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값이 싼 나라에서 창조경제는 없다
사람값이 싼 나라에서 창조경제는 없다
[편집국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IT 버전'으로 또 생긴다
2014.01.23 09:28:03
사람값이 싼 나라에서 창조경제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또 창조경제 이야기를 했다. 박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각) 스위스 다보스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금은 새로운 세계를 재편해나갈 동력이 절실한 시기"라며 "한국은 그 동력을 창조경제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듣기 민망한 이야기다. 박 대통령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조차 ‘창조경제’ 개념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한다. 창조경제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정권 실세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 동력을 창조경제에서 찾고 있다"라니, 박 대통령이 말한 ‘한국’에는 대체 누가 포함되는가. 창조경제 주창자인 박 대통령 개인을 한국과 동일시하는 건가.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아주 위험한 노릇이다. 
 
평생 '지대추구'에 안주했던 박 대통령, '창조경제'의 적이다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타령이 듣기 민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창조경제 개념은 아주 모호하지만, 그 반대말은 어느 정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대추구(Rent-Seeking) 경제가 반대말일 게다. 

아마도 창조경제란, 기존의 틀을 허무는 창조적 발상과 도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뜻인 듯 싶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이 종종 짝을 이루는 걸 보면, 그렇다. 예컨대 혁신적인 기술을 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창조경제 활성화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게다. 그렇다면, 위험과 도전, 혁신을 기피하는 돈벌이 방식이 창조경제의 반대말일 게다. 그게 지대추구 경제다.
 
예컨대 부모에게 물려받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먹고사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창조경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다. 부모가 쌓아놓은 인맥에만 의지해서 기업을 경영하는 2세 경영자가 있다면, 그 역시 창조경제의 적이다.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타령이 몹시 생뚱맞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래서다. 박 대통령의 삶이야말로 철저히 지대추구 행위로 점철돼 있지 않은가. 그는 영남대, 육영재단 등 박정희 정권의 유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먹고살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지만, 기술 개발 관련 업무를 한 적도 없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라지만, 인상적인 창작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은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다. 
 
그뿐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아버지가 쌓아놓은 인맥에만 의지해서 국정을 운영했다. 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계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창업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세 기업인과 꼭 닮았다. 
 
창조경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성장 발언이 떠오르는 건 그래서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이 전 대통령이 ‘녹색’을 이야기했을 때, 다들 실소했다. 평생 단 한 번도 창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지대추구 방식에만 안주했던 박 대통령이 ‘창조’를 이야기한다.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을 떠올리게 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지금, ‘녹색성장’을 입에 올리는 이는 찾기 힘들다. ‘창조경제’의 운명 역시 마찬가지로 점쳐볼 수 있다. 당장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부처 명칭부터 그렇다. 
 
IT와 서비스 융합한 창조경제? 개인정보도 관리 못하는 현실에선 몽상일 뿐!

박 대통령이 한국을 떠난 사이, 최악의 전산 사고가 터졌다.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등 카드 3사에서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됐다. 박 대통령도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정보기술(IT)을 기존 제조업 및 서비스산업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식의 ‘창조경제’는, 이런 현실에서 사치스런 몽상에 가깝다. 
 
사고의 배경에는 한국 소프트웨어(SW) 산업의 열악한 현실이 있다. SW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이른바 SI(System Integration)부문이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다른 부문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고질적인 불법복제가 한 원인이다. SI, 인터넷 서비스 등 불법복제 위험에서 자유로운 부문만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점은, 한국 SW 산업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SI, 인터넷 서비스 등은 기술적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불법복제 위험이 큰 영역은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높다. 전자가 비대하고 후자가 취약하다는 말은, 한국 SW 산업의 기술수준이 낮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중국 등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기술적 부가가치보다 낮은 인건비에 의지해서 성장했다는 뜻도 된다.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업무용으로 쓰는 전산망을 개발, 관리하는 게 SI분야 개발자들이 하는 일이다. 이번 사고 역시 SI분야에서 터졌다. SI분야 개발자들의 노동현실이 참혹한 수준이라는 점은 이미 여러 번 지적됐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급격한 정보화를 이뤄냈다. 그 주역이 SI개발자들이다. 그러나 급속 성장에는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각종 정보화 사업을 고학력 실업자를 담는 그릇처럼 운용하면서, 부작용이 잉태됐다. 학원 등에서 아주 기초적인 교육만 받은 개발자들이 현업에 투입됐다. 물론, 일하면서 공부할 여유가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현실은 끝없이 이어지는 야근. 그리고 수준 높은 기술력이 필요 없는 단순작업 수준의, 질 낮은 코딩 작업의 연속이었다. 
 
SW산업이 성장하면서 배우기 쉬운 개발 도구가 많이 등장했다. 전산 관련 지식이 아주 얕아도, 그럭저럭 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사회과학 개념을 빌자면, 일종의 ‘탈숙련화’가 이뤄진 셈이다. 기존 개발자를 초보 개발자로 대체하는 게 쉬워졌다는 뜻. 
 
다단계 하도급, 불안정 고용, 실력있는 개발자는 떠난다
 
그렇다보니, SI업계에선 아무나 뽑아서 적당히 쓰다가 버리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여기에 겹쳐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상당수 정보화 사업이 일단락되면서, SI시장은 아비규환 지옥도가 됐다. 
 
일부 SI업체가 공공부문 사업 수주경쟁에 참가하면서 입찰가를 ‘0원’으로 적어냈던 사례도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거래는 터야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체 입장에서 마냥 손해를 키울 수는 없는 일. 결국 인건비를 쥐어짜는 선택이 남는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하도급 구조가 만들어지고, 계약직, 프리랜서 등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생겨났다. 그래서 SI개발 현장에 가면, 같은 팀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데 소속 업체와 고용형태, 그리고 급여 수준은 제각각인 경우를 본다. ‘갑-을-병-정’ 업체의 정규직들과 이들 업체의 비정규직이 뒤죽박죽이 된 채로 일하는 것. 여기서 ‘을’과 ‘병’에 해당하는 업체가 실제로 개발에 참여하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을’, ‘병’ 업체는 겉으로만 SW업체일 뿐, 실제로는 노융업체인 경우도 흔하다. 금융업체가 싼 이자에 돈을 융통해주는 대가로 이익을 내는 것처럼, 노융업체는 싸구려 노동력을 융통해주는 대가로 돈을 번다. 

결국 실제 개발은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있는 ‘정’ 업체가 하게 된다. SI사업 예산은 제한돼 있는데, 중간 단계는 많으니까, 실제 개발을 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몫은 줄어든다. 결국 ‘정’ 업체 사장은 실력 있는 개발자는 내보내고 초보자를 뽑아서 마구잡이식으로 부려먹는 선택을 한다. 살인적인 업무량과 감당하기 힘든 개발책임에 기가 질린 초보개발자가 갑자기 사표를 쓰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대형SI 사업 현장에선 끊임없이 사람이 들고난다. 게다가 어차피 다들 소속과 고용형태가 다르므로, 어제까지 옆자리에 있던 개발자가 갑자기 짐을 싸도 그러려니 한다. 
 
끊임없이 사람이 들고나는 SW개발 현장, 엄격한 보안은 먼 이야기

이런 분위기에서 엄격한 보안원칙이 지켜지기란 불가능하다. 구성원끼리 서로 신뢰가 두텁고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게 규정된 조직에서도 완벽한 보안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소속조차 불분명한 이들이 들락날락 하는 게 한국의 SW개발 현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산 사고는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하지만 SI시장의 대형 고객인 공공기관, 또는 금융기관이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산 장비 업체 또는 보안 업체의 영업 공세가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등은 높은 사양의 전산 장비를 사는 데는 별로 인색하지 않다. 그러니 일부 업체에겐 이번 사고가 좋은 돈벌이 기회가 될 게다. 그런데 묘한 것은 비싼 장비를 사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경영자들이 유독 인건비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로는 이번과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없다.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박정희 정부 시절 지어진 건축물들은 대부분 설계부터 허술했다. 건설 경기가 좋았다지만, 실제로 건물을 짓는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돈은 크지 않았다. 그 결과를 우린 잘 안다. 성수대교가 주저앉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전산 분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고는 사람이 낸다. 창조적인 아이디어 역시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값이 싼 나라에서 사고는 일상이다. 사람값이 싼 나라에서 창조경제란 몽상일 뿐이다.

mendram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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