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과 나눈 은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 휴게소에서 청소 노동자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청소하는 구역과 성함을 여쭈었다. 그러자 난처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러다가 혹시…. 우리가 말한 게 알려지면 말이야…."
노동자들은 자신의 신원이 알려져서 보복을 당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그럼에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누구를 만나라"든지, "다른 휴게소는 어디에 있다"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더 알리고 싶어 했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곳을 방문했고, 많은 노동자를 만났다. 알려지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자기 이름을 걸고 못 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었다.
5700원으로는 생활이 안 되어요
아침 9시, 우리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청소 노동자들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가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노동자가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으며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이들은 고려대학교에서 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청소 노동조합원들이다.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조합원들은 벌써 아침 식사를 끝내고 휴게실 정리도 마친 후였다. 몇몇 조합원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이라는 문구가 적힌 천을 두르고 있었다. 문구에 눈길이 닿자, 임금 상황을 질문했다.
"시급은 5700원에서 언제 올라갈지 몰라. 합의가 전혀 안 되고 있어요."
5700원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임금 투쟁을 통해 6200원으로 시급이 올랐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에서 약속한 것일 뿐, 실제로 용역업체와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었다. 시급 5700원으로 어떤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조합원들은 대답 대신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학생…. 5700원, 최저임금을 가까스로 면한 수준으로는 생활이 안 되어요. 사실 6200원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걸요? 같은 학교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몇몇 건물에는 용역업체가 아니라 학교에서 직접 채용한 직원들이 일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받는 월급이 150만 원이라니까 우리도 그 정도만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 정도만 받아도 투쟁하지 않았을지 몰라요."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월급은 줄어들고
청소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약 120만 원을 받고 있다. 그마저 예전보다 깎인 돈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연장근무까지 해서 140만 원을 받았는데 연장근무도 이제는 못 하고, 주 5일제 도입으로 토요일에 일을 못 하다 보니까 22만 원이 줄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생활은 나아지지가 않아.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계속 그대로 주는 식으로."
연장근무나 토요일 근무는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데, 그것들이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반응은 아이러니하다. 이유를 물어보니 해야 하는 일의 양은 그대로 둔 채, 학교와 용역업체가 근로 시간만 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면 휴식이 늘어났으니 학교가 합리적인 변화를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월급만 줄이는 효과를 냈다.
"학교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려고 해요. 그런데 사람을 줄이면, 일을 도저히 못 끝내요. 우리가 아침 6시에 청소를 시작해요. 그런데도 학생들 강의 시작하기 전까지 절대 깨끗이 못 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더 일찍 일어나는 수밖에 없어요. 출근 시간은 정하지 않은 대신에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방법은 일찍 와서 청소하는 것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더 일한 만큼 돈을 주느냐, 절대 안 주죠."
오전 6시에 시작해도 일을 마칠 수 없어 더 일찍 청소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조합원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예전에 토요일에 하던 일을 이제는 연장수당 없이 월요일에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은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한데 일은 여전하니까. 심지어 연장근무도 이제 다른 아르바이트를 써서 한단 말이에요. 우리는 못 하고. 일 강도는 엄청 세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나마 받던 140만 원 정도의 월급에서 22만 원까지 깎인 거예요."
필요한 인력을 더 늘리려 하지 않는 학교의 태도가 결국 청소 노동자들을 사실상 '무료 노동'으로 내몬 것이다. 이 때문에 청소 노동자들은 '정시 투쟁'을 하기도 한다. 원래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는 것이다. 정시에 출근해서는 강의가 시작할 때까지 청소를 마칠 수 없으니, 태업이나 부분 파업을 하는 효과가 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본급이 낮은 노동자들에게는 휴식보다 조금이라도 일을 더해서 월급을 높이는 것이 절박하다고 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은 따라가지 못한다. 생활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 관련 기사 : "남학생 오줌 담긴 페트병에 한숨만 푹, 위장병은 기본")
"쓸고 닦고…삶이 반복, 또 반복"
그녀들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다 손으로 닦아요. 걸레질하고, 쓸고, 닦고. 삶이 그냥 반복이었어요. 아침에 시작해서 끝이 없이 반복, 또 반복…. 돈 받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거였어요."
한 조합원이 말끝을 흐렸다. 탄식이 담긴 말이었다. 왜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노동자들은 청소일이 '숙련된 직업'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상상하기도 했다. "언젠가 기계가 잘 보급되면, 청소 노동자도 그냥 무턱대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자신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5700원밖에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 청소 노동이 숙련노동으로 인정받으면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말이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러면서도 청소 노동자들은 "그나마 노동조합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노동조합이 있어서 이 정도인데 없는 곳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청소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아. 대접해 주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 휴게실도 예전에는 꿈도 못 꾸었어요. 그냥 청소하다가 창고 같은 곳에서 쉬었지. 앉아서 이렇게 편하게 쉴 수 있게 된 것도 다 노동조합이 싸운 덕분이야. 아니면 그냥 예전처럼 도시락도 싸서 먹어야 했을 거고 앉아 있지도 못했을 걸요."
"우리가 휴가도 원래 3일이었다가 5일로 늘어났어요. 노조 덕분이에요. 물론 그 5일도 나눠서 쓰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틀이나 늘어난 게 어디에요. 복리 휴가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노조 만들고 나서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저 앞으로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노조를 만들면서 청소 노동자들은 열악한 대우가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게 됐다고 했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활동과 최저임금, 생활임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같았다. 한 조합원은 "가장 미천한 직업인 청소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 최저임금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 임금을 받으려는 청소 노동자들의 '작은 투쟁'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한몫할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녀들의 일은 가치가 있다. 분명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자신들이 받는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을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도의 노동 강도를 요구받는 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프레시안>은 "당신은 얼마짜리 노동자입니까?"라는 주제로 릴레이 인터뷰를 싣습니다. 이 인터뷰는 '임금'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낮은 최저임금이 가져온 현실을 들춰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인터뷰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생활임금 쟁취/서울연석회의'의 참여 단체가 차례로 맡을 예정입니다. <편집자>
당신은 얼마짜리 노동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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