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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아닌 '베트남 허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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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아닌 '베트남 허각'을 꿈꾸며

[기고] 노르웨이의 '스텔라 뫙기'와 한국의 '블랑카'

유럽의 북쪽 끝, 백야와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지난 2월 12일 '멜로디 그랑프리 대회가 열렸다. 멜로디 그랑프리란 한국에서도 한창 인기만발인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과 같이 새로운 가수를 발굴하는 포맷의 노래 경연대회로 1960년부터 노르웨이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회에 노르웨이 사람들은 실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 까닭이란 기성 가수가 아닌 신예들의 신선한 무대를 볼 수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그 해 노르웨이 대표로서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유로비전 콘테스트는 1956년부터 시작된 유럽 규모의 노래 경연대회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스포츠 분야를 제외하고서는 가장 높은 동시 시청률을 보일 정도로 전 유럽 사람들의 이목이 이 대회에 집중되고 있다. 아바ABBA(1974년 스웨덴 대표로 우승)와 셀린 디온 (1988년 스위스 대표로 우승)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이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유럽 각국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문화 올림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1960년부터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참가해왔으며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시크릿 가든의 1995년 우승을 포함 총 3차례의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노르웨이 사람들 역시 다른 유럽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그 대회에 노르웨이의 대표로서 출전할 가수를 선발하는 국가 대표 선발전격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디 그랑프리 대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멜로디 그랑프리와 유로비전 콘테스트라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외국의 음악축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한 이유는 올해의 노르웨이 대표자로 선발 된 가수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며 그녀는 현재의 대한민국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스텔라 뫙기
하얀 피부와 금발의 머리카락, 푸른 눈을 가진 용맹함으로 그 옛날 이름을 드높였던 건장한 체구의 바이킹의 후손들이 사는 땅 노르웨이, 올해 유럽 각국의 대표자들에 대항 할 노르웨이 대표 가수로 선발 된 사람은 바로 스텔라 뫙기 (Stella Mwangi)라는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체구의 검은 머리카락, 검은 피부가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참고) 노르웨이의 대표로서 흑인이라니, 사뭇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러한 의구심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녀에게 멜로디 그랑프리의 우승을 안겨준 노래는 '하바하바'라는 제목의 흥겨운 리듬의 아프리카 풍의 댄스 곡이다.

스텔라는 4살 때 노르웨이로 이민 온 케냐 출신 이민자의 자녀로 어릴 때부터 노르웨이에서 힙합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해왔고 2008년부터는 케냐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는 가수로 성장했으며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멜로디 그랑프리 무대에 자신의 할머니로부터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아프리카 풍의 노래 '하바 하바'로 출사표를 던지고 도전,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케냐 출신 이민자의 아프리카 풍 음악을 자국을 대표하는 가수와 노래로 선발하여 다른 유럽 국가들과 겨루는 유로 비전 콘테스트에 내보내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이번 선택을 지켜보면서, 이것이야 말로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다문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이와 같은 노르웨이 사람들의 선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실 2009년 노르웨이 멜로디 그랑프리를 우승하고 유로비전 콘테스트에서도 역대 최고점 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한 알렉산더 뤼박 역시 4살 때 벨라루스에서 노르웨이로 이민온 이민자의 자녀로, 이민자의 자녀를 자국 대표로 인정했던 노르웨이 인들은 결국 더 나아가 이민자들의 문화까지도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인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의 경우 이민자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작년 통계에 의하면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11,4%가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 노르웨이는 예전부터 정치적, 평화적인 이유로 난민, 망명자들을 전세계로부터 받아들여왔고, 그렇게 유입된 이민자들이 다시 그들의 가족들을 초청함으로써 초창기 이민자들이 구성되었다. 현재까지도 비유럽계이면서 가장 큰 이민자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파키스탄, 소말리아, 이라크 또는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며, 최근 들어서는 유럽 연합과의 협약을 통해 폴란드계 이민자들의 유입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과 같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이민자의 비율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현재 특히 수도인 오슬로의 경우 전체 인구의 27%가 이민자로 구성이 되어있을 정도이며, 오슬로에 위치한 중학교 학생들의 3분의 1가량이 노르웨이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생들로 조사가 될 정도로 가파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노르웨이 정부에는 이민자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노르웨이어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이와 함께 특히 이민자 자녀들이 학교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언어적, 문화적인 차이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기울임으로써 이민자들이 노르웨이 사회로 자연스럽게 편입될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편이다.

이와 함께 10명중 7명의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민자들이 노르웨이를 문화를 보다 풍요롭게 해준다고 설문조사에 응답했을 정도로 이민자들의 문화를 노르웨이 문화 속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편이다.(Blom, Svein (2010) Holdninger til innvandrere og innvandring 2010. Rapporter 56/2010. SSB)

국가는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적 공동체라는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한 이래로 단일 민족 국가관을 대체 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써 소리 높여 다문화 사회를 주장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의 상황에서, 진정 여러 문화가 차별 없이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려면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 역시 열린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노르웨이의 대표로 선발 된 케냐 이민자를 보며 해보았다.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에서 결국 새로운 사회 구성원들의 융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텔라 뫙기가 노르웨이 대표로 선정된 뒤에 노르웨이 사회에서 아무런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오우레 시의 부시장인(varaordfører, Aure commune) 리타 옴보스타드 (Rita Ormbodstad)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아프리카에 가서 유로비전 콘테스트를 봐야겠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코멘트를 남겼다가 사회적인 비난을 받고 공식 사죄하기도 하였으며(☞ 참고), 노르웨이 국영 방송국인 NRK의 경우 스텔라 뫙기와 관련된 기사에 너무 많은 인종차별 덧글이 달려 덧글 기능을 잠시 폐쇄하기도 하였다.(☞ 참고) 모든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러한 아프리카 음악의 자국 대표화를 반긴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논란은 있을지언정 '다른' 이도 대표로 선발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노르웨이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 그러한 시선들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고 비판, 사죄하는 '자정적인 모습' 에서 다문화 사회가 정착될 수 있는 시발점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다문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어떠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미 새로 결혼하는 부부 중 10%가 넘는 이들이 국제결혼을 하는 커플일 정도이니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 한국인의 범주에는 단군의 자손이 아닌 이들도 대거 포함되게 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혼혈 아동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차별을 겪어야 했고 결국 많은 아동들이 해외 입양 등으로 한국 땅을 떠나게 만들었을 정도로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닌 자' 들에 대해 배타성을 보여왔었다 (그 후 7-80년대를 거쳐 계속 이어지고 있는 해외 입양의 경우는 혼혈 아동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미혼모에 대한 차별의 양상을 보이지만 본문과 연관이 없기에 다루지 않겠습니다.) 한국 사회는 현재 과연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과제 속에서 얼마나 여유로움을 포용성을 가지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한국 사회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방송들이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들 또는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수의 방송이 그들의 '한국화' 과정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얼마나 한국말을 잘하는지, 얼마나 한복이 잘 어울리는지, 얼마나 한국 요리를 잘하고 김치를 잘 먹는지 또는 얼마나 시부모님을 각별히 모시는지, 이러한 통상적인 '한국 문화'의 카테고리에 얼마나 잘 포함 된 사람들인지를 다문화 사회의 '좋은 예'로써 보여주는 것이 과연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기존의 문화에 다른 문화가 유입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며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일터인데 유입되는 새로운 문화의 영향에 대한 관심은 없이 얼마나 기존의 문화에 새로운 이들이 잘 적응하는지 만을 평가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문화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다름에 대한 포용이 이루어 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결국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이 한국인이 되더라도 그 개인의 한국화 과정을 통한 한국으로의 흡수에 그칠 뿐이며 그들의 문화를 한국 사회에서 수용하는 단계까지 나아갈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새로운 한국인'들이 옛 문화에 대한 향수를 느낄때에는 결국 그들은 그들끼리만 어울리며 향수를 달랠 수 밖에 없게 될것이며 이러한 과정이 지속된다면 이민자 거주지의 '게토화'가 이루어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가 하나로 융합되지 못한 채 그저 서로 다른 문화끼리 배척하는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어느 날,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의 그 화려한 막은 오르고 두근두근, 이번 회의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내가 응원하는 가수는 과연 우승을 차지 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들 마음을 졸이며 그 흥겨운 잔치에 이목을 집중한다. 한 참가자가 무대에 오른다, 베트남계 한국인. 그녀는 베트남 전통 음악으로 흥겨운 무대를 만들어 낸다. 다음 참가자는 네팔계 이민자,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네팔의 멜로디이지만 신기하게도 묘한 매력이 있어 들을수록 멜로디에 빠져든다. 그 해 여름, 한국에는 베트남문화나 네팔 음식이 유행을 하게 된다는 즐거운 기대를 해본다. 언젠가는 이런 장면도 펼쳐지기를. 검은 얼굴, 어눌한 한국말로 '사장님, 나빠요.'를 말하던 블랑카가 환하게 웃는 날이 오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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