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한고학연은 '고등학생 권리 찾기'를 위한 학생회 연합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학생회 연합 조직이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아 아직 대중조직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실제로 출범 이후 한고학연은 '비정치성'을 강조했다. 활동 내용도 여러 교육 현안들에 대한 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권리침해 신고를 받아서 대처하고, 학생회 운영 노하우(기법)를 나누는 캠프를 여는 정도였다. 나름의 의의가 있는 단체였고 한고학연의 가치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는데, 어쨌건 몇몇 언론의 보도처럼 전교조와 연계되어 있다거나 교육 문제나 사회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려 했던 단체는 아니었다. 아마 '학생회연합'이라고 하니까 언론에서 지레 대학생운동의 학생회 총연합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자극적인 기사를 쓴 것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거기에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학생회 연합 같은 조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단지 '해프닝'이 아니었다. 한고학연은 이런 의혹(?) 때문에 출범식 장소를 빌리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예정된 출범식 일정이 늦춰졌다. 한고학연 출범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학교에서 교사, 교장 등에게 탈퇴를 종용당했으며, 경찰로부터도 조사를 받았다. 출범식에도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파견되어 감시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결사의 자유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제 뜻대로 모여서 단체를 꾸리는 것은 누구나 자유로이 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고학연은 정부로부터 학교로부터 많은 방해를 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고학연은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받지도 못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겐 실질적으로 결사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 2005년 6월 6일.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회 김백건(당시 중앙대학교부속고등학교 학생회장,왼쪽) 의장이 예술의전당 문화사랑방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교조에 이러는데, '학생연합' 같은 것이 생기면?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3년. 이번에는 전교조가 도마 위에 올라있다. 정부가, 교원노조법상 해고된 교사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으니, 조합원들 중 해직된 사람들은 쫓아내도록 규약을 바꾸지 않으면 전교조를 설립 취소시켜버리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현재 전교조 규약은 "조합원이 조합 활동을 하거나 조합의 의결기관이 결의한 사항을 준수하다 신분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본 경우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 신분을 보장하고 조합원 또는 그의 가족을 구제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당한 조합원 9명이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사학비리를 고발하거나 학생인권 문제 등으로 비판적 활동을 했다가 해직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정부에 의견을 보낸 것이나, 초기업적 노조의 경우는 해직자나 구직자 등도 조합원으로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나, 수년 전에 정부도 교사 노동조합에 해직자를 포함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합의를 했었다거나,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 접어두자. 그저 나는 이번에 전교조가 노조 설립 취소 위기에 몰린 것을 보면서,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봤던 한고학연의 일이 연상되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학생도 아니면서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유이다.
상상을 해보자. 만약 초·중·고등학생들이 실질적인 학생들의 대중조직으로서 수만 명이 가입한 학생연합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고 집단행동을 한다면, 우리 사회와 한국 정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단 그 단체의 간부를 징계하거나 퇴학시키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그들을 학생들로부터 떼어놓고, 이제 학생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학생이 아니니까 그 '학생연합' 단체와 대화 같은 것을 할 때도 그 사람들은 배제하라고 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지 않을까?
이것은 허황한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 학교들 중에는 학생회 임원이 뭔가 학생 인권 같은 것을 주장하며 활동을 하면 그 사람들을 징계하고 징계 전력이 있으니 학생회 임원이 될 자격이 없어졌다며 학생회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1989년에 광주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광고협), 부산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부고협), 마산창원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마창고협) 등이 출범하자 실제로 학교는 그 간부들에게 퇴학 등 징계를 가했고, 정부에서는 구속을 시키기도 했다. 전교조를 보면서 교사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는 까닭이다. 결국 교사들의 조직이건 학생들의 조직이건, 탄압을 받는 이유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없애고 싶어 하는 한국 정부·교육체제의 독재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결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한국 사회 때문이다.
▲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모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과 시민 사회단체 회원들이 '전교조 탄압 분쇄 전국 교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교조가 좋아서가 아니다
나와 같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중학교 때 전교조 교사에게 체벌을 당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느 행사에서 그 교사가 전교조 지회장이라고 소개를 받는 것을 보고, 전교조가 나쁜 조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전교조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교조 안에는 다양한 교사들이 있을 테고, 학교 현장에서 어떤 교사냐 하는 것도 아주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르다는 것 자체가 전교조의 성격을 보여준다. 전교조는 교사들의 노동조합이다. 지도부는 학생 인권이나 교육의 민주화나 입시경쟁교육 반대 등을 말하지만, 그만큼 제대로 실천을 하지도 못하는 그저 그런 다양한 교사들의 단체다. 과연 학생들이 교사들을 좋아할까? 좋아하는 경우야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생과 교사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여 20대가 된 현재도 그 마음으로 청소년 운동을 계속 하는 나 역시, 교사들을 특별히 좋아할 이유는 없다. 굳이 따지면 싫어하는 편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교사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에는 좀 마음이 무겁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체제 안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교사들 쪽은 학생들, 청소년들의 결사의 자유에 대해 그동안 관심이나 가졌었나 의문스럽지만, 그들이 그랬다고 해서 청소년 운동 쪽도 모른 체하는 건 너무 속이 좁은 처신일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공격이라는 것이 전교조 조합원들 중에서도 그나마 학생 인권, 학교 민주주의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다가 해직당한 이들을 배제하라는 내용이다. 이는 전교조 안에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남아 있던 조금의 의지와 관심마저 버리라는 압박과 다름없다. 인천외고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주장하다가 해직당한 박춘배 교사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학생인권운동을 하는 우리가 더더욱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전교조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도 많이 받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요컨대, 나는 전교조를 보면서 자꾸 한고학연이 떠오르고 광고협, 부고협, 마창고협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공감이라고나 할까? 오지랖이 넓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교사의 권리조차 무시하는 정부가 학생들의 권리라고 존중해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다. 그래서 별거 아닌 힘이더라도 보태고 싶다. 정부에게 전교조에 대한 그런 탄압은 부당한 것이며 결사의 자유와 노동조합의 단결권에 대해 개념을 좀 탑재하여 교원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내 마음 한편에서는 전교조 또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때 기꺼이 지지하고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뭐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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