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를 믿지 마라, 허위 광고, 부실시공 SK건설은 각성하라."
9일 오전 11시, 아파트 단지가 일순간 시끄러워졌다. 200여 명의 아파트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손에는 빨간 깃발과 피켓이 들려 있었다. 대부분이 30대 부부들이었다. 아이들도 부모들 손에, 그리고 유모차에 이끌려 행진에 동참했다.
4월 30일 오픈한 동탄 SK뷰파크 2차 모델하우스를 규탄하는 거리행진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100미터 떨어진 모델하우스까지 피켓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박재상(가명‧37) 씨도 그 행진에 동참했다. '팔뚝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거리행진에 참여하게 된 걸까.

모델하우스와는 전혀 다른 실제 아파트
박 씨가 사는 아파트는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에 있는 'SK뷰파크'다. 국내 대기업 SK건설이 지하 1층~지상 25층으로 모두 25개동 1967세대 규모로 지었다. 4월 30일 최종 입주분양이 마무리됐다.
박 씨는 지난 3월,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입주까지, 즉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약 2년여를 기다렸다. 수원에서 전세로 살던 그였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전셋값을 고민하다 아파트를 장만하기로 했다. 이곳저곳을 알아보러 돌아다녔다. 여러 곳 중에서 신동탄 지역의 SK뷰파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학군이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 내에 시립어린이집도 세워지고, 도보로 10분 거리에 초‧중‧고등학교도 들어선다고 했다. 박 씨는 현재 4살 된 아이가 있다. 아이 교육에는 적격인 아파트라고 생각했다. 투기 목적이 아니라 10~20년 살 아파트를 생각했다.
게다가 아파트 내부 구조도 박 씨 취향이었다. 모델하우스에 만들어진 내부 구조는 고급인테리어를 한 듯했다. 망설임 없이 아파트 분양을 신청했다. 전세금에 그간 모은 돈, 그리고 빚 1억여 원을 합치면 가능할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지난 1월 24일, 아파트 입주자를 위한 입주 전 방문점검에서 박 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완공된 아파트의 모습은 모델하우스와는 상당히 달랐다. 벽과 천장 이음새에 벌어진 틈, 구멍 난 벽지…. 하자 있는 부분을 세보니 대략 40곳 정도 됐다.
돈이 한두 푼 들어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공사를 했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 씨 아파트만 이런 게 아니었다. 상당수 입주자도 박 씨와 비슷한 처지였다. 적게는 20~30건, 많게는 100건 이상 하자가 난 곳도 있었다. 평평해야 하는 벽면이 곡선으로 시공된 곳도 있었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중국인을 채용해 공사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박 씨는 시공사인 SK건설에 하자 관련, 보수를 요구했다. SK건설 측은 "알았다"고 답변했지만, 말뿐이었다. 3월께 입주한 아파트는 '땜질'식으로 보수돼 있었다. 벽면에 난 구멍은 그 부분만 다른 벽지로 덧씌워 놓았다. 벽과 천장에 사이에 벌어진 틈은 실리콘으로 처리해놓았다.
감쪽같이 사라진 복도 창…SK건설 "고지 의무 없다"

애초 설계와 다르게 지어진다면 입주자에게 알려주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체 그런 언급이 없었다. SK건설 측에 항의하자 "설계 변경에 따른 고지 의무는 없다"며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나마 박 씨 집은 나았다. 흔들리는 배란다 창문틀, 물이 새는 안방 화장실 전등, 구멍 뚫린 벽 등 아파트 곳곳에서 하자가 발견됐다.
아파트 제반 시설도 문제였다. 아파트 광고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편의시설과 방범시설들이 사라졌다. 아파트 옥상에 설치하기로 한 조명이 사라진 것은 물론, 도둑 침입을 막는다며 옥내에 설치하기로 한 가스관이 외부에 설치된 것까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지경이었다.
시공사 측에 이와 관련해 질의하니 "광고와 실제는 다를 수 있다. (광고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식이면 모델하우스는 왜 만들어 홍보하는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알고 보니 다른 입주자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신동탄 SK뷰파크 입주자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박 씨도 여기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수감돼 있는 의정부교도소를 찾아가 항의서신을 전달했다. 동탄 SK뷰파크 2차 모델하우스 오픈이 있던 지난 1일에는 입주자들이 돌아가면서 '제2의 호갱님이 되시렵니까?'라고 적혀진 피켓과 빨간 깃발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자 있는 아파트를 팔지 말라는 취지였다. 9일 동탄 SK뷰파크 2차 모델하우스 앞에서 진행된 거리행진도 마찬가지 취지였다.
박 씨는 "SK건설은 그간 숱한 문제제기에도 하자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모든 게 입주민 탓이라고만 할 뿐"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두 푼도 아닌 엄청난 돈을 들여 산 아파트가 여러 하자가 있다 보니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며 "SK건설이라는 대기업을 믿었지만 결국, 허위 과장 광고에 속아 아파트를 산 셈이 됐다"고 말했다.

시대착오적인 선분양 위주 주택공급
아파트 선분양제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다. 해외에서도 주택에 대한 선구매권을 사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완공되기도 전에 주택가의 80%를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방식이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건설사들이 적은 돈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주자가 미리 내야 하는 계약금·중도금 규모가 주택가격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건설사는 금융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금융부담을 2~3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선분양 제도는 실제 물건이 아닌 모델하우스만 본 뒤, 이를 믿고 수억 원의 돈을 내는 식이라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박 씨 아파트처럼 부실시공과 하자보수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이나 보호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대규모 주택개발에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선분양' 위주 주택 공급 방식이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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