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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 양산하는 사회, 그래도 내면의 빛을 따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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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 양산하는 사회, 그래도 내면의 빛을 따라가!

[프레시안 books] 현덕의 <광명을 찾아서>

월북작가 현덕(玄德, 1909~?)은 한국문학사에서 오랜 세월 잊혔던 작가다. 일찍이 신경림 시인은 현덕이 '예술지상주의자들에게는 그의 결연한 역사의식 때문에, 계급주의 작가에게는 철저한 장인 정신 때문에 배척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러한 평가는 분단을 거쳐 남북한의 주류 문단에서 현덕이 배제된 불운을 짐작케 한다. 그나마 현덕이 창조한 '노마'는 어린이 영양제의 이름으로, 또 텔레비전 드라마의 극중 인물의 이름으로 이어져왔다.

▲ <너하고 안 놀아>(현덕 지음, 송진헌 그림, 원종찬 엮음, 창비 펴냄). ⓒ창비
그러던 중 1990년대 중반, '노마' 연작 동화가 발굴되어 <너하고 안 놀아>(창비 펴냄)가 출판되면서 노마와 친구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현덕의 유년동화와 아동소설은 한국 아동문학의 빛나는 유산으로 빠르게 자리매김 되었다. 이제 현덕의 작품은 교과서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현덕의 동화 주인공 '노마'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현덕의 동화집과 소년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그림책으로 꾸며져 다시 발행되면서 여느 근대 아동문학가의 작품보다도 독자와의 접촉면이 훨씬 넓은 편이다.

현덕의 작품을 찾아내 책으로 다시 펴내는 일을 꾸준히 해오며, 한국아동문학사에 현덕을 자리매김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원종찬 교수는 최근 또 하나의 값진 성과를 이루었다. 그동안 제목만 전해지던 현덕의 장편 소년소설 <광명을 찾아서>(동지사아동원, 1949; 창비, 2013)를 고서 수집가 박현철 씨의 도움으로 세상에 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역사 저 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현덕의 해방기 장편 소년소설이 기적과도 같이 세상의 환한 빛을 받게 되었다. 새로 나온 <광명을 찾아서>를 받아든 순간, '노마'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 작품을 오랜 시간 찾아 헤맨 연구자로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설렘과 벅찬 감동을 느꼈다.

<광명을 찾아서>의 창수는 삼촌 집에서 신세를 지며 어렵게 학교를 다니는데 숙모가 힘겹게 마련해준 후원회비를 이웃의 가출 소년 수만이에게 도난당한다. 소매치기단의 일행인 수만이는 계획적으로 창수에게 접근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창수는 수만의 꼬임에 빠져 학교를 무단으로 결석하고 양식당과 극장 등을 따라다니다가 삼촌의 오해로 집에서조차 쫓겨난다. 억울하고 딱한 처지에 놓인 창수에게 수만이는 손길을 내밀고 창수는 "부끄럽고 구질구질하며 시궁창 같은" 범죄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돈을 잃어버렸을 때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을 일들이 점점 꼬이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만 것이다.

▲ <광명을 찾아서>(현덕 지음, 김정은 그림, 창비 펴냄). ⓒ창비
<광명을 찾아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 현덕의 단편 소년소설 '하늘은 맑건만'의 인물과 주제를 잇고 있는 작품이다. 가난이 죄가 되는 현실에서 파생된 사건들, 거기서 비롯된 양심과 정직의 문제 앞에서 섬세한 내면을 지닌 소년들은 고뇌한다.

<광명을 찾아서>는 해방기의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현실을 배경으로 소년 앞에 놓인 문제적 상황과 사건을 한층 복합적으로 엮어낸다. 이 작품에는 해방기의 새 사회 건설의 문제를 고민했던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약하고 어린 존재들을 교묘히 이용하고 착취하면서 '범죄소년'을 구조적으로 양산해내는 사회적 모순을 놓치지 않고 있다. 불의와 부정에 맞서는 개인의 양심적 행위뿐 아니라 범죄에 빠져든 불우한 소년을 구제하고 갱생하게 할 국가적 해결책의 중요성을 균형감 있게 제시한다. 새 사회 건설이라는 시대적 당위와 희망은 이전의 단편적 세계를 넘어서 장편 구도 속에서 노동과 평등의 가치가 실현되는 이상적 대안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결말을 적극적으로 이끈다.

대상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사실적인 묘사력은 현덕 소설의 특장인데, <광명을 찾아서>에서도 이 부분은 단연 돋보인다. 꼬리를 물고 확대되는 사건과 상황에서 "광명과 어둠 사이를 방황"하듯 내면의 두 목소리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창수의 이중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 독자는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절망, 죄책감 등의 감정에 쉽게 공감한다. 그러나 작가는 창수의 이중 심리와 자기합리화를 거리를 두고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이전의 소년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인 작가 논평을 구사해 독자가 주인공의 감정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독자 스스로 자신을 향해서도 질문을 던지며 반성적 사유를 하게끔 이끈다.

수만이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고 끊임없이 원망했던 창수는 의도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타인을 인식하기에 이르고, 그 순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자신을 기만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고통스러울지라도 자아 의 결핍과 내면의 어둠이 문제의 근원이었음을 직시하는 냉정성, 사태의 본질을 정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자기 성찰과 용기, 그리고 그 책임까지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떳떳함이야말로 창수가 지옥과도 같은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힘이다. <광명을 찾아서>는 한때의 실수로 영영 어둠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던 한 소년이 자기 내면의 빛을 들여다보고, 그 빛이 추구하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낸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이다.

현덕은 <광명을 찾아서>에서 어린 소년들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지라도 "사람을 믿는 진실하고 밝은 빛"을 결코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고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자기 앞에 놓인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 <광명을 찾아서>는 삶의 밑바닥에 떨어져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고 손을 내밀어주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곁에 있다면 어둠과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눈물겹게 보여준다.

현덕은 <광명을 찾아서>에서 "사람뿐 아니라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은 모두 저 광명을 향하여 머리를 들고 나아"가며 "광명의 길은 옳고 바르고 자라고 성장하는 길"이라는 것을 불우한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어린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현덕이 "어떠한 곤란한 경우에서든 자기의 기쁨을 만들 수 있어 '언제든 살아갈 준비'"를 하는 존재로 어린이를 파악했던 것도 어린이의 본성을 '생기(生氣)'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밝고 건강하며 활달하게 자라나는 개구쟁이 '노마'를 그렸던 것, 그리고 양심과 정직, 우정과 의리의 문제로 고민하며 바르게 사는 길을 물었던 소년들의 꿋꿋한 성장을 그려보였던 것은 동시대의 어린 독자들에게 현덕이 전하고 싶었던 소망의 메시지이자, 암흑과 환멸의 시기를 묵묵히 버티며 통과하기 위해 작가 자신에서 보낸 결연한 의지이자 자기 암시로도 읽힌다. 현덕의 동화와 아동소설은 "비참한 경우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맑은 심혼"('내가 영향 받은 외국 작가-도스토예프스키')을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현덕의 내면에 자리한 별빛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믿는 진실하고 밝은 빛"이 퇴색해 가는 오늘날, <광명을 찾아서>는 부정과 비리, 폭력이 만연하고, 비양심과 비상식이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독자라면, 고통을 감내하며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응원할 것이다. <광명을 찾아서>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무관한 먼 시대의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전히 강한 현실성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수와 아저씨가 밝힌 앞날처럼 <광명을 찾아서>가 독자에게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주는 한 줄기 빛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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