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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류가 많고 정치적 편향이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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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류가 많고 정치적 편향이 심합니다."

[프레시안 books] 로버트 서비스의 <트로츠키>

<트로츠키>(양현수 옮김, 교양인 펴냄)는 로버트 서비스(Robert Service)가 2009년 출판한 트로츠키 전기를 완역한 것이다. 서비스는 옥스퍼드대학교 러시아사 교수로 재직 중이며 러시아혁명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서, 이 책에 앞서 레닌과 스탈린 전기도 출간한 바 있다. 서비스는 이 트로츠키 전기 출간으로 러시아혁명의 대표적 지도자 세 명의 전기를 완간한 셈이다.

▲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한지영 옮김, 필맥 펴냄). ©필맥
주지하듯이 트로츠키 전기는 자서전 <나의 생애>(1930)를 비롯, 트로츠키 전기의 고전인 아이자크 도이처의 3부작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1954년 출간, 김종철 옮김, 필맥 펴냄)‧<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1959년 출간, 한지영 옮김, 필맥 펴냄)‧<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1963년 출간, 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 피에르 부르에의 <트로츠키>(1989), 볼코고노프의 <트로츠키>(1992) 등 그동안 수많은 언어로 무수히 출판된 바 있다. 그런데도 서비스는 트로츠키에 대해 무려 1000쪽 (영어 원서로는 600쪽)의 전기를 썼다. 트로츠키에 대해 새롭게 쓸 게 그렇게나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일까? 서비스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비스는 자신의 트로츠키 전기가 "러시아 바깥에 사는 사람으로서 비(非)트로츠키주의자가 쓴 최초의 책"(11쪽)이라는 점에서 새롭다고 주장한다. 또 서비스는 자신의 책이 트로츠키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이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 예컨대 트로츠키의 자서전 <나의 생애>의 초고와 같은 자료를 활용하여 (8쪽), "감추어져 있는 트로츠키의 삶을 캐"(28쪽)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의 독창성 주장 중 전자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서비스 자신이 머리말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언 대처가 2003년 출판한 <트로츠키> 역시 "러시아 바깥에 사는 사람으로서 비(非)트로츠키주의자가 쓴" 트로츠키 전기이기 때문이다. 또 서비스가 이 전기에서 집중하고 있는 '인간 트로츠키', 즉 트로츠키의 품성이나 가족에 대한 태도, 사생활,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 등은 나름대로 흥미로울 수 있지만, 이것들 중 어떤 부분도 사회주의 혁명가로서 트로츠키의 사상과 실천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없는 듯하다. 서비스의 이 전기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이 책 전체를 트로츠키 깎아 내리기로 도배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 <트로츠키>(로버트 서비스 지음, 양현수 옮김, 교양인 펴냄). ©교양인
서비스는 우선 트로츠키가 나쁜 인간이라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려 한다. 서비스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극도로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남편으로서 그는 첫 번째 아내(알렉산드라)를 소홀하게 대했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 걸렸을 때는 자기 자식들에게 필요한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27~28쪽). "트로츠키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자마자 달아날 결심을 했다. 트로츠키는 첫 번째 아내의 희생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131쪽). 트로츠키는 자신의 딸 지나에 대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책무를 이행하지 않았다"(668쪽).

"트로츠키는 지극히 독선적인 인간이었다"(582, 656쪽). 트로츠키는 "건방지며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는 인물"(162쪽)이며, "당의 규율을 무시하고 파괴하기를 좋아했다"(167쪽) [하지만 서비스는 499쪽에서는 "레닌과 마찬가지로 트로츠키 역시 중앙집권주의자였으며 규율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고 반대로 말한다]. "트로츠키와 그의 아내는 파리에서 검소하게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증거는 없다"(250쪽). "트로츠키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는데, 특히 자서전 <나의 생애>는 "문학적 연금술사가 교묘한 솜씨로 감춘 정치적 조작의 걸작이었다."(556, 694쪽)
서비스는 트로츠키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사상 발전에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서비스는 "트로츠키가 자신에게 지적인 독창성이 있다고 주장한 적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조롱받았을 것이다."(206쪽) "트로츠키는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쉴 사이 없이 옮겨 다녔으며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207쪽) "트로츠키의 생각은 온갖 것이 뒤섞인 잡동사니의 집합이었으며 그 자체로 혼란스러웠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611쪽) "트로츠키는 논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깊은 사색에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겉모습이 내용을 압도했다."(616쪽)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실은 파르부스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156, 174쪽)

서비스는 또 트로츠키가 스탈린 못지않게 폭력적이고 잔인했다고 주장한다. 내전 시 트로츠키는 적군 탈주자들에게 "즉결 처형을 명령"할 정도로 잔인했으며, "인도주의적 고려 사항은 신경 쓰지 않았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정치혁명을 더욱 심화했다.(394, 397쪽) "때때로 트로츠키와 스탈린은 누가 더 잔인한 인민위원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다."(429쪽) "트로츠키는 세계혁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인적 손실이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544쪽) "트로츠키는 실천에서는 극히 폭력적이었다."(863쪽) "트로츠키는 1924년 그루지아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적 봉기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조치에 대해서도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611쪽) "트로츠키는 거리낌 없이 테러를 실행에 옮겼다."(858쪽)

▲ 이오시프 스탈린. ©Wikimedia Commons
서비스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믿듯이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옹호했기는커녕 이를 무자비하게 억압했다. 1917년 혁명 후 내전을 거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이라는 트로츠키의 초기 이념은 오래된 동전처럼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나갔다."(468쪽) "트로츠키에 따르면 노동자의 의무는 그저 지시 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485쪽) [하지만 서비스는 644쪽에서는 "트로츠키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존재는 대중이었다"고 반대로 말한다]. 트로츠키는 1921년 크론시타트 수병 "반란 진압 계획을 세운 장본이었다."(491쪽) "트로츠키는 10월 혁명 이후 줄곧 당내 민주주의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535쪽). "트로츠키는 당과 노동조합 내에 있던 반대자들을 압살했다. 그는 토론보다는 명령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오만하고 고압적"이었으며, "권력을 잡자마자 인민의 열망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는 무자비한 중앙집권의 추진자였으며 군대와 경찰의 친구였다."(859, 862쪽)

서비스는 이로부터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생각과 실천은 차이가 없었으며, 따라서 설사 스탈린이 아니라 트로츠키가 집권했어도 소련의 모습은 스탈린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비스에 따르면 1928년 이후 스탈린이 추진했던 정책들에 대해 트로츠키가 제시한 "대안들은 실제로는 스탈린의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같았다. (…) 다만 일의 진행 과정에서 폭력성을 줄이고 좀 더 민주적으로 하겠다는 것뿐이었다."(617쪽) "만약 트로츠키가 권력 쟁취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었더라면 그는 스탈린의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자신의 정책에 저항하는 자에게 트로츠키가 잔혹하게 대응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기는 힘들다."(710쪽)

트로츠키는 "예술의 완전한 자유를 옹호"하지 않았으며, "문학작품의 출판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정부가 가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문화적 스탈린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구축해놓은 사람은 바로 트로츠키였다."(549, 553쪽) "만약 스탈린이 아니라 트로츠키가 최고 권력자가 되었더라면 유럽에 엄청난 유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졌을 것이다"(25~26쪽). 이로부터 서비스는 "트로츠키파가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소련이 전체주의적 폭정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616쪽)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서비스의 트로츠키 비판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기존 연구와 논쟁에서 거의 대부분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된 부분이다. 게다가 문제는 서비스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동원한 이른바 역사적 사실들 자체가 상당수 잘못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 1920년 레닌의 연설. 연단 아래쪽에 트로츠키와 카메네프가 자리잡았다. ©Wikimedia Commons

몇 가지만 들어보자. 예컨대 서비스는 1988년 고르바초프가 트로츠키를 복권했다고 주장하는데(23쪽), 이는 사실이 아니다. 트로츠키는 소련 붕괴 전에도 후에도 복권된 바 없다. 또 서비스는 1927년 스탈린이 중국공산당에게 장제스의 국민당에 타격을 줄 봉기를 일으키라고 지령을 내렸다고 주장하는데(614쪽), 이 역시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트로츠키주의자 노스(D. North)는 서비스의 트로츠키 전기가 출간되자 곧바로 이 책이 오류와 왜곡투성이임을 조목조목 밝힌 단행본 <레온 트로츠키를 방어하며(In Defense of Leon Trotsky)>(2010)를 출판하기도 했다. 또 미국의 러시아혁명사 연구자 파테노드(B. Patenaude)도 역사학분야 톱 저널 《American Historical Review》에 서비스의 트로츠키 전기와 노스의 비판서를 동시에 리뷰하는 서평에서 자신도 서비스의 책에서 무려 50여 개의 오류를 발견했다면서 노스의 비판에 손을 들어 주고, 하버드대학출판사가 "역사학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이 책을 출판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또 2011년 서비스가 이 전기의 독일어판을 주어캄프(Suhrkamp)에서 출판하려 하자, 유럽의 저명 역사학자 14명이 사실 관계에서 오류가 많고 정치적 편향이 심하므로 이 책을 출판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공개서한을 출판사에 보내기도 했다. 결국 서비스의 트로츠키 전기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했지만 학계에서는 싸구려 황색 저널리즘 정도로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서비스의 <트로츠키>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선 이 책은 트로츠키의 사상보다 인간성이 어땠는지, 몇 명의 여자와 바람을 피웠는지, 섹스는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해 준다. 무엇보다 서비스의 이 책은 트로츠키가 "위험한" 공산주의 혁명가임을 입증함으로써, 그 동안 트로츠키를 마르크스주의의 이단, 반레닌주의자, 반공주의자, 심지어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로 묘사해 왔던 스탈린주의자들의 날조학을 붕괴시켰다.

▲ 암살당하기 얼마 전,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만년의 트로츠키(가운데). ©Wikimedia Commons

몇 부분만 인용해 보자. 서비스에 따르면 1917년 2월 혁명 발발 후 레닌과 볼셰비키는 노동자 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위해 이전 자신들의 입장인 2단계 혁명론을 수정해야만 했던 반면 "트로츠키는 핀란드 역에 내려 그가 지난 10여 년간 주장해 왔던 것(연속혁명론-평자)을 반복해서 말하기만 하면 되었다"(298~299쪽). 또 서비스에 따르면, 1917년 2월과 10월 사이에 "레닌과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에 관한 개괄적인 의제에는 동의했"고, 볼셰비키 당은 "트로츠키가 1905년 이후 주장해 오던 혁명전략의 핵심요소들을 아무 말 없이 당론으로 채택"했으며, "중앙위원회 참석자 명단이 발표될 때면 트로츠키의 이름이 맨 앞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307, 327쪽).

서비스에 따르면 1917년 10월 혁명 직후 레닌은 "트로츠키보다 더 훌륭한 볼셰비키는 없다"고 말했으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서 레닌은 트로츠키에게 국가수반인 "인민위원회 의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제안"(343쪽)했고, "1922년 레닌은 트로츠키에게 인민위원회 부의장직을 맡아달라고 제안"(365쪽)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라는 이름은 공산주의 체제의 동의어"였으며, "레닌과 트로츠키는 제3인터내셔널의 쌍둥이 창시자였다"(367, 439쪽). 요컨대 "트로츠키는 결코 마르크스주의의 궁극적 목표를 망각하지 않았으며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했으며, "철두철미한 볼셰비키였다"(418, 609쪽).

서비스는 자신이 이 책을 출판한 목적을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밝혔다.

"트로츠키라는 늙은이가 아직껏 살아있는 것 같다. 얼음도끼로도 트로츠키를 없애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으로 트로츠키를 해치웠기를 바란다."

하지만 서비스의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비스의 트로츠키 전기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로서 트로츠키의 인간과 사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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