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절망이 <미움받을 용기> 열풍 낳았다
'헬조선' 절망이 <미움받을 용기> 열풍 낳았다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⑥]
2015.12.28 07:32:54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올해 마지막으로 다룰 책은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입니다. 40주 연속 베스트셀러 기록, 80만 부가 넘는 판매량으로 출판계에서는 올해 내내 화두였습니다.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개인 심리학 이론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우뚝 서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청년'은 바로 독자가 되고, '철학자'는 독자에게 아들러 심리학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대중적 심리학 서적이자, 인문형 자기계발 서적입니다.

왜 이 책이 유달리 많이 팔렸을까요. 어쩌면 올해 마땅히 다뤄야 할 책을 드디어 다루는 셈인데, 지금부터 성공의 비밀을 알아봅니다. 두 대담자는 이 책의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가 우리 출판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책의 성공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좌절감을 읽기도 했습니다. 14일 오후 4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 ⓒ프레시안(최형락)


인문서 아니라 자기 계발서

장은수 : 벌써 올해 마지막 시간이네요. 이 책을 안 다루고 넘어갈 순 없겠죠.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지은 <미움받을 용기>를 올해 마지막 대담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무려 80만 부나 팔린 올 한해 최대의 화제작이죠. 이런 책을 대형 출판사도 아니고 신생 출판사가 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인문·자기 계발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책을 읽은 전체적인 소감부터 이야기해 보죠. 이 책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들러 심리학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이미 책을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이 책이 다루는 담론 자체는 익숙합니다. 이전부터 계속 유행했던 행복 심리학, 긍정 심리학의 흐름에 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정하고 불안한 세계에서 나 자신을 보존하면서 또는 긍정까지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는 책이 지난 10여 년간 계속 나왔습니다. 이런 흐름이 쌓이고 쌓여서 이 책에 이르러 거대하게 폭발해, 하나의 이정표를 찍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강한 욕구가 어디에서 왔을까요. 사회적 요인을 얘기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뒤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을 갖겠지만, 우리가 마음이라도 고쳐먹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 아니겠어요?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 특히 자본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진 사회에서 시달리면서 모든 개인이 자아를 잃을 정도의 아찔한 위기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자아가 송두리째 뿌리 뽑힌 것 같은 그 마음고생을 어떤 식으로든 이겨내고 싶다는 충동이 이 책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홍 : 단순한 인상 비평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솔직히 당혹스러운 책이었어요. 인문, 심리, 자기 계발이라는 좁은 영역의 차별화가 의미 없는 책이었습니다. 출판사는 영리했고, 독자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업적으로 변형된 심리학 분야가 팔리는 영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아들러 심리학'이 80만 독자나 볼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느냐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것 역시 당혹스러움을 더하는 부분입니다. 좋은 책이니까 2015년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만, 결과론이 아닌 과정의 문제에 접근한다면 많은 궁금증과 의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출판사에 솔직하게 묻고 싶은 게 많아요.

원서의 글쓴이가 시도한 대화적 집필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흔한 기법이지요. 기획 출판에 따른 원고 생산의 전형적 모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청년'이 '철학자'를 찾아가서 질문을 노골적으로 던지고, 이 대화에서 콘텐츠를 추출했는데, 핵심 주제에 대한 대응과 정리가 탁월했습니다. 본능적으로 기술적인 글쓰기를 잘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은수 : 책 안에 독자 차별화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어요. 아들러 심리학의 내용을 소개하지만, 책의 실제 서술은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러가 얼마나 훌륭한 심리학자인지 아느냐"라고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스티븐 코비, 데일 카네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솔직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프로이트나 융이나 에릭슨이나 클라인이나 프랑클 같은 심리학 대가들이 언급될 자리에 코비나 카네기가 들어앉은 꼴입니다. 이는 이 책의 원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이 책은 심리학 책이 아니라 자기 계발서 또는 인간 교제술에 대한 책이라는 거죠.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최염순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경섭 옮김, 김영사 펴냄)은 자기 계발서 분야에서 클래식 중 클래식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자신을 그 맥락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온라인 서점들에서 이 책의 성공을 두고 "인문서가 널리 읽혔다"고 말하는데, 어불성설이죠. 이 책은 변형된 자기 계발서입니다. 이른바 인문적 자기 계발서죠. 방점은 인문이 아니라 자기 계발 쪽에 뚜렷하게 찍혀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들러가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심리학의 대가라고 소개하는데, 이런 말을 이전에 들어본 적 없습니다. (대가 자리에 오를 만큼 유명하지는 않았거든요.) 여러 심리학 책을 찾아봤습니다만 아들러라는 사람 자체는 이론가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상담가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과학자가 아니라 현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대학 내에서는 아들러 이론이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아들러의 주요 주장들은 실증하기가 대단히 어렵거든요.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인간 심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미 부여에 달려 있다'는 것인데, 본문에도 이미 나옵니다만 이를 다른 사람이 알 방법은 없습니다. 또 아들러에 따르면, 알 필요도 없지요. 책을 읽다 보면 과학적 실증보다는 랍비처럼 지혜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인간 과학으로 보기 조금 어렵죠. 그러나 아들러 이론의 이런 특성이 오히려 일반인한테는 친근한 할아버지가 인생 이야기를 차분히 건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대화 방식을 약간 비판적으로 얘기하자면, 근본적으로 '불평등 대화'예요. 한 사람은 제자/환자이고, 한 사람은 선생님/의사죠. 즉,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전혀 평등하지 않고 힘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관계입니다.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삶은 도저히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열등 콤플렉스'에 빠진 환자를 상담하고 있죠. 표준적, 수평적 인간 관계가 아닙니다. 대화의 상대편이 동급의 심리학자였다면, 과연 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이홍 : 물론 저도 아들러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웃음) 오늘의 토론을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아들러에 대해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 가운데 '열등감'이 눈에 띄더군요. 책의 본문 중에도 "긍정적인 인간 관계의 핵심은 열등감 극복에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철학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청년'은 열등감 그 자체이자, 이 책의 독자입니다. 열등감 극복이 인간성 회복에 중요한 측면이라는 아들러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대화의 상대방을 병적으로 열등감에 빠진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나는 이런 설정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자가 이런 유형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그저 현학적인 사람들이 자기들의 세계에서 덕담이나 동문서답을 나누는 형태가 되었을 겁니다.

인터뷰 형식의 서술이 성공 요인

장은수 : 제가 "불편하다"고 한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오늘 우리 대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화에서도, 앞으로 전통적 방식의 인문학 서적은 대중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힘들 것이고, 편집자나 외부 집필자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출판사들도 이 책과 같은 방식의 편집을 꾸준히 시도해 왔습니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김병종·이문열·이윤기·이숙경·최승호 지음, 민음사 펴냄)가 나온 이래로, 대담이나 좌담 형식으로 인문학 지식을 공유하려는 기획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학자 간 대화가 많이 시도되었죠. 알마 출판사 같은 곳에서는 이를 한 단계 더 대중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적도 있습니다. 지승호 같은 전문 인터뷰어도 생겨났습니다.

이 책은 지승호식 인터뷰를 한 단계 더 낮추었습니다. 책의 질문자는 대중의 요구에 매우 충실하죠. 반복해서 똑같은 질문을 하고, 감정까지 집어넣어 가면서 드라마화합니다. 아직 한국의 인문적 인터뷰 책에는 이런 스타일은 없습니다. 가령 지승호의 경우, 논리적으로 정합적이고 깔끔한 질문자입니다. 지승호 본인이 그 이하로 내려갈 생각도 없을 겁니다. 반면 <미움받을 용기>의 질문자인 '청년'은 선생님 앞에서 납작 엎드립니다. 자신의 바닥까지 드러내면서 독자를 끌어당깁니다. 지승호의 책은 지적인 대화로 만들어진 인문 대중서 느낌이 든다면, 이 책은 인문서라고는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을 것 같은 초보 독자의 요구에 충실하죠.

그런데 이 친절한 대화를 보면서, 저는 이 청년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느껴졌습니다. '못 알아듣기 위해 못 알아듣는다'는 느낌. '청년'은 얘기를 하다 수시로 화를 내고, 우울함에 빠지는 등 다채로운 감정을 보여줍니다. 반면 '철학자'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논리적이죠. 이 책은 수평 관계를 강조하는데, 책 내용은 계속해서 이와 어긋납니다.

아마 아들러 심리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 주면서, 이에 더해 그 사람의 인생 문제까지 해결해주기 위해 이런 서술을 택한 것 같습니다. 인문학 서적 편집자들은 이 책이 설정한 대중의 눈높이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을 낮춰 본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웃음) 대중의 요구는 조금 더 원초적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 '개인 심리학'을 정립한 알프레드 아들러. ⓒwikimedia.org

이홍 :
친절함의 반영이죠. 솔직히 전공자가 아니라면 한국의 많은 독자 중 심리학자 아들러를 제대로 인지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 책은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한 철학자의 이론을 대화의 형식에 녹여서 대중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이론 체계를 꼭 필요한 외형의 거푸집을 만들어 원하는 모양으로 뽑아낸 겁니다. 그게 단단한 벽돌로 쌓은 집처럼 보입니다. 장은수 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편으로는 불편해질 정도로 친절한 서술이 독자에게 아들러의 철학을 이해시키는 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던지고 싶은 질문과 불평, 의문을 책의 화자가 다 해 버리는 ‘과잉’을 베푼 것이지요.

다만, 독자가 착각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본문의 '철학자'는 '청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아들러 심리학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철학자'의 대화를 아들러 심리학의 몸통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에서 아들러 심리학은 수단이지, 궁극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혹시 이 책 한 권 읽고 아들러에 대해 다 알았다는 생각은 정말 오해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이 책의 훌륭한 서술 방식이 한편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은 전지전능함을 자처하기보다 독자가 자기 판단을 내릴 여지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는 그냥 믿고 흡수해버리면 돼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주장도 가득합니다. 이 책이 한 해를 대표할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면 이런 지적이 필요 없겠지요. 과도한 요구일 겁니다. 그러나 싫든 좋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들어야 할 지적이고 받아야 할 비판입니다.

장은수 :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은 현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 현상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것이 무의식이고, 마르크스에게는 경제 토대이고, 소쉬르에게는 기의죠.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아들러는 이런 식의 사고를 전면으로 부인합니다. "의미는 기본적으로 '나'에게서만 나온다"라고 주장하죠. 제 생각에는 강력한 유아론, 또는 주관적 관념론입니다.

의미는 기본적으로 나와 타자 사이에서 만들어집니다. 상호 주관적이지, 일방적으로 내가 선포한다고 생기진 않습니다. 내가 부여한 의미와 다른 사람이 부여한 의미가 충돌할 때, 두 의미는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의미를 중심으로 살고, 너는 네 의미를 중심으로 살자. 서로 존중하고 살자'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죠.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관계 맺는 사회는 실제 힘으로 움직이잖아요.

아들러의 심리학은 힘을 고려하지 않는, 너무 깨끗한 세계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일을 시킬 수 있어요. 아들러는 이럴 때 자신한테 의미 없는 그 일을 포기해 버리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행하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힘이 없습니다. 일이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마치 갑질을 견디는 을한테 책임을 슬쩍 떠넘기는 것도 같습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나약성, 조직이나 폭력 앞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나 아렌트가 성찰하는 '악의 평범함'과 같은 것 말이죠.

이 책에는 사회적 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어요. 개별자화된 개인이 만나서 논리의 정합성만을 따지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 듭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청년'은 "사장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라고 묻는데, '철학자'는 그가 괴롭히든 말든 자기 일에만 집중하라고 하죠. (웃음)

공동체라는 큰 이름으로 호명하는 추상적 실체에 인간 관계를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대화에서 힘을 고려하지 않는 이 살균성을 성찰하는 것이 현대 철학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진리가 힘에 오염되었다는 생각 말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성찰하지 말고 힘을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무시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철학이라기보다 오히려 종교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이홍 : 상대적 객관성보다 주관적인 절대적 사고를 요구하죠. 대개의 인문학, 심리학이 이야기하는 공통된 주제는 인간 관계는 모두 상대적이라는 겁니다. 우주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심리나 자기 계발이 필요 없잖아요? 사람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종교를 찾습니다. 하다못해 자기 나름의 개똥철학이라도 필요하죠. 이 책은 관계가 만드는 충돌과 긴장에 대해 파괴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절망 사회가 <미움받을 용기> 성공 낳았다

장은수 : 판매량 얘기가 나온 김에,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앞서 잠깐 언급했던 이 책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의 판매량이 무척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개인에 초점을 두는 '개인 심리학'이잖아요? 개인이 먼저 서야 타인을 신뢰할 수 있고, 그다음에야 공동체에 대한 공헌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논리적 발전은 투철한 자아 정립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한테는 낯선 사고방식이에요. 한국인은 대체로 가족, 사회 등 공동체와 더불어 나를 말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하죠. 그런데도 이 책이 이처럼 많이 팔려나가면서 공감을 얻었습니다. 한국인의 심층 심리 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니면 현재 한국 사회가 워낙 척박하다 보니 일시적으로 '나를 확실하게 보호하고 싶다', '미움받더라도 내 인생은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나 절박해진 것일까요?

물론 '아들러 심리학이 동양 사람한테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게 제 의견만은 아니고, 아들러 심리학을 비판할 때 늘 나오는 얘기예요. 서양의 특수한 문화에서만 이런 심리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아들러식 심리에 대한 공감이 일반화되었다면, 우리 의식 구조가 이미 서구화되었거나,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 삶의 조건들이 가혹하게 이런 심리 구조를 강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책을 많이 읽는 세대에게 이런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다는 점일 겁니다.

이홍 : 원인론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우리의 일반적 사고방식인데, 이건 일종의 유전적으로 습득한 하나의 종교이자 가르침이죠.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원인은 필요 없고, 과거는 미래를 만드는데 전혀 상관없다고 하죠. 목적론이 우리에게 편한 개념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한국의 독자가 이 주장을 왜 받아들였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그처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읽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지금의 내 목마름을 적시기 위해 읽었을까.

조금 냉정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대부분 많이 팔린 책이 특별히 사회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진 않잖아요? (웃음)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가 대표적이죠. 이 책의 독자 80만 명이 16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로부터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보긴 어렵죠.

다만,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기 힘든 주장이 넘친 책이 이처럼 많이 팔렸단 말이죠. 일본 책이 많이 얘기하는 개인성의 발견에 우리 사회가 완전히 분리된 게 아니다. 그들(일본)이 바라보는 변화와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우리 사회에도 있는 것 같다.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개인적 고립이나 파편화를 강조하는 책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건 가볍게 넘어가고 말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은수 : 맞아요.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해요.

베스트셀러는 그 책을 읽는 사회나 독자의 심리를 드러내기 마련이에요.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본 기조는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게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변혁에 대한 희망이 있는 사회였습니다.

이는 이른바 (5)86세대의 일반적인 사회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돌풍은 그런 사회적 신념체계의 부정 또는 붕괴를 상징합니다. 이 책은 주로 30대~40대가 읽었습니다. (5)86세대의 바로 아랫세대죠. 20~40대로 추정되는 독자들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평가한 내용을 보면, 내용에 관한 문제 제기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다른 책을 더 '열공'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죠.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신념체계가 이미 붕괴 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의 청년층은 이전((5)86세대)과 전혀 다른 세대인 거죠. 사회를 영원히 부정적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사회 안에서 탈출구도 찾을 수 없으므로 자신의 내부라도 긍정적으로 보려 한달까요?

▲ 변혁을 기대하는 심리가 붕괴했다. 이제 스스로를 추스리는 데 사람들은 집중한다. 더는 사회에 바랄 게 없다는 정서는 '헬조선'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처럼 아픔마저 청춘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넘기는 세태나, '미움'을 '용기'로 받아들이는 책의 제목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아요. 아픔, 미움마저 이제는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삶의 가치관이 되었다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종교적 관념 체계가 맞죠. 이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쉽게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이런 신념 체계가 범사회적으로 퍼졌다면 이는 문제가 맞겠죠. 오해가 있을까봐 다시 강조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와 이 책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부정적 표현을 수용하는 제목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집단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싶고, 전체적인 담론에 지쳐버린 개인들이 이를 승화해주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에 동의하는 것 아닐까요.

장은수 : 맞아요. 이 책의 성공으로부터 희망의 확산을 읽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분명 희망적이에요. '자기 수용'을 통해 가치를 회복하고, 이 힘을 배경으로 타자를 신뢰하고, 그 힘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서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 책을 많이 읽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지속, 좌절의 확산, 좌절의 승인이 읽힙니다.

이홍 : <미움받을 용기>는 잘 만든 책이에요. 한 연구자의 이론 체계를 따와, 자기 계발 목적에 맞게 기획적으로 정리했죠. 좋은 기획이고, 필요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자기 책임 이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출판사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현재의 판매 부수는 이 책이 가진 함량을 넘어선 결과입니다.

아들러와 관련된 책이 올해 여러 권 쏟아졌어요. 각각의 책을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판매 실적을 보자면 아들러의 이론 체계를 제대로 설명하는 책은 잘 안 팔렸어요. 결국, 이 책은 아들러라서, 아들러의 이론이 정말 놀라워서 잘 팔린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거듭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이처럼 많이 팔린 책에 이와 같은 질문과 우려는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86세대와 이후 세대는 완전히 다르다

▲386세대와 X세대로 대표되었던 이후 세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경험을 하고, 다른 가치체계를 갖게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언론도 이 책의 성공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책과 관련된 기사가 4000건이 넘게 나왔어요. 물론 대부분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기사입니다만, 이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정리하거나 그 의미를 따져 물은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교보문고가 제공한 데이터를 보죠. 유달리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심리학 도서 시장에서 50~60대 독자 비율이 15%인데, 이 책은 10%밖에 안 나왔습니다. 반면 이 책의 30~40대 독자 비중은 34%인데, 심리학 도서 시장에서 같은 나잇대 독자의 비중은 29%예요. 한참 인간 관계에 시달리고, 직장 생활에 지치는 젊은 층에 이 책이 먹힌 거죠.

나이, 세대를 다 구분해서 보면,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은 독자층은 30대 여성이에요. 전체의 23%나 됩니다. 책 전체로 보자면 지난해까지 책을 가장 많이 본 계층은 40대 여성인데, 올해 30대 여성이 1위를 했거든요. 여기에 이 책이 제법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싶네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인데, 이 책은 정말 남자들이 안 봤네요. 남성 독자 비중이 여성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심리학 도서 전체 통계와 비슷하네요.

이홍 : 제 생각보다는 남자들이 많이 봤어요. (웃음) 자기 계발 서적이라는 점 때문에 그나마 남자들이 조금 더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7대3 정도로 여성 독자 비율이 압도적이었으리라고 예상했어요.

장은수 : 책의 월별 판매율 그래프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이 책이 지난해 12월 나오자마자 올해 12월 대비 718%에 달하는 판매율을 기록했어요. 어떤 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높죠. 초기 마케팅을 어떻게 하면 이런 숫자가 나오는 것일까요? 묻고 싶었지만, 이 부분은 참았습니다.

그다음 달에는 바로 98%로 뚝 떨어지는데, 2월에는 135%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이 책이 처음 1위를 기록한 때입니다. 3월에는 기시마 이치로가 내한했는데, 다시 144%까지 판매율이 오르죠. 그 뒤로 조금 떨어지다가, 7월 초에 다시 117%까지 판매율이 올라요. 6월에 예스24에서 상반기 집계를 내면서 이 책이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주목받았거든요.

이후 다시 꺾이다가 11월 들어 117%까지 판매율이 늘어나죠. 이때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 올해 최고의 판매량을 올린 책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어요. 그 영향을 받은 거죠. 대중은 마케팅에 보답해요. 이 책의 판매 그래프가 작은 사례입니다.

▲ 언론에서 이 책이 회자될 때마다 책 판매율이 증가하는 걸 알 수 있다. ⓒ프레시안


다른 출판사도 배워야 할 성공적 마케팅 기획

이홍 : <미움받을 용기>의 성공으로 자기 계발서 시장의 변화도 확인한 것 같아요. 더는 성공형 책, 이른바 '석세스 트리'를 만들어주는 자기 계발서는 성공할 것 같지 않습니다. 외환 위기 이후 성공 모델을 이야기하는 책이 계속 나왔는데,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그게 다 허상이었다는 점을 모두가 알았죠. 이후 영미권의 자기 계발서, 경영서의 성공 사례가 확 줄어들었어요.

이때 나온 게 김난도 교수의 책과 같은 위로형, 코칭형 자기 계발서죠. 이제 또 하나의 변화 전기가 나타난 것 같고요. 현재 자기 계발서의 모습을 보면, '자기 계발' 정의를 다시 해야 할 정도입니다. 어떻게 내 본연의 모습을 구축할 것인가, 어떻게 이 아수라장 사회에서 살아남을 것인가가 요즘 자기 계발서의 중요한 이슈죠.

장은수 : <미움받을 용기>가 단순히 성공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인간적 가치의 회복을 염두에 뒀죠. 외적 성공보다 내적 가치를 추구하라는, 일종의 성숙 담론이 이 책에 깔렸습니다. 그 주제에 걸맞은 이론을 깔끔하게 제시했고요. 분명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자, 이제 이 책의 마케팅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자리를 통해 이미 알려졌지만, 이 책은 아주 적극적인 마케팅 기획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무려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홍 : 인플루엔셜이 신생 출판사이고, 책은 일본에서 나왔고, 사회적인 현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책을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과 비슷하게 봤어요. <아침형 인간>이 한스미디어의 첫 책이었는데 출간한 2004년 한해에만 50만 부 이상 팔렸죠. 이 때문에 저는 인플루엔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가져갈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할 때 한 얘기입니다만, 대체로 자기 계발서를 읽는 독자의 특징은 편협하다는 겁니다. 특정 시기에 그 사회가 '이것이 일등'이라고 인정하는 책에 끌려가는 습성이 있어요. 문학 독자, 인문서 독자보다 자기 주도성이 조금 약합니다.

결국, 이런 특징이 독서 모임, 직장 단위의 세미나 모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책은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이런 쏠림 현상은 대체로 단체 주문, 기업체 주문으로까지 이어져요. 이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읽자'기 보다, '책을 배우자'는 성향이 강합니다.

장은수 : 단체 주문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은 책이 이만큼 팔렸다는 것도 대단하죠.

이 책의 저작권료가 꽤 높았던 거로 알아요. 이 때문인지, 출판사가 출간 초기부터 아주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했습니다. 출판사의 답변 내용을 보면, 출간 초기부터 대면 마케팅을 강하게 시도했고 tvN의 드라마 프로그램에 PPL도 시도했습니다. 출간 3주 전부터 가제본을 이용한 서평단도 꾸렸습니다. 보통 출판사가 이 정도 마케팅비를 초기에 집행하는 것은 상당히 힘듭니다. PPL은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힘들고, 가제본을 이용해서 서평단을 미리 꾸린 것도 기존의 한국 출판사에서 흔한 일은 아닙니다. 대개 책이 나오면 서평단을 꾸리거든요.

인플루엔셜에는 내부에 세일즈 팀이 없어요. 출판사는 마케팅 기획만 수립하고, 세일즈는 외부 회사가 진행합니다. 출간 초기 판매량을 보면, 세일즈 회사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이 전략에 맞춰 외부의 세일즈 전문 회사가 공격적인 행보를 보임으로써 아주 빠른 시기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이 덕분에 이홍 선생께서 여러 차례 강조한 쏠림 현상이 일어나 빠른 속도로 책이 퍼졌죠. 그간 대담에서 우리가 지적한 국내 출판사 마케팅의 아쉬운 점을 상당히 상쇄하고 있어요.

이홍 : 사실 가장 특별한 건 PPL이에요. 이 책에 이 정도로 과감한 홍보 기획을 세웠다는 데서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10만 부 이상은 판다는 걸 목표로 했음을 추정 가능해요.

장은수 : 사전 답변에서 출판사가 "단계별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고 한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기에 온라인에 좋은 검색 값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수립했고, 언론 홍보도 적극적으로 잘했습니다. 초기에 메이저 언론에는 많이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언론에 기사가 노출되었습니다. 콘셉트도 아주 잘 잡았죠. "무라카미 하루키를 물리친 책." 이만큼 기사화하기 좋은 문구가 어디 있어요? (웃음) 아마추어가 쓸 수 있는 카피는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을 잘 아는 사람이 홍보를 진행했다는 느낌입니다. 신생 출판사가 이런 홍보 기획을 집행했다는 점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가제본 서평단의 역할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사전 마케팅인데, 출판사가 독자 반응을 미리 봤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평단 반응이 아주 좋았을 겁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과감한 홍보 전략을 세우고, 밀어붙일 수 있었죠. PPL, 저자 강연회 등의 단계별 기획이 이 반응을 근거로 해서 수립됐을 겁니다. 출판사 전체가 전략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 느낌이에요. 책을 계속해서 쏟아내는 대형 출판사가 아니라, 책을 거의 출판하지 않는 작은 출판사였기에 더 잘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홍 : 이 정도로 잘 팔린 책은 대부분 단계별 마케팅을 밟아가죠. 다만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는지, 결과를 보고 따라붙은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장은수 : 시장을 크게 본 건 확실합니다. 판매 성장세가 조금 떨어지자 김미경, 윤대현 등의 인기 강사를 통해 이 책을 다시 홍보했죠. 이 정도 인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원래 인플루엔셜이 강연 회사였기 때문일 거예요. 책의 성장세가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화제를 만들었어요.

이홍 : 언론에서는 이 책을 인문학이니 심리학이니 합니다만, 마케팅을 보면 알 수 있죠. 이 책은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 기법으로 판매했습니다. 철저히 포지션 타깃팅을 한 거죠. 홍보할 때는 독특한 형태의 심리학 책, 즉 캐주얼한 인문서로 알리고, 대중적으로는 자기 계발 독자를 바라봤어요.

현재 우리 출판 시장이 참고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인문 독자와 자기 계발 독자를 구분할 필요 있는가.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죠. 출판 시장이 줄어든다고 합니다만, 이 책은 옆 동네 독자를 가져오고, 필요하면 자기 독자를 옆 동네에 넘겨주는 식으로 움직였습니다.

도서 정가제 타령은 그만할 때

장은수 : 이 책을 다룰 때 도서 정가제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이 도서 정가제 전면 시행과 딱 맞물려 나왔어요. 출판사 측에서도 마케팅을 이후로 도서 정가제 시행 이후로 출간 시기를 늦추었다고 이야기했고요.

이홍 : 도서 정가제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으리라고 봐요. 이 책이 도서 정가제 덕분에 많이 팔렸다고 한다면 다른 책이 할인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게 되는데, 글쎄요. 검증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도서 정가제 이전에도 할인 판매를 하던 구간들을 이겨내고 50만 부,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신간들이 나왔거든요. 예로 들 수 있는 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 다른 요인과 함께 도서 정가제를 생각해보는 게 더 타당하겠죠.

더구나 인플루엔셜은 신생 출판사라서 어차피 할인을 선택할 요인은 없었죠. 좋은 타이밍을 맞춘 건 사실입니다만, 도서 정가제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장은수 : 기존 출판사의 심리적 허탈감이 도서 정가제 시행 초기에 의외로 컸어요. 오랫동안 가격 경쟁에 익숙해진 기존 출판사들은 도서 정가제 시행과 맞물린 작년 겨울 시장에 좋은 책을 많이 못 냈고, 공격적 마케팅을 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아주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뤄졌죠. 이 책의 독주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쳤을 거예요.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기존 출판사들의 태도입니다. 아직도 마케팅에서 도서 정가제 타령만 합니다. 시행 초기라면 몰라도, 1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얘기만 하는 건 비겁하거나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출판 환경이란 항상 바뀌는 것이고, 변화에 맞춰 마케팅하고 생존하는 건 출판사를 넘어 모든 기업의 본연이죠.

많은 출판사가 도서 정가제 시행 이후 '가격 경쟁을 못 하면 무엇으로 경쟁할까'를 생각하면서 마케팅을 망설였습니다. 당연히 서비스로 경쟁해야죠. 독자를 직접 만나러 다녀야죠. 인플루엔셜의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책의 판매를 유지하기 위해 명동에서 샘플북을 나눠준 홍보에는 유효성 여부를 떠나서 조금 감동했습니다. (웃음) 쉬워 보이지만, 실행하기 대단히 어렵잖아요. 인플루엔셜의 기본 마케팅 전략은 오프라인에서는 노출하고, 온라인에서는 입소문을 퍼뜨리는 거예요. 이 두 가지 전략을 매우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중입니다. 신생 출판사의 이런 공격적 시도를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스타일, 유행된다

▲책은 유행을 탄다. <미움받을 용기> 형태의 자기계발서는 오랜 기간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책의 유행이랄까요? 흐름을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 형태의 자기 계발서, 소위 말해 우화 형태의 책이 7~8년 정도의 유행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 제가 다닌 출판사 영업부장님의 탁월한 지론이십니다. 이 지론에 의하면 내년이나 내후년이 스토리텔링 우화의 재상승 시기에 해당합니다. (웃음)

몇 해 전에 실제 20년 정도 출판 시장 트렌드 사이클을 분석해본 적 있습니다. 대체로 5~7년 정도의 반복 사이클이 허튼 주장은 아니더군요.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심리학 형식을 갖춘 자기 계발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자 자체의 힘만으로는 자기 계발서가 나아가지 못해요. 어디선가 제3의 힘을 빌려오죠. 이런 형태의 자기 계발서가 현재는 위로, 용기, 코칭과 같은 거죠. 역사, 심리 등 다른 분야에서 주제를 가져와, 스피커의 권위를 빌려 이야기하죠. 기존 우화 형태의 자기 계발서 시장을 인문형 자기 계발서가 대체하고 있다면, 이런 식의 책도 결국 흐름을 타게 될 것 같습니다.

장은수 : 그러면 오랫동안 가겠네요. 인문형 자기 계발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게 최근이잖아요?

이홍 : 그렇죠.

장은수 : <어떻게 살 것인가>(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와 같은 책에서부터 이런 흐름이 시작했잖아요? 인문적으로 중요한 텍스트를 자기 계발과 맞물리는 형태 말이죠. <강신주의 감정 수업>(강신주 지음, 민음사 펴냄)과 같은 책도 그렇고요. 철학자 이야기를 빌려와서 자기 계발적 성격의 담론을 만들어냈죠. 최근에는 애덤 스미스를 소재로 한 자기 계발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세계사 펴냄)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향이 유행하겠군요.

이홍 :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저는 저자 고가 후미타케의 기획적 접근법에 가장 먼저 주목했습니다. 결국, 작가라면 전방위적으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철학적 주제, 심리적 주제에 접근하려 할 것인데, 이를 어떤 형식의 구성과 글쓰기로 뽑아낼 것이냐가 이제 더 중요해질 겁니다. 한때 우화 형태의 서술이 유행했습니다만 그 흐름이 죽고, 공백이 생겼던 자기 계발서 시장에 이런 형태의 서술이 강력한 대체재로 등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이 책의 성공을 통해 그러한 시도가 이뤄졌죠.

어떤 하나의 형식이나 유행이 소멸하면, 공백이 생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그 독자가 누렸던 느낌을 대체해 주려는 모색이 이뤄집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책의 인터뷰 기법, 한 분야 대가의 말을 빌려오는 기법이 우화 형태의 책을 조금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장은수 : 우리가 이 대담을 처음 할 때(<지대넓얕>)도 나눈 얘기 같습니다만, 한국 출판에서 가장 약한 게 고급 인문학과 시민적 삶을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한국 문학이 힘들어진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문학 작품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작품과 시민적 삶을 이어주는 담론이 마련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몽테뉴의 사상 자체를 아주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건 몽테뉴가 현재 우리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해 주는 겁니다. 그게 책으로 하는 시민 인문학의 본질입니다. 미국 쪽에서 이런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국내에 차례로 번역 출판되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이죠.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숀 도런스 켈리 지음, 김동규 옮김, 사월의책 펴냄)가 그렇고, <시적 정의>(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궁리 펴냄), <어떻게 살 것인가>도 마찬가지예요. 고전과 삶의 만남을 요즘 독자들이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한계가 있는 대로, <미움받을 용기>에서 그런 욕구가 폭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홍 : <지대넓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인문서가 독자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때 이야기한 내용이 다시 나왔네요. 결국, 앞으로 인문서는 탈장르화할 것이고, 하나의 새로운 읽기 시장의 중심이 만들어질 겁니다. 각 장르의 경계가 해체하면서 뭉치겠죠.

다만 그것이 우리가 <지대넓얕>에서 경계한 간편한 책 만들기, 저급한 요다이즘의 형태로 간다면 장기적으로 고급 독자를 잃는 또 다른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새로운 출판 모델이 필요한 때

장은수 : 동의합니다.

이제 집중할 주제가 하나 남았습니다. 인플루엔셜의 장기적 성공 모델에 관해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홍 : 음, 이 문제는 제가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어요. 출판사마다 경영 철학과 지속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니까요. (웃음)

장은수 : 이 출판사는 강연 사업에서 시작했어요. 이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최근에 대형 출판사 출신의 편집자를 영입했어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이홍 : 앞서 한스미디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신생 출판사가 단기간에 낸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출판사에 도움을 주진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초기에 베스트셀러를 터뜨린 출판사 중 이후 행보를 잘한 곳이 의외로 몇 없어요.

인간의 몸과 조직의 틀은 비슷합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밟은 조직은 급신장한 조직이 갖지 못한 면역성을 가집니다. 앞으로 인플루엔셜이 확 성장할 텐데, 그 커진 몸을 단단히 받칠 뼈대가 있느냐. 이를 주목해야겠지요. 언젠가 한 번쯤은 위기가 찾아올 텐데, 어떤 모델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초기에 너무 오버페이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인플루엔셜

장은수 :
인플루엔셜의 새로운 출판 모델을 주목하고 있어요. 강연이라는 네트워크를 갖고, 이를 통해 훌륭한 저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필자를 빨리 섭외할 수 있죠. 저는 다른 시도보다는 지금껏 가져온 '강연+출판' 모델의 강점을 계속 추구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급신장한 출판사처럼 움직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닥치는 대로 책 사들이고, 다른 '대박'을 터뜨리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인플루엔셜 대표가 출판인 출신이 아니고 IT 기업 출신인 걸로 알아요. 초기 투자도 IT 쪽에서 받았죠. 기존 출판사가 강연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여긴 이미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점을 이용해 다른 출판사가 따라오기 전에 독보적 모델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다른 출판사들도 새로운 출판 모델을 고민했으면 싶어요. 단순히 원고 받아서 서점으로 내보내는 가치사슬 말고, 새로운 제휴 프로그램,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야죠. 누구나 인플루엔셜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 출판사가 자기에게 맞는 모델을 개발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홍 : 동의합니다. 사실 강연과 출판을 결합하는 모델은 오래전부터 우리 출판사들이 고민했죠. 그런데 서로의 벽에 갇히기 일쑤였습니다. 책을 배려해야 하는 콘텐츠냐, 강의를 배려해야 하는 출판이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교육은 출판이 가지는 확장성, 출판은 교육이 가진 목적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장은수 : 인플루엔셜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말고도 대중을 모으는 강연도 많이 하죠. 백화점과 제휴해 주부를 노린다거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엽니다. 차별화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이로써 올해의 마지막 대담을 마무리했습니다. 올 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마지막에 이야기하니 꼭 연말 결산을 한 기분이네요. (웃음) 내년에도 좋은 책으로 바람직한 대화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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