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을 등진 서종태와 그의 딸 서수정 |
연극에서 <화동주보>는 <정독주보>로 바꾸 고 경기고등학교는 정독고등학교로 바꾸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바꾸었다.
정치적 사건을 벗어나서 한 시대의 기억과 아픔을 참착하고 차분하게 다루기 위해서 장우재 작가는 <화동주보> 제작자 학생 7인에다가 이들의 선배, 김병준이란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였다. 김병준은 연극에서 악역을 맡는다.한국적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고등학생 7인 정낙영, 민대치, 추달호, 변희석, 정우림, 방수연, 서종태는 차례차례 종로경찰서에 잡혀간다. 제일 먼저 잡혀간 서종태는 배후를 캐묻는 수사관에게 심하게 매를 맞는다. 원래 이들은 누구라도 붙잡히면 고문당하지 말고 무조건 순순히 불어버리자고 약속을 하였다. 배후도 없고 감출 게 없는 이들은 맞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그냥 몇 년 정도 감옥에 갈 생각도 했었다고한다. (당시에 유신에 반대하면 징역 3년을 살게 되어 있었다.)
대학생 김병준이 유인물이 나온 날 우연히 학교에 들렸다가 연행되어 7인과 같은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다. 대학생은 명문 법대생인데 먼 친척 가운데 월북한 사람이 있어서 심하게 취조를 받는다. 대학생과 이들의 연관을 캐던 수사관은 결국 배후가 없다는 사실이 들어나자 법대생을 훈방하고 만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심하게 구타를 당해 얼이 빠진 법대생은 얼떨결에 형사에게 '충성'이라는 어색한 인사를 하고 만다. 억눌린 상황에서 7인은 법대생의 행동을 참지못하고 크게웃고 만다. 특히 제일 심하게 매를 맞은 서종태가 더 크게 웃어버린다. 그의 웃음을 김병준은 잊지 못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의 웃음을 김병준은 평생 잊지 못하는 치욕으로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된다.
아무런 배후가 없는 사건이어서 이들의 사건은 선고유예를 받고 유인물 사건은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심하게 맞은 서종태는 어른에 되어서 고문의 후유증이 나타나자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 세상을 등지게 된다.
정독고등학교 홈커밍데이 연극
| ▲ 서종태의 딸 서수정의 뮤지컬 오디션 장면 |
한편 이들의 고등학교 선배 김병준은 법대를 졸업하고 법관의 길을 가지 않고 뮤지컬 제작자로 변신한다. 우연히 서종태의 딸 서수정은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 되어 김병준이 제작하는 뮤지컬 배역 오디션에 참가한다. 주역을 맡을 충분한 실력을 갖춘 서수정이지만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서수정은 제작자 김병준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유를 찾아 나선다. 결국 서수정은 친구와 매니저를 통해서 자신의 진로를 막고 있는 김병준과 아버지 서종태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알아내고 아버지의 가출과 김병준의 방해가 아버지의 과거 기억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되고 '7인의 기억' 연극연습을 하고 있는 아버지 친구들을 만난다.
서종태의 딸을 만난 친구들은 서수정을 방해하고 있는 김병준을 찾아가서 따진다. 친구들은 김병준으로부터 그들이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경찰서 장면을 듣게 되고, 이들의 웃음에서 모욕을 느낀 김병준이 서종태를 만나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서수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란다. 그제서야 서수정도 아버지의 과거를 친구들과 김병준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된다.
친구들은 김병준을 압박하지만, 서수정은 오히려 아버지 친구들에게 자신의 오디션에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친구들은 서종태도 찾지 못하고 서수정도 도와주지 못할 바에야
'7인의 기억'이 무슨 소용있느냐면서 연극공연에 강한 회의를 나타낸다.
서수정은 김병준을 찾아가 아버지의 웃음으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행동을 한 김병준에 항의한다. 김병준은 서수정의 당돌한 태도와 부모의 과거 기억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서수정에 큰 자극을 받는다. 김병준은 뮤지컬 제작을 다른 회사에 넘기면서 서수정의 주인공 선발을 계약 조건으로 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서수정은 동료 뮤지컬 배우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서수정은 아버지 친구를 찾아가서 뮤지컬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결심을 털어놓고 '7인의 기억'을 꼭 성공시키라고 권한다. 뮤지컬을 포기하겠다고 찾아온 서수정에게 김병준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함께 마무리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7인의 기억' 연습장을 찾는다. 연습장 분위기가 달라져갈 무렵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던 서종태가 연습장을 찾아온다. '7인의 기억'을 제각기 추억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과거의 아픔을 털어 놓는다. 서수정은 자신이야 말로 과거의 기억의 아픔과 무관하기 때문에 제 실력으로 오디션에 다시 응모한다.
7인과 김병준은 서종태까지 나타나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을 재연하는 연습장면을 겪고나서 '7인의 기억'을 연극으로 올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같이 지난 세월이 가져다 준 감회에 젖는다.
연극과 뮤지컬의 대결
| ▲ 서수정이 뮤지컬 주인공에 캐스팅되자 아버지와 친구들, 김병준이 함께 기뻐하는 장면 |
과거 기억의 쓰라림을 추억해야하는 연극이라면 당연히 재미없는 주제라고 할 것이다. 재미없는 공연은 예술의 적이다. 모름지기 최고의 수준에 달한 연극은 '웃기고, 울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어야 한다. 오죽하면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서사극에서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으려고 했었고 성공한 작가요 연출가다. 장우재 작가 겸 연추가는 '7인의 기억'의 재미를 연극과 뮤지컬의 대립에서 찾으려 하였다.
서종태를 찾기 위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홈커밍데이에 올릴 연극 '7인의 기억'을 준비한다. 서종태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연극을 도와줄 대학생 한명을 참가시킨다. 연극이라지만, 프로 연극도 아닌 아마추어 연극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누구나 연극을 해 보지는 않았더라도 연극 연습을 구경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다 안다. 6인의 친구들은 현재 교수, 신부, 사업가, 학원원장, 화가, 대기업 임원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이 맡아서 연극 연습을 한다.
한편 아버지로부터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도움을 얻지 못한 서수정은 뮤지컬 배우가 꿈이다. 뮤지컬 배우 지망생에게 배역 오디션은 뮤지컬 출연보다 더 중요한 일이며 뮤지컬 오디션에 응모하고 오디션에 참가하는 일은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보다 더 절실한 문제다. 원하는 배역을 얻기 위해 뮤지컬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일은 감수해야할 과정이다. 지망생에게는 매니저가 붙지 않지만, 가능성 있는 신인 지망생에게 간혹가다가 매니저 지망생이 붙어 오디션을 도와 주기도 한다. 서수정은 작품에서 <더 미러 The Mirror>에서 영어선생을 짝사랑하는 주인공 애릭 역에 도전한다.
보통 뮤지컬 오디션은 개별 오디션도 보지만, 단일 배역이 아닌 코러스 참가자도 뽑기 위해 장면 오디션을 춤과 노래-합창을 함께 보기도 한다. 서수정은 코러스 춤과 노래, 개인 노래를 부르며 오디션에 참가한다. <더 미러>는 극중극 형식으로 고등학교 영어 선생과 애린의 사랑이 애틋하게 전개된다. 서수정은 <더 미러> 오디션에서 애린이 부르는 노래, <거울아 거울아>를 감동적으로 마음을 울리게 불러서 애린 역에 캐스팅 된다.
거울아 거울아 (골든 리어리 노래말, 김현림 작곡)
말해줄래. 거울아, 누가 가장 슬퍼 보이니.
힘들고 지쳐 피곤한 몸 아직 죽진 않았구나
진실을 말해줘 거울아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아무 것도 볼 수 없어도 깊은 어둠이 나를 감싸도
마치 보라색 저 달처럼 빛을 비추며 내 곁에 있네
움직일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어 아픈 상처
한 소녀가 나를 바라보네 눈이 부신 이 막힌 방에서
작은 거짓말일 뿐인데- 소녀는 밤에 잠도 들질 못했어-
잠들지마 울지도 마 이건 상처, 아픈 상처
아파도 웃어 아파도 울어 아파도 살아가야해
아파도 기억해 이 순간 아픔은 날 떠날 수 없어
너무 그리운 가족 어디 있나요
이제 난 알았어 나는 행복할 수 없어
아빠 때문에 난 행복할 수 없어
모두 아빠탓야. 내 이름 너무 끔찍해-
미안해요.미안해요.미안해
내 눈엔 내 얼굴만 보여 모든 게 현실이 아니길 기도 해
아빠 얼굴 떠오를 때면 빨리 잊혀지길 기도 했어
너무 힘들고 가슴이 아파
닫혀진 내 영혼, 아픈 상처
말해줄래 거울아, 누가 가장 슬퍼 보이는지
혹시 날 보고 있나요, 내 목소리 듣리나요
다음번에 만나면 웃으며 인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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