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제보자>가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 ①
2014.09.29 07:40:20
'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제보자>가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

<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온 혈서, "개양구, 너는…"

"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 혼자서 칼을 들었다"

황우석, 대통령, 회장님 다함께 "과학기술 독립 만세!"


몇 주 전부터 부쩍 한국에서 나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10월에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가 개봉할 예정인데, 그와 관련해 논평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정이 허락지 않아서 죄송하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회사를 휴직하고 외국에 나와 있는 터라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모티프를 2005년의 이른바 '황우석 사태'에서 따왔다고 하더라도, <제보자>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임순례 감독 등이 새롭게 창작한 허구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평가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 여부로 따지는 것은 난센스다. 그러니 영화에 관한 한 문외한인 내가 <제보자>를 놓고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러다 며칠 전 편집국장이 외국에서 놀면 뭐하느냐며, 영화 개봉에 맞춰서 글을 하나 써서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제 6개월 후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책상이라도 빼면 큰일이니 고분고분 따르는 게 맞는 처세다. 사실 이미 내 책상을 사무실에서 빼버렸다는 풍문도 들은 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 9년이 지난 황우석 사태를 <제보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는 욕심도 생겼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믿을 게 못 되어서 (그 때 그 광풍의 현장에 있었든 없었든) 사람들 머릿속에서 황우석 사태는 흐릿해진 지 오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이 영화가 마치 9년 전 사건 그 자체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황우석 사태를 놓고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분량 제한이 있는 이 짧은 연재에서는 딱 한 가지만 목표로 삼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 진실을 찾는 일은 114분짜리 극영화 같지 않다. 스포트라이트 없이 역할을 했었던 이들의 피땀이 없었다면, 아마도 진실은 여전히 시궁창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을 것이다.

ⓒpd-report.co.kr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

2004년 가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뜻밖의 손님을 맞는다. 그는 자신을 황우석 박사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직접 담당했던 당사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황 박사의 연구에 쓰인 난자의 출처에 문제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연구 성과 자체도 실제보다 과장되었음을 강조했다. 바로 '제보자'가 최초로 호루라기를 분 시점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호루라기는 영화처럼 큰 소리로 울리지 못했다. 이 제보자와 처음 상담을 했던 당시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간사였던 김병수 박사(시민과학센터 부소장)가 섣부른 공론화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정부-국회-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황우석 박사의 기세를 염두에 두면, 제보자가 큰 상처를 입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황우석 박사 연구의 난자 출처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국내의 시민과학센터, 국외의 <네이처> 등을 통해서 있었으나 반향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제보자는 이미 황우석 박사의 실험실을 떠난 뒤였고, 당연히 자신의 노출도 꺼렸다. 김 박사는 섣부른 공론화가 제보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간 참여연대를 찾아왔던 수많은 제보자의 힘겨운 싸움을 옆에서 지켜봤던 터라서, 더욱더 그랬다. 두 사람은 기약 없이 헤어졌다. 하지만 김병수 박사는 그냥 포기한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즉, 2005년 가을부터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이렇게 예고되었던 것이다.

사실 제보자는 정말로 맞춤한 곳을 찾았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황우석 박사가 한국 최초의 복제 소 '영롱이'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1999년부터 그와 그의 연구를 감시해온 곳이다. 황 박사가 폭주하는 것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생명윤리법도 시민과학센터가 주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김병수 박사는 그 중심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2005년 여름 김병수 박사는 다시 한 번 제보자를 만난다. 황우석 박사가 <사이언스>에 이른바 ‘환자 맞춤형’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11개나 만들어냈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전 국민의 97%가 황 박사의 연구를 지지하던 상황에서, 제보자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폭로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바로 이 시점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병수 박사 외에 <제보자> 주인공(윤민철 PD)의 역할모델 <피디수첩(PD수첩)> 한학수 PD가 합류한다. 제보자가 시민과학센터 외에 새로운 파트너로 <피디수첩>과 한 PD를 선택한 것이다. 이때부터 수개월간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는 "전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김병수 박사의 존재는 아예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영화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생각한 것보다는 더 많은 우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재각-김병수-강양구' 트리오

제보자가 <피디수첩> 제보(2005년 6월 1일)를 앞두고 고뇌에 빠져 있던 2005년 5월의 어느 날 오후, 나는 광화문의 한 카페에 있었다. 내 앞에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병수 박사, 역시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출신으로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던 한재각 연구원(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얘기를 해야겠다. 사실 나는 과학 담당 기자가 되기 전부터 오랫동안(1997년부터)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에 작은 힘을 보탰었다. 특히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감시하는 일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일이기도 했지만, 나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했다.

당연히 나는 2003년 <프레시안>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속적으로 황우석 박사 연구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 그 기사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두 사람, 즉 김병수 박사와 한재각 연구원과의 파트너십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셋 다 두 번째 <사이언스> 논문 발표(5월 19일)로 최고조에 이른 '열광'에 질린 상태였다.

그 날 세 사람은 각자의 활동과는 별개로, 1999년부터 2005년 그 순간까지 계속되던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조건적인 열광의 정체를 해명하는 책을 공동 작업하기로 결의한다. 그 때부터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각자가 맡은 부분의 초고를 바탕으로 공동 집필하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확히 말하면 여름부터 이 공동 작업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김병수 박사의 집필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고, 토요일 일요일의 공동 작업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다반사였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 그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김병수 박사는 제보자, 한학수 PD와 함께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연구의 허실을 본격적으로 추적하는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병수 박사는 <피디수첩>의 취재 과정에서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제보자 보호와 동시에 줄기세포 연구의 허실을 파악하는 구체적인 과학기술 검증을 진행했다.

사실 김병수 박사가 없었다면 취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에 한학수 PD가 황 박사 줄기세포 연구의 문제점을 단숨에 파악하고, 그것의 허실까지 가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가 고수했던 비밀주의를 염두에 두면, 다른 과학자의 협력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김병수 박사와 당시 한 대학에 몸담고 있던 성영모 박사가 <피디수첩>의 과학 자문을 담당하는 역할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부부다.) 이들은 제보자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취재 과정에서 때로는 직접 나섰다.

(성영모 박사는 2005년 12월부터 <프레시안>이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게시판 등에서 제기된 각종 논문 조작 의혹을 기사화할 때도 사전 자문에 적극 응했다. 물론 성영모 박사 역시 나의 오랜 지인이다. 하지만 이 부부는 둘 다 이 시점에는 제보자와 <피디수첩>의 취재 내용을 함구했다.)

아무튼 이렇게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재각-김병수-강양구' 트리오의 파트너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김병수 박사가 그 시점에 한재각 연구원이나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그래서 애초부터 제보자-김병수-한학수-한재각-강양구가 같이 싸웠더라면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의 비밀주의는 독이 되었다. 왜냐하면, 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12월 초에는 몇 개월에 걸친 취재 내용을 보도하기는커녕 프로그램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후배의 특권으로 선배에게 좀 못 되게 얘기하자면, <피디수첩>과 한학수 PD는 공중파 고발 프로그램의 힘을 너무 과신했다. 좀 더 못 되게 얘기하자면, 희대의 특종을 독점하고 싶은 한학수 PD의 욕심도 과했다.

만약 제보자가 나와 당시 창간 4년차의 <프레시안>을 찾아왔으면 어떻게 했을까? 공중파 방송의 고발 프로그램과 같은 권위와 권력이 없는 상황에서, 분명히 <프레시안>과 나는 좀 더 많은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윗의 네트워크는 결국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영화가 아닌 현실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이 바로 그랬다.
강양구-김병수-한재각이 준비했던 책은 예정(2005년 12월)보다 훨씬 늦은 2006년 6월에 나왔다. <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후마니타스 펴냄). 아쉽게도 이 책은 "앞으로 쏟아져 나올 수많은 황우석 사태 관련 연구물들이 일차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지만, 지금은 절판되었다. (☞관련 기사 : '열광'에서 '열광'으로 건너뛰는 대한민국 자화상)
한재각, 싸움을 시작하다 : 연변 처녀 난자 괴담

여름이 지나고, 2005년 10월부터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전투는 엉뚱하게도 손에 아무 것도 쥔 것이 없었던 한재각 민주노동당 연구원이 먼저 시작했다.

당시 한재각-김병수-강양구 트리오를 꿰뚫는 문제의식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서 공히 나타나는 '윤리의 부재'였다. 핵심은 난자였다. 인간 복제 배아를 만들려면 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 그간 황 박사는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줄기세포를 얻고자 총 427개(2004년 : 242개+2005년 : 185개)의 난자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난자 숫자도 놀랄 만큼 많은 것이었다. 전 세계 어떤 과학자도 그렇게 많은 숫자의 여성의 난자를 확보해 실험에 이용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난자의 출처에 과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터였다. 더 나아가 한재각-김병수-강양구 트리오는 이 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한 마리의 복제 동물(동물 복제 배아)을 만드는데도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동물 난자가 필요한데,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여겨진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데 고작(?) 수백 개의 난자만 사용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나중에 검찰 수사 결과, 황우석 박사는 확인 가능한 난자만 총 2221개를 사용했다.)

한재각 민주노동당 연구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순영 의원을 비롯한 열 명의 민주노동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을 활용해 황우석 박사에게 압박을 가했다. 난자 출처는 물론이고 당시 과학기술부가 황 박사에게 540억 원(2005~2014년)의 연구비 지원을 결정한 사실(이 중에는 애초 신진 박사에게 지원할 연구비 10억 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등이 문제 제기되었다.

이런 한재각 연구원의 압박에 꿈쩍 않을 것 같던 황우석 박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7일 <조선일보>는 "황우석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 못할 지경"이라는 눈에 띄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황 박사가 10월 5일 당시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의 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민주노동당을 겨냥한 불만을 그대로 전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국정 감사에 필요하다며 별별 자료를 다 요구하고 있다." "연구 팀이 자료 작성에 시간을 빼앗기다보니 연구에 엄청난 지장을 받고 있다." "(심지어) 중국 연변 처녀들의 난자를 불법적으로 거래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민주노동당이 자료 제출을 요구해 왔다." "줄기세포 연구에 필요한 모든 난자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구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연변 처녀 난자' 괴담으로 상징되는 황우석 박사의 이런 발언에는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거의 같은 시점에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는 난자 불법 획득, 줄기세포 진위 여부 등을 들이대며 황 박사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학수 PD는 2005년 10월 20일 미국에서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서 줄기세포 진위 여부에 대한 '중대 증언'을 확보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2005년 10월 1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황우석 박사가 주도한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여해 "생명 윤리에 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이와 같은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할 몫"이라고 발언했다. 바야흐로, 광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계속)
이 글을 포함해 앞으로 네 차례 진행할 이 연재는 당시의 기사, <침묵과 열광>, 취재 메모, 이메일, 비공개 인터넷 게시판의 글 등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록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가능한 한 왜곡 없이 사실 관계를 전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나의 관점에 따른 구성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찾는 일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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