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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선거 아닌 '진짜 싸움'에 걸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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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선거 아닌 '진짜 싸움'에 걸고 싶다면

[내가 기다리는 책]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주목하라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암울했던 2013년을 그나마 절망하지 않고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은 12월 28일 총파업 때 전경들의 저지선을 뚫고 가면서 잡았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 덕분이었다. 생판 모르는 이들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해방구'의 힘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이 감각은 '10만'이라는 숫자나 거리를 메운 군중의 모습을 하늘에서 찍은 사진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정보는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한 도구로서는 유효하겠지만, 그 '위로부터의 시선'은 결코 그 현장에서 생성되는 힘을 전해주지 않는다. 철도 파업이 일단 끝나고 해를 넘기자 언론에서는 벌써 지방선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보다 나은 지배자를 선택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던가?

▲ 2013년 12월 28일, 서울. ⓒ프레시안(최형락)

2014년에는 우리의 시각을 좀 바꿔보자. 국가 중심으로 사유하는 데 너무 익숙해진 우리는 거리에 나서거나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를 '권력자에 대한 호소'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숫자나 조감사진으로 '운동'을 이해하려는 태도 역시 그런 경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선거'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거리를 함께 점거하면서, 또는 학교 벽에 대자보를 붙이면서 느끼는 감각은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지니는 힘은 대통령이 사퇴하느냐 마느냐는 '사소한'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직접 사회를 만드는 실천이다.

▲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서정은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이런 부분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더 심화시키기 위해 2014년에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의 저작들이 번역되었으면 한다. 미국 예일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다가 그 활동 때문에 재임용에서 탈락해 영국 런던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기도 한 그레이버는, 인류학자임과 동시에 자본의 전지구화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에 참여하는 아나키스트 활동가이다. 그레이버의 책은 이미 두 권이 번역되어 있으며(<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서정은 옮김, 그린비 펴냄), <부채>(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펴냄)), 이 책들도 우리의 상식을 뒤집고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자극적인 책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 인류학자'라는 그의 타이틀의 뒷부분에 방점이 찍힌 비교적 학술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부분, 즉 '아나키스트'로서, 다시 말해 국가를 거부하는 활동가로서 운동에 참여하면서 형성된 그의 고민이 담긴 책들은 아직 소개가 되지 않았다. 몇 번 한국을 방문해 활동가들과 교류한 경험도 있는 그레이버의 저작들 가운데 '학술적인' 책들만 소개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Prickly Paradigm Press
우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얇은 책부터 번역되었으면 한다. 2004년에 출판된 는 10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할 수많은 통찰들이 담겨 있다. 흔히 '아나키즘' 하면 국가를 파괴하고 혼란스러운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내려는 사상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레이버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로 제시하는 것은 자율, 자기조직화, 자발적 협동, 상호부조, 직접민주주의 등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어쩌면 너무나 '상식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위대한 사상가'에 의해 발명된 사상체계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만들어낸 '기술'과 같은 것이다.

이 '기술'에 대한 주목은 그의 운동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레이버는 혁명 전략에 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담론이 되려는 경향이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아나키즘은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데(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향'이며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먼저 큰 그림을 그린 다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어떤 실천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나키즘의 운동 스타일인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중요시하고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켜온 것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실천을 하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운동의 기술'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레이버를 비롯한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이 즐겨 쓰는 용어로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지금 여기서 미리 출현시키는 정치적 행동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민주주의를 바란다면 민주사회가 건설될 때까지 참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자는 이야기이다.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운동이 또 다른 국가를 낳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운동 속에서 미리 해방을 실천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또 다른 중요성은, 이것이 일종의 '지식인론'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그레이버는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고급이론(High Theory)'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이론을 폐기하고 오직 현장으로 투신하자고 외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변혁의 기획에서 생겨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할 수 있는 '낮은 이론(Low Theory)'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낮은 이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되는 것이 인류학이다. 그레이버는 급진적 지식인의 역할을, 실행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이 지닌 보다 큰 함의가 무엇일 수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 다음 그 아이디어들을 그들에게 처방전으로서가 아니라 선물로서 되돌려주는 것으로 제시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인류학 또는 민족지(ethnography)라는 기술을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어떤 분석틀을 갖다 대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다음 거기서 작동하는 힘들을 발견하려고 한다. 2014년에도 많이 생겨날 다양한 현장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도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주는 자극과 해방감은 이런 소략한 소개로는 도저히 전할 수가 없다. 누가 번역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2001년 캐나다 퀘벡에서 진행된 FTAA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서술한 과 월가 점거 운동의 경험을 계기로 집필된 그레이버의 최신작 도 같이 번역되면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논의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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