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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아닌 '은밀한 욕망'…또 다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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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아닌 '은밀한 욕망'…또 다른 그녀!

수전 손택은 평생 진실을 알고 싶어 했고, 알리고 싶어 했다. 그녀가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8년이었을 것이다. 1988년은 '87항쟁' 직후였고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들끓었던 시기였다. 당시 국제펜클럽 미국지회장이었던 그녀는 노태우 정부에게 김남주 시인을 비롯한 구속 문인들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후 출판사에서 꾸준히 그녀의 전집을 출판하기 이전까지, 그녀는 자기 작품보다는 사회적 이슈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대중적인 지식인이자 문화계의 '여류명사'로 더 잘 알려졌다. 작품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면서 정치적 비판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녀는 좌파라는 명칭도, 페미니스트라는 호칭도 싫어했다. 그녀는 늙어가면서 더욱 자유롭고, 멋지고(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당당하고, 거침없어 보였다.

▲ <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이후 펴냄). ⓒ이후
2004년 수전 손택은 일흔하나에 타계했다. 요즘 평균수명으로 따지면 조금 이른 죽음이었다. 그리고 2008년 그녀의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어머니의 죽음>(이민아 옮김, 이후 펴냄)을 세상에 내놓았다. 리프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죽음과 마주하면서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유방암 4기, 자궁암까지 버텨낸 그녀는 생존 확률이 거의 없다는 골수이형증 혈액암 앞에서도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죽음의 공포는 너무 무겁고 삶의 의지는 너무 강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2004년에 타계한 자크 데리다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언급했다. 일흔넷이었던 그는 췌장암으로 치료를 받으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대로라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인 데리다마저 잘 사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죽음의 지혜를 결코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언중유골로 말했다. 이처럼 죽음의 지혜를 학습하기도 전에 우리 인생은 끝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공포가 세인들의 기억에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한다면, 수전 손택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 <벤자민 브리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그녀는 죽음에서 되살아나서 서른 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 살에서 열네 살의 소녀로 다시 태어나는 손택과 우리는 마침내 만나게 된다. 그녀는 평생 동안 노트북 백 권 분량의 일기를 남겼다고 한다. 세권으로 출판될 예정인 그녀의 일기 중 첫 권이 태어났다. <다시 태어나다>(데이비드 리프 엮음, 김선형 옮김, 이후 펴냄)라는 제목으로.

▲ <다시 태어나다>(수전 손택 지음, 데이비드 리프 엮음, 김선형 옮김, 이후 펴냄). ⓒ이후
1947년 11월 23일 그녀의 나이 열네 살. '죽음 이후에는 어떤 개인적인 신도 없고 삶도 없다.' 1948년 열다섯 살. 자신에게 레즈비언 성향이 있음을 깨닫는다. 1949년 열여섯 살, '나는 많은 사람들과 자고 싶다. 난 살고 싶고, 죽는 게 싫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많은 섹스를 하고 싶다던 당돌한 여자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열일곱 살 이른 나이에 필립 리프와 결혼한다. '온전히 제정신으로, 자기 파괴를 향한 의지가 두려워서' 결혼으로 도피했다. 그런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었다. H를 만나고 레즈비언 성향 때문에 느낀 죄의식에서 벗어난 그녀는 '나는 진실을 안다.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고 옳은 일인지 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살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모든 것이 시작된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하여 그녀의 인생은 레즈비언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가 자신에게 내린 지상명령. '살아라.'

그녀의 일기는 편집증에 가까운 기록으로 넘쳐난다. 자신이 살면서 마주했던 모든 것들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마치 '궁극의 리스트'를 작성하려는 것처럼, 관람했던 영화들, 연극, 음악, 소설, 오페라 등이 열거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녀의 일기는 '성적인 갈망과 같은 지적 갈망'으로 들끓는다. 그곳에서 지적인 열정은 전리품처럼 빛나고, 성적인 치욕과 같은 젊은 날의 상처들은 시체처럼 뒹군다.

그녀의 일기는 자의식 과잉이고 분석적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제 3의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일기에 기록된 상처와 감정과 경험들은 작품으로 가공하기 위한 일차자료이자 자원이다. 그녀는 일기 자체가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라는 부질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일기는 자신을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일기는 "더 솔직하게 나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창조한다. 일기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는 매체"였다. 여기에 또 다시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의 입장에서 선택, 편집(거의 손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과정을 거쳤으므로, 그녀의 일기는 여러 겹의 액자소설처럼 읽힌다.

일차자료로서 일기에 따르면, 그녀의 공적 얼굴인 '여왕의 당당함은 가면무도회의 위장'이었다. 당당함의 가면 뒤에서 그녀는 상처받고 상처주고 복수하고자 한다. 위악적으로 이간질하고, 거짓말한다. 어떤 날의 일기에는 거짓말 하지 말 것, 너무 많이 말하지 말 것, 목욕을 자주할 것 등을 적어놓는다. 삼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고, 적극적으로 오르가즘을 쟁취하고 착취한다. 그녀는 글쓰기에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오르가즘에서 자아의 탄생을 느낀다. 그리고 '감정의 변비'에서 벗어나려고 똥을 누듯 언어를 배설한다.

자신의 레즈비언 성향이 두려워서 결혼했던 필립 리프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신랄하다. 일부일처제는 합병으로서의 결합이라고. 결혼의 배타성, 소유적 사랑은 타파되어야 한다고. 그녀에게 결혼은 자아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아이린, H의 삼각관계에서 보다시피, 사랑에 빠진 그녀에게서 당당함은 치욕으로, 대등한 관계는 소유욕으로 넘쳐난다. 그녀의 사랑은 철저히 상대를 합병하고 집어삼키기를 원한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어떤 사랑이든 아프다. 상대가 언제든 내 껍질을 들고 떠나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라고 몸을 다 내놓고 있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쾌락과 고통은 그녀의 글쓰기 속에서 재탄생된다.

글을 쓰고자 하는 그녀의 간절한 욕망은 동성애자로서 세상과의 전쟁에서 무기가 될 수 있음에서 비롯된다. '나의 욕망은 내 동성애와 연관이 있다. 나는 사회가 나를 향해 겨누고 있는 무기에 맞서기 위해 무기가 될 만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그게 내 동성애를 정당화시켜 주는 않는다. 다만 내 느낌이지만 일종의 면허를 발급해 준다.'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복수의 무기로서 글쓰기. 그러므로 그녀에게 글쓰기는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가하는 복수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일기구나, 라는 점을 문뜩 문뜩 환기시키는 순간들은 있다. 번호를 매기면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목록들을 열거하는 데서 새해의 결심을 적는 아이들의 순진한 치기마저 느껴진다. 1. 했던 말 반복하기 않기 2. 엄마에게 전화하고 편지쓰기 3. 거짓말하지 않기 4. 상처 주는 입 다물기 5. 영화관에 앉아서 손톱 물어뜯는 이유 생각하기. 6. 매일 목욕하기 등. 그녀는 일기에서 끊임없이 목욕을 강조한다. 열흘 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기록이 눈에 띤다. 그녀에게 목욕은 섹스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목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섹스의 욕망을 억제하거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애니 레보비츠

수전 손택에 앞서 버지니아 울프는 방대한 일기를 남겼다. 하지만 그녀의 일기는 남편인 레나드 울프의 검열과 편집을 거쳤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또한 남편이었던 시인 테드 휴즈의 손을 거쳐서 세상에 나왔다. 수전 손택의 일기는 아들의 손을 거쳐서 나왔다. 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기는 하나의 고백적인 허구이다. 일기의 기록자는 이미 자기 기록의 일차 독자가 된다. 이차 독자의 외설적인 시선에 노출되는 순간 일기는 이미 허구적인 작품으로 읽히지 않을 수 없다. 손택이 자신의 일기를 불태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면, 아마도 이 일기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일기는 어떤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도 상관이 없다. 엄격한 플롯이 없으므로. 1961년 뉴욕의 어느 여름날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그날을 펼쳐서 읽으면 된다. 때로는 분노하고, 좌절하고 고통으로 신음하다가도 흥분으로 들뜬 목소리로 그녀는 말한다. 독자들은 목욕을 하고 난 뒤 상큼한 욕망에 달아오르고 열에 들뜬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서른 살까지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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