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두환 전 대통령 등 불법 재산 환수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법안 통과에 앞장서온 최재성 의원이 '전두환 추징법' 통과에 대한 소회를 밝혀왔다. 최 의원은 "국가 권력도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16년의 세월, 그리고 80년 광주로부터 흘렀던 33년의 세월동안 가슴 치고 아파했을 광주시민들과 국민 여러분께 이 법을 바친다"고 밝혔다. <편집자>
1984년 저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발 학생운동만은 하지 말라던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살인마 전두환. 광주시민을 학살한 내란의 수괴. 국민 위에 군림한 독재자.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정 축재자.
피가 끓은 20대에는 전두환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조차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수배와 투옥을 거듭 감내해야 했지만, 전두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반독재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청춘을 바치던 시대였습니다.
1988년으로 기억합니다. 87년 대선에서 신군부가 다시 정권을 잡았고, 저는 당연한 수순처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 최재성 의원(사진 왼쪽)을 비롯한 민주당 '전두환 전 대통령 등 불법재산 환수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앞에서 추징금 납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재성 의원실 |
당시에 제가 멱살을 잡고자 했던 이창석은 여전히 전두환 은닉 불법 자금 문제의 핵심 인물입니다.
당시에도 전두환의 측근들은 구치소 안에서 보약을 챙겨먹고 현금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프지 않은데, 구치소 병동에서 지내는 특혜를 보냈습니다.
그 때도, 그 이후에도 제대로 단죄되지 못한 전두환의 권력 비리의 잔재들은 광주시민들과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1995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은 백담사를 거쳐 감옥으로 갔습니다. 1997년 12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전두환을 사면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보며 존경의 마음 한편으로는 원망도 했습니다. 학살자에게 어울리는 곳은 연희동이 아니라 감옥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김대중 대통령이었기에, 국민이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2004년에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습니다. 그 이후 정신없는 일정과 수많은 현안 속에서 전두환 문제의 해결을 미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다시 기억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전두환 자신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29만 원' 발언을 비롯해서, 육사에서 사열을 받고, 골프 여행을 다니고, 전두환 일가의 호화 생활이 끊임없이 뉴스를 통해 나왔습니다.
80년대, 전두환과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않겠다며 거리를 누볐던 동지들 가운데, 현재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전두환에게 전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광주 항쟁의 역사, 학살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부채입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역사를 제대로 구현할 책임에서 단 하루도 자유롭지 않았기에 뉴스에서 전두환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때로 자조했고, 때로 분노했습니다.
유기홍 의원, 김동철 의원, 박홍근 의원, 최민희 의원, 우원식 의원 등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전두환 부정축재 단죄를 위한 법안을 내놓기 시작했고, 저 역시 전두환 일가의 불법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공무원범죄몰수특례법)을 제출했습니다.
뜻을 모아, 이번 6월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내자고 결심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야간의 합의없이 어떤 것도 처리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우리의 의지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어려운 만큼, 여야 간의 합의를 끌어낼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첫 관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를 통과시키는 것.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과는 새벽 '목욕탕 회의'를 하며 뜻을 맞췄습니다. 소위 위원인 전해철 의원과는 하도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제가 '전두환'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논리정리 완료"라는 명쾌한 답을 주곤 했습니다.
전두환 불법자금 환수 특위 위원이며 법안소위 위원인 박범계 의원은 법조인인 동시에, 배짱 있는 협상가이기도 합니다. 박범계 의원과 법 통과 경로를 찾기 위해 3~4일을 붙어 다니며 '모의'했습니다.
검찰이 전두환 추징금 환수를 위한 전담 팀을 꾸리고 있던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법 개정을 위해선 여야 간 합의와 더불어 정부가 동의를 해주는 것이 중요한 관건입니다.
은닉 자금 확인의 어려움을 겪던 검찰 수사팀은 민주당 의원들이 제기했던 법안의 내용을 담고, 수사 과정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한을 정리해 정부 측 대안을 가져왔습니다. 그 대안이 이번 국회를 통과한 안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여론이었습니다. 전두환 불법 자금 환수를 위한 작은 회의 하나, 캠페인 하나에도 언론사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언론의 반응은 국민 여론의 바로미터라고 저는 믿습니다. 뜨거웠던 취재 열기를 보며, 이번 6월 국회가 전두환 불법자금 환수법 통과의 적기라는 판단에 확신을 더해주었습니다.
이번 6월 국회에서 통과된 전두환 불법 자금 환수법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을 검찰에 부여한 것입니다. 최고위 공직자의 범죄와 불법 재산 환수를 위해, 모든 금융자료와 과세자료에 접근을 허용했고, 관련자에 대한 소환과 수사의 모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16년간 역사와 국민을 조롱해온 전두환 일가의 '화려한 휴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전두환이 정말 29만 원 밖에 없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부디 검찰이 다른 정치적 고려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학살의 상처는 오늘도 진행 중인 비극입니다. 지금도 5월 광주에선 한 집 건너 한 집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없이 자라야 했던 아이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처, 반쪽 배우자를 잃은 남편과 아내의 상실감은 어떤 약으로도 아물게 할 수 없습니다.
이번 법 통과가 부디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닌 채 살아온 광주시민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전두환 불법 자금 환수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던 6월26일. 법 통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이 말을 하는데 오랜 기억 속 어딘가에서 침전돼 있던 뜨거운 감정 한 줄기가 다시 나와 저의 콧등을 때렸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을 총칼로 짓밟았던 내란의 수괴입니다. 33년이 흘렀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6년이 흘렀습니다. 전두환 씨와 그 일가들은 법과 국민과 역사를 힐난하고 조롱하고 상처를 내면서 호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국가 권력도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16년의 세월, 그리고 80년 광주로부터 흘렀던 33년의 세월동안 가슴치고 아파했을 광주시민들과 국민 여러분께 이 법을 바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