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배당으로 3년 만에 과일 사먹었어요"
[청년, 청년 배당을 말하다③] '헬조선'에서 '흙수저'로 살아가기
2016.02.25 07:31:55
"청년 배당으로 3년 만에 과일 사먹었어요"

<프레시안>에서 청년 수당·배당을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젊은층 표를 돈 주고 사겠다는 심보라고 비판합니다. 실제 그럴까요. 이들 제도가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과연 실효성은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청년, 청년 배당을 말하다>
<1> 로봇과 경쟁해도 '노오력'하면 된다고요? 
<2> "청년들, 공돈 받는 재미로 더 일 안 하겠지" 


13살 때부터 일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시급 1500원인가를 준다고 했다. 분식집에서 '서빙'을 하는 일이었다. 동네 분식집 3곳에서 '동맹(?)' 비슷한 것을 맺어, 한 집이 한가해지면 손님이 몰리는 다른 집으로 어린 수현이를 보냈다. 그래도 "일 잘 하네"라는 칭찬이 그저 듣기 좋았다.

친구가 "돌려쓰기는 좀 아니지 않냐"며 "차라리 전단지 돌리는 일을 하라"고 했다. 전단지는 100장을 돌리면 1500원을 준다고 했다. 분식집에 그만두겠다고 하자, "한 달을 안 채웠으니 약속했던 시급대로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부당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첫 일터의 기억은 그랬다.

차수현(26, 가명) 씨는 그때부터 13년이 흐른 지금까지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었다. 엄마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언니와 둘이 번갈아 엄마 옆에서 낮밤을 지킬 때도, 엄마가 잠이 들면 편의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 돈이 필요했다. 엄마 병원비를 위해서도, 아픈 엄마와 언니와 세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도. 


▲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서봄 역할의 고아성의 모습. ⓒSBS



주유소, 피시방, 호프집, 까페, 편의점, 백화점, 노래방, 가방 공장, 성형외과, 치과…. 어디서 일해 봤냐는 질문에 수현 씨의 대답은 끝이 없었다. 13살 때 시작한 수현 씨의 노동을 세상은 '아르바이트'라고 불렀다.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을 뜻하는 단어 아르바이트(Arbeit).

쉴 틈 없이 이어져 온 수현 씨의 노동을 그 자신은 '생계형 아르바이트'라고 불렀지만, 먹고 살기 위한 필수적 노동이란 의미의 '생계형'과 임시 노동을 뜻하는 '아르바이트'라는 말이 연달아 놓인 것 자체가 우스운 모순이다. 수현 씨에게 그 일들은 늘 절실했다. 심지어 13살의 어린 수현에게도.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성남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지난 1월 내놓은 '생계형 청년알바 실태조사 보고서'는 '생계형 알바'에 대해 "'직업'이라고 하기엔 열악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알바'라고 하기엔 주 5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고 그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실상의 직업 노동자들"이라고 정의했다.

실제 이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206명의 35.9%가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비생계형에 비해 처음 일을 시작한 나이가 더 어렸다. 17세 이전에 일을 시작한 비율을 놓고 보면 생계형이 29.7%나 되는데 반해, 비생계형은 18.9%에 불과했다. 일주일 중에 주5일 이상 일하는 사람의 비율은 생계형(87.8%) 그룹이 비생계형(60.6%) 그룹에 비해 27%포인트나 높았다.

이 우스운 모순을 세상은 쉽게 이용했다. 어차피 일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인 이들에게는 일터에서 종종 벌어지는 '부당한 대우'도 내가 참아야 할 당연한 일에 들어갔다. 때로는 왜 부당한 일인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억울하다는 생각만 하기도 했다.

"주유소 알바 할 때였는데, 같이 일하던 직원이 3-4명 있었거든요. 그 중에 일한 지 얼마 안 된 애가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은 거예요. 그 차 수리비를 그 친구가 물어내야 하는 거였는데, 다음날부터 연락이 안 됐어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남은 애들더러 '너희가 N분의 1씩 물어내' 그래서 월급에서 까더라고요. 억울해서 따졌더니 사장님이 욕을 하대요. 꺼지라고, 나오지 말라고. 50만 원 정도 못 받고 그만뒀죠."

"숨쉴 틈 없이 일했지만 희망을 가질 구멍 자체가 없었어요"

어린 수현이 처음 '노동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엄마와 아빠는 헤어져 살기 시작했다. 아빠 없이 두 딸을 먹여 살려야 했던 엄마는 식당에서 12시간씩 일을 했다. 그렇게 130만 원 남짓 버는 엄마에게 '용돈 좀 주세요' 말할 형편이 아니었다. 요즘 청년들의 분류법대로라면, 수현 씨는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였다.

"열심히 살았지만, 제가 열심히 해봐야지 마음 먹을수록 이상하게 더 힘들어졌어요. 엄마가 갑자기 아프고, 이제 좀 살만해졌나 싶으면 또 엄마가 아프고. 숨통이 좀 튈만하구나 싶으면 몰랐던 엄마 보험료 미납 사실이 튀어 나오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만한 구멍 자체가 없었어요. 숨쉴 틈도 없었어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수현은 일을 했다. 때로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교를 장기간 안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런 수현을 학교는 반겨주지 않았다. 그때도 '이제 열심히 학교 다녀봐야지' 했더니, 또 '일'이 터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교과서 한 권을 더 사야한다고 1250원을 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때 제 수중에 정말 1000원도 없었거든요. 제가 급식비 지원 받고 그러는 것도 뻔히 알면서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전교에서 너만 안 냈어. 너는 1250원도 없냐' 이러는 거예요. '안 되겠다,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백화점 안내일을 구했죠. 일한다고 2주 결석을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찾아 왔어요."

담임 선생님은 자퇴서를 내밀었다. "엄마 아빠와 얘기 다 끝났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없었다. 수현은 그냥 이름 석자를 적었다. 그리고 학교와의 인연은 끝났다.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바로 묻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다시 그 일을 끄집어 내 물었더니 "후회는 되는데, 안 그만뒀어도 제대로 못 다녔을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밖 아르바이트 인생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무렵,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한 달에 병원비가 300만 원씩 나왔다. 수현 씨 나이 스무살 때였다. 성형외과에서 일하며 버는 돈은 한 달에 110만 원, 두 살 많은 언니는 콜센터에서 일하며 130만 원 남짓 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버는 돈을 다 합쳐도 엄마의 병원비에는 모자랐다. 엄마는 수술만 4번을 했다.

"게다가 엄마는 사지마비 환자니까 언니나 나나 둘 중 하나는 붙어 있어야 했어요. 언니가 그나마 저보다 많이 버니까 언니가 일을 하고, 저는 낮에 엄마 간병을 했어요. 아픈 사람이다 보니 8시면 자더라고요. 그럼 9시부터 새벽까지 편의점이나 호프집에서 일 하고 집에 와서 두 시간 자고 엄마 씻겨주고 운동 시키고…. 일은 계속 했는데도, 돈이 정말 부족했어요. 그때 나쁜 일 권유를 많이 받았죠."

'노래방 도우미나 룸싸롱에서 알바를 하면 하루에 많이는 50만 원에서 60만 원도 벌 수 있다'고 수현 씨에게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한 달에 몇 번만 일해도 엄마 병원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현 씨는 "막말로 몸 팔면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서 많이 흔들렸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 일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수현 씨는 "어쨌든 그 유혹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전세집을 내놓고 월세집으로 이사가면서 엄마 병원비 등으로 생긴 빚을 청산했어요. 그리고는 지금까지 하루 하루 살아 온 거죠. 지금도 엄마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엄마 걱정이 아니라 돈 걱정부터 먼저 되요."

"13년 만에 '정규직' 되었지만…매일 그만둘까 생각해도 당장 뭘 먹고 살까요?"

엄마가 그나마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수현 씨와 언니의 숨 막힐 것 같은 순간들도 줄어 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정규직' 계약서에 사인도 했다. 7월부터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해준 것이었다. 직원도 1만 명 가까이 된다는 큰 회사였다. 계약직일 때는 117만 원이던 기본급이 127만 원이 됐다. 이런 저런 수당이 있지만, 수현 씨 손에 쥐어지는 돈은 '만근'을 했을 때 130만 원 정도다.

일하는학교 등의 설문조사 결과, 청년들은 저임금에 익숙해져 있었다. 최저임금 미만의 시급을 받는 청년이 응답자의 17.5%나 됐다. 응답자의 평균 월급은 주휴수당을 적용할 경우 126만3405원, 주휴수당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106만1280원이었다. 월 150만 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청년은 거의 없었다.

조사팀은 "10대 때부터 저임금에 익숙해져 있고 그 정도의 수입으로도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충분한 급여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나오면 주는 돈이 '만근 수당'인데, 좀 웃겨요. 10분 이상 지각하면 출근해도 '만근'이 아니고, 1분 지각이 2번 이상이어도 만근이 아니예요. 단기 알바로 이 회사에서 일할 때, 딱 한 번 10분 지각했더니 만근 수당 5만 원이 까이고 기본급 117만 원에서 1시간치를 뺐더라고요. 그때 102만 원 받았어요."

수현 씨는 "지금까지 일했던 곳 가운데 오히려 지금 회사가 젤 안 좋다"고 했다. 제법 큰 회사에, 안정적인 정규직인데도 '그만둘까' 고민한 날들이 많다는 것이다. 제일 큰 어려움이 뭘까?

"같이 일하는 사람을 너무 막대해요. 설 연휴에 이틀이나 나오라 그러면서 너는 직급이 없으니 하루만 특근으로 쳐 주고, 하루는 못 쳐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선 밤새 고민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오겠다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실장이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뻑' 치면서 '진작 그랬어야지' 이러더라고요. 솔직히 피시 방에서 일할 때도 사장님이 '수현아' 이름 불러줬는데, 이 회사 사람들은 아무나 보고 '야, 아 저기, 너 뭐지?' 이래요. 제 이름도 몰라요."


▲한 아르바이트 업체의 TV광고의 한 장면. 이 광고에서 모델 혜리는 '알바당'을 창당한다. ⓒ프레시안



정규직이긴 하지만, 딱히 좋은 것도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그나마 명절엔 '떡값'도 조금이라도 챙겨주고, 선물세트도 들려주고 그랬는데 이 회사에선 아무 것도 없었단다. 이름은 정규직이지만, 수현 씨에게 '질 낮은 일자리'인 건 똑같았다. 그만두고 자격증 공부를 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고 수현 씨는 말했다. 그래도 매일 아침 성남에서 서울까지 출근길에 오르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만두면…. 저희 집은 제가 쉬면 쌀 살 돈이 없고 공과금 낼 돈이 없는데, 그건 현실적인 문제잖아요. 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다른 곳을 알아보고 그만둬야지 하는데, 맨날 연장 근무시키고 야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9시~10시인데 알아볼 시간도 없고요."

수현 씨가 지금 사는 집은 월 40만 원의 월세가 나간다. 가스비, 전기세, 수도세 등 공과금은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엄마에게 하루에 1만 원씩 용돈을 드린다. 그 밖에도 휴대폰 요금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제외하고도, 수현 씨는 "집에서 쓰는 쌀, 샴푸, 휴지, 치약, 심지어 물 한 방울까지 다 돈이라는 걸 스무살 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나마 엄마 건강이 좀 좋아지면서, 올해 처음으로 적금이란 걸 가입했다며 수현 씨는 부끄러워했다. 13년 동안 노동 시장에 속해 있었는데, 이제야 적금이라는 걸 들었다니.

"많이도 아니예요. 좀 아껴서 10만 원 넣고 그래요. 예전보다 언니나 저나 살만해졌다고 느끼고 있고, 모을 수 있는 돈이 조금씩 많아지면 좋긴 좋을 것 같아요."

"청년 배당으로 받은 돈으로 몇 년만에 과일을 샀어요"

수현 씨는 경기도 성남시에 산다. 우리나이로는 26세이지만, 만 나이는 24세여서 성남시 청년 배당 정책의 수혜자가 됐다. 1분기 지급액 12만5000원을 지난달 성남시로부터 받았다. 솔직히 큰 돈은 아니다. 수현 씨는 바로 반박했다.

"큰 돈이죠. 그 정도면 엄청 큰 돈이예요. 저희 가족은 그 돈이면 설을 지낼 수 있거든요. 솔직히 정말 좋았어요."

그 돈으로 명절 때 필요한 걸 샀다. 쌀 배달도 시키고, 시장에 가서 과일도 사먹었다. 과일을 돈 주고 산 건 한 2-3년 만의 일이었다고 수현 씨는 말했다. 복잡한 집안 사정 탓에 엄마가 아프고 장애 등급을 받아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이 안 돼, 정부에서 주는 혜택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었던 수현 씨였다. 성남시의 청년 배당은 수현 씨가 24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나라에서 나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구나 체감한 일"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상품권 깡' 얘기를 수현 씨가 먼저 꺼냈다. "놀랍고 의외였다"면서.

▲성남시 청년배당의 지급액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SNS에 올린 인증샷.

"제 주위엔 상품권 깡 해야지 하는 애들은 하나도 없었어요. 서로 어디서 쓸 수 있냐 묻기는 했지만요. 그런 애들은 저처럼 생계형이 아니고 부모 밑에서 용돈 받아 쓰는 애들이겠죠."

그러면서 수현 씨는 "솔직히 '돈 잘 버는 애들한테는 왜 주지'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면 좋겠다"면서.

수현 씨와 똑같이 20대 청춘을 다 돈 버는 데 보낸 언니는 나이가 많아 이번 청년배당 정책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아마 언니도 같이 받았으면, 쌀 사고 과일 사고 남은 돈으로 책을 사보고 싶었단다. 스무살 때 엄마 병간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통과해 수현 씨의 공식 학력은 '고졸'이지만, "요 근래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뭐랄까 약간의 지식 차이 같은 걸 느낀다"고 했다. 그동안은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바빠, 한 권에 1만 원도 넘는 책을 사는 '사치'는 누려보지 못했다. 


"고졸이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밖에…꿈? 세상이 짓밟아요"

"고등학교 그만둔 건 그렇다 쳐도, 대학 갈 생각을 아예 못 했던 건 후회가 돼요. 취직하려고 취업 공고를 보면 대졸이 기본 조건이고 못해도 2년제는 나와야 하더라고요. 나는 조건조차 안 되니까. 대학 나온 사람들이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서 일을 구하고, 그러면 저 같은 고졸은 더 취업하기가 힘들죠.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몸 쓰는 일, 콜센터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런 거 밖에 없어요. 그게 안타까워요."

지금이라도 공부를 해볼까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졸업하면 서른 살. 그 나이에 어디에 취직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대학에 들어가도, 목돈으로 내야하는 학비도 부담스러웠다. 공부에 대한 상상은 "어차피 나는 계속 일을 해야하는데" 라는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 끝나곤 했다.

일하는학교 등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진로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장애요소로 생계형 그룹의 50.0%가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비생계형 그룹에서는 같은 응답은 26.4%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10대부터 일해 왔지만 계속해서 가난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진학이나 경력개발을 위한 교육기회를 얻기 어렵고 빈곤은 그들의 자녀세대에서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꿈이랄까, 목표랄까, 희망이랄까. 살면서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스물 둘 셋 쯤에 생겼던 꿈이 있었죠. 피부관리사 준비할 때였는데, 피부샵에서 열심히 돈도 모으고 노하우도 배워서 콩알만해도 딱 침대 하나 놓을 수 있는 내 샵을 차리고 싶다. 그게 꿈이었어요."

수현 씨의 꿈은 그러나 피워보기도 전에 "짓밟혔다."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너 같은 생각 하는 사람이 너 밖에 없겠니. 길 가면 널린 게 피부샵이야. 성공할 리가 없어.'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접을 수도 있는 건데, 넌 그런 형편도 아니고 하다 망하면 어쩔 거냐는 식으로 아예 뭉게 버리더라고요. 물론 현실적인 말이죠. 그래도 처음엔 그런 생각에 들떠서 돈도 얼마씩 저금하고 그래야지 했다가, '아 정말 그렇구나, 그냥 일이나 해야겠다' 생각 했어요. 좋은 말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주변에서 오히려 꿈을 밟아요."

수현 씨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한테 꿈 꿀 기회 자체를 안 준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는 수현 씨보다도 어린 친구들이 많다. 스물 한 두 살, 꽃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 이유는 '공부'가 많단다. 휴학했던 학교에 복학하려고, 자격증을 따서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해보려고 그만둔다는 "어린 애들"한테 나이 많은 실장들이 하는 말이 수현 씨는 그렇게 듣기 싫다고 했다.

"야, 대학 졸업해 봐야 쓸데 없어. 학벌 다 필요 없고, 경력이 최고야. 니가 현실을 몰라서 그렇지 쓸데 없이 공부하지 말고 여기서 오래 버텨. 적성에 안 맞아도 참고 버티며 경력 쌓는 게 최고야."

수현 씨는 "어떻게 보면 제일 안정적인 길이겠지만 별로 행복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어느 퇴근길 저녁, 수현 씨의 회사 근처에서 만나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 지하철 한 정거장을 같이 가며 수현 씨가 말했다.

"어떤 선생님이 조사해 보니 생계형 알바생이 삶의 만족도가 비생계형보다 더 높다고, 그게 특이한 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우리 같은 아이들은 어릴 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저도 생각해보면 지금이 더 좋아요."


이 시대, 청년에게 행복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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