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또 말을 바꿨다. 이 후보는 자신이 내세웠던 경부운하 공약에 시민ㆍ사회단체의 비판이 거세자 "공개 토론을 통해 검증하자"고 대응했다. 그러나 정작 36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07대선시민연대'가 공개 토론을 제안하자 이를 거부한 것.
'2007대선시민연대'의 염형철 사무처장은 이 과정에서 겪은 해프닝을 전한다. "공개 토론을 하자"는 제안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답을 한 것. 염 사무처장은 "국민 절반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 후보의 처신이라고 하기에는 낯 뜨겁기 짝이 없다"며 황당한 심경을 밝혔다.
염형철 사무처장은 "결국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라는 것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며 "이 후보는 당당히 검증에 응하던가 검증이 싫으면 지금이라도 경부운하 공약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편집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경부운하 공약 검증 토론회를 거부했다. 자신의 제1공약이며, 10년 전부터 100여 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준비했다는 계획에 대한 논쟁을 사양했다. 36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07대선시민연대'의 입장이 쑥스럽게 됐다.
하긴 결론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경부운하 공약은 논쟁할수록 이 후보의 표를 떨어뜨리는 애물단지다. 이 후보가 의례적인 홍보는 하고 있지만, 일선에서 주장하던 자문 그룹은 두 달 넘게 침묵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폐기 목소리가 높다. 이 후보 지지자도 절반 이상이 의문을 표시한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사실상 죽은 공약'을 철회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불도저 추진력'에게 중도포기란 굴욕이며, 부실 공약으로 여론을 호도했다는 비난을 우려한 탓이다. 무엇보다 개발 공약에 환상을 갖는 표심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은 공개된 토론의 장에서 유통되는 의제가 아니라, 시골 장터에서 '낙후된 지역을 구원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되는 게 고작이다. 지역 방문 때 나오는 '운하가 건설되면 발전이 없던 내륙 지역 여건이 좋아져, 금방 4만 달러 시대를 맞게 되니, 표정 관리를 해야한다'는 따위의 주장이 그것이다.
사실 경부운하 공약은 실체가 모호하다. 기본적인 정보들(용도, 이용 요금, 노선, 사업비, 수질 대책 등)이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지적될 때마다 말을 바꿔 지금은 그 모습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처음엔 '물류 혁명의 신기원'이라 했으나, 이제 운하 효과에서 '물류의 비중은 20% 미만'이라고 한다. 물류 개선 효과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관광과 내륙 발전 효과를 홍보하고 있으나, 근거가 미약하고 설득력도 없다.
식수원 대책도 중구난방이다. 처음엔 운하를 해도 상관없다고 하다가, 나중엔 운하와 식수원을 구별해 수로를 두 개로 만들겠다고 했고, 또 강변여과수를 대안이라고 했다가, 수량을 확보할 수 없으니 절반만 하겠다는 등 수시로 변했다. 경부 축의 연간 물동량이 1872만 톤(t)인지 645만 톤인지, 비용편익분석결과가 2.3인지, 1.2인지도 알 수 없다. 또 골재 팔아 운하 만든 나라가 있는지, 투자하겠다는 외국 회사가 어디인지도 확인할 수가 없다.
이명박 후보 측은 한 때, '운하와 관련된 각종 환경 쟁점을 두고,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국민들의 의혹을 없애자'며 환경운동연합에 공개토론회를 제안했었다. 운하 공약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던 7월, 공약에 대한 자신감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공개 토론회'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온갖 변명으로 토론회를 지체시키더니, "선대본부가 해단했습니다. 구월에 대선본부가 뜨면 다시 논의하세요"라는 휴대폰 문자를 보내고, 연락을 끊었다.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후보의 행각이라 하기엔 낮 뜨겁다. 게다가 요즘엔 '운하 반대'를 정략과 음모로 규정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본격 거론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토론하기는커녕, 경부운하에 대해 검증하자는 논의 자체를 반대하겠다는 것이다.
"추석을 맞아 경부운하에 대해 공격적으로 홍보하겠다"고 새로이 밝혔다는데, 뭘 홍보 하겠다는 건지도 의아하다. 실체도 밝히지 못하고, 토론도 당당히 못하는 부실한 공약이 국민에게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 80%의 국민들이 경부운하 공약을 우려하고 있는데, 숨기고 달리 말한다고 용납될 것이라는 판단이 순진해 보인다.
필자는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이 벽장 너머의 허구적인 그림자라는 심증을 굳혀가고 있다. 한 때는 엄청난 몸집을 가진 강력한 괴물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점차 강아지 같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할거라는 믿음이 커져가고 있다. 검증의 햇볕에 순식간에 사라질 허상일 거라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적반하장으로 토론을 거부하고 정치공세를 통해 검증활동을 시비하고 있다. 대선시민연대 검증 토론 제안에 대해 '반론 포기'를 넘어 '방해'와 '협박'으로 응답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에 근접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옹졸한 대응이다.
필자는 이 후보께 더 늦기 전에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 당당히 나서 검증 토론에 응할 수 없다면, 경부운하 공약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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