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의 <서울+기억> 창작시리즈두 번째 작품은 김은성 작, 전인철 연출의<순우삼촌>이다. 이 작품 역시 1970년 초, 정확하게 1974년을 시대배경으로 두고 있다.
당시 강남이 막 개발되려던 때였고, 잠실은 섬이었다. 요즘 화제가 된 봉은사(奉恩寺)를 가려면 한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가던 시절이었다.
이 작품은 연극 <시동라사>에서 이 작가와 연출가로 호흡을 맞춘바 있는 김은성, 전인철의 두 번째 작품이다. 둘은 이미 <시동라사>에서 30대 작가, 연출가가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감동적인 리얼리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순우삼촌>은 두 가지 창작 동기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하나는 연출가 전인철이 강원도에서 서울에 와서 살면서 겪은 서울에 대한 기억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작가 김은성이 안톤 체홉의 <바냐삼촌>에서 받은 영감에서다.
연출가 전인철은 강원도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큰댁이 정릉에 있어서 설에 서울을 방문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기억이 생생한 만큼 서울은 그에게 꿈과 동경의 공간이었다. 전인철은 스물 일곱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서울에 대한 아름다움 꿈은 십년의 서울살이를 통해 고통으로 변해갔다.
서울시극단이 마련한 <서울+기억> 창작포럼에 참가하여 전인철은 서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면, 가구 수는 얼마이며, 가구당 한달 평균 수입은 얼마이며, 외국인 비율이나 남녀의 비율을 알게 되었다. 전인철 연출가는 서울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고 난 후 서울에서 느낀 고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인철은 서울을 너라고 칭하고 친구에게 하듯 말을 걸어온다.
<순우삼촌>이라는 연극은 그렇게 만들어졌어. 이 작품은 너(서울), 그리고 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야. 사람들은 어느날 밤, 자신이 정말 무엇을 꿈꾸고 사랑하고 두려워하는지 말하지. 사람들은 살면서 꼭 해야 할 것들, 그러니까 가족에 대한 책임과 돈 버는 일 때문에 자기가 정말 살고 싶었던 삶을 살지 못해서, 자신의 삶이 어느 순간 앞 길을 잃고 멈춰진 상태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순우네 가족의 삶을 보며 내가 꿈을 꾸었던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렇게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거야. 우리는 '개발'과 '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네가 개발되면 될수록 우리는 너한테서 밀려나게 될 거야. '개발'과 '성장' 보다 '보전'과 '교감'이 중요하다고 이 연극은 말하고 있어. (전인철, 연출의 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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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연출가 전인철 (오른쪽) 작가 김은성 |
잠실은 원래 섬이었다. 한강 본류인 송파강과 샛강인 신천 사이에 있던 섬이었다. 70년대 초, 송파강 매립공사가 시작되고 잠실대교가 놓이고 잠실은 섬에서 '강남땅'이 되었다. (지금 송파강의 일부는 석촌호수가 되었다) <순우삼촌>은 잠실이 섬에서 강남으로 변하는 갑작스럽고도 커다란 변화를 아무런 준비없이 맞닥뜨려야했던 잠심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늘고, 개발과정을 통해 세월은 '서울'이란 도시 공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많이 바꾸어 버렸다. 사람들은 변한 세상에 맞게 도시를 바꾸었고, 변한 도시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꾸면서 사람과 도시는 함께 변해왔다. 그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김은성 작가는 안톤 체홉의 <바냐삼촌>에서 이야기의 틀과 인물 관계를 빌려왔다.
노총각 농부 순우는 평생 매형 최종길을 위해 살아왔다. 대대로 물려온 잠실 섬 일대의 땅을 터전삼아 여름에는 오이와 참외, 가을에는 땅콩, 배추, 무를 수확하여 번 돈으로 미국 유학 중이 매형이 뒷바라지를 하며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순우 옆에는 늘 조카 지숙(최종길의 딸)이 있었다. 최종길과 먼저 죽은 아내 사이에서 난 지숙은 어려서부터 순우와 함께 지내며 농사밖에 모르는 촌놈, 촌년으로 열심히 일만 해왔다.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종길이 젊은 제자이자 연인인 민다정과 함께 잠실 섬으로 오자 이들의 전원의 삶은 뒤죽박죽 얽힌다. 순우가 추구했던 자연과 교감을 이루며 이웃과 더불어 살았던 삶의 방식은 매형 종길의 도시적인 삶의 방식과 충돌한다. 한강 개발 붐이 불어오자 종길은 대대로 내려오던 땅을 팔고 서울로 시내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매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순우는 큰 소동을 벌이고, 마침내 이들은 제각기 제 살길을 모색하게 된다.
안톤 체홉의 작품과 달리 김은성 작가와 전인철 연출은 자연과 교감하고 살아가는 순우네 사람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 자연을 의인화한 장면을 집어넣었다. 인간이 강과 대화를 나누고, 나무와 새와 교감하고, 그러한 자연안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다투고 울고 화해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의 일상을 연극적인 상상력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무, 강, 새 들이 의인화한 등장인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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