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떻게 '사찰'을 최초로 발명했나
미국은 어떻게 '사찰'을 최초로 발명했나
[전쟁국가 미국] 알프레드 매코이 <미국 세기의 그늘 속에서>
미국은 어떻게 '사찰'을 최초로 발명했나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패권 국가로 등극했다. 참전을 놓고 국내 여론이 대립하고 있던 1941년 2월, <타임> <라이프>의 발행인 헨리 루스는 <라이프> 사설을 통해 20세기를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로 규정하면서 미국의 참전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우리가 적절하다고 믿는 수단으로 전 세계에 우리의 영향력을 발휘하자"고 호소했다. 한마디로 세계를 미국의 이미지에 맞게 개조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의 세기'란 말은 세계와 시대와 자신들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을 표상하는 말이 됐다.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갈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즉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지도국가란 뜻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화됐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역사는 끝났다'는 말이 나왔고 미국의 세계 지배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은 10여 년 만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군사적‧경제적‧정치적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대 중동지역을 평정하지 못했고, 최대 3조 달러를 퍼부은 전쟁의 여파로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으며,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지도국가의 책임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노골적 일방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때 이른 '미국의 세기'의 종말을 성찰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필자가 접해본 책은 군사전문가 앤드루 바세비치가 편집한 <짧았던 미국의 세기 : 사후 분석(The Short American Century : A Postmortem)>, <패배를 껴안고>의 저자인 역사학자 존 다워가 쓴 <폭력의 미국의 세기(The Violent American Century)>, 그리고 위스콘신대 역사학 교수인 알프레드 매코이의 <미국의 세기의 그늘 속에서(In the Shadows of the American Century)> 등이다.

2012년 출판된 바세비치의 책은 무엇이 '미국의 세기'의 때 이른 종말을 가져왔는가, 그 유산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월터 르페이버, 아키라 이리에 등 저명 역사학자 10명의 성찰을 담은 책이다.

2016년 발간된 존 다워의 저서는 부제 '2차 대전 이후의 전쟁과 테러'가 말하는 것처럼, 자유와 민주, 평화와 번영을 약속했던 '미국의 세기'가 실상은 핵무기와 재래식 전쟁, 그리고 CIA 비밀공작 등에 의한 국가테러로 점철된 '폭력의 세기'였다는 점을 고발한다.

▲ 매코이의 저서 <미국 세기의 그늘 속에서> 표지

지난해 나온 매코이의 책은 스페인전쟁을 통해 세계무대로 진출한 18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120년간 미국이 어떻게 패권 국가의 지위에 올랐으며 앞으로도 계속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책략을 쓰고 있는가를 파헤친다.

미국이 패권 국가에 오르게 된 결정적 요인은 2차 대전 직후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막강했던 경제력과 핵무기 독점으로 대변되는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였다.

그러나 매코이에 따르면 미국은 이밖에도 자국보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하는 외국의 순종적 지도자들, 은밀한 내정 간섭, 국내 및 세계에 대한 대대적 사찰, 그리고 심리적 고문 등을 통해 패권을 유지해 왔다.

또한 2000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어가면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사이버 전쟁과 우주 전쟁, 그리고 유라시아 각국과의 무역협약 및 군사동맹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세심하게 추진했던 지정학적 노력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물거품이 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미국의 세기의 종말에 관한, 즉 향후 세계 질서에 관한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알프레드 매코이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면 필자가 지난 2015년 10월 <프레시안>에 소개한 '미국과 중국의 그레이트게임, 승자는 누구?'라는 기사 하나만 나올 정도다. (☞ 기사 보러 가기)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다. 세계적 영화감독이자 평화운동가인 올리버 스톤은 그의 책에 대한 간략한 서평에서 매코이를 "우리 시대 최고이면서 동시에 가장 과소평가된 역사학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일찍부터 미국의 세기의 그늘을 몸소 겪은 사람이며, 이미 20대 중반에 CIA 비밀공작의 추악한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책으로 펴냈고, 미국 수정주의 역사학의 본산인 위스콘신대 석좌교수로 50년간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즉 누구보다도 미 제국의 속내를 잘 아는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세계 패권과 나'라는 제목의 서문에 이어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미국이 어떻게 패권 국가가 되었는가('미 제국 이해하기'), 2부는 제국의 유지를 위한 미국의 전략, 그리고 3부는 미국의 몰락 과정과 향후 시나리오를 다루고 있다.

미국의 세계 패권과 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워낙 광범위한 만큼 미 제국과 매코이와의 개인사를 다룬 서문을 중심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책의 서문은 "미국에서의 나의 오랜 삶 동안 미국은 언제나 전쟁 중이었다"는 말로 시작된다. 매코이는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 1945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1944년 6월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직후 결혼했으며 그해 12월 2차 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했다. 한국전에도 참전했다.

아이큐 195인 아버지는 예편 후 방위산업에 종사했다. 1966년 타이탄 로켓으로 인공위성 8개를 쏘아 올려 최초의 지구 위성 시스템을 만드는데 수석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약했다. 인공위성 시스템은 드론이나 첩보위성 운영, 우주전쟁 수행에 핵심적 시스템이다. 매코이는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다른 연구자보다 일찍 이런 측면에 눈을 떴다.

전쟁의 그늘

아버지는 많은 보수를 받았다. 그러나 도박과 음주로 가산을 탕진했고,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집을 나간 뒤 1년쯤 지나 알콜 관련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이웃 에드 카첸바흐는 55세에 자기 집 차고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전쟁 후유증이었다. 2차 대전 후 미 육군의 연구에 따르면 60일간 계속 전투에 참여한 병사의 98%가 정신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증후(PTSD)'이다. 아버지도 카첸바흐도 전쟁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매코이는 자신이 청소년이었던 1950년대, 미국의 중산층은 교외에 살면서 돈 벌어오는 아버지와 살림 하는 어머니와 함께 안락하고 평온한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아버지의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가정폭력과 불화, 긴장이 상존했다고 회고한다. 2001년 이후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된 병사들도 사회 적응과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코이는 중고교 과정을 동부의 명문 기숙학교에서 마쳤다. 사이러스 밴스 전 국무장관이 한참 선배였고, 1년 선배 중에는 영국 정보기관 MI-6의 수장이 된 사람도 있다. 동창생 상당수가 CIA에 들어갔다.

CIA 비밀공작과 마약

매코이는 베트남전쟁 징집을 면한 뒤 반전운동에 뛰어든다. CIA로 가장 많이 진출한다는 예일대 출신으로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1971년 베트남 참전 군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백악관 조사에서 병사의 34%가 "일상적으로 헤로인을 사용"한다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예일대 대학원생이던 그는 인도차이나 현장에 뛰어들어 그 원인과 실태를 파헤쳤다. 6개월간 3만 마일을 누비며 취재한 결과 CIA가 라오스 내 협조세력인 몽족의 활동자금 조달을 위해 이들의 헤로인 제조 및 판매를 방조,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72년 여름 그는 CIA의 방해를 무릅쓰고 자신의 취재 결과를 책으로 묶어냈다. <동남아에서의 헤로인의 정치학>이 그 책이다. 미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 매코이의 저서 <동남아에서의 헤로인의 정치학> 표지

이를 계기로 CIA 비밀공작의 어두운 측면이 비로소 드러났다. 범죄조직 등 CIA 비밀공작에 협조하는 세력에 필요한 활동자금을 마약 판매를 통해 조달하도록 한 것이다. 의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매코이의 현장 취재는 마약과 CIA 비밀 공작간의 어두운 유착 관계를 파헤치는 선구적 연구가 됐다.

이러한 관행은 1950년대 중국 대륙에서 밀려난 국민당 군대가 버마-태국-라오스 접경의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아편 재배로 군자금을 충당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1980년대 아프간전쟁에서 무슬림 전사, 중남미 니카라과에서 콘트라 반군 세력들은 헤로인과 코카인 재배 및 유통으로 세력을 유지했다. CIA는 이를 묵인 내지는 방조했다.

예컨대 1970년대 내내 100톤 규모였던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은 10년 후 2000톤으로 20배 증가했고 1990년대 내전 기간에는 다시 2배로 늘었다. 탈레반 집권 후 금지 조치로 2000년 180톤으로 줄었다가 그 후 5년만에 8200톤으로 급증했다.

1980년대의 아편은 미국의 우군인 무자헤딘의 군자금으로 쓰였으나 2000년 이후의 아편은 미국과 대적하고 있는 탈레반의 자금원이 됐다. 비밀공작의 역풍(blowback)이 분 것이다.

1990년대 말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초국적 범죄조직에는 약 330만 명이 몸담고 있으며 마약 판매가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2위는 인신매매). 마약 사용자는 세계 성인 인구의 4.2%인 1억 8000만 명에 이르며 연간 수입은 4000억 달러, 국제 교역량의 8%로 섬유제품 교역 규모에 맞먹는다. CIA 비밀공작의 부산물이다.

세계 최초의 사찰 국가

1973년 가을, 매코이는 박사 논문('2차 대전이 미 식민통치에 대한 필리핀인의 저항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작성을 위해 필리핀에서 3년간 현장조사 활동을 벌였다.

필리핀은 1898년 스페인전쟁을 통해 미국이 획득한 최초의 해외 식민지였다. 미국은 필리핀인의 독립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1907년까지 10년간 무력 진압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인구 700만 명 중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끈질긴 저항이었고 잔인한 진압이었다. 당시 진압군 사령관은 더글라스 맥아더의 아버지 아더 맥아더였다.

매코이는 3년간의 현장 생활을 통해 50년 가까운 미국 식민 통치, 미 제국의 실상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필리핀인으로부터 미 제국의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웠다고 회고한다.

그는 또한 필리핀에서 미 제국의 새로운 면모를 밝혀냈다. 바로 미국이 세계 최초의 사찰 국가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필리핀인들의 끈질긴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동향을 파악해야 했다. 당시 필리핀 주둔 미 육군의 정보부대장이었던 랠프 반 데만 대위는 다수의 필리핀 정보원을 고용해 저항세력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그는 이후 1차 대전 기간 동안 최초의 내국인 사찰 부대를 창설해 "미군 정보기관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다. 반 데만 장군은 병사 1700명과 민간인 제보자 35만 명을 이용해 주로 독일계 미국인의 동향을 감시했다.

1929년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요주의 인물 파일 25만 장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군 정보기관과 FBI, 보수적 공화당원들과 공유했다. 초짜 정치인 닉슨이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바로 이 자료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필리핀 이후 미 제국은 두 번의 반란 진압 과제에 직면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과 2001년 이후 아프간 및 이라크전쟁이 그것이다. 그때마다 미국은 사찰 및 정보 수집 능력과 군사기술 향상에만 매진했을 뿐, 무력 진압이라는 기본 원칙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즉 정치적 해결을 도외시했다.

사찰의 경우 1950년대 FBI가 전화 수 천대를 도청하는 수준이었지만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모든 정보처리가 전산화됐고, 특히 2001년 9.11 이후 NSA의 국내 사찰은 대대적으로 강화됐다. 현재 NSA는 수 백 대 컴퓨터를 통해 주요 외국 지도자를 비롯해 전 세계 수천만 민간인을 감시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전쟁 이후 안면 인식, 홍채 인식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수천 미터 상공에서 드론을 통해 테러리스트의 신원을 파악하고 지구 반대쪽의 컨트롤 룸에서 미사일 발사 지시를 내려 적을 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드론을 통한 테러범 암살은 오바마 정부의 주요 정책이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수없이 희생되면서 이슬람권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사이버 전쟁과 우주전쟁

미국은 또한 사이버 공간과 우주 공간이 미래의 핵심 전장이 될 것이라면서 이 부문의 군사기술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2006년 이란의 우라늄 원심분리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심어 우라늄 농축량을 20% 감축시켰고 2009년에는 사이버 전쟁을 전담하는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또한 미래의 전투와 정보 수집에서 드론의 활용을 극대화 하고 있으며 무인 우주왕복선도 개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매코이는 베트남전쟁의 고통스러운 교훈에서 드러났듯이 군사기술만으로는 지역이든 세계든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헤게모니란 상대방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군사적 억압만으로는 국제적 지도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정보전쟁을 통해 미국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는 환상은 베트남이나 이라크, 아프간과 같은 무모한 군사적 모험을 초래해 크나큰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왜 미 제국은 연구되지 않았는가

미국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최초의 제국이면서도 지난 2세기 동안의 제국 중 진지한 학문적 대상이 되지 못한 유일한 제국이었다.

냉전이 끝나는 1991년까지 미 제국은 학문적 대상이 되지 못했다. 소련이 미국을 제국으로 지칭하면서 미국 학자들은 미국을 세계의 지도국 또는 강대국으로 불렀다. 미국이 제국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통해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로 식민주의에 결단코 반대한다고 했다. 세계를 이끌 지도국가라는 미국 예외주의를 내세웠다.

매코이는 냉전 기간 동안 자신의 연구 주제가 미 제국이라고 밝히지 못했다. 냉전이 끝난 1991년에야 비로소 역사상 최강의 제국을 연구해왔다고 자인할 수 있었다. 냉전 기간 동안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주로 경제적 측면에 한정해 미 제국을 연구했을 뿐이었다.

탈냉전 이후 제국이란 말의 불온함(전복적 의미)이 사라진 이후 미국에서도 미 제국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으나 외교 역사학자가 아닌 문화 또는 탈식민 연구자들에 의해 수행됐다.

▲ 2017년 10월 엘리엇 베이 북스(Elliott Bay Books) 주최 강연하고 있는 알프레드 맥코이 교수 ⓒ엘리엇 베이 북스


매코이에 따르면 2001년 9.11사태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주로 정책 전문가들이 제국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미국 패권의 쇠퇴 여부를 연구하고 있으나 제국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특히 제국의 본질에 관한 비교연구가, 역사상 최강의 제국이 세계 지배의 전성기에 있는 동안에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1959년 '미국 외교의 비극'을 출간하면서 수정주의 역사학의 장을 연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와 그의 제자들인 월터 르페이버, 토마스 매코맥, 로이드 가드너 등 이른바 위스콘신 학파의 극소수 역사학자들이 미 제국의 전체상을 연구했을 뿐이다.

윌리엄스는 '미국 외교의 비극'에서 냉전의 시작은 소련의 팽창주의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시장 확대정책(문호개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윌슨 대통령이 내세운 민족자결은 미국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의 민족자결이지, 미국식 체제를 벗어나는 민족자결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윌리엄스보다 한 세대 뒤인 매코이는 예일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영국인 방문 학자로부터 제국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위스콘신대 교수로 부임한 후 2004년부터 '이행기의 제국들' 이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제국들의 비교 연구를 위해 4개 대륙의 학자 140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2009년과 2012년, 미국 패권의 성쇠에 관한 2권의 논문집을 냈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결

이 책의 7장과 8장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중 간 패권 대결의 실상과 전망을 다루고 있다. 지정학적 관점이란 20세기 초 영국의 헬포드 매킨더 경이 제출한 관점이다. 지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매킨더는 1904년 발표한 '역사의 지리적 축'이란 논문을 통해 "(유라시아로 불리는) 세계섬(world island)을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관점을 제출했다.

당시는 러시아 제국에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개통될 때였다. 즉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이 철도망을 통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일 가능성이 처음 열린 것이다. 16세기 이래 세계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해양세력에 의해 지배돼 왔다. 이들 해양세력은 세계 지배를 위해 유라시아 대륙에 단일한 경제세력의 등장을 막고, 이 세력의 해양 진출을 봉쇄해 왔다.

1902년 당시의 패권 국가 영국이 최초로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은 것,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서독과 일본에 군사기지를 세운 것은 대륙세력에 대한 해양세력의 전형적인 봉쇄정책이었다. 러시아(소련)의 해양 진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세력은 유라시아를 통일해야, 해양세력은 유라시아를 분열시켜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이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만일 중국이 유라시아 경제통합을 이뤄 패권 국가가 된다면 500년 만의 대반전이 이뤄지는 셈이다. 16세기 이래 처음으로 대륙세력이면서 동시에 비서구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략은 유라시아 대륙에 촘촘한 에너지 및 물류망, 철도 및 도로를 건설해 유라시아의 경제통합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또한 남중국해를 통해 미국의 군사포위망을 뚫으려 한다.

반면 미국은 오바마 정부 시기에 이에 대한 대응을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아시아로의 회귀'가 그것이다.

오바마는 냉전 시기 미국의 근시안적인 군사주의 정책으로 소원해진 버마, 이란,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또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TTIP(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 를 통해 아시아, 유럽과 미국과의 경제 교류를 확대하려 했다. 유라시아를 유럽과 중동, 아시아로 3분 하려는 계책이었다. 중국이 적극 진출하고 있는 아프리카와의 관계 강화도 시도했다.

매코이가 지정학의 대가로 칭찬했던 오바마의 원대한 계획은 그러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일거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의 당선 일성이 바로 TPP와 TTIP 철회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세계에 대한 책임을 팽개치고 일개 강대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트럼프가 TPP와 TTIP 철회를 결정한 것은 그것이 일반 미국인들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는 심화됐고 이에 따라 자유무역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 것이다. 2016년 2/4분기의 세계 교역량이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신자유주의적 국제 교역 질서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불신을 잘 말해준다.

결국 오바마는 지정학의 교본대로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정책을 펼쳤으나 국내 정치의 벽에 막혀 좌절하고 만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과 세계 질서

미국 패권의 몰락은 어떤 세계 질서를 낳을 것인가? 새로운 패권 국가를 낳을 것인가, 아니면 국제적 무질서로 귀착될 것인가? 매코이는 2030년 무렵의 세계 질서를 다음 5가지 시나리오로 전망한다.

첫째, 미국이 만든 현재의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유지 또는 개선되면서 그 운영 주체가 확대된다. 매코이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현재의 세계 질서가 유지되면서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이 쇠퇴하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세계를 경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다 비관적으로는 국가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 나토와 같은 다국적 군대, 그리고 다보스나 빌더버그 같은 국제금융조직이 연계해 세계를 통치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는 국제적으로 부자 대 빈자의 대결 구도가 고착된 것으로 마이크 데이비스와 같은 도시학자는 도심 곳곳에서 부자와 빈자 간의 폭력 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또는 현재의 국제 질서가 현저히 약화될 경우 각 지역별로 특정 국가가 세력권을 형성하여 경합할 수도 있다. 브라질이 남미, 미국이 북미, 중국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러시아가 동유럽, 인도가 남아시아, 이란이 중앙아시아, 터키가 중동, 남아공이 남부 아프리카를 각각 경영하는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해 11월 9일(현지 시각)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둘째, 미국의 경제적 쇠락이 가속화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기술혁신이나 과학기술 교육의 수준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게다가 중국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또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10년 GDP 대비 4%였던 사회복지 비용은 2050년 18%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군사비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냉전 기간 GDP의 7%였던 군사비는 이미 2001년 이후 5%대로 줄었고 2030년에는 2%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곳곳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국내적으로는 치솟는 실업률과 실질임금 저하 등으로 사회 분열이 심화될 것이다.

셋째, 군사적 모험의 가능성이다. 몰락하는 패권 국가는 쇠퇴를 피하기 위해 파국을 무릅쓰고 일거의 군사력 사용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를 미소 군사주의(micro-militarism)라고 한다. 1956년 영국이 수에즈운하를 공격한 것이나 2001년과 2003년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이 대표적인 예이다.

예컨대 2020년 경 아프간에서 고립된 미군 부대가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의 협공을 받으면서 이에 과잉 대응을 할 경우 이란의 군사 개입을 초래해 중동 유전지역에 대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미국의 수에즈 사태'가 되는 것이다.

넷째, 최악의 경우 미국과 중국 간에 3차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2016년 현재 중국의 국방비는 미국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2040년 경에는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또한 슈퍼컴퓨터의 질과 양적 측면에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2016년 8월에는 세계 최초로 전파가 아닌 양자로 교신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중대하다. 양자 통신은 전파 통신과 달리 해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매코이는 미래의 전쟁이 핵무기로 상대를 타격하는 파괴력의 전쟁이 아니라 적의 지휘부를 마비시키고 통신을 교란해서 무력화하는 지능전의 형태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상대방 컴퓨터를 공격하고 통신위성을 교란하는 사이버 전쟁, 우주전쟁의 양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슈퍼컴퓨터의 능력과 통신 보안이 전력의 핵심이 된다. 중국은 현재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2016년 발표한 '중국과의 전쟁' 보고서에서 미국의 승리는 확실하지 않으며 "분명한 승자"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 군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최고 수준의 전략 연구소가 중국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미국이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결론 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매코이는 2030년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에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 경우 중국의 우월한 사이버전쟁 능력이 미국의 낡은 통신시스템을 마비시켜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미국이 패배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다섯째, 지금까지의 시나리오는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순서로 2030년 무렵의 세계를 가상해 본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시나리오는 가상이라기보다는 현실이다. 2030년까지는 가시화되지 않겠지만 2040년까지는 현실화될 것이며 이를 피할 길은 없다. 미국의 패권이 어찌 되든 이 사태는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위의 4가지 가상 상황의 배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후 온난화다.

2040년이 되면 기후 온난화에 의한 자연재해가 각국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며 물과 식량을 둘러싼 투쟁이 격화될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으로 살 곳을 잃은 수백만 난민들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가로질러 상하수도 시설이 잘 돼 있는 유럽지역으로 몰려들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혼란을 거치면서 유럽은 유럽의 안보에만 매달릴 것이며 세계의 문제는 워싱턴에 떠넘길 것이다. 대중동지역의 국가들은 더욱 약화돼 반군 세력이 득세하고 식량과 물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진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혼란을 감당하지 못한 미국은 군대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불러들여 카리브해와 중미 지역에서 미국으로 몰려드는 난민들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패권 국가가 지구 전체를 관장하기 어려우며 지역별 패권 국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미 대륙의 핵심 국가로서 라틴 아메리카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겠지만 동아시아에 전진 배치돼 있던 미군 기지들은 태평양 중앙, 즉 하와이로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경우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 엄청난 인구와 자원을 가진 중국이 통합적 인프라와 금융, 교역 등을 바탕으로 해체되고 있는 지구의 으뜸 국가로 등극할 것이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외교적 논쟁조차 없이 오로지 지정학과 "가혹한 기후"의 힘으로 세계의 패권이 워싱턴에서 베이징으로 조용히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2040년이 되면 중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기보다는 여러 강대국 중의 첫째(first among equals), 보다 정확하게는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지구촌의 지역 강국 중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중국이 우두머리 국가가 된다.

매코이가 기후 온난화를 기정사실로 강조하는 것은 패권을 잡기 위한 각국 간의 경쟁이 아니라 기후온난화로부터 지구촌을 구하기 위한 협동의 지혜를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글은 <녹색평론> 1/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inky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