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브래드 피트(알도 레인 대위 역), 크리스토프 왈츠(한스 란다 대령 역), 멜라니 로랑(쇼샨나 드레이퍼스 역), 일라이 로스(도니 도노위치 상사, 곰 유태인 역), 다이앤 크루거(브리짓 본 하머스마크 역), 마이클 패스벤더(아치 히콕스 대위 역), 다니엘 브륄(프레드릭 졸러 일병 역)
이번 영화에서 필자의 시선을 확 끌어 당긴 배우는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아니라, 친위대 한스 란다역을 맡아 섬찟하도록 호연을 펼친 독일 배우 크르스토프 왈츠였다. 타렌티노 감독 특유의 긴 대사를 너무도 맛깔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한편, 블랙코미디적 뉘앙스를 거침없이 발산한 그의 연기는 다른 할리우드의 몸값 비싼 연기자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밖에 달리 말 할 수 없다. 아카데미 조연상을 비롯 수많은 주요 영화제 상들을 싹쓸이 한 그의 연기 중 압권은 단연 도입부였다. 쉽게 논에 잘 띄지 않으면서, 물밑에서 치밀하게 전개되는 유럽식 심리협상의 진수를 함께 살펴 보자.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1941년 이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의 목가적인 외딴 시골마을. 젖소 몇 마리를 방목하는 라파디뜨와 그의 과년한 세 딸이 화목하게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일단의 독일군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차에서 내린 후, 애써 불안감을 숨기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단신의 독일군 장교를 맞으며 긴장하는 라파디뜨.
란다대령 : (유창한 불어로 공손하게) 이곳이 라파디뜨씨 댁이 맞습니까?
라파디뜨 : 내가 라파디뜨요.
란다대령 :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친위대 소속 한스 란다 대령이라고 합니다. '무슈' 라파디뜨. 괜찮으시다면 잠깐 들어가서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유태인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한스 란다 대령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의 오두막집 마루아래에 숨어 살고 있던 유태인인 드레이퍼스가(家) 사람들이 오늘도 발각되지 않고 무사해야 할 텐데, 그리고 나와 내 딸들도 별 탈이 없어야 할 텐데 등 오만 가지 걱정이 그를 짓누른다.
그러나 그 동안 겪어 온 여느 거칠고 무례한 독일군들과는 달리 유창하고 격조 있는 불어를 구사하며, 자신과 여식들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그를 보며 참 의외다 싶으면서도, 한편 왠지 안도감이 조금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얘기는 들어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별 문제 없겠거니란 막연한 안도감에 라파디뜨 역시 당초의 긴장을 풀고 란다 대령과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얘길 주고 받기 시작한다.
1. 란다의 협상초기 관계개선 전략: 심리적 호감을 형성하여 상대의 적대감과 저항을 누그러뜨려라. (Emotional Buy-in, the best psychological communication strategy to remove animosity, antagonism and prejudice.) 사람들은 그럴 상황이 아닌데, 당초 예상하지 못한 극진한 대접이나 환대를 그 것도 자신보다 높은 지위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선선히 베풀어 줄 때, 당혹스러움도 없지 않지만 내심 짜릿한 감동을 느낀다. (People love being treated in situation where they don't expect it.) 그리고 상대의 이러한 환대가 겉치레가 아닌 진심임을 느낄 때, 그 이전에 갖고 있던 적대감이나 의심 등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을 남몰래 회개하는 마음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껏 오해해 왔던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져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상대에게 마음을 열어 주게 된다. 즉, 사실 여부나 논리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순수한 마음과 이제까지 알아보지 못한 상대의 매력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이 것을 '감정(성)적인 호감(Emotional Buy-in)'이라고 부른다. 즉, 뜻밖의 좋은 느낌을 상대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기존에 부정적인 편견이나 관계가 설정되고 유지 되어 온 상황에서, 상대로 하여금 나의 제안이나 의도를 제대로 듣고(Listen), 충분히 이해하며(Understand), 갖가지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Taking risks) 받아들이도록 (Accommodate) 하는 것은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하다 보면 어찌 되겠지 라며 무작정 협상을 시작하려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상대에게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 보길 권한다.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와 의지. 말 한마디 글 한자에도 묻어나는 거짓 없는 순수한 협력의지와 함께 하는 성공의 열정. 그리고, 예기치 않은 기분 좋은 깜짝 환대와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의 변화는, 차츰차츰 당신을 더 이상 적이 아닌 소중한 협력자로서 친구로서 받아들이게 해 줄 것이다. 협상? 이젠 협상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다해 서로를 챙기며 함께 고민할 뿐이다. |
라파디뜨의 집으로 들어선 후, 한참 동안 그 유창한 불어로 별 어려움 없이 얘기를 나누던 란다 대령. 느닷없이 자신의 불어가 서툴러 힘드니 라파디뜨도 영어를 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이제부턴 영어로 얘기하길 청한다. 마루 밑에 숨어 문자 그대로 숨죽이고 란다 대령과 라파디뜨의 말 한마디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듣고 있던 드레이퍼스 가족들. 그러나 이제 영어로 하는 두 사람의 얘기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 가는 지, 라파디뜨가 자신들이 이 곳에 없다고 시치미를 잘 떼 주는 지, 아니면 혹시 바로 그들 발 밑에 자신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나 않는지, 아니면 라파디뜨가 자신들에게 도망하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건네는 건 아닌 지, 이젠 종 잡을 수 없는 답답함에 어쩔 줄 몰라 한다.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예의 부드러운 음성과 정중한 태도로 잠적한 유태인 가족들에 대한 질문을 이어 나가던 란다 대령. 돌연, 자신의 별명인 '유태인 사냥꾼'에 대해 몇 마디 나누더니,
란다 대령 : 독일인을 짐승에 비유하면 '매' 에 가깝죠. '노련하고 강인한 포식자'. (은유①) 반면 유태인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쥐새끼'에 가깝죠. (은유②)
독일군이 유태인의 은닉처를 수색한다 칩시다. 매는 어딜 뒤질까? (은유③)
헛간, 다락, 천장을 뒤지겠죠. '쥐가 숨을 만한 모든 곳을' (은유④)
하지만 '매가 생각 못할 장소가 많죠'(은유⑤)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매'니, '쥐'니 하는 란다 대령의 얘기.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듣고 있었으나. 얘기가 진행 될수록 왠지 모르게 밀려드는 이 불안감과 압박감은 무슨 까닭인가? 그리고 얘기의 끝에 란다 대령의 유도질문과 회유책에 꼼짝없이 말려든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하는 라파디뜨. 어느덧, 유태인을 숨겨 준 곳을 대라는 란다 대령의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명령에 눈물을 머금고 마루 아래를 가리키는 라파디뜨. '유태인 사냥꾼' 란다 대령의 치밀한 심리협상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순간이다.
2. 한스 란다 대령의 고도의 심리제어 협상전략(은유 ①②②③④⑤): 소리없이 설득한다. 협상의 스텔스(Stealth) 전략,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법 이 시대 최고의 가치투자 전문가이자 거부로 알려진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그 뛰어난 재담으로도 유명하다. IT산업의 급성장에 따라 주식시장이 연일 상종가를 칠 때 누군가 현재의 증시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어 왔다. 다음은 그의 대답이다. "높은 파도가 밀려 오면 모든 배들이 두둥실 떠 밀려 올라가죠. 그러나 높았던 파도가 밀려가고 나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죠. A rising tide lifts all boats. It's not until the tide goes out that you recognize who's swimming naked." 어려운 투자 전문용어 하나 없이, 눈 앞에 그림을 그리 듯 분명하고도 명쾌한 전망 분석이다. 가히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지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이 얘기를 듣는 동안, 그리고 듣고 난 직후의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 첫 번째 공통된 반응은 터져 나오는 웃음이다. 웃지 않을 수 없다. 방금 그의 얘기대로 된다면, 자신이 평생 고생고생 해서 벌은 전 재산이 조만간 휴지조각으로 바뀐다는 날벼락 같은 전망이며, IT 주식을 옹호하는 애널리스트인 자신의 주식 전망이 완전히 틀렸다는 극도의 냉소에 찬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되는 것이다. 좀더 문제의 핵심으로 접근해 본다면, 그의 이러한 얘기를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아무런 반발 없이 즐겁게 듣고 일단은 수긍한다는 것이다. 수십 수백 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와 수치를 제사한 것도 아닌데, 그의 기존의 드높은 명성과 맞물려, 사람들은 예의 꼼꼼한 분석이나 비판 없이 상당 부분 그의 주장을 자신도 모르게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것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마술이다. 그리고 이 마술과도 같은 스톨리텔링의 근간에는 비유(Analogy)와 상징적 은유(Symbolic Metaphor) 라는 문학적 기법이 꼭꼭 숨겨져 있다. 즉, 순실, 수익, 비용, 리스크 등의 말들은 듣기만 해도 논리적인 좌뇌가 작동되고, 동시에 우리의 심리는 긴장하게 된다. 이러 까닭에, 귀에 들리는 즉시, 곧바로 부정적(Negative)이고 호전적인(Hostile) 분석(Analysis) 모드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이러한 차갑고 경직된 현실 용어나 상황 정보 대신에, 갖가지 비유로 대체된 '이야기 한 토막'은 새로운 정보에 민감한 좌뇌뿐 아니라 감성적인 우뇌를 동시에 작동시켜, 좌뇌만 작동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삼엄한 논리적 방호벽(Logical Firewall)을 상당부분 우회통과(Bypass)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얘기나 받아 들이기 힘든 상황을, 냉정한 논리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는 동안 거부당하는 위험을 피해가면서, 오히려 별 부작용 없이 상대가 고스란히 수용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바로 이 '스토리텔링' 기법인 것이다. 더욱이, 단순한 사실 전달 때 보다, 당신의 메시지에 대한 효과가 몇배 더 증폭되는 효과가 있음이 여려 연구에 의해 이미 밝혀져 있다. 그런 까닭에 요즘은 스토리셀링(Storyselling)이란 신조어까지 돌고 있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상대를 설득해 왔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 불가의 석가모니, 공자 뿐 아니라, 레이건 대통령 역시 그 놀라운 재담으로 역사적인 협상에서 성공을 이끌어 낸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상대를 설득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에게 강한 매력을 뿜는 스토리텔링 기법, 이제라도 배워두면 요긴한 협상의 스텔스(Stealth) 전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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