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전직 검찰총장부터 전 국회의장, 대형 출판사 이사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저지른 성범죄가 뒤늦게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저명한 음대 교수가 제자 4명을 잇달아 성추행한 혐의로 최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14일자 <한겨레> 보도를 보면 유명 연주자의 아버지이기도 한 ㅈ교수는 지난해 ㅇ대 음대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넉 달 동안 18~22살 여학생 4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사제관계로 자신의 감독을 받는 피해자들을 위력으로 추행했다”고 판단했다.
ㅈ교수의 판결문을 보면, 갑을관계가 명확한 ‘일대일 도제식’ 교육 방식을 악용한 전형적 사례다. 그는 강의실에 혼자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의 가슴을 만지거나 속옷에 손을 집어넣었다. 여학생들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주요 부위를 만지기도 했다. 불과 4개월 동안 14차례나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 ㅈ교수는 성적 폭언까지 하면서도 “딸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딸 같아서”는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다는 혐의에 ‘해명’하겠다며 한 말이기도 하다.
ㅈ교수는 “신체접촉 행위는 제자들의 자세를 교정하고 박자를 맞추기 위해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배를 만진 것으로,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레슨 방법의 하나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던 중 나온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주요 부위를 만지는데도 성인인 피해자들이 교수의 위세에 눌려 이를 수용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항소심도 1심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며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달 31일 울산지법 형사3부(재판장 정계선)는 갑을관계에 의한 성폭력임을 분명히 하며 “피해자들은 ㅈ교수의 교내 지위가 대단히 높고 자신들의 장래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교육의 특성 등에 비춰 (성인인 학생들이 위세에 눌렸을 리가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전 검찰총장에 성추행 당했다는 골프캐디 “기숙사 방 안까지 쫓아왔다”
최근 골프장 전 여직원 A(23) 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검찰총장 S(70)씨도 자신의 직권을 이용한 케이스다. 14일자 <조선일보>는 성추행을 당한 A씨가 경찰에 낸 자필 진술서를 보도했다.
진술서에서 A씨는 "총장님이 평소 부적절한 언행을 자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에도 여직원들에게 유사한 행동을 계속하는 바람에 골프장 내부에서 이를 문제 삼으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추행당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고소장을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술서는 A4 용지 4장 분량으로 A씨가 작년 6월에 겪었던 성추행과 성희롱의 전말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A씨는 진술서에서 S씨를 일관되게 '총장님'으로 불렀다. 또 S씨가 당시 여자 과장과 함께 여직원 기숙사를 밤중에 찾아와 샤워하고 있던 자신을 불러내 앉힌 뒤 여러 차례 말로 수치심을 주며 희롱하고, 강제로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경기도 모 골프장 여직원이었던 A씨가 검찰총장 출신으로 골프장 회장인 S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적은 자필 진술서의 일부. A씨는 작년 6월 S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상황, 성추행 내용을 골프장 측에 알렸지만 중간 간부들이 “네가 참아라”며 묵살하는 것을 보고 사표를 내고 골프장을 떠나 잊고 지내려 했다는 사실, 하지만 최근 골프장 노조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아버지에게 알리려고 해 자신이 먼저 부모에게 털어놓은 사실 등을 A4용지 4장(약 4500자) 분량으로 상세하게 정리했다.
A씨는 작년 6월 중순 퇴근하고 기숙사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있는데 밤 9시 30분~10시 사이에 S씨가 와서 룸메이트가 문을 열어줬고, 자신은 욕실 안에서 S씨가 가기를 기다렸다면서 "총장님이 도무지 나갈 생각이 없는 분처럼 느껴져 화도 나고, 온종일 일하느라 피곤하고 지쳐 짜증도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30여 분간 욕실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했다. 또 룸메이트가 건네준 민소매 원피스만 입고 거실로 나가자 S씨가 옷과 어깨를 만지고 껴안았다고 했다. A씨는 "여직원들 속옷이 거실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상태여서 민망하고 불쾌해 너무 화가 났다"고도 했다.
A씨는 자신이 겪은 모욕과 수치를 외면하는 골프장 간부들의 대처에도 실망했다고 밝혔다. A씨는 "총장님의 행동과 말을 듣고 본 과장은 모시고 나갈 생각은 않고 앞에서 웃기만 했다"며 "너무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 늦은 시간에 여자 기숙사에는 대체 왜 오신 거냐. 당장 모시고 나가라'고 화를 냈다"고 밝혔다. 또 "너무 분해 밤새 한잠도 못 잤고, 다음 날 골프장 간부에게 '있을 수 없는 일로 이해와 용서가 안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는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하느냐. 네가 이해하고 참아라'며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A씨는 평소에도 S씨의 부적절한 언행이 잦았다고 진술서에서 밝혔다. 프런트에 근무할 때에도 S씨가 직원이나 지인들에게 "내 애인"이라고 소개하며 시인하는 대답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또 이런 행동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S씨의 지인들도 프런트에 와서 "돈을 바꿔달라"며 손을 만지고 "휴대전화 번호 알려 달라"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라"는 등 모욕적 언행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평소 총장님이나 지인들이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을 친다고 (골프장 간부 등에게) 말씀드렸으나 총장님 눈치 보기에 바빠 다들 쉬쉬했다"고도 했다.
A씨는 성추행당한 지 1년4개월 만에 고소하게 된 동기도 진술서에서 밝혔다. A씨는 "총장님이 최근에도 여직원들에게 술자리를 강요하고 성추행을 자주 하자 노조에서 이것을 공론화하려고 하면서 다시금 제 얘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고 이 사실을 저희 아버지에게 알려 사건화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추석 전날에 제가 겪은 모든 사건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게 됐다"고 밝혔다. 또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안 뒤 쓰러지셨고, 몇 날 며칠 부모님이 힘들어하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해 고소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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