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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는 다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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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는 다르지 않나

[남재희 칼럼]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단상(斷想)

지난 1일 밤 KBS1 <심야토론>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는 요즘 진행되는 교과서에서의 이 문제에 관한 가장 긴 토론이었다. 쟁점의 이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나 흡족한 것이 아니어서 거기에서 논의된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하여 생각해 볼까 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 사회민주주의가 포함되느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헌법이나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한나라당의 황우여 원내대표도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한 계파"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이번 토론에 나선 한나라당의 조전혁 의원이나 이명희 교수 등 '자유민주주의 주장파'도 비슷한 입장이다. 조 의원은 "자유민주주의 안에 유럽과 같은 복지나 사회민주주의가 포함된다"고 하였고, 이 교수는 "사회민주주의는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계급주의가 아니고, 정책의 차이일 뿐이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 수호파'인 민주당의 강창일 의원은 "사민주의는 정당의 정책"이라고 말했고, 주진오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에 사회민주주의가 포함된다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독일의 경우, 사회민주주의자가 자유민주주의에 포함된다는 것을 승인치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회민주주의라고 하여 한 가닥의 사상이 아니고, 그 발생과정이나 발전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무지개의 색깔처럼. 간단히 보자. 영국의 경우, 자유주의(liberalism)에서 발전하여 복지문제, 노동조건의 향상문제 등 복지주의와 사회주의의 초기적 형태를 띠어갔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선호하지는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73)을 그 사상전환기의 대표적 학자로 손꼽는다.

또 하나는 독일의 경우, 마르크시즘에 수정을 가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우선 출발점으로 한다. 그 후 수정에 수정, 변화에 변화를 거쳐 독일의 사회민주당(SPD)에까지 이르렀다. 프랑스의 경우는 생략한다.

영국에서 발전한 노동당은 사회민주당이 분당하여 나가는 사태를 겪기도 했고,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에 와서는 '제3의 길'을 내세우는 등 대단한 변모를 보여 자유주의(liberalism)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지금의 보수당과의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에는 전에 사회민주당이 합류해 들어간 것이기에 아직 사회민주파가 계속해서 존재한다. 독일에서도 게르하르트 슈뢰더 수상 때 '제3의 길'을 따라 우선회가 있어서 사민당에서 좌파들이 분당해 나가 좌파당을 구성했다. 미국의 유명한 진보학자 C.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의 책을 보니 사회민주당들이 리버럴(liberal·자유민주주의자)이 되었다고 꼬집고 있다.

그와 같이 사회민주주의는 다양하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그러한 사상의 조류에 속하고 있는 듯하지만 공식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근래 민노당은 강령을 바꾸면서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하였다. 요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아닌)의 목표를 의회주의의 방식으로(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라) 추구하려는 것이 광의의 사회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정당이나 정치사상가에 따라 그 구체적 정책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라는 말이 혼용되었으나 요즘은 민주사회주의란 용어를 잘 안 쓴다.

이와 같이 볼 때 사회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에 포함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고 그 조류의 한 가닥을 확실히 잡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한 가닥일 뿐, 모두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겹치지 않는 부분, 또는 흐름이 더 많다 할 것이다.

그다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의 관계를 보자. 박명림 교수의 설명(<한겨레> 8월 24일 보도)에서 잘 밝혀져 있듯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유신헌법 때 등장하는 것으로 그 전에는 제헌헌법 이래 '민주주의의 제(諸) 제도'라 하였다. 1949년 독일기본법에는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법제처의 영어 번역은 'the liberal-democratic basic order'가 아니고 'the free and democratic basic order'로 되어 있단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라 할 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개념의 유래(由來) 문제를 떠나서도 과오가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민주주의 질서, 민주정치 게임의 규칙을 말하는 것이지 그 질서 안에서 실현되는 정책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KBS1 <심야토론>에서 강창일 의원도 잠깐 그런 뜻의 발언을 했다) 민주주의란 정치제도의 그릇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 거기에 담길 내용물을 정한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으로 건너뛰는 과오이다. 법적·제도적인 것과 정치적·사상적인 것은 궁극에는 합류하는 것이지만, 전자는 법적·제도적인 것이고, 후자는 정치적·사상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농담 삼아 말하면, 민주사회 하면 민주사회주의가 될 수 있고, 자본 하면 자본주의, 사회하면 사회주의가 될 수 있는가. 해방 후 한때 대학의 사회학과가 사회주의자들이 많다고 몰린 적도 있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 선거(자유·평등·보편·비밀)에 의한 의회와 행정부의 구성, 삼권분립(때로는 5권분립도 있고, 내각책임제의 경우는 의회와 행정부가 통합되다시피 하지만), 법치주의, 자유시장경제, 사유재산보호(마지막의 둘은 국가에 의해 제한되거나 통제되기도 한다) 같은 것이다.

여기서 자유민주주의를 따르느냐, 사회민주주의를 따르느냐는 사상이나 정책의 차이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특히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문제는 재벌문제, 세금 문제 등과 관련하여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우리의 현행 헌법은 특히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말하여진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 조항 등 임시정부 때부터 내려온, 삼균주의(三均主義)적이기도 한 사상적 흐름을 담고 있었다.

우리 국가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로 교과서에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측은 특히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확연히 구분하여 혼동을 없애자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간혹 그런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민민주주의' 운운이 공산독재라는 점은 정치의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속담에 "무엇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게 있다. 북한의 사기적인 어법이 두려워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민주주의'란 훌륭한 개념을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북한 때문에 우리는 '인민'이나 '동무' 등 많은 좋은 어휘를 빼앗기다시피 하고 있다. 이름 있는 정치 문서에서는 모두 민주주의로 되어 있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대단한 명저이다.

KBS1 <심야토론>에서 한국현대사학회의 이명희 교수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민주화운동만 내세운다. 민주화운동 중심으로만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때 국민의 기본권 신장이나 평화적 정권교체도 평가하게 된다"는 대충 그런 요지의 말을 했고, 강창일 의원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옹호하려는 의도냐"고 맞섰다. 여하간 이번의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를 놓고서의 교과서 논쟁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핵심은 이런 것이다. 일부에서는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자는 주장이 결국 자유시장주의나 신자유주의로 연장, 확대되어 종당에는, 예를 들어 헌법 개정 시에 제119조 2항 등 재벌 측이 그동안 계속 삭제나 개정을 주장해온 헌법·법률 조문을 개폐하는 걸로 연결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하고 있다. 분명 그런 우려가 있다고 본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그런 이론을 펴왔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진보정당, 특히 민주노동당을 겨냥하게 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민노당을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단체들의 성명서가 심심치 않게 신문에 나는 것을 보아왔고, 또 그런 논조를 펴는 언론도 있었다. 중세의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21세기의 문명·민주화 시대에 그런 시도를 혹여라도 하겠는가.

그동안의 민주화 노력으로 확보한, 아주 만족할 수는 없으나 그런대로 어지간한, 우리의 사상 영역을 왜 굳이 좁혀서 옹색하게 만들려는지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다.
▲ KBS1 <심야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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