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에 문을 연 '프레시안 books'가 이번 5월 30일, 191호를 끝으로 잠시 문을 닫습니다. 지난 4년간과 같은 형태의 주말 판 업데이트는 중단되나, 서평과 책 관련 기사는 <프레시안> 본지에서 부정기적으로나마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시기를 약속드릴 수 없지만 언젠가 '프레시안 books'를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실린 글을 편하게 검색하고 볼 수 있는 아카이브를 여름 내로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그동안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참여해 주신 필자 여러분,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신 출판계 관련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프레시안 books'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 조합원으로 함께해 주세요! -프레시안 books 편집부 올림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의 유명한 저작 <감시와 처벌>(오생근 옮김, 나남출판 펴냄)의 첫 번째 장은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체포된 다미앙의 사형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근대적 형태의 공개 처형에 대한 묘사는 누가 보기에도 끔찍하고 읽기에 힘든 구절이다. 하지만 푸코는 이러한 공개 처형 방식이 어느 순간 밀실에서의 사형이라는 형태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근대적 국가 권력의 탄생에 주목한다. 푸코는 1970년대 후반 여러 강의와 짧은 글에서 근대적 국가 권력의 탄생을 '생명 정치'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한다.

푸코에 의하면 전통 사회의 권력은 다미앙의 사례처럼 국가 권력에 의한 생사여탈권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사회의 새로운 권력은 그 국민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전 과정을 국가가 관리하여 생명을 유지시키고 구성 인구의 출생, 사망, 건강, 수명을 여러 가지 형태로 관리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근대적 국가 권력의 변화, 즉 생명 정치는 학교, 병원, 감옥, 군대, 보험 등의 형태로 실현된다.
국가 권력에 대한 푸코의 새롭고 흥미로운 접근 방식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 짝을 이룬다. 이렇게 국가 권력이 생사여탈권과 같은 폭력적 성격에서 벗어나 생명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권력으로 이동했다면, 이러한 국가 권력 하에서 주체는 자기 훈육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권력 장치에 참여하고 순응하게 된다.
이렇게 흥미로운 푸코의 권력에 대한 새로운 주장은 1984년 푸코의 죽음으로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푸코의 생명 정치 또는 생명 권력의 개념은 사회과학의 곳곳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대상이 되었다.

바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몸과 생명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개입이 증가하면서 질병과 건강과 같은 생명과 연관된 문제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병과 건강 문제가 정치적인 것과 연관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둘러싼 환자들의 지속적인 투쟁(강양구, 채오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면서 시작된 광우병 촛불 집회(하대청) 그리고 비만 현상의 병리화 과정과 수술적 개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만 치료의 표준화 현상(한광희, 김병수)은 바로 생명의 문제가 결국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서구에서도 생명 정치의 부활은 1990년대 이후 이루어진 인간 게놈 프로젝트나 뇌 과학 프로젝트(BRAIN)처럼 신체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개입 방식을 통해서 푸코의 생명 정치를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생명 정치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런 지적 움직임의 전면에 영국의 사회학자 니콜라스 로즈와 미국의 인류학자 폴 래비노우가 있다.
김환석은 이 책에서 로즈와 래비노우의 연구 성과를 포함하여 철학, 사회학, 인류학과 과학기술학 분야로 확장된 새로운 생명 정치의 흐름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특히 니콜라스 로즈와의 대담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푸코 이후의 생명 정치라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낼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눈길을 끈다.
로즈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바이오스센터(BIOS Centre, 현재 이 센터는 로즈와 함께 런던대학교 킹스 칼리지로 둥지를 옮겼다)에서 생명에 대한 과학기술적이고 의학적인 개입이 우리의 생명 그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다양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면서 푸코의 생명 정치 개념을 지금의 맥락에서 재해석했다.
로즈와 그 동료들이 재해석한 21세기의 생명 정치는 더 이상 국가 권력이 인구 단위를 대상으로 하는 '위로부터의 생명 정치'가 아니라 개인들의 생물학적인 특성, 특히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밝혀진 특성을 공유하는 개인적 수준의 권리 요구 현상과 연관된다. 로즈 등은 자신과 비슷한 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예를 들어, 특정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환자 그룹이나 체르노빌 지역에서 핵발전소 사고 피해로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정치적 주체화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푸코가 제시한 단순한 인구 단위의 생명 정치를 넘어서 21세기적인 형태의 새로운 생명 정치와 정치적 조직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생명 정치의 사회과학>이 갖고 있는 강점은 이와 같은 생명 정치의 새로운 해석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로즈의 생명 정치 개념을 한국적인 맥락에서 다시 분석해낸 연구 성과들, 예를 들어 글리벡의 과도한 가격 책정에 반대하면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는 소위 '글리벡 (정체성에 기반을 둔) 시민권'의 형성과 같은 연구를 함께 제시하면서 서구적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서 제시되어온 새로운 형태의 생명 정치 개념이 어떻게 탈서구적인 맥락에서 적용되며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까지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지금까지 과학기술학, 사회학 그리고 인류학에서 항상 궁금하게 여겨왔던 문제점을 과감하게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생명에 대한 과학기술적 개입이 정치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흥미로운 대안적인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김환석을 비롯한 필자들은 과학과 기술은 단순히 자연 (또는 사회)의 순수한 반영일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지식의 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인간과 같은 행위자 뿐 아니라 지식의 탐구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생물, 기계, 텍스트나 돈, 건물 등)은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등하게 이질적인 행위자일 뿐이며, 이러한 다양한 조합의 결과가 일종의 특정한 연결망으로 구축된다고 보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연결망에 가입된 인간과 비인간의 특정한 결합의 산물(106쪽)이기 때문에 특정한 '하이브리드'로 보아야 한다는 이런 주장은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이며 인류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로 대표되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과 직접 연결된다.

사실 그간 과학기술학을 포함한 사회과학계에서는 니콜라스 로즈가 주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 정치에 대한 분석이 상당 부분 라투르로 대표되는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 생명 정치와 행위자-연결망 이론 사이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정확하게 이 두 가지 큰 지적 흐름이 만나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김환석을 비롯한 <생명 정치의 사회과학> 저자들의 저돌적이고 직접적인 문제 제기 방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김환석은 2000년대 초반부터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이 갖고 있는 사회과학적인 함의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면서 열정적으로 한국 과학기술학계에 그의 이론을 설파해온 대표학자 중 한 명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생명 정치의 개념과 행위자-연결망 이론 사이의 결합은 아마도 그의 지적인 흐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도일 수 있다.
이 책에서 김환석은 이 두 지적 조류의 결합의 방향성을 향한 일종의 "연결망" 구축의 가능성을 또 다른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인 미셸 칼롱의 프랑스 신경근육계 질환 환자 단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이미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도 번역되어 실린 글에서 칼롱은 프랑스의 근이영양증 환자 그룹이 단순히 로즈가 주장하고 있는 생물학적 분류나 특성에 의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생명 시민권의 형태를 넘어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근이영양증 환자 그룹이 구축하고 있는 정체성은 단순한 생물학적/정치적인 이분법적인 결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 정체성과 다양한 사회기술적 장치들이 얽혀들면서 형성된 것으로서 연결망을 만들고 있다. 아마도 생명 정치와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결합의 노력은 앞으로 수행될 수많은 사회과학적 연구에 화두를 던져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푸코가 제기한 국가 권력의 근대적 속성을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이르러 극단적인 개인화와 분자화, 그리고 생명공학의 급격한 발전을 통한 생물학적인 분류와 구분법에 기반을 둔 정체성의 형성 가능성이 뒤얽히면서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시민권의 가능성을 김환석을 비롯한 이 책의 저자들은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이고 분자적 단위에서 정의되는 개인의 정체성과 권리 주장이 제기되는 최적화의 생명 정치가 "위로부터의 권위적인 생명 정치"(295쪽)의 힘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조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는 아마도 다음 연구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생명 권력이 갖고 있는 관리적인 성격과 폭력적인 성격의 공존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라는 과제이다. 이 문제는 푸코가 지나쳐버린, 그러나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다시 제기한 근대적 국가 권력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쉽게 간과해버릴 수 없다는 주장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국가는 우리의 생명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보호하는 대상으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 폭력을 자행하는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 권력의 이중적인 성격을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 로마의 법 체계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생명의 분류 중 하나가 바로 호모 사케르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 죽여도 살인죄의 형벌을 받지 않으며 신성한 신전의 제물도 될 수 없는 정치적-법적 공동체에서 제외된 '벌거벗은 생명'이다.
호모 사케르는 단순히 고정된 생명의 분류법이 아니다. 이렇게 생명 권력은 언제든지 정상적인 시민들을 폭력의 대상, 법적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폭력적 속성을 갖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 것처럼 국가는 제주도 수학여행의 기대와 즐거움으로 충만한 우리의 아이들을 바닷물 속으로 휩쓸려가도록 방치하면서 극단적으로 정치적-법적 공동체에서 배제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생명 권력의 근본적인 폭력성과 권위적인 생명 정치의 문제를 어떻게 우리가 봐야 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김환석과 그의 동료들의 다음 연구가 아닐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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