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정상화를 향해**
일본과 남한 간의 국교정상화 교섭은 13년이 걸려 1965년 2월에 마무리됐다. 북한과의 수교 교섭은 1991년에 시작돼 14년째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초의 일본에서는 자신들에게 가해진 범죄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이성을 압도했고, 손상당한 자존심이 외교를 질식시켰다. 정치가와 언론인들은 세계가 어찌 하여 북한과 같은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지, 평양측 메시지의 핵심에는 본말이 전도된 정의에 대한 분노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고 이해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 상상력의 실패는 이제 북일관계는 물론 일본의 대중국, 대남한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나아가 이들 국가들 관계의 기반은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 정치가와 비판자들은 35년간의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측의 보상(지금은 "경제협력"이라는 말로 포장된) 액수에 대해 호들갑을 떨곤 한다. 예상 최대치는 1조5000억 엔(120억 달러)쯤 된다. 하지만 이 액수는 최근 위기에 빠진 일본의 은행들 중 단 하나를 구제하는 데 사용한 금액에도 훨씬 못 미친다. 나아가 최근 수 년간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는 높게, 엔화의 가치는 낮게 유지하기 위한, 이른바 엔화의 환율 방어에 쓰인 돈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은 시장에 기반한 개혁을 통해 경제를 다시 살리려는 실험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으며, 심지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마저도 이제는 북한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제재와 자본부족의 상태에서 경제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965년 5억 달러의 대일 청구권자금이 남한경제의 부흥을 도왔듯이, 상당 규모의 일본 자본이 북한에 투입된다면 이 나라의 재건 노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을 비난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라는, 점증하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 2005년 6월 말의 사흘 동안 피랍자 가족단체의 고이즈미 비판자들은 총리실 앞에서 대북 경제제재를 요구하는 "농성시위"를 벌여 세인의 관심을 끌었으나 고이즈미는 이들과의 면담조차 거부했다.
고이즈미는 속내를 알 수 없고, 모순에 가득 찬 정치인이다. 그의 연례적인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을 분노케 했으며, 아프간 및 이라크에서의 군사협력은 그가 미국과의 전면적인 동맹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그는 북일 국교정상화를 자신의 개인적, 정치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두 차례나 평양을 방문함으로써 그는 북한을 제재하라는 국내 여론은 물론, 북한은 상종할 종자가 못 된다는 워싱턴의 견해와도 거리를 두었다. 마치 야누스와도 같이, 고이즈미는 미국에의 충성이라는 과거의 유산과, 부흥하는 아시아에서 일본이 중심적 역할을 맡겠다는 미래의 꿈 사이에 분열돼 있다. 또한 그는 일본 자체 내의 보수원류와 신보수파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가 북한을 방문했던 2002년 9월과 2004년 5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동아시아가 살짝 모습을 내비쳤다. 화해와 정상화와 협력의 동아시아가 그것이다. 본능에 의한 것이든 또는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든, 고이즈미는 지난 19~20세기 일본이 놓쳐버린 외교적 선택을 21세기 초에 다시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듯하다. 그 핵심은 어떻게 하면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와 관련해 일본이 이웃 나라들과 평화롭고 협력적이며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2005년 1월 20일 의회 개원 시정연설에서 고이즈미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경제적 번영을 공유하는 개방적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일본이 건설적 역할을 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전에도 그는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건설"에 기여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 그의 연설은 또한 2002년 9월 김정일과 함께 발표한 평양선언에서 거론된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을 연상시킨다.
과거 일본이 주창했던 대동아공영권과 그 이념이 붕괴된 지 60년 후에 일본의 총리가 새로운 지역주의를 주창했다는 것은 지극히 의미심장하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 및 신뢰구축장치에서 "동아시아공동체 건설"로의 이행은 2002년 9월에서 2005년 1월에 이르는 동안 역사가 얼마나 전진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척도다. 이제 일본이 나아갈 길은 이 길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고이즈미의 고집스런 야스쿠니 참배 강행과 납치문제 해결에서 드러난 무능력은 얼마나 슬프고, 또 얼마나 미친 짓인가. 이 완고함과 무능력은 북일 교섭을 가로막고 있으며 6자회담의 파트너인 남한 및 중국과의 거리도 더욱 벌려놓고 있다. 피랍자 가족들의 슬픔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김정일 체제는 납치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생존자 5명과 그 가족들을 일본으로 돌려보냈고, 2차례의 조사 끝에 다른 피랍자들은 사망했으며 이들의 유품과 유골을 찾을 수 없었다는 나름대로의 해명을 했다.
북한 측의 해명이 아무리 불만족스럽다고 해도 현재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당분간 그들의 해명을 받아들이되 성실한 교섭을 재개하는 것이다. 2차례에 걸친 북한 측 조사의 결과를 거부하는 것은 곧 김정일 체제와의 교섭을 거부하는 것이며, 일본은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일본은 먼저 협상 태도를 바꾸고, 그 이후에 납치문제에 대한 끈질긴 교섭을 벌여야 한다. 일본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북한 체제의 붕괴를 겨냥한 압력보다는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평화와 안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하는 쪽이 훨씬 현실성이 높다.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우선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지원한 데 따른 한국인들의 피해와 고통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야 한다. 둘째,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일본에 대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이 기간 동안 저지른 불법행위를 인정하며, 향후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동시에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셋째, 두 나라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완화돼야 한다. 상대방의 안보를 위협하는 무기의 개발 및 배치는 중단돼야 한다. 넷째, 양국은 지역 및 세계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일본은 일종의 내부 정상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19세기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비(非)아시아'로서의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사회는 깊은 반(反)아시아 정서를 갖고 있으며, 이는 정부, 언론, 그리고 북한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서 가장 응축된 형태로 남아 있다.
현재 일본에는 87만 명의 한국인이 - 자이니치(在日)라고 불리는 -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한반도 남부 출신이다. 1945년 일본제국의 패망 이후 역사의 변덕에 의해 이들 중 40만 명은 남한 국적, 24만 명은 북한 국적, 그리고 23만 명은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 또 다른 10만 명은 1958년 이후 북한으로 '귀환'했다. 북한 국적을 가지고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상의 묘소도 성묘하지 못하고 있다. 친북 단체와 인사들은 정기적으로 협박과 검열을 받고 있다. 정부와 언론, 학계 등에서 북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유명인사들은 가혹한 비판을 받기 일쑤다. 친북한계 학교를 다니는 학생 5명 중 1명은 언어폭력에서 물리적 폭력까지 다양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때로는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칼로 옷이 찢기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일본 사회 내부의 이같은 분열 현상은 일본이 바다 건너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웃과 화해하기 전에는 치유될 것 같지 않다.
북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일정 정도 변화돼야 한다. 북한을 둘러싼 외교적 교착 상태가 깊어지고 있는 2005년 현재, 미국 정부는 서로 모순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에 대해 6자회담 협상테이블로 무조건 복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워싱턴은 평양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으려 작심한 것처럼, 나아가 6자회담에서도 다른 참가국들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행동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을 "폭군" "위험한 인물" 등으로 지칭했으며 북한에 대해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모욕적 호칭을 부여했다. 부시 대통령 자신은 지난 6월 남한의 대통령 노무현과 겨우 45분간의 냉랭한 회담을 가진 반면 며칠 후 강철환이라는 탈북자와는 거의 비슷한 시간을 보내면서 북한의 인권 침해가 핵심문제이며 북한의 체제전환이 진짜 정책목표라는 데 의기투합했다. 미국의 태도가 이런 지경이니 "우리를 완전히 부정하며, 나아가 전복시키려는 자들과 협상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에 회담에 응할 수 없다"는 북한 측 주장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남한과 중국, 러시아는 회담의 목표에 대해 완전한 합의를 보고 있다.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김정일 체제와 완벽한 관계정상화를 이루는 것에 의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폐기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반면 2005년 7월 제4차 6자회담 때까지 워싱턴은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을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일본의 입장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본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는 2006년 9월이지만 그는 지난 여름 중의원을 해산하고 9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이 총선은 고이즈미의 리더쉽에 대한 신임투표가 될 것이다. 유권자들의 신임을 되찾기 위한 그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고이즈미는 북일 수교라는 그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조치들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총선은 지난 11일 치러졌으며 자민당은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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