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귀농·귀촌 인구가 3만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일면 보여주듯, 도시 사람들의 텃밭과 농사에 대한 관심이 몇 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한 변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은 다름 아닌 학교다. 여성환경연대가 처음 학교텃밭을 시작한 2007년만 해도 텃밭교육은 투입하는 자원에 비해 참여 인원이 한정적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학습시간을 놓치게 한다는 인식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텃밭교육이 아이들의 성장과 삶에 유익하다는 동의를 얻기가 어렵지 않다.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도 텃밭에서 하는 활동이 아이들에게 좋다는 것을 이제는 ‘그냥’ 안다.
내년에는 우리 학교에도 텃밭을
'내년에는 우리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텃밭을 시작할 수 있을까?' 주렁주렁 고운 빛깔 열매를 수확하는 그림을 먼저 상상했다면, 차근히 염두에 둘 것들이 있다. 텃밭교육은 전교생이 참여하기에 공간 제약이 따르고, 작물의 생장 흐름에 따라 1년 가까이 긴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만만치 않은 현장교육이기 때문이다. 날씨와 계절, 수업 전후 텃밭 상황 등을 민첩하게 판단해야 하기에 보이지 않는 데서 많은 품이 든다.

① 누가, 어떻게 참여하고 교육할까?
학교 교사들에게 가르치는 일 외에도 행정업무가 과중하다지만, 생태교육이나 대안적인 삶에 관심을 갖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동아리 시간에 텃밭교육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멋진 선생님들이 있다. 교사가 직접 텃밭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학부모나 지역사회의 자원을 찾거나 공모사업을 활용하여 강사를 요청하기도 한다.
지역단체나 교육활동가들이 학교를 찾기도 하는데, 여성환경연대는 교육청을 통해 학교를 모집·선정하고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기업 후원을 받거나 지자체 프로젝트로 텃밭교육을 한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외부 자원이 투입되더라도 학교텃밭이 정착하려면 학교 안에서 보이지 않는 소소한 것들을 챙기고 조율하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담당교사가 바뀌면 텃밭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이 그 때문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1~6학년까지 전교생이 1000명에 가까운 학교도 있다. 텃밭을 한 번씩 쓱 지나가고 마는 게 아니라면, 20명 내외의 동아리나 방과후수업이 적당하다. 텃밭이 더 넓다면, 학급별로 분양해서 각 반에서 알아서 가꾸는 방법도 있다.
② 텃밭과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까?
도심의 학교에는 드러나지 않는 공터나 자투리 땅, 교재원이나 화단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다. 이마저 없다면 옥상이나 시멘트 계단 위에 상자텃밭을 조성해 볼 수 있다. 학교 안에 경작할 땅이 없다면 인근 나대지도 활용할 수 있다. 몇 해 전 경기 남양주에 있는 호평중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들었는데, 학교 앞에 있는 LH공사 소유 땅에 전교생과 학부모들이 허락받아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주변을 잘 찾아보자. 운 좋게 근처에 노는 땅(장기미집행부지)을 발견하거나 인심 후한 땅주인을 만날 수 있다.
공간을 확보한 다음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까? 해마다 학교를 모집하는 교육청, 구청, 농업기술센터나 경기도라면 경기농림진흥재단의 공모사업을 확인해 보자. 도농교류, 원예통합교과 교육 연구 및 시범 사업, 식생활 교육, 일자리 창출 등의 목적으로 다양한 기관에서 학교텃밭 조성 및 교육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③ 농사원칙 정하기

생산량보다 몸과 마음의 경험이 중요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 아이들과 수확하려고 남겨둔 고추와 오이 등을 누군가 거둬 갔거나 분명 우리가 주지 않은 비료의 흔적을 발견할 때다. 나중에 보니 학교 관리인 아저씨가 알아서 수확하고, 비료도 농약도 쳐준 것이었다. 우리를 생각해서 한 일이지만, 작물이 없어지거나 어느 때부터 벌레가 사라지고 열매가 부쩍 많이 달린 이유가 화학비료와 농약 때문이란 사실을 아는 순간 교사와 아이들은 허탈하고 속상하다.
생산량을 중심에 두면, 비닐도 깔고 비료와 농약도 살짝 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학교 텃밭교육의 목적은 '성공적인 농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 과정에서 아이들이 새롭게 얻는 '몸과 마음의 경험'에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텃밭수업을 하려면, 작물 재배와 수확 시기가 조금 이르거나 늦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을 학교 관계자 등 관련된 사람들과 반드시 공유해야 나중에 뒤탈이 안 생긴다.
우리 모두 훌륭해요!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며 텃밭에 심어 놓은 작물의 잎이 말라가는 것을, 지난번에는 콩알만 하던 가지가 굵어지고 파랗던 토마토가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본다. 그러고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이거 물 줘요?", "얘 잘라줘도 돼요? 먹어보고 싶어요!" 종알종알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학교텃밭은 아이들의 감수성과 관심을 자극하고 주변의 환경에 눈을 돌리게 한다.
서울 성북구 정수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가꾸어 수확한 배추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부는 학교급식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하자 했다. 300명 규모의 작은 학교이다 보니 전교생이 먹는 배춧국, 열무국 정도는 너끈하다. 또 아이들은 직접 배추를 차에 싣고 옮기면서, 지난 수고와 정성어린 마음이 먹을거리를 통해 지역사회에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서울 강동구 강동초등학교 5학년의 한 학급에는 특수반을 병행하며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텃밭수업시간마다 친구들과 같이 호미질도 하고 물도 주곤 했다. 아이가 호미를 손에 쥐고 있을 때 위험할까봐 약간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다른 친구들이 머리 너머로 호미를 들면 안 된다고 "땅에다 이렇게 하는 거야" 알려주는 게 아닌가? 다양한 농기구를 사용해 가며 내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친구를 돕는 모습은 바라보는 어른에게도 감동이다.
학교텃밭에서 아이들은 작물을 가꾸면서 생명을 보듬는 마음을 배운다. 씨감자 눈을 위로든 아래로든 향하게 해 심을 수 있는 것처럼,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상추 심는 때가 다른 것처럼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게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공동의 성과물을 위해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해야 하고, 때로는 내 역할을 조율하는 경험도 한다. 한 학기 마칠 즈음 "우리 모두 수고했고, 훌륭하다"고 서로 칭찬하고 존중받는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 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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