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KIC)가 2008년 당시 부실기업인 메릴린치에 20억 불을 투자한 배경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그간 메릴린치 투자건과 관련해서 MB 측근인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형 씨가 깊숙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됐었다.
'메릴린치 우선주 20억 불 투자건'이란 2008년 1월, 한국투자공사는 20억 달러, 우리 돈 2조 원을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투자했다가 사상 초유의 1조 원대 손실을 본 사건을 일컫는다.
주목할 점은 이 투자 결정이 메릴린치가 15조 원의 천문학적 투자 손실을 봤다는 소식으로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한 직후 이뤄졌다는 점이다.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는 갑자기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는지를 두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돼 왔다.
정회 15분 만에 전원 만장일치로 투자 결정
13일 KBS <9시뉴스>는 <뉴욕타임스>가 메릴린치가 15조 원대의 손실을 봤다고 보도한 직후 2008년 1월 열린 한국투자공사의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소개했다.
회의록을 보면, 회의 초반 분위기는 대부분 위험한 투자라며 반대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 대학교수는 "경영권도 못 얻어 전략적 가치가 없는데다 투자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고, 투자공사 임원도 "의사록에 내가 반대했다는 내용을 분명히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법인의 한 운영위원은 "절차까지 어기며 추진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문까지 제기했다.
이처럼 회의가 반대 분위기로 흐르자 줄곧 투자를 주장해온 조인강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이 정회를 요청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정회 15분 뒤 재개된 회의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이전까지 반대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회의 속개 30분도 지나지 않아 20억 달러의 돈을 메릴린치에 투자하는 방안이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결국, 메릴린치가 우리나라에 자금을 요청한 지 단 일주일 만에 2조 원이 넘는 나랏돈을 투자하는 결정이 내려진 것. 조인강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심의관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결정을 했지만, 여러 가지 국익을 고려해서 (한 것이다)"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이후 메릴린치의 부실은 점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면서 9개월 뒤에는 다른 미국 은행에 헐값으로 팔렸다. 그 결과 당시 손실 평가액은 1조5000억 원이 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천문학적인 투자 실패에도 당시 투자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징계를 받기는커녕 대부분 영전했다.
투자 직전, 대통령 인수위에 보고된 사실이 통째로 삭제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투자가 이뤄지기 직전,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에 사전 보고됐지만 이후 한국투자공사의 특별감사에서 사전 보고 사실이 통째로 삭제됐다는 점이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이 강하게 성토했고 투자공사는 2009년 1월 자체 특별감사에 착수해 1차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투자 결정 이틀 전 한국 투자공사 사장과 재정경제부 관료들이 대통령직 인수위를 찾아가 강만수 인수위원과 최중경 인수위원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을 포함한 1차 보고서 상당 부분이 한 달 뒤에 다시 작성된 2차 보고서에서는 통째로 사라졌다.
게다가 2차 보고서 작성 시기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러날 무렵인 것으로 알려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한국투자공사 관계자는 기재부 관계자들이 인수위 보고 내용을 포함한 투자 결정 과정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이상득 전 의원 아들 이지형 씨 개입 의혹
그간 '메릴린치 우선주 20억 불 투자 건'에 '정권 실세', 즉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형 씨가 개입됐다는 의혹은 지속해서 제기됐다.
이야기는 이렇다. 이상득 전 의원 아들 이지형 씨 마케팅 담당 이사로 근무하는 싱가포르 헤지펀드 회사 '브림'(Brim ; Blue Rice Investment Management)은 아시아 기업의 회사채에 투자하는 아시안 크레디트 펀드(Asian Credit Fund)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 브림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투자공사(KIC) 투자운용본부장(CIO)을 지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구안 옹(Guan Ong)이 2009년 12월 설립한 회사이다.
구안 옹은 KIC CIO로 재직하던 2008년 1월 미국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한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11년 12월 <신동아> 보도를 보면 "메릴린치 투자 건을 실무적으로 검토해 20억 달러 투자를 품의한 책임자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알려진 구안 옹(Guan Ong) 한국투자공사 투자운용본부장(CIO)이었다"면서 "구안 옹 씨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아들인 지형 씨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2009년부터 싱가포르의 헤지펀드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주간한국>도 그해 12월 보도에서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이상득 의원의 친인척이 정부 투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는 밀반출 의혹까지 제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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