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슈퍼 을' IT 개발자, 미국 가니 연봉 1억!
한국에선 '슈퍼 을' IT 개발자, 미국 가니 연봉 1억!
너무나 다른 한미 IT 환경…"창조 경제? 개발자 처우부터 개선해야"
2013.04.12 10:13:00
IT 개발자인 김장엽(41) 씨는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프로그래밍이 "너무 좋아서" 개발자의 길을 택했던 그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내 명령대로 컴퓨터가 작동하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2002년 한국을 떠났다. 1998년 한국 IT 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이다. 지금은 8년째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닌다. 김 씨는 지금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일을 즐길 수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한국의 작은 SI(시스템 통합) 업체에 다녔던 그는 10일 <프레시안>과 만나 IT 업계 환경이 "처참했다"고 기억했다. 근로계약서를 쓴 기억이 없다. 야근 수당도, 출퇴근 관리 시스템도 없었다. 일정은 촉박했고 새벽 1시, 2시까지 일하기가 부지기수였다.
(☞ 관련 기사 : '일의 노예'…한국의 IT 개발자가 사는 법, "사람 잡는 야근…폐 잘라낸 SI 개발자", )

'슈퍼 갑' 아래 '쥐어짜이는' 도급의 도급의 도급들

개발자들이 '쥐어짜이는' 배경 중 하나로 그는 IT 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문제를 꼽았다. 한국 IT 업계는 건축 업계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에서 위계 서열은 분명했다. '정'은 "주말도 없고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개발자"라고 했다.

"예를 들어 '갑'이 삼성SDI라고 하면, 삼성SDI에서 하도급을 주고 도급업체가 또 하도급을 줍니다. 갑은 직접 개발하는 건 없고 업체 관리만 하고요. 삼성SDS는 '슈퍼 갑'이죠. 그 정도 급의 대기업 과장들은 자기보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하도급 사장한테 '이 새끼, 저 새끼'라고 막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청업체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마감 기간을 단축하고 인건비를 줄인다. 5명이 5개월에 마쳐야 할 프로젝트에 3명만 투입하는 식이다. 나머지 2명분의 일을 하기 위해 3명이 야근하는 구조다. 그는 "같이 일하던 동료가 일하다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두 명이 6개월에 해야 할 일을 혼자 5개월 만에 마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개발자들 손에 들어오는 보수는 적어진다. 김 씨는 "항상 원청 관리자가 직접 작업 지시를 했지만, 연봉은 1800만 원대였고, 처음 들어갔을 때는 월급이 60만 원대였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IT 개발 환경, 한국보다 낫다"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 씨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로 '개발자에 대한 처우'를 꼽았다. 단적으로 연봉이 다르다. 10년차 개발자인 그는 현재 연 9만3000달러(1억4860여만 원)를 받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작지 않은 차이다. 야근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는 "야근을 하면 반드시 수당이나 대체 휴일이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IT 개발자는 선망받는 직업이다. 지난달 미국의 시사 매체인 가 조사한 '최상의 직업' 10위 안에는 IT 관련 직업이 4개나 포함된다. 4위는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연봉 7만8770달러), 6위 데이터베이스 관리자(7만5190달러), 7위 소프트웨어 개발자(8만9280달러), 9위 웹 개발자(7만7990달러) 등이다.

가장 큰 문화적 차이로 그는 '합리적인 업무 관행'과 '동등한 파트너십'을 꼽았다. 할 일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개발자와 회사가 협상을 통해 할 업무와 하지 않을 업무를 넣고 빼는 식이다. 계약서에 없는 업무는 하지 않는다. 도급 구조도 정부의 큰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갑을'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동등한 파트너십은 하도급 관계에서도 유지된다.

"한국에서 이틀이면 끝나는 일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먼저 발주처가 얼마나 걸릴 것 같은지 을사에 물어봅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주일 걸린다고 답하고요. 이틀 걸릴 것을 일주일에 하니까 당연히 만들어 놓고도 오류가 있는지 계속 테스트를 많이 하게 됩니다. 코드도 깔끔하게 쓰니 질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죠.

한국이었다면 을사가 '일주일'을 부를 권한 자체가 없습니다. 갑사가 정하는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무조건 다 해야 하죠. 그리고 미국은 발주처가 중간에 수정을 요청하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더 지불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광경을 상상도 못해요. 고소의 천국이라 그런지 미국은 법적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요."


창조 경제? 소프트웨어 질은 '개발자 처우'와 무관한가?

새 정부의 '창조 경제'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개발자 처우가 좋다면 인재들이 모여들고 더 질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구조"라고 잘라 말했다. 김 씨는 "한국에도 개발하는 사람이 좋은 조건에서 일해야 결과물이 잘 나온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느긋함'이 품질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 살인적 야근에 폐 잘라낸 개발자…창조 경제는 어디에?)

"소프트웨어는 개발자의 자율이 중요하거든요. 창작 작업이에요. 고민해도 안 되던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침에 갑자기 생각날 때도 있어요. 미국은 한국보다 느긋한 편이에요. 감시나 압박을 받는 느낌이 없습니다. 나이나 서열을 따지지도 않는 편이고요.

반대로 한국에서는 압박하는 문화가 강했어요. 사장이 자꾸 '내일까지 되느냐'고 물어요. 그런데 IT는 건축과는 다르거든요. 건축은 층을 올리면 언제 끝날지가 보이지만, 소프트웨어는 경과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장이 '얼마만큼 됐느냐, 1층은 지었느냐'고 물어보면 대화가 안 되죠."

▲ 창조 경제의 개념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창의성을 우리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에서 간담회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물론 미국이 IT 개발자의 천국은 아니다. 김 씨는 "미국도 대기업은 위계 서열이 심하고, 직원들끼리 정치가 심하다"고 말했다. 고용이 안정되지 않고 이직이 잦은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실업급여를 최대 2년까지 받을 수 있고 이직할 때마다 연봉을 올려 받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확실한 건 한국보다 미국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나 업무 환경이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개발자가 권한이 많은 만큼 책임도 많지만, 한국 개발자들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어요. 한국은 소프트웨어의 질에 대한 인식이 낮아요. 동작만 하면 된다는 식이에요. 미국은 코드의 질까지 고려합니다. 다른 개발자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써야 합니다. 다시 말해 유지 보수가 쉬워야 합니다."

김 씨는 잘 작동하기만 한다고 해서 소프트웨어의 질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용자 관점'에서는 잘 작동하는 게 중요하지만, 개발자 관점에서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중요하다고 했다. 컴퓨터의 외관이 깨끗하다고 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부품이 좋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쥐어짜면 오류가 나오기 쉬워요. 버그가 많아지죠. 이용자 관점에서는 버그 문제가 생기지만, 전문가 관점에서는 그 코드를 본 사람이 이해를 못 해요. 날림 공사를 한 것이죠. 쉽게 설명하면 설계 도면과 실제 집이 달라져요. 도면에 수도관이 있는 줄 알았는데, 땅 파보니 가스관이 나오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예상치 못한 버그가 났는데 코드를 이해 못해서 버그를 못 고치는 경우도 있거든요."

IT 개발자 "나이 40대, 이미 한계 상황까지 왔다"

김 씨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IT 업계의 열악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2010년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의 실태 조사를 보면, IT 노동자들은 평균 주당 61.7시간, 연간 3000시간씩 일한다. OECD 평균(1768시간)에 비해 1232시간 더 많다.

고용 불안도 문제다. 한국에서 1999년부터 SI(시스템 통합) 개발자로 일해 온 조 아무개(41) 씨는 정규직을 포기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회사에 있어봤자 고용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프리랜서는 정규직보다 월급을 150% 정도 더 받는다. 그의 연봉은 4000만 원이다.

이전 직장의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가 사라져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리랜서가 된 조 씨는 "나중에 회사에 다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IT 개발자의 평균 수명이 30대 후반인 탓이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일에 오래 종사하고 싶지만, 40대 내 나이대 개발자들이 거의 없다"며 "이미 한계 상황까지 왔다"고 자조했다.

김 씨는 짧은 개발자 수명이 소프트웨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한국은 연공서열로 인해 40세면 관리자로 빠지기 때문에 노하우나 지식이 새로 온 개발자들에게 전수가 안 된다"며 "아래 개발자들은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가 다니는 미국 회사에서 새로 뽑은 개발자가 50세가 넘었습니다. 치프 아키텍트(chief architect)는 손자까지 있으신 분인데, 60세가 넘어서까지 아직도 코딩을 합니다. 60세가 넘은 개발자에게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6, 7년차와 30년 동안 코딩한 사람하고 (실력이) 다르죠."

김 씨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씨는 "나이 때문에 한국에서 내가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IT 개발자에게 '미래'가 있을까. "창조 경제는 사람이 핵심"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땅의 수많은 IT 개발자들이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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