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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 아직도 위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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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 아직도 위기는 아니다?

김희원의 '워싱턴통신' <4>

북한이 폐연료봉 이동을 시작했을지 모른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전해지던 날 아침, 조지타운대학에서 한반도 관련 국제회의가 열렸다. 조지타운대 국제대학원 원장인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한핵대사는 모두 연설에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만약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미국은 분명히 영변 핵시설을 폭격했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 역시 사태가 여기까지 진전된 이상 어쩔수 없이 미국의 결정에 따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국민들의 정서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북 정책기조를 감안할 때 미국의 북한 핵시설 선제공격은 옵션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미국을 두 개의 위기, 즉 이라크 문제와 북핵 문제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기 위해 더욱 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남은 대안은 무엇인가? 결국 협상과 묵인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인데, 대화는 하되 협상은 절대로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

이 질문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답은 ‘북핵 문제는 아직 위기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4일 열린 미 상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북핵 문제가 위기로 발전할 잠재성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위기라고 볼 수 없다’고 증언했다.

아미티지의 논리는 이러했다. 우선 한국의 입장에서 볼 떄 한국은 이미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에 노출되어 왔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장을 해도 기존 안보등식에 큰 변화가 오지는 않는다. 북한이 핵무기 기술과 미사일 기술을 결합할 경우 일본과 미국이 직면해야 할 군사위협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고조되겠지만, 이를 빌미로 미국의 관심을 끌려는 북한의 술책에 넘어갈 이유가 없다. 사실 북한의 의도는 이라크처럼 주변국들을 지배, 위협, 또는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핵프로그램 포기를 댓가로 경제적 보상을 받는 데 있다. 북한이 플루토늄 재처리에 들어가 핵무기 개발과 아울러 핵물질 확산을 시도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북한의 경우 미사일 기술을 확산시킨 전력은 있으나 생화학무기나 핵물질을 확산시켰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지난 12년간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 비하면 북한 문제의 외교적 해결 노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시간이 충분히 있는 만큼 관련 당사국들과 다자적 접근방식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은 북한의 고립만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이라크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북핵문제를 왜 방치하고 있냐는 의원들의 추궁을 위의 논리로 피해 나가기는 했으나, 아미티지는 몇가지 중요한 논리적 모순을 노출했다. 우선 북한이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공갈 협박을 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핵무장으로 갈 의도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는데,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도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를 언급했다. 핵기술을 확산시킨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역시 설득력이 없다.

둘째, ‘북한이 이라크보다는 덜 사악하다’는 점을 미국이 앞장서 내외에 선전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다. 아미티지는 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주변국을 위협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고 자국민들을 생화학무기로 학살한 전력도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일련의 공격적인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정책에 비춰볼 때 듣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셋째,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안이한 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 왔다. 그런데 한국의 입장에서 볼 떄 북한의 핵무기는 기존 안보등식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아미티지의 발언은 한국의 ‘안이한’ 북핵 인식과 태도가 하나도 놀라울 게 없음을 의미한다.

요즘 워싱턴에서 눈에 띄는 또하나의 아이러니는 부시행정부는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애써 축소하는 반면, 소위 ‘북한 포용론자’들은 군사행동까지 선택지에 포함시켜라, 그것도 공갈협박이 아니라 미국이 정말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선택지 중에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하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묘한 상황이 연출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용인할 수도 있는 사안인가에 대한 입장차이에서 비롯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북한 정권을 절대로 상대해서는 안되는 정권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싫어도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상대할 수밖에 없는 정권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루거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위의 청문회에서 미국은 북한과 즉시, 그리고 직접 대화하라고 촉구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무력사용도 준비해야겠지만, 외교적 노력을 총동원해서 어느 한 쪽의 오판에서 비롯된 재앙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한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모든 관심을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의 바이든 의원은 여기에 더해 아미티지에게 ‘오늘 당신이 한 증언이 모두 기록되고 있는데, 앞으로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다시 보자’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문제가 부시의 관심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악의 축’ 발언이 있기 전에 부시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냐는 질문에 아미티지는 악의 축 발언 이후 예상할 수 있는 외교적 파장에 대해서는 고려한 바 없었다고 시인했다. 사악한 정권과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방미특사단에게 했다는 주한미군 철수 관련 발언 역시 이것이 북한에 어떤 의미로 전달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부시 행정부에 있어 대북 인식은 있을지 몰라도 엄밀한 의미의 대북 ‘정책’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뉴욕타임스 기사에 매달려 아미티지가 ‘북한과의 직접대화 가능성’을 비쳤다고 크게 보도했다. 워싱턴 특파원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청문회장에 들어가 끝까지 경청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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