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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시립대생 황승원 씨 죽음을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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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시립대생 황승원 씨 죽음을 아나요?"

[기고] 정몽준 '반값 등록금' 발언에 대한 서울시립대 졸업생의 항변

반값등록금이 대학 졸업생과 대학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실추시킬 것이라는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을 인터넷으로 접한 뒤 아연실색했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특권 속에 살아온 그에게 “명예‘라는 것은 늘 남보다 우월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돈을 낼 여유가 있는 부유한 집안의 대학생들이 서민들의 자식들과 뒤섞여 반값 등록금을 내는 현상이 대학과 졸업생의 명예와 존경심을 실추시킬 것이라는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가진 자와 누리는 자의 진실, 그들이 실제로 우려하는 바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 드러내는 비극적인 진실 말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석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나는 내 모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 월등히 나은 우수대학이라던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대학이라는 등 대학 본관 측이 늘 내놓는 그럴싸한 홍보문구에 대해 한 번도 자긍심 따위를 느껴본 일이 없다. 선후배 동기들, 교수님들에 대한 추억과 정은 있었지만, '애교심' 같은 것을 지녀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캠퍼스를 거닐며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는 것, 선후배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애정은 소위 대학의 '간판'에 대한 맹목적인 자긍심에 도취된 '애교심'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1학년 당시 입학할 때 내 대학 등록금은 입학금+수업료+기성회비를 합쳐 140만 원 대였다. 석사과정 졸업 당시에는 약 220여 만 원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내 모교의 학부생 후배들은 내가 2001년, 그러니까 13년 전에 낸 첫 등록금보다도 싼 값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시장이 취임 직후 즉각적으로 자신의 공약을 이행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렇게 정치인이 자신이 뱉은 말을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처음이다.

지금의 내 모교 후배들 전원이 반값 등록금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내 모교에 대한 자긍심 비슷한 것이 생겼다. 이미 졸업한지도 오래 됐고 직접적인 수혜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모교가 한국 사회에서 '공적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기능에 그나마 가까운 대학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고,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등록금 문제로 힘겨워하는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에게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것은 내 모교가 '일류대학'이어서도 아니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학이어서도 아니다. 내가 느낀 기쁨의 감정은 내 모교가 '사회적 공공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시작될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시작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 후보의 말처럼 "대학에 대한 존경심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 대한 존경심은 오직 대학이 공적인 교육 기관으로서 기능할 때에만 생겨난다.
독일에서 대학에 다니는, 일부 사립대학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 학기 일정금액(베를린은 약 42만 원, 다른 곳은 보통 20~30만 원 가량)의 학생기여금을 제외하고는 단 한 푼의 등록금도 내지 않는다. 학생기여금을 내는 사람은 그 대학이 소속된 도시의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재정상황이 열악한 학생은 이 학생기여금마저 되돌려준다. 독일에 평생 한 푼의 세금도 낸 적이 없는 외국인인 나 역시 동일하게 무상교육의 수혜를 받는다. 이것이 '공적 교육기관'의 모습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누구나 공부하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 한 평생 특권적인 삶을 살았을 그 누군가에게는 모두가 '미개'해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이 풍경이야말로 만인의 보편적 교육권을 실현할 수 있는 대학의 진정한 기능이다.
내 모교가 한국에서는 이러한 논의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맹목적인 '애교심'과는 다른 의미에서, 처음으로 모교에 대한 자긍심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것은 박원순 시장 혼자만의 성과는 아니었다. 십 수년간 비싼 등록금의 폐해를 지적하고 싸워온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2011년 여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황승원 씨가 어려운 형편 속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그것도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은) 이마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와 여러 학생들이 숨진 학우 추모와 함께 등록금 인하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싸웠다. 그 해 가을에 당선한 박원순 시장의 즉각적인 반값등록금 시행은 이러한 억울한 희생과, 그 위에서 벌어진 싸움들이 이뤄낸 작지만 값진 성과인 것이다.
지금, 이러한 싸움들의 작은 성과마저 누군가가 되돌리려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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