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로 약값 인상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는 정부, 시민단체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복지부가 연간 최대 1000억 원 정도로 예상한 데 반해, 시민ㆍ사회단체는 연간 1조 원을 예상한다. <편집자>
또 약값은 왜 이리 비싼 거야?
나도 맨 처음엔 폐암인지 몰랐지. 가슴에 통증이 생겼는데 처음에야 뭐 흔한 협심증 정도이겠거니 그랬거든. 아프니까 일단 병원에 가서 어찌된 건지 물어는 봐야 하잖아. 일단 병원에 갔지.
근데 아이고 병원이 언제부터 그랬나? 지하 식당가에 '막도날도'가 들어와서 장사하고 그 옆에는 병원이 운영한다는 모 여행사 또 그 옆에는 각종 의료기기를 대놓고 팔고, 아따 완전히 시장바닥이데…. 소아 환자들이 지하 식당가에 내려와서 막도날도 햄버거 사다 먹고 그러는데 환자 치료한다는 병원이 저래도 되는 거야?
에라 내 코도 석자다. 그러고는 예약한 시간이 돼서 진찰실로 들어갔지. 환자가 아프다고 그러면 처음부터 칼 들이대는 게 아니잖아. 일단 진단방사선과 가서 엠아르아이(MRI) 찍으라 하고 혈액검사다 뭐다 검사라고 이름 붙은 검사란 줄줄이 다 했지.
그렇게 돈 왕창 퍼주고 난 결과가 결국 폐암이라는 거야. 환장할 노릇이지. 원래 젊었을 때 돈 벌었다가 늙어서 병원에 다 가져다주고 죽는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 영 갑갑한 게 아니더라고.
근데 정말 환장할 일은 처방전 받으면서 생겼어. 그나마 예전보다 약은 좋은 게 나와 있다고 하는데 이놈의 약값이 장난이 아닌 게야. 암환자라고 건강보험에서 90%의 약값을 내주는데도 무려 한 달에 50만 원을 내야 된데. 그러니까 제약회사가 가져가는 약값이 한 달에 500만 원이라는 이야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머지 90%도 다 내가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나가는 거잖아.
아무튼 병 걸려서 직장도 못 다니고, 벌이도 없는 내가 죽을 때까지 꼬박꼬박 그걸 어떻게 내냐 이 말이야. 그리고 약값만 드나. 생활비 들어가, 애들 교육비 들어가, 차비도 있어야지, 툭하면 입원하니까 다른 비용에 각종 검사비 정기적으로 들어가… 그래서 환장하는 거야. 약국에 가서 그 약을 봤거든. 크기가 좁쌀 한 10개 모아 놓은 거 같아. 그게 15만 원이래. 금보다 몇 배가 비싼 거야*.
| * 실제로 암의 일종인 기스트(GISTㆍ위장관 기질종양) 환자들이 먹어야 할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의 신약 '수텐'은 한 알에 15만7000원 가량 된다. 실제 무게로 따져도 금보다 몇 배가 비싸다. |
약 장사하기 편해진 대한민국, 환자들은 비싼 약 때문에 '허걱'
옛날에는 혁신적이다 생각하는 신약이 들어오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스위스 등의 선진국 7개국 약값을 평균내서 마진이니, 관리비니 이것저것 붙여가지고 약 80%까지 약값을 해줬대*. 예전에 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이라는 약값이 비싸다고 약값 깎으라고 보험 적용하라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해서 막 농성도 하고 그랬잖아. 그 후에도 이거 없애라고 몇 년을 싸웠다지 아마.
이 몇 개 안되었던 혁신적 신약들이 FTA 이후에는 수백, 수천 개 앞으로 나올 모든 약(다국적 제약회사 이 놈들은 나오면 무조건 다 신약이래)에 다 적용되고 있다는 거야**. 그나마 보험적용이 되는 환자들은 팔다리 부러지는 정도로 타격이지만 보험적용도 안 되는 환자들은 그야 말로 허리가 휘어지다 못해 부러지는 거야.
| *건강보험요양급여비용 중 A7 평균약가 산출법. 2007년 현재 그 동안 이 약가 산출방법에 의해 혁신적 신약으로 등재된 약 종류는 글리벡을 포함하여 총 13개이다. ** 협정문 제5장 제5.2조 (혁신에의 접근) : 적절한 규제당국이 안전하고 유효한 것으로 승인한 의약품 또는 의료기기에 대한 급여액을 그 당사국이 결정하는 경우, 그러한 결정이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에 기초하도록 보장한다 : 여기서의 경쟁적 시장이란 약가가 형성되는 세계시장을 말한다. 결국 선진 A7 국가들에 기초한 약값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한국은 미국과 달라서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
그래서 내가 하도 답답해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아메리카 제약회사'에 다니는 내 조카 놈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랄지랄했다는 거 아냐. 그랬더니 그 놈이 어느 날 내게 이메일을 하나 달랑 보냈는데 이메일을 보다가 도리어 화병으로 죽을 거 같았어. 내 그거 보여 줄게.
"약장사하기 너무 편해졌어요"
이모부, 아프시다는 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이모부 전화 받고 일단 상황을 먼저 파악하시라고 먼저 작금의 상황을 잘 설명 드려야겠다 싶었어요.
한미 FTA가 끝난 지금은요, 우리 회사가 약값을 괜찮게 받는 게 너무 쉬워졌어요. 이모부가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혁신적 신약'이라고 판단될 때만 선진국 일곱 개 나라의 평균약가를 내서 산출하는 약가 결정방식에 적용되었는데 요새는 신약이라고 나오면 무조건 다 옛날보다 높게 받아요.
아시겠지만 신약이라는 게 개발하는 데까지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일단 약값 자료를 제출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를 하고 그 자료에 기초해서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팀에서 제약회사하고 약가 협상을 한다지만 에이 우리가 바본가요? 거기랑 협상하게. 건강보험공단은 요새 애들 말로 좀 까칠하거든요.
그냥 약가협상 하는 시늉하다가 파토 내버리고 복지부 내에 있는 '의약품ㆍ의료기기 위원회'로 넘기는 게 더 이득이에요. 이 위원회에는 미국의 통상공무원이 한국 정부와 공동으로 의장으로 있거든요*.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양국이 실무작업반을 합의해서 구성하기 때문에 제약회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제법 들어가거든요**.
| * 협정문 제5장 제5.7조 (의약품/의료기기 위원회) 3항 : 위원회는 각 당사국의 보건 및 통상 공무원이 공동 의장이 된다. ** 협정문 동장 동조문 중 6항 : 위원회는 (…) 작업반을 양 당사국이 협의하는 대로 설치하고 그 범위와 임무를 결정할 수 있다. |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약값이 먹히질 않는다 싶으면 방법은 또 있어요. 2단계로 한국 정부 밖에 '독립적인 이의신청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데 우리는 약값 결정이 맘대로 안 되면 요거 활용해요**. 여기에는 한국정부의 누구도 못 들어오거든요*** .
| * 협정문 제5장5.3조 마호 (투명성) : (…) 신청자의 요청에 따라 발동될 수 있는 독립적인 검토절차가 이용 가능하도록 한다. ** 협정문 제5장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부속서한) 가호 : 협정문 제5장5.3조 마호 (투명성)를 이행함에 있어 대한민국은 (…) 의약품 또는 의료기기의 가격산정과 급여에 관한 권고 또는 결정을 검토하는 검토기구를 설치하고 유지한다. *** 협정문 제5장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부속서한) : (…) 중앙정부의 보건의료 당국의 피고용원이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
1, 2, 3, 4단계로 드리워진 약가 결정의 장막
제가 말씀드리기 좀 쑥스러운데 뭐 여기까지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한국 정부가 색다른 정책을 내서 약값을 깎거나 우리 장사를 방해한다 싶으면 3단계로(이모부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있고요, 4단계로는 '비위반제소권'이라는 것도 있어요.
비위반제소는요, 보시는 바처럼 말 그대로예요. 비위반, 즉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시장(다국적 회사들의 시장이겠죠)에 심각한 위협이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이나 행위들이라고 판단되기만 해도 협정문을 들이대고 미국이 한국정부를 제소해도 된다는 거죠.
이렇게 몇 겹으로 안전장치들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우리 회사 중역들은 때때로 "야, 한국은 참 장사하기 좋은 나라야"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저야 월급 많이 받으니까 좋긴 한데 이모부는 좀 그렇긴 하겠네요. 그래도 이게 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국가 신용도를 높이는 데 무척 기여했다고 그냥 생각하세요.
근데 이모부,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이미 다 만들어진 약의 약값을 결정할 때 변화된 상황이구요, 실제 우리 회사가 짭짤하게 재미 보는 건 한국 제약회사들이 싼 복제약을 못 만들게 하는 거예요. 물론 우리 회사도 그간 전 세계적으로 돈이야 많이 벌었지요. 근데 그간 가장 속 썩였던 게 다른 중소 제약회사에서 복제약 (제네릭, 일명 카피약)을 만드는 거였거든요.
물론 판매야 특허기간 안에는 못했죠. 근데 이것들이 약을 미리 만들어 놓고 특허가 끝나자마자 약장사를 하는 거예요. 한미 FTA에서는 이거를 확실히 잡았다 아닙니까. 이 문제의 가장 핵심이 그것들이 약을 미리 연구해서 만들 수 있도록 우리가 냈던 자료를 열람하고 취득할 수 있었던 제도 때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요걸 시판 승인일로부터 5년에서 10년간 못하게 만든 겁니다*. 개발자의 노력도 있는데 뭐 이정도의 지적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또 그 정보를 가지고 약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봐서 소송을 걸어버리면 나중에 만든 약은 자동으로 시판정지가 되거든요. 좀 야비하긴 하지만 똑같은 약이라도 중간에 새롭게 약효가 승인 것은 또 그것대로 다시 걸면 시판정지가 또 연장이 되니까**.
| * 협정문 제18장 제18.9조(특정 규제 제품과 관련된 조치) 1항 : (…) 정보를 이전에 제출한 인(다국적 제약회사)의 동의가 없이는 다른 인이 (…) 유사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 의약품에 대하여는 최소한 5년 그리고 농약에 대하여는 최소한 10년간 승인하여서는 아니 된다. ** 특허소송기간동안 후발의약품의 시판허가 정지된다. 미국의 경우, 자동정기기간을 30개월로 한정하지만 한미 FTA 협정문에서는 "국내적으로 이행가능한 적절한 이행방안을 강구한다"로 표현되어 정지기간이 무한대로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
이모부, 저도 이렇게 살긴 싫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해야 개발자의 지적재산권이 보호되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또 다른 신약을 개발해서 환자들을 살리는 거 아니겠어요? 이모부가 드셔야 할 약이야 우리 회사가 만든 약은 아니지만 제약회사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해주세요. 근데 이모부가 드시는 약은 좀 비싸긴 하네요. (그 놈들 너무 많이 남겨 쳐 먹는 거 아녜요?)
이모부, 너무 화내지 마시고, 몸 관리 잘하시고 얼른 병을 이겨내세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때 FTA 반대 했어야 했는데"
'이 놈이 누구 열 받아서 죽는 걸 보려고 하나?' 그나저나 어쩔까? 이미 병은 걸렸고, 세상은 변했는데 우리처럼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우리네는 이제 어쩔까. 병이야 내가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것도 아닌데 이제 어쩔까. 돈이야 다 까먹으면 파산신청이라도 하지만 병든 이 몸은 어쩔까. 몸의 파산신청은 죽는 것인데…. 그냥 죽어버려?
병원 다녀오다 전철역 화장실에 몇 년 전 한미 FTA 반대했던 시민단체들이 붙여 놓았던 스티커가 아직도 있더라구. 그거 읽어주고 난 이제 집에 간다. 그래도 살려면 약은 먹어야지. 아, 그때 FTA 반대 했어야 했는데!
전 국민들의 삶을 짓밟는 한미 FTA 반대!!!
약이 비싸서 1년에 에이즈 환자 1000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다국적 제약회사를 살인죄로 국제 법정에 세워라!!!*
의료의 공공성을 확립하여 국민이 주인인 의료를 만들자!!!
| * 지금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약소국의 에이즈 환자와 암이나 희귀난치질환에 걸린 환자들이 1000만 명 이상 매년 죽어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죽은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매년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단지 약값이 비싸서 그 약에 접근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만든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개발비로 8억 달러가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다 인정한다하더라도 약 판매 출시 5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벌어들인 돈이 무려 60억 달러다. 특허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벌어들인 돈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국내에서는 한 알에 2만3045원에 판다. 이외에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약값을 고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약값이 낮다는 이유로 아예 판매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단 1명이라도 그것을 사용해야 할 에이즈 환자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꼭 자신들의 사명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닌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추악한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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