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밥 달라 그러면 마음이 아픈데…"

3년 넘게 끌어 온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가 단식 60일을 훌쩍 넘기도록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4일 밤, 극적 타결이 점쳐지던 기륭전자 노사 교섭을 끝내 결렬됐다. 그리고 16일, 단식 중이던 2명의 여성 노동자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단식을 풀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 여성 노동자들이 119 구조대에 의해 실려 내려 와야 했던, 그 기륭전자 정문 옥상 농성장은 지금 다른 이들이 지키고 있다. 바로 인터넷 까페 '기륭전자 릴레이 동조 단식단'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00일 동안 이어 진 촛불 시위를 통해 더욱 활발하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 며 움직이는 네티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민이었다.

  지난 8월 6일 시작된 '기륭전자 릴레이 동조 단식단'에는 17일까지 120여 명이 넘게 참가했다. 한 네티즌은 아이를 데리고 단식장을 찾았다. 누구는 직장이 끝난 이후 퇴근 길에 농성장을 찾아 밤새 농성장을 지킨 뒤 이튿날 아침 다시 출근길에 오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서울 구로구 가산동 기륭전자 앞의 농성장을 찾아 1박 2일로 24시간 단식에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어떤 이는 집에서 혼자 단식에 동참했다.

  단식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지지 방문을 하거나 문화제에 참여하는 네티즌도 많았다. 과연 이 시민들은 뜨거운 뙤약 볕 아래, 혹은 각자의 일터에서 동조 단식에 참여하며 무엇을 느꼈을까. 정작 당사자인 두 여성 노동자가 병원으로 실려 간 이후에도 이들이 "우리가 단식 농성장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프레시안>은 그들이 하루 단식 참여 후 올린 후기들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 후기들을 통해 비정규직 850만 시대에도 여전히 사회로부터 언론으로부터 소외 받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일반 시민들이 다시금 깨닫고 인지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편집자>

  으악. 아침에 눈을 뜨니 8시 반, 그나마 씨니님 문자를 받고 일어났습니다. 허둥지둥 샤워하고 고양이들 밥, 물 준비하고, 화장실 치워주고 분당에서 떠나 기륭에 닿았더니 열한 시 반. 씨니님이 초췌한 표정과 행색으로 제게 간단한 인수인계를 하고 가셨습니다.

  그날따라 기륭에는 먹을 것이 많았답니다. 제가 간 때에는 이미 감자를 삶고 있었고, 복날이라고 어느 조합원이 닭죽을 해 오셨고, 50일 넘게 단식하던 이현주 조합원이 병원에 실려갔다가 퇴원하던 날이라 최은미 조합원이 열심히 미음도 끓였습니다. 이미영 조합원이었던가? 닭죽을 먹다가 미안한 듯이 한 마디 합니다.

  "하필이면 복날이라고 먹을 게 많은 날에 오셨어요. 보통 때는 이렇게 안 먹고 사는데."

  12시 반에 오후 집회가 열렸습니다. 일곱 명 정도가 무지개처럼 옆으로 늘어서서 피켓을 들고 간단하게 구호 외치고 지지발언, 민중가요 듣는 정도였습니다. 5일째 단식중이신 민주노동당 시당위원장님이 발언하셨고, 전날부터 단식을 진행한 카톨릭대학교 학생 보리님이 지지발언을 하다가 화가 치밀어 울먹울먹하시는 바람에 저는 그냥 간단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주 오고 싶은데, 일도 일이지만 집에 고양이 세 마리가 '어디 가?' '밥 줘' 하고 울기 때문에 자주 못 온다고. 고양이도 밥 달라고 울면 듣는 사람 마음이 아픈데,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굶고 있는데 본척만척하는 건 돈 밖에 안 보이기 떄문이라고. 기륭 싸움은 돈 말고 세상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싸움이라고.

  오후 집회 끝나고는 컨테이너 안에서 보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과천 품앗이라는 대안화폐공동체에서 지지방문 오신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대안화폐공동체라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소비자생활조합같은, 노동 현장과는 꽤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공동체에서도 지지방문을 와 주시는 것을 보면서 기륭은 이제 노동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의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섣부른 예단일까요.

  꼬치로 꿰찌르는 것 같은 햇살과 더위에 시달리다 잠시 잠들었습니다. 일어나니 어느덧 문화제 시작할 시간입니다. 8일 문화제는 민주노동당에서 진행했습니다. '매듭'이라는 학생문예단과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각각 율동을 선보였는데, 둘 다 발랄귀염이었지만 특히 '매듭'은 정말 예쁘고 신나게 노래하고 율동하더군요. 지지방문 오신 덤덤님과 함께 앉아서 '와~ 귀여워~'를 연발했습니다.

  문화제 중에는 덤덤님과 둘만 앉아서 '왜 당 사람들이 없지' 하고 서운해했는데, 끝나고 나서 보니 영화와 책 동호회 회원들도 많이 와 주셨고 서초/강남 지역 당원들이 대거 와 주셨습니다. 씨니님이 불을 당기고 영화와 책 회원들이 근근이 살려오던 불씨가 드디어 당에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해졌습니다. 중앙당 당직자들도 많이 와 주셨어요. 기륭 투쟁이 당과 비정규직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든든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별로 적을 게 없네요. 자고, 일어나서 씻고 오늘 7시 문화제에 다시 가겠다고 약속드리고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을 돌봤습니다. 아참, 집에 오는 길에 밥을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요. 꼭꼭 씹어 먹었지요.

  기륭에 갈 때 비장한 분들도 있고, 가슴이 미어지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기륭에 갈 때마다 즐겁습니다. 갑갑한 상황 중에서도 점점 더 강인하고 예쁘고 다정한 모습 보여주시는 조합원 동지들을 보는 것도 즐겁고, 처음에는 그저 썰렁 그 자체였던 집회장에 날이 갈수록 모여드는 사람 수를 세는 것도 즐겁습니다. 연대를 위해 모여든 분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 즐거움은 촛불에 처음 나갈 때의 즐거움입니다. 촛불처럼, 기륭 투쟁도 괴롭고 힘들고 비장하기만 한 투쟁은 아닙니다. 식상한 말이지만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같이 있기 때문에' 라고, 짧은 말로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라고 하고 싶네요. 당원 여러분도 주말에 기륭에 오셔서, 제가 느낀 즐거움의 정체를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

  기륭투쟁 이겨서, 비정규직 좀 없애버리자고!

이름
핸드폰번호
이메일	@
금액
결제방법

기사 후원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