을 받던 루크 반 파라이스가 1년여에 걸친 학교 측의 자체 조사에서 부정행위 판정을 받고 교수직을 박탈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파라이스는 1편의 논문과 여러 편의 미발표 원고, 그리고 수 건의 연방 연구비 신청서에서 날조 내지 변조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Nature, 438, 7 [2005]).
이어 올 초에는 유럽과 일본에서 유사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1월에는 노르웨이 라듐 병원의 연구자인 욘 수드보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과 <랜싯> 등 저명한 의학지에 실은 세 편의 논문을 날조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수드보는 구강암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구강 내부의 병변(病變)과 암 발병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여럿 발표해 임상에도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었다. 특히 그가 작년 10월에 <랜싯>에 발표한 논문은 무려 908명에 달하는 환자들의 이름, 성별, 진단 내용 등 모든 인적사항을 날조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Science, 311, 448-449 [2006]).
그리고 3월 말에는 일본 동경대의 가즈나리 다이라 교수가 12편에 달하는 RNA 연구논문들에서 기만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일본 RNA학회의 의뢰를 받아 구성된 동경대 조사위원회는 다이라 연구팀이 실험노트를 보관하고 있지 않으며, 일부 논문에 대한 재연 요청에서도 실험 결과를 재연해내지 못하는 등 여러 수상쩍은 정황들을 발견했다(Nature, 440, 720-721 [2006]). 동경대 차원에서 처음 진행된 이번 부정행위 조사는 일본 과학계의 부정행위 대응 체계와 절차에 미흡한 점이 많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Nature, 439, 514 [2006]).
부정행위에 대한 대중언론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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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과학계 내에서뿐 아니라 대중적 차원에서도 과학 부정행위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촉발시켰다.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일간지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2005년 12월 20일 '전 지구적 경향 ― 더 많은 과학, 더 많은 기만행위(Global trend: more science, more fraud)'라는 제목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과학 부정행위의 역사와 현황을 진단했다. 이 기사는 전 세계적으로 과학 활동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는데도(현재 과학 저널의 수만 해도 5만4000종이 넘으며, 매년 수백만 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에 부정행위에 대응하는 제도적 장치가 자리 잡혀 있지 않은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해 12월 25일에 '연구윤리에 관한 논란(Ethics in research debated)'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필트다운인 사건'처럼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기만 사례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부정행위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를 다각도로 짚어 보고 있다.
황우석 사건을 비롯한 최근의 과학 부정행위 사건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논문에 실린 이미지의 조작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황우석 사건에서는 동일한 사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잘리고 가공되어 서로 다른 세포를 나타내는 것인 양 사용되었고, 수드보 사건에서도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실린 구강병변 그림 중 하나는 같은 논문에 실린 다른 그림을 단순히 확대한 것이었다.
미국 연구진실성관리국(ORI)에 따르면 1989~90년에 기만행위로 조사를 받은 사례 중 이미지 조작을 포함한 경우는 2.5%에 불과했지만, 2003~4년에는 그 비율이 40.4%로 급증했다. <보스턴글로브>는 올해 1월 11일자에 실린 '기술 발전이 연구의 조작을 부추긴다(Technology seen abetting manipulation of research)'라는 기사에서 '포토샵'처럼 누구나 손쉽게 구해 쓸 수 있는 이미지 가공 프로그램의 보급이 과학자들을 유혹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세포생물학저널>에 따르면, 이 저널에 투고된 원고 중 심사를 통과해 게재가 예정된 논문들을 대상으로 이미지 조사를 해본 결과, 그 중 25%는 원 실험 결과를 정확히 반영하지 않은, 문제 있는 이미지를 적어도 하나 이상 포함하고 있었고, 1%는 그 정도가 너무나 심각해 게재를 취소해야 했다. 이 저널은 2004년 7월에 이미지 조작의 다양한 유형을 분석한 글을 자체적으로 실은 바도 있다(Journal of Cell Biology, 166, 11-15 [2004]).
학술지와 동료심사의 책임은 어디까지?
황우석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였던 전형적인 반응은 <사이언스>처럼 저명한 학술지가 최고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해당 논문을 '검증'했으니 아무 문제도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이런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사이언스>의 편집진은 물론이고, <사이언스>가 평소보다 더 많은 수를 위촉했다고 알려진 논문 심사위원들도 논문의 이미지 중복이나 데이터의 문제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과학의 질적 보증을 책임져야 하는 학술지는 대체 뭘 하고 있었으며, 동료심사(peer review)는 왜 기만행위를 적발해 내지 못했느냐 하는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은 황우석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이미 나온 바 있다. 즉 동료심사란 기본적으로 논문의 데이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마음 먹고 속이려 드는 기만행위를 잡아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에 과학자와 학술지들이 취한 입장도 이러한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네이처>, <네이처뉴로사이언스>, <네이처셀바이올로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 등 여러 저널에 실린 기사, 기고문, 사설들은 신뢰에 기반을 둔 동료심사가 노골적인 기만을 잡아낼 수는 없으며, 학술지는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논문을 조사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도 못하고 이를 제재할 수 있는 힘도 없다는 점을 되풀이해 지적했다. 결국 논문의 진실성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일차적으로 책임 연구자와 교신 저자가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Nature, 439, 520-521 [2006]; Nature Neuroscience, 9, 149 [2006]; Nature Cell Biology, 8, 101-102 [2006]; NEJM, 354, 321-324 [2006]).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황우석 사건 이후의 논의들이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었다. 과학자들과 학술지들은 위와 같은 입장을 대체로 전제하면서도, 그 위에서 좀 더 나은 학술지의 역할과 동료심사의 운영방향에 대한 제언들을 쏟아냈다.
먼저 <네이처>는 '복제 관련 논문 게재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제목의 1월 19일자 사설을 통해 앞으로 복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는 연구자들이 지켜야 하는 추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내용인즉, △세포핵의 DNA뿐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의 DNA 자료를 함께 제공해야 하고 △편집진이나 심사위원이 요구하는 경우 논문에 쓰인 원자료(raw data)도 내놓아야 하며 △가능하면 독립적인 연구자로부터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이를 첨부해 논문 원고를 제출하고 △핵심적인 샘플은 별도의 보관소에 기탁해 두라는 것이다(Nature, 439, 243 [2006]).
또한 <사이언스>와 <네이처> 지면에는 황우석 사건을 포함한 부정행위에 대해 여러 과학자들의 의견을 담은 서신이 쏟아져 들어 왔다(Science, 311, 606-607 [2006]; Na- ture, 439, 782-783 [2006]). <네이처>에 실린 8통의 서신은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여기서 제시된 의견들에는 △예전 논문의 결과를 재연하지 못한 '부정적' 연구결과의 발표를 장려하자 △논문의 모든 저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기여한 바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미리 밝히게 하자 △시장 원리를 도입해 동료심사를 개선하자 △논문 발표의 속도를 늦춰 이른바 'publish or perish'(논문 발표에 대한 중압감) 문제를 완화시키자 △무작위로 선별한 논문들에 대해 데이터 감사(data audit)을 실시하자 △편집진과 심사위원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자는 것 등이 있었다. 이런 의견 외에 부정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의 중요성이 여러 차례 강조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러 <네이처> 저널들은 현재 논문 발표를 위한 지침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일부 저널은 논문에 실리는 이미지의 가공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지침을 마련했으며, 연구의 독립적 재연을 쉽게 만들기 위해 시약을 배포하고 실험 프로토콜을 완전히 공개하는 것을 핵심적인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다(Nature Cell Biology, 8, 203 [2006]; Nature Methods, 3, 237 [2006)]. <네이처>를 포함한 여러 저널들은 논문에서의 이미지 조작을 막기 위해 경찰이나 사진기자들이 주로 쓰는 적발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결국에는 정책 시스템의 실패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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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황우석 사건의 배경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했던 헤르베르트 고트바이스의 논평을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다(Nature Biotechnology, 24, 141-143 [2006]). 그는 황우석 사태와 같은 대형 부정행위 사건의 원인을 과학자 개인의 도덕적 책임성 결여와 동료심사의 실패에서 찾는 통상적인 견해에 반기를 들었다. 동료심사는 애초부터 신뢰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결국 부정행위가 드러나는 것은 대부분 동료심사가 아니라 내부자 고발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가 황우석 사태에서 더 큰 문제로 여기는 것은 한국의 과학 정책의 실패다. 생명공학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했고, 황우석이라는 스타 과학자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이런 목표롤 달성하려고 했던 한국 정부가 정작 그에 의당 뒤따라야 하는 제도적 장치―책임성, 투명성, 규제를 가능케 하는―를 마련하는 데는 소극적이었거나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사이언스>에 실린 밀드레드 조 등의 지적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Sci- ence, 311, 614-615 [2006]). 그들 역시 하나의 실험실에 막대한 자금을 몰아주는 것은 새로운 연구 분야에서 연구자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하지 못하며 과도한 기대에 따른 지나친 압박감으로 인해 불건전한 경쟁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썼다.
요컨대, 연구 부정행위는 그 자체로 따로 떼 내어 다룰 수 있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네트워크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평들은 현재 일부 대학과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연구진실성 지침 마련에 나서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정작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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